음식은 문화요, 먹는 법은 문명이다
문명이란 한마디로 살아가는 매너라는 뜻인데 이러한 매너는 어려서부터 몸에 익히는 대로 나오는 법이다. 남한테 불쾌감 주지 않으면서 허세부리지 않고 편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먹는 것이 최고의 식사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ㆍ사진 김연수(의학전문기자 출신 1호 푸드테라피스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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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문화요 먹는 법은 문명이다. 먹는 법 하면 무슨 테이블 매너나 옷차림 같은 격식을 연상하기 쉬운데 그런 뜻이 아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만드는 사람에게 달렸겠지만 먹는 방식만은 자기다운 즉 내 것이라야 한다는 의미다.


코스당 몇 십만 원을 능가하는 최고급 디너라도 차려진 음식을 먹는 모습이 뭔지 모르게 촌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돈 몇 천 원의 우동 한 그릇도 먹는 모습에서 고상한 멋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의 식사 장면에서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가 있다. 재벌가 사모님이나 회장님 역으로 호화스런 식탁에 앉아 여러 명의 시중을 받으며 식사를 하는 배우들이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시거나 포크나 나이프를 처리하는 법은 흠잡을 것이 없지만은 뭔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이 전해질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일까. 주연 배우들이 ‘먹는 연습’을 충분히 안 한 탓일까.  


이러한 의문을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특유의 독설로 배우 알랭 드롱을 예를 들어 명쾌히 설명하고 있다. 에세이 『남자들에게』을 통해 그녀는 알랭 드롱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드롱이 상류층 대저택에서 여럿이서 회식 겸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테이블 매너는 정확했지만 ‘천박한’ 속성이 드러났다고 꼬집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이야기를 빌려보자. ‘알랭 드롱의 테이블 매너는 의자에 앉은 모습도 등을 바로 편 모습이었고 식탁에 팔꿈치를 올려 놓은 것도 아니고 나이프 포크 스푼 사용법도 모두 틀리지 않았다. 쩝쩝거리거나 그릇을 달가닥거린 것도 아니고 음식을 입 속에 잔뜩 문채 지껄인 행위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그 이유를 골몰히 생각한 결과, 그는 테이블 매너에 너무도 충실했던 것이다. 매너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도 열심히 지킨 것이다. 마치 벼락부자가 교과서대로 열심히 실행하려는 듯해 보는 쪽이 힘들어진 것이다. 개 흉내를 내는 늑대는 개도 아니고 늑대도 아니다. 치장된 식탁에 앉은 알랭 들롱은 그 아무 것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분명 알랭 드롱이지만 주인공이 이렇다 보니 나머지 조연들도 덩달아 어색해 보였다며 아마도 이 문제는 감독이 여러 번 재촬영을 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거라며 독설로 맺었다.

그녀가 이리 혹독한 평으로 알랑 드롱을 언급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가 보는 알랭 드롱은 원래 상류층 문화와는 거리가 먼 배경의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선술집 같은 식탁에서 그의 남성적인 매력이 자연스럽게 돋보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한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식사법이 그만큼 한 인간의 성장배경을 짐작할 만큼이나 개인의 분위기를 드러내는데 영향을 미침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식사법에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비슷한 느낌을 요즘 식사 테이블마다 곁들이는 와인을 먹는 자리에서 종종 느끼곤 한다. 와인 자체도 싼 가격이 아닌데 와인 한 잔을 제대로 먹기 위한 치장들이 왜 그다지도 많은지. 심지어 와인 맛을 테스팅하고 마시는 법을 교습까지 받아가며 참석하는 지인들도 보았다. 그런데 사실 꼴불견이다. 최고의 식사법은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와인을 후르르 마시든, 물컵에 따라 마시든 말든 먹는 사람 자기다우면 되는 것 아닐까. 


문명이란 한마디로 살아가는 매너라는 뜻인데 이러한 매너는 어려서부터 몸에 익히는 대로 나오는 법이다. 남한테 불쾌감 주지 않으면서 허세부리지 않고 편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먹는 것이 최고의 식사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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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에게시오노 나나미 저/이현진 역 | 한길사
시오노 나나미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얘기할 것 같은 이 표지글처럼, 페미니스트도 보수주의자도 아닌 시오노 나나미의 필터를 통해 걸러보는 매력적인 남자에 관한 에세이. 이성적 두뇌를 자극하는 발상, 봄바람 같은 스카프의 감촉, 차갑게 와닿는 팔찌, 온통 오감의 자극샘 같은 이 세련되고 관능적인 에세이들은 한마디로 스타일이 있는 남자, 매력 있는 남자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 식의 예찬이 가득하다. 스타일, 매력, 관계, 본능 또는 관능, 언어 또는 사유 언어 등 5가지 단락으로 나누어 각 항목별 멋진 남자에 대한 그녀의 경험과 분석, 그리고 동경이 담겨 있다.



#시오노 나나미 #남자들에게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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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ko111

2015.12.09

최고의 식사법은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와인을 후르르 마시든, 물컵에 따라 마시든 말든 먹는 사람 자기다우면 되는 것 아닐까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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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학전문기자 출신 1호 푸드테라피스트)

의학전문기자 출신 제1호 푸드테라피스트 / 푸드테라피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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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3년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1968년까지 공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다. 1968년에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천착해왔으며,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 해석으로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1970년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을 발표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고, 이 저서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198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산토리 학예상’과 1983년에 ‘키쿠치 칸 상’을 수상했다. 1992년부터 로마제국 흥망사를 그린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1년에 한 권씩 15년간 집필했으며 1993년 『로마인 이야기 1』로 ‘신초 학예상’, 1999년 ‘시바 료타로 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 저작집』(전 7권)을 출간했다. 2001년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 수훈, 2007년 일본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2008~2009년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전 2권)를 출간했고, 2010년부터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를 펴냈다. 그 외에도 『사는 방법의 연습』 등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심상을 전하는 많은 수필과 단상집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