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음악으로 뭉친 네 남자
같은 꿈을 가지고 같은 길을 걸으며 서로를 응원해주는 친구가 있으면 기분이 어떨까? 남들은 인정하지 않는 내 꿈을 이해해주고, 끝까지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다른 무엇보다 든든한 일이다. 거기에 그 친구가 철없던 학창시절의 한 페이지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소중하고 애틋한 존재로 다가온다. 아직은 성숙하지 않아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다음 날 웃음 한 번에 모든 게 풀어졌던 학창시절의 단짝친구. 어딘가 오글거리는 학창시절의 흑역사(?)를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충분히 행복하고 축복받은 일이다.
뮤지컬 <고래고래>의 네 명의 주인공 민우, 영민, 호빈, 병태는 바로 그런 사이다. 척하면 척! 말할 것 없이 눈빛만으로도 통하고,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이내 화해하는 죽마고우들. 네 사람은 철없던 학창시절부터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뭉쳐 의리 넘치는 우정을 나눈다. 노래하는 게 제일 행복했던 그 시절, 서로가 있어 부러울 게 하나 없던 그 시절,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빛나던 그 시절. <고래고래>는 그런 네 남자의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교차시키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다.
각자의 삶이 바빠 음악과 잠시 멀어진 채 살고 있던 현실의 네 남자는, 고등학교 시절 약속 했던 ‘자라섬 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다. 네 사람은 목포에서 자라섬까지 한 달 여의 도보 음악여행을 통해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진짜 꿈과 진실한 우정에 대해 깨닫게 된다.
스토리냐 음악이냐
학창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네 사람이기에 뮤지컬 <고래고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음악이다. 무대 뒤에서 실제 밴드가 연주를 해주는 덕분에, 관객들은 훨씬 더 생동감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이는 극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2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네 사람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연주한다. 오랜만에 만난 어색함과 민망함도 노래로 허물고, 반가움과 즐거움도 노래로 표현하고, 미안함과 고마움도 노래로 전달한다. 처음부터 네 사람을 함께 엮어준 건 음악이었기에, 그들은 그 안에서 진심으로 서로 소통한다.
이렇듯 뮤지컬 <고래고래>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그들의 음악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음악이 돋보이는 이유가 뮤지컬 안에 오직 ‘음악’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점이다. 즉, 뮤지컬 <고래고래>에는 음악 외에 극을 뒷받침해줄만한 다른 요소가 눈에 띄지 않는다. 네 사람의 도보 음악여행은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이지만, 그 소재를 짜임새 있게 엮어나가지 못한다. 군데군데 잘못된 단추를 꿰매어 넣은 듯 어색하게 이어지는 스토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빈약한 스토리를 채우는 건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다. 특히, 허세 드러머 호빈을 연기하는 배우 김재범이 하드캐리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넉살맞은 표정과 익살스러운 말투로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호빈은, 뮤지컬 <고래고래>에 없어서는 안 될 감초 같은 캐릭터이다.
사실 여자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뮤지컬 <고래고래>는, 남자 냄새가 물씬 나는 다분히 ‘마초적’ 작품일 수 있다. 남자들의 우정, 의리, 미움과 용서 그리고 화해 등의 심플한 세계를, 복잡 미묘한 여자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아마 이 으리으리한 남자들의 우정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전체적인 스토리가 애매모호해진 것 같다. 드라마의 부족은, 바퀴가 한 개 없는 자전거를 바라볼 때처럼 불안하고 어색하다. 뮤지컬 <고래고래>가 다시 관객 앞에 찾아오기 위해, 스토리를 보완해야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조금은 모자라고 엉성하지만, 함께 있어서 빛나는 네 사람의 이야기 <고래고래>는 11월15일까지 광림 아트센터 BBC 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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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