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 ‘무한동력’이 뮤지컬의 옷을 입고 대학로로 공간 이동했습니다. 연료 공급 없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무한동력장치를 만들겠다는 철물점 아저씨와 그의 고3 딸 수자가 꾸려가는 아담한 하숙집에 모여 사는 이 시대 청춘들의 녹록치 않은 현실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데요. ‘꿈’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치가 돼버린 각박한 현실, 그래서 이 흔한 소재는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웹툰으로 전할 수 있었던 평범한 감동이 무대로도 옮겨질지는 미지수인데요. 공연장에 들어서자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대 전면에 장착된 커다란 무한동력기관이 눈에 띄는군요. 무엇보다 현실보다는 ‘꿈’을 먹고 사는 배우들이 꿈을 잃은 청춘들의 모습을 연기하는 게 인상적인데요. 뮤지컬 <무한동력>은 관객들에게 어떤 감동을 선사할까요? 27살 취업준비생 장선재로 무대에 서고 있는 29살 뮤지컬배우 박정원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제가 27살에 딱 선재 같았거든요. 회사 면접을 봤던 건 아니지만 저희는 오디션이라는 게 있잖아요. 선재가 대기업에 가고 싶은 것처럼 저도 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는데, 오디션만 보면 똑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절대 눈을 낮추고 싶지는 않고, 그래서 27살 때 꽤 오래 쉬었어요. 연기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죠, 진짜 힘들었어요.”
웹툰으로는 많은 인기를 얻었던 작품인데, 객석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모든 공연이 그렇지만, 실제 무대에 올렸을 때 차이가 나거든요. 특히나 창작 초연은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라서 배우나 제작진 모두 힘든데, 특히나 차이가 많았던 작품 같아요. 무대에 들어와 보니까 연습 때와는 웃음 포인트도 다르고, 조금 지루한 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재미를 넘어서 인간적인 부분도 많아서인지 감동을 받으시더라고요.”
<무한동력>이 뮤지컬로 드러낼 수 있는 매력은 뭘까요?
“직접적인 감동이라고 할까요? 저도 웹툰을 보면서 ‘아, 좋다!’ 이런 서정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그걸 조금 더 극적으로 전할 수 있겠죠. 그림으로 오는 시각적인 느낌은 많이 없을지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재밌게 수정된 부분도 있고요. 무엇보다 공연에는 노래가 있잖아요.”
배우 박희순 씨가 연출을 맡아서 더 주목받았던 작품입니다. 직접 겪어보니 어땠나요(웃음)?
“어,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웃음)? 저도 웹툰을 보고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보다 더 끌렸던 건 박희순 선배님이 연출을 하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조금 힘들더라고요. 연기를 잘하는 배우시고 극단 생활도 오래하셔서 배우들의 마음을 잘 아니까 디테일한 것도 잘 이해하고 설명해주시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배우 대 배우’로 부딪히는 경우가 있었어요.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할까요? 결국은 연출님 믿고 갔죠(웃음). 작품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하셨던 분이라 전체적인 흐름을 잘 알고 계시더라고요.”
이 작품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꿈도 생각하게 될 텐데, 박정원 씨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배우였나요?
“말하기 부끄럽지만 어렸을 때 꿈은 가수였어요(웃음). 제가 안양예고를 다녔는데, 그때 비나 세븐 이런 분들이 안양예고 출신이라서 학교에 가면 가수가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현실은 다르잖아요. 학년이 올라갈 때 공연을 하게 됐는데,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연기에 관심을 갖게 돼서 대학(중앙대 연극학)에서도 연기를 전공했죠.”
박정원 씨 하면 아무래도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류순호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래서인지 애교 많고 좀 예쁘장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여신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말도 잘 않고 웃음도 없었는데, 배역을 많이 따라간다고 하잖아요. 저의 장점이자 단점이 돼 버렸는데, 애교도 생겼고, 어린 느낌이 무대에서 많이 보이나 봐요. 그래서 박희순 연출님도 <무한동력>에서는 좀 더 어른스럽고 진중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쓰릴 미> 같은 남자 냄새 물씬 나는 작품에 도전해 보시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해보고 싶어요. <헤드윅>도 해보고 싶고요. 그런 자신감은 있어요. 자신감 없으면 못하는 게 저희 일이죠.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빨래>의 솔롱고예요. <빨래>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거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연극에 관심이 많아요. 안톤 체호프도 정말 좋아해서 연극 <갈매기>나 <벚꽃동산>에서 주인공을 받쳐주는 역할들을 하고 싶어요.”
사실 배우 분들이 또래 직장인에 비해서는 현실과 떨어져 사는 분들이잖아요. 작품을 하면서 괴리감을 느낄 것도 같고, 한편으로 자신의 꿈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도 생각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무한동력>을 하면서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요즘 굉장히 감사해요. 안 풀렸던 적이 있었고, 지금 좋은 작품들을 하고 있고. 요즘 작품 두 개를 하면서 다른 작품 연습도 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네가 원해서 하는 일 아니냐.’ 생각해보니까 힘들지만 무대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극중 무한동력기관을 만드는 하숙집 아저씨 입장이 된다면 장선재에게 뭐라고 할 것 같나요?
“그 생각은 안 해봤는데, 꿈을 강요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작품이잖아요. 저도 별말은 안 할 것 같아요. 네 꿈이 뭐였는지 생각해보라고. 이뤄지지 않더라도 꿈을 잊지는 말라고.”
꿈을 향해 갈 수 있는 박정원 씨의 무한동력은 뭔가요?
“선재가 그런 말을 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그걸 보면서 좋아하는 내 모습이 너무 좋다.’ 사실 저의 새로운 꿈은 귀농이에요(웃음). 가족들이 먹을 걸 직접 재배하고, 애들은 마당에서 뛰어 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저한테도 무한동력인 것 같아요. 저도 이 꿈을 이루려면 경제적인 부분을 비롯해서 현실적으로 많이 부딪히는데, 꿈을 위해서라면 이겨내야죠.”
뮤지컬 <무한동력>은 거창한 꿈을 얘기하지도, 꿈을 꾸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하게 되죠. 내 꿈은 무엇이었나, 나의 무한동력은 무엇일까? 29살의 뮤지컬배우 박정원 씨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길은 꿈이면서 동시에 현실이겠죠.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이후로 애교도 많고 웃음도 많아진 박정원 씨가 <무한동력>을 지나 앞으로 만나는 배역들을 통해 또 어떻게 변화될지, 지켜보는 재미도 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 역시 배우들에게는 무한동력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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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