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여성적 감각으로 생명을 사유하는 소설가
정염·광기·접신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귀기(鬼氣)의 작가로 불리는 전경린은 일상 속에 내재된 욕망, 관습과 제도를 거부하는 내면 풍경을 포착하여 섬세한 문체에 담아내면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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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귀기의 작가' '정념의 작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화려한 문장으로 기억된다. 서른세 살. 아이와 피와 심지어 죽음조차 삶이 모두 허구라는 것을 느낀 작가는 허구가 아닌 삶의 실체를 갖고자 소설을 쓰기로 시작했다.

 

작가의 본명은 안애금.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전경린이라는 이름은 옛날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임시로 지었다. 당시 누가 `린'이라는 화두를 주었고, 차례대로 `경'과 `전'을 추가해서 `전경린'이라는 이름을 완성시켰다. 작가도 물론 `전혜린'을 떠올렸다. 작가는 전혜린을 좋아한다. 그리고 전혜린 뿐 아니라 나혜석, 윤심덕 더 올라가서 황진이까지 소위 강한 자의식 때문에 고통 받고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선각자적 여성을 좋아하고 흠모한다.

 

196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경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KBS에서 음악담당 객원 PD와 방송 구성작가로 근무했다. 그 후 운동권이었던 남자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다 둘째를 낳은 후인 1993년부터 본격적인 습작에 들어갔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사막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97년 「염소를 모는 여자」로 제29회 한국일보 문학상, 1997년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로 제2회 문학동네 소설상, 1998년 단편소설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으로 21세기 문학상, 2004년 단편소설 「여름휴가」로 대한민국소설문학상 대상, 2007년 단편소설 「천사는 여기 머문다」로 제31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바닷가 마지막 집』 『물의 정거장』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열정의 습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황진이』 『엄마의 집』 『풀밭 위의 식사』와 어른을 위한 동화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붉은 리본』 『나비』 등이 있다.

 

베스트셀러인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은 2002년 변영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가정의 틀 안에서 안주하던 한 여성이 내면에 지닌 혼란스런 욕구를 발견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나타나는 일탈과 매혹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섬세한 문체와 절제된 기법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삶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내면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 『엄마의 집』에서는 처녀의식을 가진 엄마들에게 “미스 엔”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아버지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종속당하지 않는 미스 엔이 그녀의 소설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여성들의 욕망에 주목해 온 작가답게, 현실의 엄마가 놓인 지형을 넘어서는 대안적이고 이상적인 집의 전형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전경린 작가의 대표작

 

천사는 여기 머문다

전경린 등저 | 문학사상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섬세한 문체와 절제된 기법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최근의 소설들이 삶의 현실로부터 유리된 채 지나치게 작위적인 구성에 몰두하거나 파편화된 일상을 과장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현상을 놓고 본다면, 이 작품은 삶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내면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이 소설이 오늘의 현실 속에 널려 있는 애정 갈등과 가정 폭력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다루고 있는 점이 하나의 약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은 그 소재의 통속성을 흥미 위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적인 사건의 병치와 서술의 긴장을 살려내는 압축과 이완의 서사 기법을 통해 작가 나름대로 기획하고 있는 하나의 소설적 미학에 도달하고 있다.

 

 

 

 

염소를 모는 여자  

전경린 저 | 문학동네 

작가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출간한 첫 소설집으로 등단작 「사막의 달」을 비롯하여 총 여덟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집에는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중편소설 「염소를 모는 여자」가 실려 있어 '전경린'이라는 신인 소설가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단숨에 각인시켜낸 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저 | 문학동네

사랑이란 열망하면 할수록 안정된 삶을 위협하는 근본적으로 불온한 정열임을 그려내 보이는 한편, 불온한 욕망, 모호한 생의 불안으로부터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전경린 문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 문제작이다. 등단 이후 다수의 작품들을 통해 진부한 삶의 궤도를 벗어나도록 추동하는 사랑의 열정을 꾸준히 표현해온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 한국문학사에서 잊히지 않을 사랑의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순간들은 이혼과 불륜이라는 소재적 범주를 넘어 '생은 과연 무엇이고 나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인간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환과 멸

전경린 저 | 생각의나무

작가 전경린의 96년 이후 발표작 8편을 묶은 두 번째 창작집. 데뷔 이후 줄곧 그래왔듯이 그는 이번 작품집에서도 질서와 일탈, 윤리와 비도덕, 삶과 죽음이 서로 힘겹게 맞닿은 자리만을 찾아내 `이렇다니까. 천리만리 먼 것 같아도 겨우 백지장 한 장 차이야`하는 표정으로 태연히 빙글거린다. 그 웃음은 일상의 틀을 믿고 고수하려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유혹이다.

 

 

 

 

 

 

 

 

 

 

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저 | 문학동네

깨어지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어떤 균열이든 두 팔로 끌어안고 지속하는 그것이, 사랑의 일이라고 말하는 이 작품은 사랑의 감정에 대해, 사랑하는 이들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음 한켠을 날렵하게 베어내 얇게 벼린 그 조각을 들이미는 듯한 그의 이야기는 소설 속 인물들과 독자들의 마음까지 온통 깨어지기 쉬운 유리로 만들어버리지만, 저자는 말한다. "더 많이,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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