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인구 몇 만 이상으로 쉽게 정의할 수 없었듯이 메트로폴리스를 단순히 수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로만 생각할 수 없다. 도시적인 것의 탄생을 목도하던 때처럼 우리는 메트로폴리스적인 것을 정의하고 상상해야 한다.(6쪽)
서울은 덩치만큼이나 크고 다양한 저마다의 삶을 품고 있다. 누구에게 서울은 유흥과 소비의 공간으로, 누구에게 서울은 전통과 역사의 공간으로, 누구에게 서울은 최첨단 기술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서울 인구 천만. 이제 서울은 ‘도시’를 넘어 ‘메트로폴리스’가 되었다. 이 대도시의 작동 과정을 살피는 것은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서울의 삶을 이해하고 나아갈 곳을 결정하는 첫머리가 될 것이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서 임동근 교수는 서울에 자원이 모이고, 이동하고, 축적되는 과정을 통사적으로 읽어낸다. 그 과정에 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작용하고 몸집을 키워왔는지를 살피는데 이는 무엇보다 서울이 빠르게 변화한 탓에 우리가 채 읽어내지 못했던 중요한 성찰이 아닐 수 없다.
빈곤하고 열악한 환경의 서울에서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드러내는 화려한 도시 서울로의 변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빨랐을 뿐이다. 그 틈, 변화 과정, 역사의 변곡점에 누가, 무엇이, 어떻게 서울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놓았는지 설명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바로 그 대목을 짚어주는 의미 있는 책이다. 권력이 자본에게 어떻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그것으로 권력을 유지했으며, 소외당한 사람들은 어째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는지가 드러난다. 지리학이라는 안경을 통해 현대사 속 서울을 차근차근 짚다보면 서울의 현재가, 우리의 삶이, 욕망이나 희망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지리학의 매력이다.
서울은 독특한 도시
“작은 현상을 가지고 설명을 하다 보면 이전에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24쪽)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남는 책이었습니다.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했고요. 이런 설명은 이전까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역사학계에서는 아날학파(Annales School)라고 해서 브로델(Fernand Braudel)부터 시작하는 굉장히 전통 있는 학문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사상사가 아니라 물질사에서 시작하는 건데요. 부엌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나, 벽돌이 어떻게 바뀌었나, 이런 것 하나 하나를 가지고 역사의 흐름, 주기, 리듬을 파악하는 거죠. 1960년대부터 프랑스에는 이런 전통이 있었습니다. 푸코(Michel Foucault)라든지 이런 사람들도 다 아날의 자장에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 영향을 받은 세대들입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도입이 됐어요. 한국사학, 서양사, 인류학 이런 쪽에서는 많이 쓰고 있죠. 쓰는 줄도 모르게 쓰는 거죠.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도시, 지리 쪽에는 별로 그런 얘기가 없었는데요. 이 책에서는 그런 전통 하에 현대사를 본 거죠. 어떻게 보면 지리학 책이라기보다는 역사학 책 같은 느낌이 들죠. 방법론이 아날의 전통에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 겁니다.
두 달 간 팟캐스트에 소개한 내용을 묶은 책인데요. 방송을 하면서 전하려고 했던 것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방송에 참여하려고 했을 당시 프랑스에서 지리학 관련 팟캐스트가 한참 떴어요. 이참에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게 됐고요. 몇 가지 주제를 제안했어요. 그 중 메트로폴리스 서울이라는 주제가 결정된 거죠.
정치지리학 시선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지리학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자원 배분에 관한 사회적 현상들을 보는 학문입니다. 정치도 하나의 자원이거든요. 그게 정치지리학이죠. 문화지리학이라고 하면 문화도 하나의 자원으로 보는 거예요. 땅 위에 있는, 공간상에 있는 어떤 것들이 자원이 되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예를 들어 북극이라고 하면 여태까지 북극에 대한 논의는 기후학자, 해양학자들이 들어가 했는데요. 북극에 나와 있는 자원 때문에 항로가 개척된다든지 석유가 나온다든지 하는 순간 지리학의 대상이 돼요. 자산,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죠. 농담처럼 화성지리학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게 화성에 자원이 있으면 그걸 어떻게 공간적으로 배분을 하느냐가 연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뭔가 돈이 될 만한 것들이 A라는 지점에서 B지점으로 움직이는 것을 파악하는 게 지리학이에요. 움직임, 밀도, 공간적 분포, 이런 것들에 굉장히 민감해요. 그 중 정치라는 게 하나의 자원처럼 나오는 거죠. 돈이 있다는 것과 정치적인 권력이 있다는 것이 거의 똑같은 효과를 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같은 효과일지도 몰라요. 그런 것들을 연구하는 게 정치지리학입니다.
“서울은 독특한 도시”라고 하셨는데 무엇이 가장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른 메트로폴리스와 서울이 다른 점은 무엇이 있나요?
서울은 우선 굉장히 빨리 성장했고요. 성장도 생각보다는 무척 순조로웠어요. 갈등이나 도시 폭동 같은 것도 거의 없었고요. 계급 갈등도 있긴 있었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많이 극복이 된 상황이죠. 다른 나라에서 봤을 때 훨씬 더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성장한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거죠. 실제로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죠. 슬럼으로서의 서울, 1960년대의 한참 빈곤하던 서울에서 지금의 잘 사는 서울로 곧바로 넘어가지는 않았을 텐데 그 과정을 연구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그걸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거거든요. 이것이 제 박사논문의 주제예요. 어떻게 메트로폴리스가 순식간에 빠르게 진행되었는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가를 보는 거죠.
같은 위치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어요. 카이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뉴델리 같은 여러 도시들이 그래요. 대부분 슬럼이 많은 도시들, 인구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도시들이었거든요. 이 도시들이 갑자기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하는, 부(富)가 올라가는 장면 대부분이 다 해석이 되는 거죠.
메트로폴리스로 이행하는 장면들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군요.
도시가 2천만 이상으로 팽창하게 되면 기존의 5만 도시가 만들어지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정치적으로 그 요인들을 몰아주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5만 도시면 주변에서 먹을 것을 공급하면 살 수 있어요. 2천만 쯤 되면 먹을 것을 공급하는 시간이 길어요. 범위도 넓고요. 그 물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경제적인 힘, 군사력, 세계 무역 질서, 각종 법적 질서가 들어가야 하는 거죠. 그걸 하나씩 만들어왔다는 겁니다. 그 과정을 보는 하나의 틀이 메트로폴리스 지리학이에요. 도시지리학과는 또 달라요. 대도시가 어떻게 성장하고 관리되는지 하는 연구의 또 다른 흐름이 있죠. 그 흐름 안에서 서울을 본 거예요. 비슷한 흐름으로 베이징, 도쿄 등도 볼 수 있죠. 서로 소통하고 그래요. 이런 쪽으로는 생각보다 지식의 흐름도 빠른 편이에요.
그러니까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는 되고 저기는 안 되는 경계가 모호합니다. 하필 이런 선을 그은 이유가 뭐였을까, 누가 그었을까, 이것은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중략)
이와 관련된 인터뷰도 없고, 당사자들 중 지금 살아 있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워낙 빨리 처리하다 보니까 집중 조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릅니다. 관련된 황당한 예는 많습니다. (80쪽)
가장 아쉬웠던 것은 기록 부족으로 정확하게 전후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먼 과거도 아닌데 말이죠. 물론 연구자로서는 더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령 서울 확장 미스터리 같은 부분은 괜한 소설적 상상을 하게 하는데요.(웃음)
1960년대 자료가 제일 없어요. 너무 빨리 변했기 때문에 그래요. 당시는 복사기가 없었기 때문에 자료가 필사본 한 부 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 자료 사라지면 끝나는 거죠. 그 빈틈에 대해서는 많이 추론을 하는데요. 실제로 관련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심증은 가죠. 말하기는 힘들지만요. 또 ‘누가 결정했는지가 중요한가?’라는 생각도 해요. 누가 결정했어도 단발성 사건이었다면 이어지지 못하거든요. 이어갔다는 것 자체가 의의가 있는 거지 하나의 사건 자체가 의의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죠. 그린벨트를 예를 들어도 후에 그린벨트를 해지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계속 유지했다는 것이 의의가 있는 거죠.
역사적인 사건들을 평가할 때, 그 사건들이 정말 중요했다는 평가는 결국 후속되는 마디들에 따라 결정되는 거고요. 그 마디들이 오늘날 어떤 작동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강남이라는 공간이 참 재미있어요. “외부 사람들이 강남을 재생산”(378쪽) 해주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강남에서 많이 돈 쓰시잖아요.(웃음)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요? 소비도 큰 축을 담당하고 있고요. 제일 큰 건 강남은 사무직 노동자들의 집중지라는 거예요. 다른 도심의 경제 상황이라면 물건이 왔다 갔다 하는 부분도 많죠. 강남은 종이 만지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몰려있는 곳 중 하나예요. 사무직 노동자들의 오피스촌이 나온 거죠. 이들이 돈 쓰는 비율이 제일 높은 거예요. 또 사무직 노동자들이 연령별, 계급별, 성별로 어떻게 구성되느냐를 봐야 해요. 30, 40대 그리고 압도적으로 여성들이 많죠. 여성들이 국내 소비문화를 리딩하는 면이 있고요. 돈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시기가 또 30, 40대고요. 강남은 그런 공간의 집합이 되는 거죠.
가장 중요한 게 복지
서울, 하면 아파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초기에는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사실은 거주자 비율이 단독주택과 큰 차이가 없다는 분석도 하셨는데, 아파트는 어쩌다가 이렇게 확장된 형태로 자리 잡았을까요?
서울 시민의 반 정도가 다세대 주택에 살아요. 아파트가 지배적인 주거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면 절반인 거예요. 수도권으로 확장을 하면 조금 높아지긴 하죠. 민간 자본을 주택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아파트 정책을 편 거거든요. 재벌 건설사를 끌어들이려면 규모를 키워야 했어요. 집 한 채 지어 얼마 벌고 이래서는 안 되는 거거든요. 단지 차원에서 하나의 건설사가 덤벼야만 돈이 남는 겁니다. 처음 민간 자본 끌어들일 때 얼마 이상 짓는 업체에 땅을 팔겠다, 이런 식으로 강요한 측면이 있죠. 그게 꾸준히 발전하다보니 지금까지 왔는데요. 단순히 그것만으로 해석할 순 없겠죠. 중간 중간 위기들이 많이 있었어요. IMF도 그렇고, 재건축도 그렇고요. 건설사들이 마케팅까지 시도하는 여러 흐름들 속에서 지금의 모습이 나온 거죠. 오히려 지금은 거꾸로예요. 미분양 사태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이미 덩치가 커져버린 주택건설업체들이 더 이상 크게 지을 필요가 없을 때 어떤 식으로 그 자본들을 돌릴 것인가의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조조정이 들어가는 거죠. 이미 많이 했고요.
그래서 이후에 ‘건설’에서 ‘관리’로 변신을 하게 된다고도 하셨잖아요.
네, 임대업자로 변신을 해야 하는데요. 그 도중에 있는 거죠. 말 그대로 건설자본에서 임대자본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러려면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아주 안정적으로 임대료를 낼 수 있는 단지들이 하나씩 나와야 하는데 월세 내기 다 싫어하잖아요. 돈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거부감 없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혹은 그렇게 월세를 낼 수밖에 없는 세대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양산할까가 해결돼야 하는 거죠. 일시적으로는 가능해요. 집을 없게 만들면 어쩔 수 없이 월세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지속을 못한다는 거예요. 월세 내는 가구를 천만 정도 꾸준히 유지하려면 관리가 엄청 필요해요.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게 복지입니다. 복지가 없으면 월세 시스템이 정착이 안 되거든요.
복지라면, 주택 바우처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주택 바우처가 됐든 교육 복지가 됐든 의료 복지가 됐든 말이에요. 지금처럼 교육비에 허리가 휠 때는 주거비를 안정적으로 내기 힘들죠. 그러니까 어떤 것을 제거시킬 것인가 하는 건데 이건 큰 딜레마일 거예요. 주거를 공공복지로 하면 의료복지가 깨질 수 있어요. 의료복지를 잘 구성하면 주거복지가 깨지겠죠. 왜냐하면 모든 분야에 다 복지를 제공하지는 않으니까요. 어떤 것을 줄 것이냐를 하나씩 판단할 텐데, 의료 시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냐 주택 시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냐 이런 거예요.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좋은 편인데요. 그동안은 의료복지 덕분에 주거비로 나갈 돈이 있었던 겁니다. 의료복지가 깨지면 이쪽으로 갈 돈이 없어지는 거죠. 여러 단계들을 같이 놓고 봐야 해요.
지금 상황을 보면 점점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의료 민영화 같은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복지를 깨려고 하는 흐름이 있는 거죠. 민영화, 자유화 하면서요. 그렇게 되면 주거 시장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줄도산이 나오는 거죠.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건설자본 입장에서는 힘든 거죠. 탈출을 시키는 겁니다.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출은 무용인데요. 내수란 돈이 안에서 돈다는 겁니다. 돈이 안에서 돌면서 외국에서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국가 경제가 굴러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그게 없는 상태기 때문에 휘둘리는 거죠. 지금 그래서 수출 실적에 일희일비 하는 겁니다.
젊은 세대들 70~80%는 평생 월세 내면서 살 것
주택문제는 노동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어요. 예전처럼 한 직장에 오래 다니면서 돈 모아 집 사는 풍경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잖아요. 특히 젊은 세대들의 주거 불안도 심하고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상하세요?
두 직장을 다녀도 집 사기는 어려울 걸요?(웃음) 집 사는 건 불가능하죠. 대신 이들이 임대료를 꾸준히 낼 수 있는 정책으로 갈 겁니다. 젊은 세대들은 아마 70~80%는 죽을 때까지 월세 내면서 살 거예요. 그 월세를 낮을 수준으로 해결해 줄 것이냐 아니면 살인적으로 계속 올라가도록 내버려둘 것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지금의 30대들까지는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경우가 아직 있는데요.
부모님의 자산이 있느냐 없느냐가 굉장히 큽니다. 젊은층 같은 경우는요. 세대로 환산할 수가 없어요. 부모님에게 집이 있으면 그 집을 물려받겠죠. 어차피 한 가구에 자녀가 2~3명밖에 없기 때문에 집 한 채를 상속 받는 것은 가능할 거예요. 하다못해 같이 살 수라도 있는 거예요. 그게 생각보다 굉장히 큰 완충제였어요. 그게 아니라면 부모님이 경제활동을 그만 두었을 때 그분들을 부양하면서까지 임대료 내고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니까요. 그런 계층, 그런 계급들에게는 지금 굉장히 악몽 같은 상황에 계속 펼쳐지는 겁니다. 노인 복지도 거의 없는 상태기 때문에요.
김: 그러니까 결국은 주택문제는 노동문제하고 거의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거군요.
임: 서울시 주택 보급률이 70퍼센트다, 60퍼센트다 하며 주택 위기 운운 했는데,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기 때문이거든요. 사람들이 지방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하고 평생직장 다닐 수 있으면 서울에 주택문제는 없었겠죠.(26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 정책들을 보면 어떻게든 부동산을 부양하는 단기적인 정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어떤 분들은 지금 부동산 정책은 있는 자들이 땅을 팔기 위한 제도라고까지 말을 하거든요. 너무 많은 돈이 부동산에 묶여 있으니까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현금화시키려고 한다는 건데요. 그걸 그 아래에 있는 계급에게 판다는 거죠. 전가시키는 거예요. 전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부분적으로는 맞는 얘기죠. 생각보다 그런 시도가 많습니다.
굉장히 설득력 있는 분석처럼 들리네요.
데자뷰예요. 예전에 증권이 올라갈 때도 비슷했거든요. 예전에는 상위 1%, 5% 정도가 주식을 했어요. 그러다가 10%가 주식을 할 때 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법니다. 10%가 벌기 위해서는 상위 20%까지 주식에 들어와야 하는 거고요. 결국 피라미드예요. 위에 뺏기는 만큼 아래 자산 계층에서 돈을 가져와야만 본전을 유지하는 구도기 때문이죠. 워낙 정보도 한정되어 있고요. 부동산도 비슷한 거예요. 돈을 써야만 가치가 올라가면서 위에 있는 계급이 자산을 증식하는 거죠. 시간적으로는 미래 세대의 돈을 끌고 와야만 가능한 겁니다. 지금 40대의 집 가진 사람들이 집으로 돈을 벌려면 30대가 40대 사람들이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부동산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거예요. 미래 세대들이 부동산에 돈을 더 많이 쓰길 바라는 거죠. 그래야만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는 거니까요. 그런 전쟁이기도 해요.
끝나지 않는 전쟁인 건가요?
‘언제까지 이걸 할 거냐?’라고 해서 특정 세대를 파괴 시키는 작업을 하고, 리셋하자고 하든가 아니면 판을 아예 바꾸자는 개념으로 가든가 해야 할 거예요.
판을 아예 바꾼다면 어떤 방법이 가능할까요? 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 것 같은데요.
토지 공개념 같은 아주 혁신적인 제도들이에요. 굉장히 강한 제도들이 들어와야겠죠. 버티질 못하면 부분적으로 가겠죠. 부분, 부분을 파국으로 만들겠죠. 가령 청년을 위한 주택 정책을 짜겠다고 해서 적어도 이들은 집 걱정 하지 않도록 과감한 복지를 하자고 해버리면 하숙집을 갖고 있는 세대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파국이 되는 거죠.
국가가 확실히 책임을 져야 하는 영역
신자유주의로 인한 변화들에 관심이 있는데요. 도시계획이 아니라 도시 개발이 되어버린 서울, 수도권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들더라고요. 정책도 없고, 철학도 부족한, 오로지 얼마나 돈이 되느냐에 따라 마구잡이로 공간을 확장해요.
메트로폴리스는 개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비 투자를 계속 해야만 새로운 생산이 가능한 구조로 이미 갔어요. 무한 경쟁으로 간 거죠. 때문에 개발을 반대한다는 건 말도 안 돼요. 교통망도 바꿔야 하고, 상가도 바꿔야 하고, 다 바꿔야 합니다. 다만 그 속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 얼마나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개발 이익들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것이냐, 더 나아가 안정적으로 개발할 방법이 있느냐 라는 게 핵심 포인트예요.
코엑스, 뚝섬, 용산 다 민간이 개발했어요. 그런 방법 대신 조합이라든지, 시가 들어가서 아예 공영 개발이 된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겠죠. 개발 이익을 시가 가져올 수 있게 말이에요. 자산권, 소유권을 공공이 놓지 않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들을 시 재정, 복지로 돌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지금 개발들은 하나 같이 시 재정이 열악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국공유지를 매각하는 겁니다. 지하철도, 경전철도 민간에게 그냥 주는 거거든요. 최악의 개발 모델인 거죠. 개발을 하긴 하되 공공이 꾸준히만 해주고 민간은 거기서 건설해서 돈 벌고, 위탁 운영해서 돈 벌고, 하도록 만들어주기만 하면 돼요. 통째로 넘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처음 구도 자체가 이 도시를 공공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차원에서 접근했어야 하는데 그게 없고 다 근시안이었어요. 4년 임기, 중임 이 정도 바라보고 바로 치고 나가기 때문에 그런 안정적인 개발 가능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겁니다.
경제구조를 진단하고 돈을 풀면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건물도 올라간다고 하셨는데, 이게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전에 진행하는 이런 꼼꼼한 진단은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예요.
그런 경험이 거의 없죠. 동네를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은 많이 봤지만 그 동네가 왜 문제인지에 대한 보고서는 거의 없어요. 뭐가 문제라고 밝히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러면 표가 안 되나 봐요.(웃음) 왜 문제인지를 하나씩 따져보면 잘못한 부분이 튀어나와요. 그리고 지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으면 안 돼요. 특정 지역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권력자라고 하면 계속 그것들을 회피하겠죠. 도시 문제는 복잡하다고 말들 하고, 물론 복잡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풀리는 것도 있어요. 문제가 간단한 것도 되게 많은데 간단한 것을 질문하지 않게 만드는 게 권력이에요. 감추는 권력이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겁니다. 말을 못하게 하거나 인식 자체를 못하게 하는 힘이 훨씬 센 겁니다. 이런 경우는 실제로 문제가 아주 간단하다 하더라도 등장하지 않는 거죠.
안에서 돈이 돌아야 한다, 내수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지금의 사회는 지리적 경계도 많이 허물어진 상태잖아요. 온라인이나 모바일도 점점 확대되고 있고요. 또 민영화가 계속 되다 보면 말씀하신 ‘돈아 안에서 돌도록’ 하는 상황은 더 불리해져요.
정부 통제가 점점 힘들어지죠. 그런데 저는 민영화에 완전히 반대는 아니에요. 특정 부분은 민영화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특정 부분은 굉장히 강하게 공적 영역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 거죠. 한 영역을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으로 나누는 경우가 있어요. 지금은 모든 부분을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거거든요.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복지혜택을 주겠다고 하면서 일정 부분을 민영화시키는 건데요. 그게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에요. 경계를 결정할 때마다 싸워야 하니까요. 하위 15%까지 복지를 할 것이다, 20%까지 하자, 줄다리기를 하게 되죠. 또 상위 80%를 상대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하위 20%를 대상으로는 돈을 안 벌고 싶겠어요? 계속 내려가서 그 영역까지 침범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걸 매번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너무 힘든 일이 돼요. 오히려 어떤 특정한 분야에 대해서는 국가가 강하게 책임을 지고 나머지 부분을 민간 시장으로 가서 효율을 높이겠다, 고 선언을 해주는 게 중요해요. 그러면 민간 자본도 그 영역은 넘겨버리게 돼요. 예전에 지하철은 공공이라는 게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야금야금 깨져나가는 거예요. 그게 제일 위험해요. 어디까지는 지키겠다는 사인을 확실히 하고 장기적으로 간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나머지 민간 시장이 훨씬 더 활성화 돼요. 그걸 안 하는 거죠.
공공의 영역으로 두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재생산과 관련된 부분이 그래요. 아이를 계속 낳을 수 있게 해주고, 병 걸리지 않게 해주고, 이런 것들이 핵심인 거죠. 그건 국가가 확실히 책임을 져줘야 하는 거죠.
앞으로 서울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요?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도시회복력(urban resilience)이라는 말이 있어요. 안 좋은 사건을 겪어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힘이에요. 도시의 저력을 키우자는 것과 비슷하죠. 저력이 있으려면 안에서 돌아가는 돈들이 지금처럼 빨라지면 안 돼요. 천천히 들어와서 천천히 나가도록 역량을 키워야 해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 며칠 돈 안 들어오면 끝나는 것처럼 도시도 마찬가지예요. 적어도 외부에서 자원이 어느 기간 동안 안 들어오더라도 버틸 수 있는 힘들이 필요해요. 그렇게 하려면 도시 안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각종 지수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서울에서 얼마나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쌀을 얼마나 먹는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줘야 해요. 그런 이야기들이 별로 없는 거죠.
서울에 있는 모든 마트, 슈퍼 등을 총괄해서 그곳에 보유하고 있는 쌀을 가지고 서울사람들이 며칠을 버틸 수 있는가 판단하는 사람이 누군가는 있어야 해요. 전기, 물 모두 마찬가지죠. 대중교통이 마비되었을 때 보행권 안에서 물을 며칠 간 공급받을 수 있다면 도시회복력이 올라가는 거죠. 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게 없어요. 지금은요. 과거에는 전쟁 때문에라도 그런 시도들이 부분적으로 있었는데 지금은 점점 사라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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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임동근,김종배 공저 | 반비
이 책은 그런 독특한 통치술, 독특한 선택들을 하나 하나 역사적으로 되짚어보며 그 효과와 부작용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가령 동사무소라는 독특한 한국적 행정기관은 왜 생겼으며 어떤 기능을 했는지, 그린벨트는 왜 만들었고 어떤 기능을 했고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아파트는 어떻게 전 국민의 로망의 되었으며 또 어떻게 지배적인 주거 양식이 되었는지, 다세대,다가구 주택은 왜 그렇게 많아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왜 이렇게 외면당하고 있는지, 왜 마포가 아니라 테헤란로가 대표적인 오피스 지구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등등 의문점들에 대한 흥미로운 답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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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양명욱
2015.12.08
양명욱
2015.12.08
양명욱
2015.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