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귀신님>, 이 드라마가 빠진 딜레마
과연 <오 나의 귀신님>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드라마는 시작 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처녀귀신이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성장시킬 거라, 인간보다 더 고귀한 사랑을 쟁취하는 드라마가 되겠다고 했다. 6회가 남은 시점, 아직 드라마가 목표한 곳은 멀다.
글ㆍ사진 김지우
20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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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얼개부터 살펴볼까. 죽은 지 2년 6개월 된 순애(김슬기)가 있다. 처녀귀신으로 죽어 한이 깊은데다 3년이 지나면 악귀로 영영 구천을 떠돌아야 해서 마음이 급하다. 한을 풀고자 여자들 몸에 빙의해 뜨거운 하룻밤을 노려보지만 남자들이 귀신의 음기를 이기지 못하고 번번이 나가떨어진다. 그러던 중 주파수가 맞는 봉선(박보영)의 몸에 갇히고 말았는데, 하필 봉선이 짝사랑하는 상대 강선우(조정석)가 귀신의 음기를 이겨낼 양기남이란다. 순애는 그와의 하룻밤을 노리고, 질색하던 봉선도 결국 순애의 손을 잡는다. 지지부진 진전이 없던 선우와의 관계에서 도움을 받아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봉선과 순애는 강선우와의 연애전선을 앞에 둔 이심동체의 연합군인 셈이다. 순애가 빙의된 봉선에게 선우는 매력을 느끼고, 봉선과―정확히 말하면 봉선의 몸과―선우는 연애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선우가 사귀는 상대는 누굴까? 봉선일까, 순애일까?

 

초반부 드라마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제시했다. 봉선과 선우의 로맨스가 그 첫 번째고, 순애의 죽음에 관련된 미스터리가 두 번째다. 봉선은 남몰래 선우를 짝사랑해왔다. 선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질색하던 귀신을 불러 도와 달라기도 하고, 통째로 몸을 내주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여기서 봉선이 도움을 청하는 상대가 바로 순애다. 순애는 사망의 이유도 모르고 이승을 방황하는 귀신이다. 우연히 아버지 명호(이대연)와 재회하고 생전의 기억을 되찾지만, 정작 중요한 죽음의 이유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주변에 성재(임주환)이 나타난다. 순애가 생전에 짝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 곁을 맴돌며 살뜰하게 그를 챙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심상치 않다.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명호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도 묘한 미소를 띠고 돌아서고, 순애가 죽던 때의 기억을 드문드문 회상하기도 한다. 순애의 휴대폰을 몰래 보관하고 있는 장면에 이르면 순애의 죽음과 그가 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순애는 승천을 위해 양기남을 찾는 동시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야 하는 위치에 선다. 오랜 기간 선우를 짝사랑했던 봉선의 순정을 순애가 돕고,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이승을 떠도는 순애를 봉선이 돕는다.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위한 조력자인 셈이다.

 

문제는 이 즈음 발생한다. 소심하고 숫기 없는 봉선은 순애가 빙의된 이후 적극적이고 뻔뻔한 모습으로 선우에게 대시하고, 낯설어 하던 선우도 이내 봉선의 새로운 모습에 빠져든다. 본래의 봉선에게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선우가 봉선의 변화에, 아니 사실 빙의한 순애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선우는 누굴 좋아하는 걸까? 봉선일까, 순애일까? 선우가 느끼는 매력은 봉선과 쌓아온 감정적 연대 때문일까, 발랄하고 긍정적인 순애의 성격 때문일까? 로맨스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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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tvN
 

더 큰 문제는 순애에게 감정이 피어오르며 불거진다. 선우에 대한 핑크빛 연애 감정이다. 로맨스와 미스터리, 두 가지 시퀀스를 잇는 것이 순애인 탓에 얼핏 로맨스 역시 그녀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방향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다. 순애는 봉선의 몸에 빙의하더라도 로맨스에서는 철저히 조력자의 입장에 서야 했으며, 결정적 순간엔 봉선에게 역할을 내주어야 했다. 봉선이 순애의 목적에 간섭하는 바가 없듯이. 하지만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9, 10회, 선우와의 시간을 즐긴 것은 대부분 순애였다. 심지어 봉선을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고도 이제는 순애 자신이 봉선의 삶과 선우를 탐내고 있다. 점차 순애가 봉선을 돕는 것이 아니라 봉선의 삶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순애가 봉선의 몸에서 떠나지 않고 드라마를 이끌어가면서 양쪽 이야기 모두에서 순애가 주인공이 된다. 봉선이 로맨스의 축이 될 예정이었기에, 신파와 미스터리는 모두 순애가 부담하고 있었다. 혈육도 없이 무당 할머니 아래서 쓸쓸히 자라왔으며, 평생을 귀신에게 시달리면서 살아온 봉선에 대한 묘사는 서사 전반에서 거세돼 있었대도 과언이 아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잃은 아버지의 상실감과 허무, 기억을 되찾자 내내 아버지 곁을 맴돌며 가족을 지키려는 딸의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까지 차곡차곡 서사가 쌓여 온 순애와는 다르다. 선우와의 로맨스조차 순애가 떠맡은 지금, 로맨스도, 미스터리나 신파도 하나 없이 봉선의 이야기는 전무한 셈이다. 초반부터 로맨스와 미스터리를 부담하는 캐릭터를 제대로 분리시켰어야 하지만 드라마는 순애가 빙의한 봉선을 한 사람인 것처럼 전면에 내세워 극을 끌고 간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봉선이 극에서 소외되고 사라진 사이 드라마의 딜레마는 심화된다. 순애가 빙의한 봉선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막무가내로 하룻밤만을 외치는 모습에도 절로 비직비직 웃음이 새어 나오는 선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갈등의 불씨는 더 크게 타오른다. 선우 본인이 봉선과 순애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사실상 양해 없이 셋이 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기대야만 진전할 수 있는 관계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선은 여전히 순애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고 순애는 봉선의 자리마저 차지하려 든다. 서로가 서로의 목표를 위해 맺은 협력 관계는 온데간데 없고 오롯이 처녀귀신 신순애의 무대가 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선우가 감정을 키워갈수록 끔찍한 기만이 될 뿐이다.


과연 <오 나의 귀신님>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드라마는 시작 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처녀귀신이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성장시킬 거라, 인간보다 더 고귀한 사랑을 쟁취하는 드라마가 되겠다고 했다. 6회가 남은 시점, 아직 드라마가 목표한 곳은 멀다. 서로를 성장시켜야 할 봉선과 순애는 기울어진 관계 속에서 맴맴 제자리를 돌고 있고, 둘 모두 자라고 변화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거짓 연애와 기만, 욕심과 이기심만 보일 뿐.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시청자들의 피로감은 높아진다. <오 나의 귀신님>이 빠진 딜레마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로맨스 이전에 관계의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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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

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