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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사회>, 공상적 낭만과 비정한 현실 사이에서

드라마 <상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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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상류사회>가 전제하는 구도는 독특하다. 흔한 신데렐라 로맨스와는 정반대다. 국내 굴지의 기업 태진 그룹 회장의 막내딸 장윤하(유이)는 신분을 감추고 유민 백화점의 푸드 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와중 유민 백화점 대리 최준기(성준)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SBS <상류사회>가 전제하는 구도는 독특하다. 흔한 신데렐라 로맨스와는 정반대다. 국내 굴지의 기업 태진 그룹 회장의 막내딸 장윤하(유이)는 신분을 감추고 유민 백화점의 푸드 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와중 유민 백화점 대리 최준기(성준)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윤하는 배경과 출신에 관계없이 동등하고 솔직하게 상대를 대하는 준기에게 끌리고, 준기 역시 윤하에게 호감을 드러낸다. 윤하는 준기의 친구이자 상사인 창수(박형식)와 기업 간 혼맥을 위해 선을 본 사이지만 아랑곳 않고 준기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준기와 윤하는 달콤한 연애를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 숨겨진 문제가 있다. 실은 준기는 윤하의 정체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여자 주인공 장윤하는 눈여겨볼만한 캐릭터다. 재벌가 막내딸이지만, 생각하는 것처럼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본인의 말처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90%의 문제는 겪지 않지만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10%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남들보다 아홉 배는 행복해야 하건만 10%의 문제가 하는 거짓말에 당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태어난 뒤로 외도를 시작한 아버지, 그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어머니,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취급하는 언니들 사이에서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기에 윤하는 돈보다 호의를, 권력보다 선의를 바란다. 유민 백화점 푸드 마켓에서 신분을 숨기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집안과 관계없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그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윤하는 당당히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서슴없이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얼핏 윤하는 언니들과 달리 집안의 황금과 권력에 의존하기보단 백지상태로 공정 경쟁 사회에 뛰어든 것처럼 보인다. 재벌가 영애가 푸드 마켓 아르바이트라니, 틀린 소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 지이(임지연)는 말한다, 윤하에게 못되게 군 사람들은 다 잘못된다고. 당연하다. 권선징악 같은 관념적 믿음의 힘이 아니라, 태진 그룹 부회장인 오빠의 힘을 빌려 사적 응징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내가 돈 있는 집 딸이라는 게 다행이다 싶거든.’ 말하던 내레이션처럼, 윤하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선 자신의 힘을 휘두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물론 타인을 지배하고 종속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합리와 부정의에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는 것은 틀림없다. 윤하는 계속 배경과 자신은 다르다 말하지만 이는 낭만적 공상일 뿐이다. 개인과 배경은 분리해 존재할 수 없으며, 개인이 배경의 일부이듯 배경 역시 개인의 일부다. 윤하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원론과 도의가 허망하게 들리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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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SBS


그런 윤하의 앞에 준기가 나타난다. 냉정하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가끔은 다정하고 너그럽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남자. 선량하고 따스한 부모 아래서 자란 평범한 집안의 외동아들. 자신에게 조언해 주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를 꺼내놓는 준기에게 윤하는 점차 빠져든다. 결국 지이가 짝사랑한단 것을 알면서도 윤하는 준기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준기와 윤하는 인연을 시작한다. 오빠 경준(이상우)의 죽음을 계기로 윤하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만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준기에게 더욱 매료된다.
 
문제는 준기의 의도다. 오롯이 사랑 때문에 윤하를 잡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상류사회’로 끌어올려줄 수 있는 상대를 고르고 골라 그녀를 선택했다. 창수가 선을 보러 갈 때부터 준기는 윤하에 대해 알고 있었고 윤하가 매료됐던 그의 말과 행동은 모두 치밀한 계산속에서 나온 것이다. 준기 개인은 유능하고 영민한 사람이며, 선량하고 다정한 부모님 사이에서 듬뿍 사랑받으며 자랐다. 허나 그래서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출세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사랑이니 친애니 하는 달콤한 호르몬 장난에 잠식되면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 다시 주저앉게 된다는 것도.
 
그렇기에 준기는 황금 사다리 앞에서 자존심을 죽이고 자신을 포장할 줄 안다. 오랜 기간 이어졌던 창수와의 관계가 그를 증명한다. 준기는 창수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 다정하고 신실한 친구, 하지만 결코 자신을 초월하거나 능가할 수는 없는 최준기! 준기는 매번 창수에게 승리를 양보하고 그가 시킨 일은 사소한 것이라도 비서처럼 묵묵히 처리했으니까. 창수와 준기는 계약관계가 아니기에 성과에 대한 마땅한 보상도 친구 사이의 후의로, 창수에 대한 준기의 헌신도 친구 사이 신뢰로 포장할 수 있다. 이런 행위를 반복하며 창수는 그 관계의 모양과 효용에 취했을 터다. 돈독하고 우애 깊은 친구 관계라는 두터운 환영에 빠지고, 자신이 베푸는 선의에 만족하면서. 준기가 창수의 선민의식에 대해 알면서도 입을 다문 것은 그 때문이다. 창수가 자신을 각별히 생각할수록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커진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으니까. 10년 넘게 그의 곁에서 진실한 친구라는 역할을 연기하며 준기는 상류 인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기민하게 파악해 나간다. 준기가 윤하에게 그녀가 원하는 말과 행동을 적확히 제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경우 바르고 냉철하지만 가끔 따뜻한 조언을 건네고, 지위나 위치를 가리지 않고 직언을 건네는 준기에게 윤하는 정신없이 빠져든다. 아직 인간 본연의 선의에 대한 낭만적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윤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건, 준기가 윤하를 수단으로 삼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갈등의 불씨는 여기서 잉태된다. 진실이 드러나는 바로 그 시점, 준기의 소망이 제 배경이라는 것을 윤하가 깨닫는 순간. 필사적으로 배경과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해 발버둥 쳤고 수없이 많은 시험을 거친 사람이기에 배신감은 더 크다. 필연적으로 사랑의 마법은 깨지고 비정한 현실이 그녀를 엄습할 터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첫눈에 반한 사랑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낭만에 찬 왕자가 아니다. 제 위치를 알고 나름의 정의를 위해서는 망설임 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가의 영애 장윤하다. 당연히 평범한 신데렐라 로맨스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서로를 사랑하는 윤하와 준기가 계급의 끝과 끝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눌 때, 비틀린 신데렐라 로맨스가 시작될 것이다. 공상적 낭만과 비정한 현실 사이 뜨겁게 끓어오르는 애증은 과연 어떤 결말을 불러올까? 두 사람 사이 로맨스는 높은 벽을 넘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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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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