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환상,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하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한 불안이 일상과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시절.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을 다룬 『불안들』(레나타 살레츨 지음/박광호 옮김|후마니타스 펴냄)이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인 레나타 살레츨은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불안이 오늘날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현대자본주의가 불안을 어떻게 조장하고 확산하는지 보여준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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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한 불안이 일상과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시절.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을 다룬 『불안들』(레나타 살레츨 지음/박광호 옮김|후마니타스 펴냄)이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인 레나타 살레츨은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불안이 오늘날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현대자본주의가 불안을 어떻게 조장하고 확산하는지 보여준다.

 

지난 6월 19일, 서울 필운동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는 『불안들』 출간 기념 로쟈의 특별 강연이 펼쳐졌다. 로쟈는 이날 불안과 환상의 차이와 함께 불안의 정체와 구조를 언급하면서 불안과 환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지점에 대해 말했다.

 

로쟈에 의하면 레나타 살레츨은 과거 지젝과 부부였으며, 지젝은 물론 믈라덴 돌라르 등과 함께 ‘슬로베니아 정신분석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 학파의 이론적인 배경은 독일 철학, 특히 헤겔 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이다. 독보적으로 많은 책을 펴낸 지젝에 비해 살레츨은 저작물이 많지 않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책은 미학관련서인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이었고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난해 나왔다. 이어 『불안들』이 나왔는데 원제는 ‘불안에 대하여’라는 것이 로쟈의 설명이다.

 

“국내 출간 순서는 반대였지만 2004년에 『불안들』이 먼저 나오고 살레츨이 가장 최근에 낸 책인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가 2010년에 출간됐다. 두 책은 약간 중첩되는 내용이 있다. 한국에 소개된 것은 반대였는데 『불안들』을 먼저 읽고『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읽는 것이 순서상으로는 맞다. 불안들이 개괄서라면 디테일하게 다룬 것이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다.”

 

 

살레츨과 『불안들』에 대하여

 

『불안들』은 불안을 주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도 함께 다뤘다. 불안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면서 사랑에서의 불안을 다룬 장에선 두 편의 영화와 한 편의 소설을 분석 자료로 삼았다. 로쟈에 의하면 이는 사회학적 저서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방식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읽으면 좋다는 것. 이 책은 불안과 환상을 대비한 것이 전체의 1/5에 달한다. 특히 두 번째 단락(자료)을 보면 메르스 때문에 불안해하는 지금 우리에게 어필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

 

“살레츨은 1장에서 불안에 대해 개괄한다. 20세기를 나눠서 불안이 어떤 양상으로 달라져 왔는지 짚어준다. 지표가 돼주는 것이 대중문화, 특히 할리우드 영화다. 라캉 정신분석이나 헤겔 철학을 추상적으로 이해시키긴 어렵기 때문에 대중문화를 통해서 이를 분석한다. 지젝이 그랬고 살레츨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는 수단 정도가 아닌 그 자체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살레츨의 책은 지젝의 독자라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작은 차이가 있다면 살레츨은 (슬로베니아 정신분석학파의) 다른 멤버에 비해 철학적 기반이 약간 약하다. 살레츨은 사회학을 기반으로 하고 범죄학을 다루는 학자다. 상대적으로 지젝에 비해 쉽다. 『불안들』에는 헤겔이 언급되지 않고 라캉만 들어가 있다. 지젝의 책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웃음). 지젝과 비교하자면 지젝보다 좀 더 온건하고 단정하다. 즉 지젝이 현란하고 광범위하다면 살레츨은 파격적이거나 괴팍한 것은 없다.”

 

로쟈는 이 책의 두 가지 초점이 △라캉의 정신분석이 불안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라고 말했다. 서론에서 오늘날의 불안은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고 개별 장마다 주제를 다루면서 필요할 때마다 라캉의 정신분석을 끄집어낸다고 덧붙였다. 

 

이 책에서 말하는 불안은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불안과 다르다. 우리가 일상으로 쓰는 불안 개념은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에서 정의하는 불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 프로이트가 정의한 불안은 2가지로 처음 불안에 대한 언급이후 다시 업데이트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라캉은 그것을 좀 더 정교하게 만들었는데, 로쟈는 우리가 라캉을 읽을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1901년에 태어난 라캉은 프랑스에서 일컫기를 20세기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캐치 프레이즈는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라캉은 1930년대 정신의학 공부를 하면서 편집증 환자를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 그가 쓴 논문을 집대성한 책이 800쪽 이상 방대한 분량의 『에크리』(1966)인데 국내엔 번역되지 않았다. 번역이 어렵고 한국어로는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러시아판도 없다. 세미나를 모은 책이 좀 있을 뿐이다. 라캉을 읽는다는 것은『에크리』를 읽거나 세미나를 읽는 것이다. 해설서는 몇 권 나와 있다.”

 

그렇다면 라캉에 기반을 둔 지젝은 어떤 존재일까. 로쟈는 지젝은 라캉을 일기 위한 우회로라고 전했다. 지젝의 프리즘으로 라캉을 읽는 것이며 살레츨을 통해서도 라캉을 아주 약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지젝이 지은 『HOW TO READ 라캉』은 라캉 입문서이나 이 책을 읽을 때도 라캉을 조금이라고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이해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통합된 사회’는 그저 환상

 

라캉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말하면서 언어학을 통해서 돌아간다. 라캉은 프로이트를 반복할 뿐이라고 겸손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프로이트의 거세에 대해 라캉은 상징적 거세라고 말했으며 프로이트의 ‘자아(나)’에 대해서 라캉은 주체라고 표현했다. 로쟈는 라캉을 읽으면 프로이트를 읽게 되며, 지젝부터 먼저 읽으면서 라캉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라캉에게 현실은 언어로 형성된 현실이다. 상징계다. 언어로 구축된 질서다. 상상계에서는 이름이 의미가 없는데 상징계에서는 자기 자리가 할당되고 역할도 배분된다. 우리 현실을 구성하는 것은 상징계다. 체면, 위신 등이 이것과 연결된다. 혼자 유아독존 할 수 있다면 상상계다. 우리는 뭔가 금지되고 억압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불만을 갖는다. 이것이 신경증이다. 신경증에는 히스테리와 강박증이 있다. 대체적으로 여성에게는 히스테리가 남성에겐 강박증이 많다. 도착증은 억압이 불완전하게 수용된 경우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롭다. 금지가 잘 작동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은 신경증이다. 속으로 뭘 하고 싶어도 스스로 억압하고 검열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억압되지 않는 것, 그게 정신병이다. 정신병은 금지가 이뤄지지 않는다.”

 

로쟈는 경찰의 예를 들면서 자연인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가 제복을 입는 순간 번듯해 보이고 권력을 가진 자가 된다고 설명했다. 주체는 상징계에서 자리를 차지하면서 상징적 거세를 겪는다는 것. 그렇듯 주체가 분열돼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라고 로쟈는 말했다. 이어 대타자(주체가 말하는 존재로서 진입하게 되는 사회적ㆍ상징적 네트워크) 자체도 비일관적이며 분열돼 있다고 덧붙였다. 상징계의 결함. 즉 어릴 때 아버지는 완벽해보이지만 커서 보니 허술하고 결함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하나의 유기적으로 잘 통합된 하나가 아니라 계급모순에 의해 쪼개져 있다. 통합된 사회는 환상이다. 실제는 쪼개져 있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유기적으로 통합돼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 등이 그렇다. 민족도 전형적인 환상이다.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어 할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하나이며 통합된 대한민국을 얘기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쪼개져 있고 분열돼 있다.”

 

 

주체의 불안을 막아주는 환상

 

불안은 여기서 나온다. 대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서 갖게 되는 것! 대타자는 주체에게 불안을 유발한다. 로쟈는 신을 생각해 보자고 권했다. 가령 기독교에서는 신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본다. 계속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신경증자다. 답을 안다고 하면 도착증이다. 연애를 하면서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불안한 것이 신경증자의 것이다. 나는 안다고 확신하는 것이 역시 도착증자다. 그래서 신경증자들은 자기의 결여를 가리기 위해 환상을 가져온다. 『불안들』에서는 전장의 군인을 다뤘다. 환상은 불안으로부터 보호해준다. 다만 완전하지 않아서 문제다. 충격에 의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

 

“환상은 주체의 불안을 막아 준다. 그래서 과거에 군 정신의학에서는 군인들에게 전투를 독려하는 데 환상의 힘을 사용했다. 예컨대 반나치 연합군들은 군인들이 처음에 살인을 주저하는 행동을 극복하도록 인위적으로 환상들을 만들어 냈다.”(75쪽)

 

로쟈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갖는 환상의 예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들었다. 만남을 특별한 운명으로 만든다는 것. 그런 시나리오를 갖는다면 우리는 편하다. 환상은 주체의 불안을 막아준다. 사회 또한 아무 적대 없이 일관적이라고 생각하면 행복하다. ‘우리는 하나’라는 환상을 갖고 싶어 한다. 국가의 브레인은 그런 공작을 만든다. 가장 많이 동원하는 것이 스포츠 행사이며 국립묘지나 국민의례도 그런 공작에 의한 것이다. 선거후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안 하면 썰렁해진다는 것.

 

“환상은 견고하지 않다. 불현듯 깨질 수 있다. 사랑도 그렇고 국가에 대한 기대도 그렇다. 불안은 그런 것에 대비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불안은 외상으로부터 주체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환상은 불안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고 불안은 낭패를 피하게 해준다. 오늘날 많은 대중매체는 불안을 주체의 안녕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그린다. 불안을 제거한 사회가 반드시 더 좋은 사회는 아니다. 어느 정도 불안을 갖고 있는 것도 필요하다. 사랑에 빠졌을 때 불안은 필수적이다. 이것을 제거한 사랑은 도착증이나 신경증이다. 불안의 이점도 있다.”

 

라캉은 실패에 대한 불안보다는 성공에 대한 불안이 크다고 말한다. 다시 사랑을 떠올려보자. 이뤄지지 않을까봐 불안해하는 것이 통상적이나 실제론 사랑이 이뤄져도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놓고 우리는 불안해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남녀는 서로 다른 것을 기대한다. 남자는 여자를 숭고한 대상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나, 사랑받는 쪽에서는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지 물어본다. 반면 여성은 남성이 가진 상징적 권력에 끌린다는 것이 정신분석학의 설명이다. 라캉은 나의 결여를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설명한다. 로쟈는 이를 ‘뻥카 비슷한 것’이라며 줄 것이 없는데도 ‘자, 줄게’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캉의 정신분석에 의하면, 사랑은 ‘대상애’다. 콩깍지 같은 것. 어느 순간 대상애는 대상으로 가면서 콩깍지가 벗겨진다.

 

“자기를 열락과 향락을 데려다줄 것처럼 보이는 대상에 가까이 가게 돼도 문제다. 불안은 그것을 유예시키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불안이라고 말했는데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만나려고 하지 않으면서 거리를 유지하는 것. 가까이 가려고 하면 깨진다. 그것이 불안의 기능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기억 회복 치료, 즉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이 나온다. 유사 심리치료와 같은 것인데 그걸 기억해냄으로써 치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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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로쟈에게 묻다

 

상징계로부터의 일탈이 도착증이나 신경증으로만 해석되면 답이 없는 것은 아닐까.

 

혁명이나 변혁의 가능성에 대해 라캉 정신분석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라는 비판도 있었다. 실제로 라캉은 그런 쪽으로 보수적이었다. 라캉은 혁명이나 변혁에 회의적이었다. 다만 라캉은 68혁명에 대해 그들은 또 다른 주인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얼굴만 바뀌고 몸은 유지될 거라고 봤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그럼에도 라캉 이론에서 혁명이나 대안의 모색이 봉쇄된 것은 아니다. 지젝은 히스테리 환자에게서 가능성을 봤는데 대타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포텐셜’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얘기를 들으면서 ‘불안을 불안해하지 마라’는 쪽으로 정리가 됐다. 소설가 알롱 드 보통은 책을 통해 불안의 해소법을 소개했었는데, 보통과 살레츨의 불안을 비교할 수 있을까.

 

소비자본주의는 마케팅 등을 통해 불안을 제거하고 진정시키려고 하기도 한다. 마케터들이 그래서 『불안들』을 읽어볼 만할 것이다(웃음). 소비자본주의의 마케터들은 소비자를 과거의 구매자에서 사용자로 바꿔 문화적 경험을 소비하게끔 하는 전략을 쓴다. 그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불안 심리다. 불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가를 캐치해서 이용해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면 자기 보호 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보통의 책은 잘 읽질 않아서 얘기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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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저/박광호 역 | 후마니타스
이 책은 패닉 상태에 빠진 우리 문화의 이면과 불안한 우리의 마음속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누구에게 그리고 무엇에 책임이 있는지 묻는다. 레나타 살레츨은 불안에 대해 우리가 꼭 제기해야 할 질문들을 던진다. 불안은 권위가 부재하기 때문인가, 너무 많기 때문인가? 미디어는 불안을 보도하는가, 만들어 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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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