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스무 권으로 완간돼 역사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새 얼굴을 입었다. 새로워진 디자인과 재고증과 오류 수정 등 정교해진 내용의 개정판으로 재탄생한 것. 이에 지난 6월 22일, 서울 휴머니스트에서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개정판 출간기념 팟캐스트 공개방송이 열렸다.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는 물론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의 독자들도 공개방송에 참여했다.
이날 공개방송은 김학원 대표(휴머니스트)의 사회로 ‘중년 역사 아이돌’ 박시백 화백을 비롯해 신병주 교수(건국대 사학과),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조유식 대표(알라딘) 등이 함께했다. 팟캐스트 방송은 지난해 7월 22일, 마지막 공개방송 후 1년 만에 열린 특별 방송으로 진행됐다.
이번 개정판을 통해 어떤 것이 바뀌었고 소회가 어떤지 듣고 싶다.
박시백 : 지난 2013년 완간과 함께 팟캐스트를 했었다. 그 과정에서 개정 작업을 하기로 했었다. 개정 작업을 통해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새롭게 확인하거나 잘 몰랐던 것을 수정하고 연표 작업도 거쳤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작업 과정에서 노트에 기록하고 공부하면서 전체적인 구상과 작업을 했는데, 그 노트들이 아까웠다. 노트를 요약해서 만들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었는데 상당히 시간을 요하더라(웃음). 100권이 넘는 노트를 다시 공부하고, 이상한 것은 다시 확인하고 그러다 보니 1년 정도 걸렸다. 연표 작업에 공을 많이 들였다. 개정판은 편집자들이 정말 애를 많이 썼다. 연표 작업도 담당 편집자가『조선왕조실록』과 일일이 대조하고 공부하면서 편집 과정이 좀 걸렸다. 그런 노력덕분에 이렇게 개정판이 나왔다.
이번에 202군데가 수정됐다는데, 가장 인상적으로 작업한 것을 꼽는다면?
중종 편을 그릴 때, 중종은 내 느낌대로 이미지를 살려서 캐릭터를 잡았다. 나중에 『선조실록』을 보니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능이 파헤쳐졌다. 근처에 시신이 있었는데 중종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 진술이 내 그림과 상당히 비슷했다. 턱이 가늠하고 수염이 있었는데 다만 다른 점이라면 자색 수염이었고 양미간 점이 있었다고 돼 있더라. 수염을 자색으로 바꾸는 것은 포기하고 미간에 점만 찍었다(웃음). 또 하나, 영조와 왕권을 놓고 경쟁했던 경종에 대한 묘사를 찾아보니 그가 체구가 왕성했다고 돼 있더라. 병약한 인상이 강해서 당초 그림을 병약하게 그렸었는데, 틀린 거지. 왕성한 체구로는 그리지 않고 광대뼈를 다듬어서, 뽀샵 처리를 하면서 병약한 느낌이 들지 않게끔 수정했다(웃음).
신병주 교수가 감수를 했는데, 개정판을 보니 어떤가?
신병주 : 표지가 ‘책등’으로 돼 있어서 진열하면 멋있을 것 같다. 오타 등도 반영이 됐고 인물사전도 감수했다. 처음에는 간략하게 정리한 수준이면 교정이나 감수를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심하게 표현하면 논문을 써왔더라(웃음). 너무 열심히 해서 내가 되레 말렸다. 내용 자체는 본문과 짝이 잘 맞는다. 왕별로 인물을 배치해놔서 찾기가 편하다. 보통 사전보다 공력이 많이 들어간 것이 인물 사전이다.
이어 『종횡무진 한국사』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동양사』 등의 박학다식 저술가로서 앞선 팟캐스트에 함께 출연했으나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남경태 선생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시간도 잠시 가졌다. 이날 공개방송의 주제는 ‘지금 우리 시대에 다시 불러오고 싶은 조선의 인물’로서 초대 손님들은 각자 세 명씩 꼽았다. 박시백 화백은 이이, 김육, 최명길을, 신병주 교수는 정도전, 남명 조식, 연암 박지원을 들었다. 조유식 대표는 정도전, 이방원, 황진이를 선택했으며 주영하 교수는 정도전의 스승이었던 목원 이색, 허균, 영조를 꼽았다.
그 이유를 한 번 들어보자.
주영하 : 고려 중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시를 보면 그 속에는 인생과 삶이 담겨 있다. 덕분에 시를 통해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이색은 똑똑하기도 했지만 아버지 덕분에 중국에 조기 유학을 한 사람이었다. 중국에 가서 넓은 생각을 품었고, 북방과 남방의 음식까지 모든 것을 시에 담았다. 정도전이 아닌 그가 조선 건국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조선시대 음식문화가 국제적인 모습을 갖추지 않았을까. 이색이 증류주를 맛보고 한국에선 처음으로 글을 썼다. 그 글을 보고 눈물이 나더라. 그는 치아가 좋지 않았는데도 계속 먹고 버텼다(웃음).
조유식 : 정도전이라면 요즘 같은 어려운 정국과 상황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정도전을 불렀는데 이방원이 없으면 섭섭할 거 같아서. 두 사람도 리턴 매치를 원할 것 같다. 이방원에겐 선거 등 합법을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주고 싶다. 현재 기준에서 정도전은 야당, 이방원은 여당일 것이다. 정도전이 한 번 더 질 것 같은데, 또 다시 살아나면 삼세판으로 이기지 않을까(웃음).
신병주 : 조선 건국의 주역이니 정도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내가 밥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분이다(웃음). 정도전은 600년 전 인물이 이렇게 시대를 앞서갔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사람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을 전개하고 국민과 국가의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 정도전을 제거해도 그 시스템이 그대로 갔음을 감안하면, 정도전이 그 초석을 잡았다. 조선은 정도전 덕분에 기본적으로 시작이 잘 된 왕조다.
박시백 : 정도전은 책에서 호방하고 낭만적으로 그렸었다. 한편으로 너무 정공법으로 달려 나간 사람이다. 정치 감각적으로 약한 면도 있었다. 정도전은 스스로 조선의 장자방(장량?유방의 책사)이라고 했었지만 장자방의 길을 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려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역성혁명의 토대 위에서 자신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비전이 확고했다. 그 길을 가다가 이방원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서 아쉽다.
신병주 :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등에 가려있기는 하나 『조선왕조실록』에도 남명 조식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많다. 박시백 화백이 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만들었다. 조식의 특징도 잘 묘사돼 있다. 유학자, 성리학자라고 하면 공부만 하고 이론 투쟁만 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조식은 그렇지 않다. 칼을 찬 학자였다. 잘못된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저항했다. 그런 학자가 조선시대 학자의 기본 모습일 수도 있다. 중기까지만 해도 문무를 겸한 선비형 학자가 많았다. 요즘 시대에도 행동하고 실천하고 헌신하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조식은 꼭 불러와야 한다고 본다. 그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박시백 : 지금 이 방송이 조상에 대한 헌정 방송이 아니니까, 약간 까자면 이황과 조식의 관계를 보면 재밌다. 두 사람은 서로 존대했지만 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좌두 이황, 우두 조식이라 불렸지만 이황이 전국구 스타로 따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한번은 조식이 편지를 보내길, 이황이 젊은 세대에게 겉멋을 들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이황도 아주 넓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조용히 있었겠지만, 조식이 무슨 도를 알겠느냐며 맞받아쳤다. 두 사람이 같은 경상도에 살면서도 평생 동안 서로 얼굴을 한 번 보지 않았다.
책을 통해 이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재조명이 된 것 같다. 허균을 꼽은 이유도 듣고 싶다.
박시백 :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이다. 대부분 역사책은 이이의 철학 위주로 설명돼 있고 그의 정책은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실록을 공부하면서 이이의 철학보다 발자취를 봤다. 두 가지가 놀라웠다. 하나는 조선이 건국하고 200년이 지나니 모순이 곪을 대로 곪고 있다고 판단해 이이는 경장(更張?점진적인 사회개혁)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린다. 조정에서 거의 일관되게, 개혁적 지향을 갖고 경장을 주장한다. 이이에 대해 서인 정권의 영수처럼 여기나 사실은 동서분당의 와중에서 일관되게 분당을 막고 통합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정치적 역량은 따르지 못해서 이이는 적을 많이 두고 세력을 양산하지 못했다.
주영하 : 허균이 혁명을 꿈꿨다고는 하나 마지막에 쓴 책인 『한정록』을 보면 유유자적하게 사는 법을 담았다. 그는 마음 가는 대로 쉬면서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혁명이 아닌 유유자적하게 사는 법에 대한 생각에 대해 듣고 싶어서 그를 꼽았다. 『한정록』에는 농법도 있고 시골에서 잘 살기와 같은 것도 있다. 실학서에 앞선 농서의 편찬자라고 볼 수도 있다.
신병주 : 신사임당은 현모양처 이미지로 각인돼 있지만 실제로는 센 사람이었다. 현모일지는 몰라도 남편과는 많이 다퉜고, 양처는 아니었다. 이이도 모범생 같지만 초반에는 일탈도 많이 했다. 당시 불온서적이었던 노장사상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고 그 책들을 읽다가 아니다 싶어서 스스로 학문을 세웠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최명길도 이전의 다른 역사책과 다르게 조명한 인물이다. 김육을 꼽은 이유도 함께 말해달라.
박시백 : 최명길이라고 하면 보통 병자호란 당시 주화파 영수로 배웠다. 최명길은 당대 지식인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당시 친명사대 이데올로기가 강해서 최명길의 주장은 동의받기 어려웠다. 정유재란 병자호란 모두 조선에서 미리 막을 수 있었다. 최명길은 진짜 척화를 할 것이면 압록강변에서 진을 치고 일전불사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의 유일하게 최명길 홀로 그런 주장을 펴나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전쟁이 마무리 된 후 최명길은 영의정 자리에 오른다. 그런데 그때 명나라가 망한 상태는 아니었는데 청 태종에게 항복할 때 요건 중 하나가 명나라와 교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최명길이 명나라와 통교를 책임지고 진행하나 명나라 장수가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알려지면서 최명길도 잡혀 간다. 이때 최명길은 모든 것은 자신이 진두지휘했다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현실주의적 입장이었고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먼저 앞세웠다. 정말 위험할 때는 책임지고 나서서 일을 해결했다. 모범적인 정치인의 표상이다. 지금처럼 국제 정세가 민감하게 돌아갈 때 친중이나 친미의 차원이 아니라 국제 정세 변화를 냉철하게 읽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명길을 호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책임지는 정치인의 자세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김육도 지금 꼭 필요한 사람이다. 대동법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부자 등의 반대로 주춤했었는데 효종 때 김육이 책임지고 충청도로 확대하고 호남까지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김육의 태도가 중요하다. 수령이나 부자는 대동법 확대를 계속 반대한다. 김육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료 조사를 통해 근거를 들이밀며 반대 주장을 약화시켰다. 충청도에 대동법을 정착시켰고, 호남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영조나 황진이를 든 이유도 말해준다면?
주영하 : 영조는 식탁에 많이 쌓아놓고 먹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 영조는 절식을 했는데 그게 백성들을 위해서였다. 지금도 영조처럼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영조가 성격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웃음). 장수한 이유로 까탈스럽고 자신밖에 안 믿는 성격도 있지 않았나 싶다. 적게 먹고 오래 살면서도 글을 많이 쓴 임금이 영조다.
조유식 : 황진이가 천하의 미인이라서, 서경덕, 벽계수 등을 무너뜨렸다고 해서 보고 싶은 것만은 아니다(웃음).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내여...”라고 시작하는 황진이의 유명한 시가 있다. 이 정도로 한글을 아름답게 표현한 시조가 있었나 싶다. 내용을 꼼꼼하게 따지면 굉장히 야한 시인데, 황진이는 이를 격조 있게 표현해 냈다. 황진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시였고, 문학적으로도 뛰어나고 격조 있는 사람이어서 꼭 뵙고 싶다.
독자가 물었다
박시백 화백은 어느 왕을 가장 좋아하는지, 이유도 함께 듣고 싶다.
박시백 : 세종대왕을 가장 좋아한다. 세종은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것을 관철해나가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다. 이런 천재는 대개 독단에 빠지기 쉬운데 세종은 신하들과 충분히 토론하고 설득해서 결론을 내리고, 결론이 난 것은 자신이 직접 체크하면서 완수했다. 굉장히 놀라운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었다. 역사에서 보기 힘든 리더십을 체현한 사람이었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역사 속에서 이 순간만큼은 안타깝다, 그런 순간이 있다면?
박시백 : 문종이 좀 더 살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조선 초기 정치는 세종이 구축해놓았는데 문종이 살아 있었다면 그 토대에서 좀 더 잘 돌아가지 않았을까. 수양대군이 집권을 하면서 세종 때 갖춰진 시스템이 무너졌다. 수양대군은 인치, 왕 혼자의 캐릭터에 의해 가는 정치를 펼쳤고, 그것이 상당기간 가지 않았나 싶다. 문종의 죽음이 안타깝다.
신병주 : 역사에서 가정을 말하기 어렵지만, 최근 역사 교사들 사이에 역사의 가정을 언급하면서 나온 얘기가 흥미로웠다. 이례적으로 소현세자의 죽음을 언급했다.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됐다면 북학이 빨리 오면서 근대화가 빨라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소현세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총리로 추천할 만한 분이 있다면 누군지 말해 달라.
주영하 : 총리가 힘이 없잖나. 누구를 앉혀 본들 다를까 싶다(웃음).
조유식 : 저는 박시백 화백님을 추천하고 싶다(웃음). 역사를 꿰뚫어보고 계시고.
박시백 : 나는 동네 이장도 자신 없는 사람이라 사양하겠다. 최명길을 추천하고 싶다.
신병주 : 내가 최고의 재상으로 꼽는 사람이 이원익이다. 선조-광해군-인조에 이르기까지 총 여섯 번의 영의정을 역임할 정도로 역량이 뛰어나고 청렴한 분이었다. 드라마 <징비록>에서 이원익이 비중 있게 나오지 않아서 안타까운데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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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15년 개정판 세트박시백 글,그림 | 휴머니스트
조선사가 지식인 문화에 머물고 대중들에게는 아직 생소했던 시절, 조선사로 가는 길목을 시원하게 열어준 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있었다. 2001년을 시작으로 10여 년을 조선사에만 바쳤던 박시백 화백은 방대한 분량과 편년체 서술로 아무나 접근할 수 없었던 《조선왕조실록》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화로 재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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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