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추억은 늙지 않는 것 같다
서울풍물시장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시장이다. 청계천이 복원되기 전 황학동에 있던 도깨비시장이 서울풍물시장의 시작이었는데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소품과 지역 특산물 등을 취급하는 점포가 모여서 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되면서 황학동을 떠나 동대문 운동장을 거쳐 옛 숭인여중 부지로 자리를 옮겼다.
전통풍물과 지역 특산물은 물론 의류와 음식까지 없는 게 없는 도심 속 장터인 서울풍물시장은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에만 문을 닫고 상가형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시 직영으로 운영하는 시장이라는 것도 특이 사항 중 하나다. 지하철 1호선이나 2호선 신설동역 10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서울풍물시장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설 때까지 다양한 이정표가 등장하기 때문에 아무리 길치라도 길을 헤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시장 입구에는 전통문화 체험관이 있어 손님맞이를 한다. 하회탈과 부채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고 시장 내에서는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다양한 점포들은 색깔로 구분되어 있어서 방문하기 전 조금만 공부한다면 서울풍물시장을 더욱 알차게 즐길 수 있다. 상점 하나만 놓고 본다면 크기가 아담한 편이지만 가게 안을 채우고 있는 상품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서울풍물시장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1층: 생활잡화_노랑, 구제 의류_주황, 전통생활용품_갈색, 공예골동품_초록, 1층 식당가_빨강
2층: 생활잡화_남색, 신상 의류_하늘, 관광기념품_연두, 취미생활_보라, 2층 식당가_빨강
60년대 혹은 70년대에 발간되었을 법한 교과서가 꼭꼭 숨겨져 있는 1층 노랑동 95호, 은현당에 가장 먼저 들렸다.
오래된 교과서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책들과 놋그릇, 곰방대, 딱지가 시간을 잊고 태연히 놓여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저마다 번호표를 붙이고 있었는데 그 번호를 사장님에게 알려 주면 사장님이 수첩에서 가격과 그 상품의 특이사항을 알려 주셨다.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린 나에게 선뜻 믹스 커피부터 내주면서 마음껏 구경도 하고 궁금한 것도 모두 물어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곳에서 나는 별똥동자, 우주전사 홍길동이 그려진 딱지를 발견했는데 당시 판매가였던 30원이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기분이었다.
시계를 보니 1층에서만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머물렀다는 것을 알았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가서 보라동 133호, 레코드사를 찾았다. 거기서 나는 2장의 명반을 발견했다. 그것도 무려 LP판으로 말이다. 하나는 1991년에 소니뮤직에서 나온 마이클 잭슨의 앨범이었고 또 하나는 1967년에 발매된 비틀즈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이었다. LP판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지만 주인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나니 빈손으로 나설 수 없었다. 치열한 고민 끝에 비틀즈의 앨범을 구입했다. 마이클 잭슨의 음반도 놓치기는 싫었지만 서울풍물시장에 온 만큼 더 오래된 상품을 사고 싶었다.
서울풍물시장에서의 경험은 일종의 시간여행이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학창 시절을 짐작해 볼 수 있었고 역사책에서만 보던 값진 물건을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시장을 지킨 상인분들과의 대화가 그 어느 시장보다 유쾌했다. 국민학교도 못 마쳤지만 즐겁게 일하고 있다는 상인분의 한 마디가 아직도 가슴 한쪽에 남아 있다.
주의, 눈치 보다 간 코앞에서 놓칠 수 있습니다. 서두르세요!
서울풍물시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지붕이 없는 노천시장 하나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바로 동묘벼룩시장이다. 동묘벼룩시장은 놀랍게도 조선 시대부터 계속된 시장으로 동묘 앞에 늘어선 좌판은 이제 동묘벼룩시장의 아이콘이다. 구제 의류, 신발, LP판을 비롯해 온갖 골동품, 전자제품, 오래된 책까지 볼 수 있는데 도대체 이것을 누가 사고 누가 파는 걸까 궁금하게 만드는 상품들이 모조리 나와서 햇빛을 받고 있다.
1,000원부터 시작하는 착한 가격 덕분에 동묘벼룩시장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의외로 젊은 친구들도 많은데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빈티지 의류를 사러 오는 장면이 방영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방송에 나와서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이미 패션 피플 사이에서는 소문난 빈티지 시장이었다. 중고 의류가 들어오는 날이면 평화로운 시장에도 긴장감이 도는데 한 발짝 물러서서 구경한다는 이색적인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서울에 있는 빈티지 시장 정리]
1. 서울풍물시장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천호대로4길 21호(신설동)
찾아가는 길: 서울 지하철 1, 2호선 신설동역 9번 출구에서 도보로 200m
개장 시간: 10시~19시(매달 둘째, 넷째 주 화요일 휴장)
홈페이지: http://pungmul.seoul.go.kr/
2. 동묘벼룩시장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 2동 동묘앞 3번 출구 서울 동묘공원 일대
찾아가는 길: 서울 지하철 1, 6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에서 30m 직진, 동묘공원 일대
개장 시간: 평일 14시~일몰, 주말 10시~일몰
3. 광장시장 수입구제상가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88(예지동)
찾아가는 길: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 5가 역 7번 출구에서 우리은행 입구 일대
개장 시간: 월~토 10시~19시, 일 11시~1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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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
『시장이 두근두근』의 작가. 전통시장 도슨트를 자처하며 2013년부터 지금까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시장을 직접 누비고 있다.
감귤
2015.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