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외국에 나갈 때 부모가 해야 할 일
미국으로 떠나기 전 소아정신과 의사였던 아빠의 걱정도 컸다. 갑자기 낯선 세상에 던져진 아이의 마음은 공황 상태와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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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해외 근무를 떠나면서 함께 낯선 외국에 나가야 하는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이런 아이를 위해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 김재원 저자(서울대 소아정신과 의사)가 나섰다. 이 책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피츠버그 대학병원 객원연구원으로 떠나면서 함께 짐을 싸야했던 의사 아빠와 중2 딸이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적응과 성장의 기록으로 2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담고 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소아정신과 의사였던 아빠의 걱정도 컸다. 갑자기 낯선 세상에 던져진 아이의 마음은 공황 상태와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성장을 도와주려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에게 닥칠 공황 상태를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책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책은 부모를 따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 외국에 가게 된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친구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해외 연수를 떠나기 전에 이런 책이 있는지 살펴봤는데 찾을 수 없었고 그곳에서 2년을 지내면서 책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의 모든 챕터는 아이가 먼저 시작하고 부모와 소아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서술했다. 외국에 나가니 한국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와 아이 모두 앞만 바라보며 전력 질주하는 삶을 산다. 책은 이렇게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이 관성처럼 살아가던 삶에 대한 반성도 담았다.”

 

 

떠나기 전의 불안

 

2012년 저자의 가족은 지금 강정호 선수가 뛰고 있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연고인 피츠버그로 갔다. 인구 30만의 도시인 피츠버그로 떠나기 전과 직후의 상황에 대해 저자는 불안, 노출, 외국어라는 세 개의 열쇠말을 들었다.

 

“낯선 세상과 마주한 것인데 환경의 변화가 생기면 사람은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여러 심리 반응을 보인다. 낯선 환경에 가면 경계심이 생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또 주변 사람을 일정정도 거리를 두면서 관찰한다. 소외감은 그래서 정상적인 반응이다. 불안 역시 마찬가지로 낯선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또 우울, 스트레스 등의 신체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저자는 그 가운데 불안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불안에는 크게 2가지 종류가 있다. 우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기는 ‘예기 불안’이 있다. 사람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전이 대상을 찾고는 한다. 저자의 작은아이는 부피가 큰 자신의 인형이 그런 대상이었다. 그래서 인형을 짐가방에 넣고자 애를 썼다. 부모 입장에서는 부피가 커서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도착해서 새 인형을 사주겠다고 달래보기도 했다. 부모에겐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으나 아이에겐 죽고 사는 문제였다. 결국 인형을 가져가도록 했다. 저자는 이때 깨달음을 얻었다. 부모는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불안과 긴장을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불안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해체 불안,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기피하는 분리 불안, 내가 버려질지 모른다는 유기 불안이 있다. 이것은 발달 과정에서 누구나 거치는 경험이다. 그런데 낯선 환경에서 이런 불안을 재경험할 수 있다. 첫 한두 달은 적응기라고 여기나 계속 이런 증상이 이어지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분리 불안 장애, 선택적 함구증, 범불안 장애, 사회 불안 장애, 수행 불안, 시험 불안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불안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노출이다. 이사와 전학은 특히 아이들에게 삶의 큰 변화이자 스트레스를 주는 경험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사하는 이유를 아이에게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해시켜주는 것이 좋다. 저자의 경우, 큰아이는 이해했으나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작은아이는 아빠 혼자 가면 안 되느냐고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곳에 가면 좋은 점 등을 설명하면서 설득을 시켰다. 새로 정착할 곳의 지도와 사진을 보여주고 학교, 집, 주위 환경 등을 노출시키면서 이사 갈 곳에서 아이가 좋아할만한 점을 찾아서 알려줬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설득됐다.

 

외국어라고 빠질 수 없다. 주변에서 해외로 나가기 전에 “외국어 학원에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라고 많이 묻는다고 한다. 저자는 너무 호들갑을 떨 것까지는 없고 외국에 나가기 1~2년 전 아이를 외국어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만 영어권 국가의 학교 수업방식과 가까운 에세이, 토론/프로젝트 수업 등을 하는 곳에 보내면 더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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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과 학교생활은 이렇게

 

의사소통. 많은 부모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가 아닌 이상 계속 숙제처럼 안고 가는 문제다. 그러니 당장 너무 걱정을 안고 갈 필요까지는 없다.

 

“언어는 사회문화적 산물인데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에 대한 이해가 수반돼야 하므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는 쉽지 않다. 언어의 발달은 듣기→말하기→읽기→쓰기의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 집단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큰 아이의 표현에 의하면 듣기는 선생님이 말을 천천히 해서 알아듣기가 쉽지만 아이들의 일상 대화가 문제라고 했다. 유행어, 줄임말, 비속어 등이 포함돼 이를 문제없이 알아듣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말하기는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저자는 시간 관리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과 달랐다. 한국에서는 수업 후 쉬는 시간아 10분, 점심시간 1시간이나 피츠버그에서는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이 3분~5분이었다. 5분 이상의 쉬는 시간이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시간 관리 훈련이 된다. 즉 그만큼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상에서 깨우치게 한다. 저자는 시간 관리 능력은 자제력, 근면성, 학업 성취도 등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밖에 다른 것은 이런 것들도 있었다.

 

“큰아이가 한국에 중학교 2학년 2학기로 돌아왔는데 체력테스트에 왜 필기시험이 있는지 묻더라. 미국의 체력테스트는 철저하게 실기 위주로 아이들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최근 경기도에서 학생들의 오전 9시 등교제를 시행하면서 수면권과 건강권 보장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는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것을 둘러싼 여러 사회경제적인 요소가 있다. 미국국립수면재단에서 권고하는 중고등학생의 수면시간은 8.5~9.5시간이다. 그리고 미국에선 수업 시간에 정답보다 의견을 중시한다. 가령 큰아이가 헌법을 둘러싼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를 지문으로 걸고 의견을 내라는 숙제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 답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답안의 작성 조건은 두 문장 이상의 온전한 문장으로 근거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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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적응보다 심리 적응

 

부모의 걱정은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아이에게 공부 적응에 대해 종종 물었다. “공부는 따라갈 만하니?” 별 말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저자는 특히 심리 적응은 낯선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저자의 아이도 “처음에는 스스로 장벽을 세웠어요” “여기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관찰부터 했어요”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따라서 다른 사회, 문화, 인간관계에 익숙해져 편안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다면 적응을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자신감을 꺼냈다. 

 

“아이는 낯선 세상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 적응의 지름길이다. 부모가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한국에서도 악기 연주를 했던 아이가 오케스트라에 들어갔는데, 바이올린을 연주하니 다른 아이들이 놀라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날이 아이에게 전환점이 됐다. 부모는 아이가 잘하는 것을 일깨우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 한편으로 큰아이는 정체성 혼란을 많이 겪었다. 물론 그것은 청소년기의 발달 과정이다. 만족스럽고 현실적인 신체상 확립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기 관리 및 조절 능력을 갖추고 친구/동료 등 가족 밖에서 의미 있는 대인 관계를 수립한다. 또 성적/공격적 충동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조절한다.

 

“정체성 혼란은 개인/국가/인종 등에 걸쳐 나타난다. 반복 질문을 하고 그런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외국에 와 있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혼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부모가 잘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다. 친구 관계도 역시 중요한데 특히 청소년기의 친구 관계는 자아 존중감 형성과 사회적?심리적 적응에 중요하다. 이사?전학 직후 1~2명의 친구를 먼저 만들어주는 것이 적응에 도움이 된다. 처음 한두 명이 중요하다. 전문가들 공통적으로 또래 집단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케스트라나 운동 클럽 등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저자는 외국에 나갈 경우 편견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 없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학교 교육 과정에서 이것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미국이 워낙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와 있다 보니 수업을 통해 고정관념과 일반화를 구분하는 과제를 내줬다는 것. 과제에는 자신이 가진 편견과 선입견을 점검하고 모두에게 공통된 특징은 없고 객관적 증거(관찰 가능 행동)가 포함돼 있었다. 물론 아이 이전에 부모 먼저 문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가 다른 나라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 가령 아이에게 정착할 나라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도록 돕는 것도 적응에 도움이 된다.

 

“낯선 세상에 나간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굴곡을 겪는지, 어떻게 적응하고 성장해 나가는지 부모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외국 생활을 통해 나도 가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기회가 된다면 아이 혼자 유학을 보내는 것보다 가족이 함께 외국에 가는 것이 좋다. 다른 나라와 문화를 함께 겪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이전과 ‘다른’ 가족이 되었다. 정서적인 유대감도 강해졌다. 사람들이 2년 동안 무엇을 이뤘느냐고 묻는데 나는 목표보다 여정을 더 즐기게 됐다고 말한다. 이전에 한국에서 정신없이 성취 지향적으로 살다가 과정 중심의 외국에서 살면서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돌아왔다. 가치관이 변한 거지. 무엇보다 진료실에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아이의 마음을 알았다. 아이와 함께 책을 구상하고 함께 쓰면서 아이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됐고, 아이가 내 스승 역할도 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것을 돌아오고 나서야 느끼고 있다. 가족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에 방 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후회된다. 싸운 일도 적지 않았지만 2년 동안 가족과 가까워져서 기쁘다. 함께였기에 우리는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2년 동안 값진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 항상 내 옆에 있어 준 가족에게 감사하다.”(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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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김지인 공저 | 웅진서가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해외로 유학, 연수, 이민을 가는 부모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제대로 의사소통할 수 있을까?’ 실제로 친구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아이는 공황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 책은 낯선 외국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행동과 심리를 읽고 적응 전반을 돕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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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