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이효리 블로그
난 이효리의 팬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은 이효리 빠순이의 일기다. 스무 살 초반 내가 본 이효리는 당당한 여성, 섹시 스타, 워너비 그 자체였다. 이효리 앞에서는 당대 톱스타들도 벌벌 떨었다. 결코 기죽지 않는 똑 부러지는 그녀의 당당함이 부러웠다. 그는 그렇게 스무살 무렵 나의 우상이 됐다. 하지만 이효리가 어느 날 갑자기 ‘배드 걸’에서 ‘굿 걸’로 돌연 변신을 선언했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있을까 싶다.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이효리가 마돈나처럼 멋지게 살 줄 알았다. 결혼도 톱 배우랑 하고 말이다. 난 이효리의 변신이 달갑지 않았던 사람들 중 하나고, 톱스타들이 가끔 부리는 허세나 변덕 그쯤 하겠지 했다. 곧 무대에서 당당한 여전사의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었다. “내 우상, 효리 언니로 돌아와요!”
하지만 이게 웬걸.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효리의 삶은 점점 더 이슈메이커와는 멀어졌고, 이상순과 결혼 후 제주도에 정착했다. 나 역시도 효리 언니를 쿨하게 마음속에서 떠나 보냈다. 내 롤 모델은 더 강하고 세련된 여자여야 했다.
그러던 도중 오랜만에 이효리가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블로그 속 이효리는 느리게 살기, 킨포크적인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이효리의 세상만 시계가 멈춘 듯 고요했다. 최신 유행 그것도 스타일의 최전방에 있던 트렌드 세터,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스타였기에 이번 변신은 낯설게 다가왔다. 이효리는 자신을 ‘소길댁’이라고 소개했다. 그곳에는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을 지운 말간 얼굴에 36세 이효리가 있었다.
소길댁이 전하는 조화로운 삶
소길댁의 하루는 정원 가꾸기로 시작해 순심이와 놀아주기, 채소 농사, 뜨개질로 마무리 됐다. 이효리는 자주, 일주일에 몇 번씩 블로그를 통해 일상의 소박함을 기록했고 아침 햇살, 소길의 풍경, 매일 먹는 밥상에도 감사했으며 그 속에서 꽤나 ‘일관된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감정과 자신의 생각들을 조심스레 내놓는, 그래서인지 의외로 거부감은 없었다.
이효리의 블로그에는 어떤 장식도 없다. 그동안 내가 생각한 이효리에 대한 수식어는 싹 걷어내야 어울릴 것 같았다. 특히 이효리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모순’이라는 제목의 글은 꽤나 흥미로웠다.
“동물은 먹지 않지만 바다 고기는 좋아해요.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죠. 우유는 마시지 않지만 아이스크림은 좋아해요. 반딧불이는 아름답지만 모기는 잡아 죽여요. 숲을 사랑하지만 집을 지어요. 돼지고긴 먹지 않지만 고사 때 돼지머리 앞에선 절을 하죠.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긴 싫죠. 소박하지만 부유하고, 부유하지만 다를 것도 없네요. 모순덩어리 제 삶을 고백합니다.”
내 우상, 섹시 스타 이효리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얘기했다. 소소했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모순덩어리 삶을 고백하며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고 그 안에서 답을 발견하는 것처럼 보였다. 난 다시 이효리의 팬이 됐고, 이제 당당하게 그를 나의 롤모델이라고 말하게 됐다.
사실 난 이효리처럼 채식주의가 될 생각은 없다. 텀블러는 있지만 귀찮아 집에 처박아 둔 지 오래다. 식목일, 환경의 날, 지구의 날에만 사용한다. 보여주기 식에 가깝다. 내 마음 속 이야기 보다는 남들의 ‘좋아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변의 이야기에 쉽게 흔들리고 남들의 호감을 얻으려 애쓰면서 살았다. 아마 내가 이효리였다면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를 등지고 자신의 삶을 내려놓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실제 이효리는 채식주의자 선언을 하고 한우 홍보대사는 물론 가죽 제품을 만드는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의 광고가 끊어졌다.
스물아홉, 처음으로 또 다른 삶을 생각한다. 강박에서 벗어나 편안하지만 분명한 삶의 방식을 동경하게 됐다고 할까. 매일 체중계에 올라갔다면 지금은 좋은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는 것에 집중한다. 겉모습은 흐트러져 있을지언정 내면에 대한 확신이 있는 여성이 아름다워 보인다. 옷장보다는 책장을 채우는 일이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돈 앞에서 쿨해질 수 없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고 확신한다. 나이가 드는 과정에서 배우는 ‘확신에 찬 삶’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겠다.
이렇게 많은 일관된 삶의 방식들
5월 황금연휴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발견한 책이 있다. 오프라 윈프리의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다. 61세를 맞이한 오프라 윈프리는 20대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젊고 열정적이다. 이 책은 그가 14년 동안 걸쳐 연재한 칼럼을 엮어 만든 것으로 그녀의 일대기를 모두 볼 수 있다. 책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일관된 생각들은 보고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오프라 윈프리는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확실하게 아는 것은 무엇인가요?” 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에 대해 그는 “스스로 고요함을 찾아,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면, 명확함은 금세 당신 곁으로 다가올 것”(262쪽) 이라고 조언한다.
목적, 생각, 말, 행동 등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려면 확고한 신념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목적이 분명하다면 삶과 생각은 조화롭게 흐르게 된다.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을 ‘내려놓는 것’ 한 단계 위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 여성 취향을 고백한다면 난 자기 확신과 신념이 있는 여자가 좋다. 여전히 미란다 커가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남자라면 오프라 윈프리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거다. 미란다 커를 보며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결국 닮고 싶은 건 오프라 윈프리다.
난 몇 년 만에 다시 이효리 빠순이가 됐다. 스무 살 내가 좋아하던 이효리는 예쁘고 섹시하기만 한 ‘배드 걸’이었지만 스물아홉 내가 좋아하는 이효리는 노 메이크업에 몸빼바지를 입은 콩 농사에 목숨 거는 ‘굿 걸’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의 방식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응원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그런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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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오프라 윈프리 저/송연수 역 | 북하우스
14년 동안의 칼럼에서 선택된 보석 같은 사색의 글들이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다듬어져 나왔다. 오프라 윈프리의 영감과 깨달음의 고백이 기쁨, 회생력, 교감, 감사, 가능성, 경외, 명확함, 힘이라는 여덟 가지 주제로 나뉘어 엮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여성의 마음속을 엿볼 수 있는 귀하고 강렬한 기회를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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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애
감상의 폭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된다고 믿는다.
감동한다는 건 곧,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아이스타일24 웹진 <스냅> 기자.
몰라몰라
2015.05.29
이효리 책과 오프라 윈프리 책 읽어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