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했던 수전 손택에 대하여
지난 5월 20일은 스크린을 통해 수전 손택을 다시 만난 날이었다. 『수전 손택의 말』 출간기념으로 마음산책이 마련한 다큐 상영회는 그래서 특별했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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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자, 열정적이자, 깨어 있자.

 

20세기 미국의 최고 지성이었던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삶의 좌표는 이처럼 명확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랑했으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는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작가를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기득권의 지배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마음의 목록을 지닌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손택은 100% 작가였다.

 

하나의 에피소드. 손택은 9ㆍ11에 대처하는 부시행정부와 당시 미국 사회에 불어 닥친 반이성적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평소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이들은 그에게 “애국심이 없다” “미국 정부에서 하는 일이면 무조건 비판만 한다”며 공격했다. 그러나 손택은 꺾이지 않았다. 그에 대한 다큐 영화 <수전 손택에 관하여(REGARDING SUSAN SONTAG)>는 손택과 보수 인사들의 논쟁을 통해 왜 손택이 비판적 지성일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5월 20일은 스크린을 통해 수전 손택을 다시 만난 날이었다. 『수전 손택의 말』 출간기념으로 마음산책이 마련한 다큐 상영회는 그래서 특별했다. 레드빅스페이스 상영장은 손택을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로 꽉꽉 들어찼다. ‘정신의 뜨거운 고양’을 꾀하고 싶은 이들과 함께했던 상영회는 11년 전 세상을 떠난 손택이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사회학자 노명우의 말에는 그런 벅참이 묻어 있었다. “세상의 글 쓰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잘난 사람이 있고 똑똑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잘난 사람의 글을 보면 글 자체에만 관심이 갈 뿐 책을 덮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해선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이라면 다르다. 텍스트를 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이런 사유나 생각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내게 수전 손택은 후자다. 인간으로서의 손택은 어떤 사람이며, 말할 때 어떤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목소리로 말을 할까 궁금하다. 오늘은 그런 궁금증과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이날 행사 부제를 붙이자면 ‘우리가 사랑했던 수전 손택에 대하여’가 아닐까. “살아 있어서 기뻐요.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어서 행복해요”라고 손택의 목소리로 시작한 다큐는 단순히 그에 대한 찬양으로 채우지 않는다.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을 통해 그를 입체적으로 탐구한다. 변덕도 부리고 사랑 때문에 아프고 힘든 손택의 인간적인 면모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생생한 그의 육성 인터뷰는 우리가 사랑했던 손택을 한뼘 더 가까이 느끼도록 만든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요.”(29쪽)

 

 

노명우와 김선형, 손택을 말하다 
 
다큐 상영이 끝나고 노명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수전 손택의 말』을 읽은 어느 날 밤, 와인병을 땄다. 그가 혼자서 와인을 마시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인데, 그땐 그랬다. 그는 그때는 외로웠지만 이날 다큐를 함께 본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소감부터 꺼냈다. 다큐를 보고 든 생각을 하나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남자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던지곤 하는 질문이 있다. ‘왜 인문학자에는 여성들이 없을까.’ 처음에는 온화한 형태로 질문을 던지지만 답을 하는 과정에서는 이 질문은 폭력적으로 변한다. 이 질문을 던지면서 여자에겐 무엇이 없는가, 여자는 왜 부족한 존재인가 등 매우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1990년대 손택을 처음 읽었다. 1964년 <파리잔 리뷰> 가을호에 실은 「‘캠프’에 대한 단상」(주. 캠프는 당시 게이들의 하위문화에서 떠돌던 속어)이었는데, 문화적인 맥락에서 퀴어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후 『해석에 반대한다』 『은유로서의 질병』 『사진에 관하여』 『타인의 고통』 등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즉, 왜 남자는 수잔 손택처럼 글을 쓰지 못하는가, 로 바뀌었다. 손택을 통해 그전에 던진 질문이 무의미하고 잘못됐음을 반성하게 됐다. 또 『수전 손택의 말』과 다큐를 보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 사랑을 한다는 것, 에로스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남자 지식인으로서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보통 남자들은 글을 쓰고 일을 한다는 것은 공적인 문제이며 사랑과 에로스는 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남자들이 공적인 문제가 사적인 것을 압도하고 자신을 중성화시키고 관념적으로 거세된 존재로 만든다면, 손택은 두 가지가 분리돼 있지 않은 사람이다.”

 

노명우가 특히 책에서 공감하면서 읽은 구절은 이것이었다. ““무엇이 나를 강인하다고 느끼게 하는가?” 손택은 일기에서 이렇게 묻고 스스로 답했다. “사랑과 일에 빠져 있는 것”과 “정신의 뜨거운 고양”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일이라고. 분명 손택에게는 사랑하고 욕망하고 사고하는 것이 본질적으로는 동일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었다.”(9쪽)

 

“손택은 앎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가 지닌 묘한 설득력, 손택의 메시지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손택에게 앎이란 연인을 사랑하는 것과 같았다. 다큐를 보면 손택의 ‘인간 편력’이 나오는데 그런 것이 힘이자 에너지의 원천이 아니었나 싶다. 다큐를 보면서 사랑을 끊임없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지식인에게 앎이 에로스적인 구애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것은 어떤 관념적인 흥분의 동기보다 더 훌륭하고 구체적이다. 그 결과로 나온 텍스트가 다른 사람과 교류될 때 어떤 텍스트보다 힘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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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수전 손택의 말』을 옮긴 번역가 김선형도 손택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에게 이번 책은 손택의 일기를 옮긴 『다시 태어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손택을 옮긴 것이다. 첫 작업을 할 때는 힘이 들었다고 했다. 일기에는 문맥이 없기에 어떤 상황에서 무슨 기분으로 일기나 노트를 썼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번역이 단순히 옮기는 것이 아님을 느끼고 있고, 책이 위치한 시간적 공간적 인간적 맥락이 진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택이 시사하는 바라면, 진실을 본다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이다. 요즘 소통 채널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그 채널들이 오히려 서로를 소통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수록 참여라는 것이 총체적 진실을 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그게 역사의식이고 현실의식이고 인간과 인간의 사랑을 만들고 인간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알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이나 사회현상도 단면으로 판단할 수 없다.”

 

김선형이 번역을 하면서 손택에 대해 느낀 것이라며, 손택은 삶이 복잡하다는 사실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사랑과 삶, 공부하는 것,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대중문화도 즐기고 향유하는 손택이 더욱 알고 싶어졌다. 손택은 어떤 사람이며, 손택은 어떤 태도로 어떻게 말하는지, 손택이 한국어로 말한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손택을 직접 앞에서 보면 그는 정말 사자 같은 사람일 것 같다(웃음). 지금은 과거보다 총체성을 이야기하는 담론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피상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손택은 여전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의미가 여전히 살아있는 지식인이 아닐까 싶다.”

 

노명우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는 쉽다. 입장을 쉽게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이나 입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에 도달하기까지 사유라는 긴 과정이 더 중요하다. 손택의 삶의 전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택이 생각, 사유, 앎에 대한 욕망을 사랑에 비교한 것은 그런 맥락이 아닐까. 사람은 사랑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놓칠 수 없다. 어떤 사랑도 바라지 않는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사랑을 갈망하고 찾고 사랑에 대한 열망을 가지는 것이다. 손택은 우리가 생각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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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에 대해 묻고 답하다

 

친아버지를 여읜 것이 손택의 성정체성에 미친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하고, 손택은 진실을 집요하게 추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택이 추구한 진실은 어떤 측면에서의 진실이었을까.

 

김선형 : 손택은 어렸을 때 계부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와 계부는 교외 주택가에 안주하는 부르주아지로서의 삶을 살았고 손택도 그런 것에 대해 감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손택의 일기를 보면 지적인 호기심이 없는 안정된 부르주아지의 삶을 경멸하는 것도 나온다. 천재가 사춘기를 겪을 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손택이 추구한 삶은 안락한 부르주아지의 것과는 멀다. 성정체성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모르겠다.

 

노명우 : 진리는 외형적 실체가 있다기보다 사유하는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닐까 싶다. 다큐에 “나는 주류에 저항하는 것이 좋아요,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 좋은 것이죠”라는 말이 나온다. 주류도 변한다. 세월이 흐르고 주류는 바뀔 수 있고, 사회는 끊임없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존재가 필요하다. 손택은 그런 행위 즉, 특정 시기의 주류에 반대해서 우리가 보지 못한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활동이 지식인 또는 작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것이 손택에겐 진리가 아니었을까. 손택이 추구한 진리, 진실은 지식인이 지녀야 하는 입장, 태도에 대한 표명이 아니었을까 추정을 해본다.

 

손택이 다큐 말미에 꿈을 이뤘느냐는 질문에 허망한 표정으로 아니라고 했는데 의외였다.

 

노명우 : 꿈이라는 것은 이루지 못하니까 꿈이 아닐까. 이룰 수 있는 거라면 계획이지, 꿈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꿈이 이룰 수 없다고 해서 꾸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이루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인간만이 가진 것이 아닐까.

 

손택은 세상에 대한 관심을 말하면서 참여를 강조한다. 손택은 유명 작가이나 평범한 장삼이사인 우리는 어떤 ‘참여’가 가능할까?

 

노명우 : 참여가 정치적인 행동만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손택이 말한 것은 적시된 형태의 참여라기보다 ‘관여’라는 뜻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자, 내가 원하는 건 내 삶속에 현존하는 것이다. 지금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이다... 그게 바로 작가의 일이다.” 손택은 이것을 작가의 의무라고 말했지만 작가가 아니라도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요청되는 덕목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김선형 : 손택이 참여라고 말할 때 ‘앙가주망’(주. 원래는 계약?구속의 뜻으로 사르트르가 자신의 논문에 이 말을 쓰면서 널리 퍼졌는데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을 가리킨다)이라는 단어를 썼다. 만사를 눈여겨보고 눈을 똑바로 뜬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서 손택은 이미지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으면서 가슴 아파하는 것으로 인간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총체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관점이 필요하고,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아서 관점을 두고 보아야 한다. 

 

다큐는 손택의 사랑, 앎, 병에 대해 주목했다. 삶을 사랑하다보니 손택은 앞서갔고, 똑똑했으며 성적 정체성도 일찍 파악했다. 오만하다고 보일 수도 있으나 아프고 나서 삶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손택에게 있어 질병이 가진 의미가 궁금하다.

 

노명우 :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대상 자체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 경우 아버지가 지난달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고 형이 후두암으로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손택은 암 환자에게 보이는 주변의 은유에 주목한다. 형이 후두암 수술을 받으니 주변 사람들은 형의 평소 태도 등에서 문제를 찾아냈다. 암에 안 걸린 것이 신통 했어 혹은 그러니까 그렇잖아, 라고 말하더라. 암을 암 자체로 보지 않고 나를 포함해 은유로서 형의 암을 진단하더라. 암환자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주변에서 병 그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은유를 떠올리는 것이다.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고 증상이 나타날 때 나도 ‘거봐, 아버지는 너무 단순하게 낚시만 하시니 치매에 걸리지’라면서 문제를 환원해서 받아들였다. 그래서 병으로 고통 받는 것도 있지만, 은유로서 작용하는 것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우리는 비만을 비만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게으름의 은유로 보거나 에이즈는 성적 타락함이나 문란함의 은유로 본다. 많은 사람들이 유방암이라고 하면 유방 절제, 여성성 소멸 등을 먼저 떠올린다.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도 투명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질병을 은유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대상을 투명하게 받아들이지 못함을 비판했다. 대상을 은유로 보기 때문에 놓치는 문제가 많다. 손택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눈을 크게 뜨고 도달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로 인해 질병을 생각하기 시작한 건 확실히 그렇습니다.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제게 사유할 거리니까요. 생각은 제가 그냥 하는 일의 일환입니다.”(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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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말수전 손택,조너선 콧 공저/김선형 역 | 마음산책
『수전 손택의 말』은 이런 수전 손택이 1978년 [롤링스톤]과 가졌던 인터뷰를 오롯이 담은 책이다. 다양한 매체의 인터뷰를 엮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긴 인터뷰를 원래의 호흡대로 담았다. 인터뷰에서 수전 손택은 자신의 책들의 내용과 표지에 관한 소소하고 즐거운 에피소드를 늘어놓을 뿐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지론은 물론이고 파리와 뉴욕 등 자신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도시들에 관해서도 서슴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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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