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치밀한 심리싸움 - 연극 <데스트랩>
쉴 새 없이 전개되는 반전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듯 이어지는 브륄과 앤더슨의 심리싸움 역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글ㆍ사진 임수빈
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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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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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본적인 감정

 

청출어람. 이라는 말이 있다. 제자의 실력이 스승보다 뛰어난 경우를 뜻하는 말. 내가 가르치고, 나에게 배움을 얻었던 누군가가 어느 날 나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때 기분이 어떨까? 혹은 후배나 친한 친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보람을 느끼고 진심으로 축하해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묘한 질투심이 생기지 않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이중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인간의 질투심은 보편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니까.

 

연극 <데스트랩>은 그러한 인간의 질투심, 배신, 욕망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때 유명 극작가였던 시드니 브륄은 등단 이후 15년 동안 제대로 된 극을 완성하지 못하고 긴 슬럼프에 빠져있다. 점점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변해가는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앞으로 배달된 한편의 희곡을 읽고 눈을 번뜩인다. 젊은 극작가 클리포드 앤더슨의 희곡 <데스트랩>이 브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 앤더슨의 뛰어난 능력에 대한 질투심과, 검은 욕망에 사로잡힌 브륄은 앤더슨을 살해하고 <데스트랩>을 차지할 계획을 세운다. 결국 자신의 자택으로 앤더슨을 불러들이고, 앤더슨이 자택에 도착하면서 연극은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흘러간다. 

 

이미 비뚤어진 브륄의 눈에는 간절하게 그를 만류하는 연약한 아내 마이라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앤더슨이 자택에 도착하자 시종일관 불안에 떨며 브륄을 만류하는 마이라처럼, 관객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무대 위의 세 사람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브륄이 언제 앤더슨을 죽일까? 앤더슨이 언제 그의 계획을 눈치 챌까? 보이지 않는 미묘한 심리전에 관객들 역시 극에 한껏 몰입하게 된다. 음울한 조명과, 음산한 음악, 무대 한 쪽을 가득 채운 톱, 도끼, 단검 같은 소품들은 그러한 불안과 공포를 더욱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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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반전, 반전!

 

연극 <데스트랩>은 끊임없이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관객들이 예상했던 것을 뒤집고, 다시 추리한 걸 뒤집고, 또 뒤집으면서 연극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마치 관객을 약 올리듯 예상치 못한 반전은 2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이어지고, 관객들이 연극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 적절히 가미된 코믹적인 요소는 연극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배우들의 애드리브도 종종 웃음을 자아내지만, 심령술사 역할의 헬가는 딱딱한 극의 분위기를 전환 시켜주고,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긴장한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한다.

 

연극 <데스트랩>은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비극적 결말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상대가 아니라 자신까지 파멸로 이끄는 욕망은, 제목 그대로 ‘덫’ 에 걸린 등장인물을 통해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쉴 새 없이 전개되는 반전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듯 이어지는 브륄과 앤더슨의 심리싸움 역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신경질적이고 찌질한 극작가 브륄을 연기한 강성진은 디테일한 연기와 폭발적인 감정표현으로 무대를 꽉 채운다. 매력적이지만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앤더슨의 이충주의 연기도 묘하고 음울한 <데스트랩>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사실 <데스트랩>은 더 이야기를 할수록 스포일러만 될 뿐이다. 온통 반전, 반전, 반전으로 이어진 연극이기에 자칫 잘못얘기 했다간 연극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에 조심스럽다. 두 남자의 심리싸움과 비극적 욕망은 과연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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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