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는 기성의 문법으로 화합을 위시(爲始)한다. 다시 없을 전성기의 유산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젊은 감각을 더 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현재 제일의 임무라지만 오히려 거꾸로 갔다. 힙합도 있었고 네오 소울도 있었던 < 빨간 내복 >과 달리 신보는 전형적 어덜트 컨템퍼러리의 노선을 기준으로 삼았다. 베테랑의 생존 방식이 레트로로 굳어지는듯한 추세를 따라, 음악보다는 '미중년 이문세'의 이미지를 강조한 셈이다.
소소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봄바람」은 여러모로 조용필의 「Bounce」를 벤치마킹했으면서도 세부 문법은 전혀 다르다. 조용필의 관록이 일렉트로닉, 모던 록의 신진 문물을 어색함 없이 아우르는 '정제된 도전'이었다면, 러브홀릭 강현민이 선사한 이문세의 봄노래는 틀만 현재일 뿐 내용은 과거다. 「벛꽃엔딩」의 대성공으로부터 가열된 봄 시즌 송의 속성을 따랐으나 기타를 전면에 앞세운 빈티지 록을 채택했고, 또 한 명의 '레트로 워너비' 나얼의 목소리가 더해진 회상의 가사를 통해 꽃잎 휘날리는 봄날의 분위기를 무난히 전사(轉寫)했다. 다만 연령층을 높여 잡았기에 결코 '모두의 봄노래'는 될 수 없다.
확실한 워너비를 노린 타이틀 트랙을 필두로 향수를 자극하는 트랙들이 앨범을 가득 채운다. 보사노바 기타 리듬에 실려 오는 「그대 내 사람이죠」에선 추억의 현재진행형 이미지를 강조하고, '광화문'의 감성을 이어 성공한 후배 규현과의 발라드 듀엣 「그녀가 온다」는 미중년 로맨티스트의 달콤한 고백 송이다. 재즈 싱어송라이터 송용창이 선사한 「꽃들이 피고 지는 게 우리의 모습이었어」와 조규찬의 '무대'는 잔잔한 재즈 선율의 발라드도 주제는 지난날이 기본이다.
선두에 놓인 부드러운 록 트랙 「Love today」와 수미상관법의 「New edition」을 제외한 대다수 트랙이 부드러운 발라드라는 사실 또한 주제와 궤를 같이하는 사운드 운용이다. 과거의 이문세를 연상케 하는 「집으로」나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담백한 연주로 감성을 자극하는 「사랑 그렇게 보내네」 등으로 이어지는 슬로우 템포의 향연은 앨범 제목인 '새 방향'이 아닌 '구 방향'이다.
시대의 중년층이 되었을 1980년대 이문세 키드들에겐 확실한 파급력이지만 완성도 이상의 임팩트를 찾기는 어렵다. 매끈한 프로듀싱과 명품 세션들의 연주가 빛나고, 이름난 작곡가들의 작품이 담겨있다 해도 우위에 서는 것이 이문세의 엔터테이너적 중년 이미지라면 설득력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기성의 문법은 기성의 것이지, 전 세대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5/04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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