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에 이어 드라마 <징비록>까지 임진왜란 혹은 임진년 조일전쟁이라 불리는 사건은 늘 대한민국에서 인기 있는 역사 소재다. 임진왜란은 일본과 조선 사이에 명까지 참전하여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이어진 스케일 큰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발굴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특히나 이순신이라는 특출한 영웅의 존재는 소설, 영화, 드라마가 조명하는 단골 인물이었는데, 과연 전쟁사 전문가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볼까.
알마에서 출간된 『징비록』은 유성룡이 쓴 원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되, 임진왜란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전쟁사 전문가인 임홍빈의 해설을 실었다. 그는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책임편찬위원과 국방군사연구소 지역연구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하는 등 전쟁사 연구를 지속해왔다. 한편, 이 책의 또다른 강점은 지도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지도를 보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KBS 드라마 <징비록>이 화제입니다. 작년 영화 <명량>에 이어 <징비록>까지 임진왜란을 향한 대중적 관심이 끊이지 않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원인을 파악하시는지요.
지금 한국은 안팎의 시련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민 간의 갈등과 알력은 극심한 지경입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인 형편에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를 속수무책 바라만 보고 있지요. 분단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긴박하기만 한데, 한국인은 한국인의 운명을 결정할 어떤 역량과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현실을 타개할 동력을 바라는 마음이 <명량>을 불러내고 <징비록>을 불러냈겠지요. 하나 영웅이 역사의 정동을 담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영웅을 바라는 대중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하는 일 없이 영웅을 바라는 얄팍한 마음만큼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해방되고, 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살게 됐습니다. 신민이 아니라, 시민입니다. 시민은 제 역사에 스스로 책임을 집니다.
『징비록』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첫째 임진왜란의 처음과 시작과 끝의 윤곽을 이만큼 선명하게 드러낸 기록도 없습니다. 17세기 이후, 『징비록』은 조선은 물론 중국과 일본이 공유한 임진왜란의 기본 문헌이 됐습니다만, 7년 전쟁의 경과를 이렇게 잘 압축한 기록이 다시 없었으므로 세 나라가 모두 『징비록』에 기대 임진왜란이라는 긴 시간의 흐름을 개관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공정한 서술이 특장점입니다. 유성룡은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저주를 퍼붓고 마는 데서 그친 기록자가 아닙니다. 일본군의 전술은 전술 측면에서 중립적으로 평가를 합니다. 적장에게도 부친 공평한 평가가 『징비록』의 가치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임진왜란은 조선 분단을 외세가 논의한 무대였습니다. 곧 명과 일본은 조선의 역사성과는 아무 상관없이 조선 분단을 의논합니다. 그 한쪽 당사자가 조선에 나와 있던 심유경이고요. 그런데 유성룡은 조선의 왕에게나 최고위 관리들에게 징그럽고 불길하기 이를 데 없는 심유경마저도 하나의 사료로 대합니다. 심유경의 행태를 통해 임진왜란의 정치외교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보기 싫으니 불쾌하니 피했다면 심유경의 말과 행동을 이렇게 잘 기록하지 못했을 테지요.
셋째 생생한 형상이 있습니다. 탄금대 전투 패배의 이면, 전투 당일의 묘사 등은 손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모든 전투 장면에서 유성룡은 글로 묘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묘사력을 동원해 한 순간을 역사의 한 장면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위 세 가지는 유성룡이 파악한 정치외교라는 동인 위에서 다시금 서로 손을 잡습니다. 곧 7년 전쟁의 시간 흐름과, 주요 인물의 행동과, 인물이 개입된 개별 사건이 긴밀하게 엮여 기록문학으로서도 최고 수준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한 번 펼치면 도무지 손을 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지요.
시중에도 『징비록』 관련 책이 많이 나왔는데요. 알마에서 나온 ‘징비록’의 장점을 꼽아주신다면?
무엇보다 지도를 꼽겠습니다. 가령 일본군의 한양 도성 진공로를 봅시다. 충주에서 고니시와 가토는 어떻게 길을 나누어 한양으로 갔습니까? 부산, 동래, 상주, 충주…. 이렇게 지명만 늘어놓으면 보입니까? 이해가 됩니까? 가토 군의 용인 통과, 고니시 군의 양평 우회, 구로다 군의 충청도 관통을 한눈에 보아야 만 한양 진공의 속살을 알아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지도가 보물입니다. 주요 전투마다 부친 지도를 꼼꼼히 읽어주십사 독자 여러분께 다시금 부탁드립니다.
김기택 시인의 본문도 대단하지요. 유성룡의 속보는 김기택의 한국어로 속보로 변신합니다. 유성룡이 피눈물을 흘릴 때 김기택의 문장은 오늘의 한국어로 피눈물을 흘립니다. 지금 나온 어떤 판본보다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린 본문이라고 해설자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 본문과 해설과 지도가 긴밀하게 손잡고 있습니다. 이를 감히 특장점으로 손꼽겠습니다.
흔히 우리는 임진왜란을 일본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전쟁으로 기억하는데요. 임진왜란에서 승자는 누구였나요?
승자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관백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었나요? 명제국이 허둥댄 7년은 누르하치가 부족을 통일하고 대륙 경략의 기반을 다진 7년이지요? 인조반정의 파행과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조선은 임진왜란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승자는 없습니다. 다만 조선이 가장 비참한 피해자임이 분명합니다. 그것만이 분명합니다. 승자가 누구냐는 질문, 저는 의미 없는 질문이라 봅니다. 조선의 비참함, 임진왜란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420년 전 조선의 역사 건망증이 보다 큰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다시 분단 한국을 사는 한국인은 어떤가요? 승패라는 틀을 벗어나 진짜 교훈과 진짜 깨달음을 이끌어낼 질문 방식을 새로이 모색해야 합니다.
9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사를 연구하시면서 임진왜란만의 특이한 점이 있을까요?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임진왜란은 우리 역사상 처음, 외세가 우리 국토를 제멋대로 분단하려 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입니다. 조선 8도를 갈라 넷은 명이 가져라, 넷은 일본이 갖겠다 할 때, 조선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유성룡은 중국인들로부터 “동탁”이라는 모욕적인 별명으로 불리며 조선의 이익을 지켜보겠다고 동분서주했지만, 사태의 경과는 오로지 막강한 군사력을 쥔 외세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물론 유성룡이며 이항복 같은 영민하고 책임감 있는 관리에 이순신이며 권율이며 곽재우 같은 일선의 인력들의 역할이 컸지요. 그러나 양상을 봅시다. 평양성 탈환 이후, 개별 전투는 어쩌면 북경과 명 야전 사령관 사이의 ‘연락’에 따라 벌어지고 아퀴가 지어지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명과 일본의 줄다리기가 전쟁의 양상을 결정했지요. 거기 조선이 낄 자리가 없었어요. 정치외교의 연장으로서 전쟁. 임진왜란보다 더 잘 보여주는 전쟁도 없을 테지요.
『징비록』의 두 주연은 역시 류성룡과 이순신일 텐데요. 선생님께서 왕이라고 가정하고, 만약 두 인물 중 한 명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인물을 고르시겠습니까.
전쟁은 정치의 연장입니다. 이순신만으로도 안 되고, 유성룡만으로도 안 됩니다. 답변이 되겠습니까?
연구하신 전쟁사 중에서 선생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떤 사건인가요.
외구의 침략과 토벌, 여진족 토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역시 임진왜란입니다. 외세가 당사자를 무시하고 분단을 의논한 전쟁이니까요. 그런 가운데 또 하나, 선조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선조는 수도를 포기한 왕으로서, 왕자 광해군에게 전선 임시정부를 맡긴 왕으로서, 외국군에 애걸해 간신히 체모를 유지한 왕으로서, 각지에 전에 없던 군사력이 생겨난 상황 아래서 왕 노릇하는 왕으로서 열등감과 시기와 질투에 시달렸습니다. 선조는 좁은 의미의 정치, 곧 궁중암투며 정쟁의 장에서 자신의 병적인 측근 의심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관리와 장수는 난리를 타계해 보겠다고 바쁘게 움직이는데, 최고위는 정쟁에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체모를 유지하려 했지요. 북경과 한양과 남원 사이의 연락, 조정과 전선의 밀고 당기기, 한양과 대마도와 오사카, 북경과 대마도와 오사카 사이의 연락 등등 이 모든 것이 제 관심 안에 들어옵니다.
역사란 결국 현재와 연관성 속에서 의미가 두드러질 텐데요. 임진왜란과 지금, 우리는 임진왜란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백성은 7년 동안 지옥에서 살았습니다. 이 7년의 시작을 즈음해서 조선은 국제 정세에 둔감했습니다. 대비는 불철저했습니다. 7년이 지나고, 조선의 정치외교 역량과 군사력이 적을 내쫓았습니까?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체성 잃은 민족의 역사가 얼마나 비참한가, 이를 확인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또 역사 건망증을 앓다가 일본의 침략을 다시 겪었는가” 하는 질문을 품고 『징비록』을 거듭 읽어야 할 시점입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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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유성룡 저/김기택 역/임홍빈 해설/이부록 그림 | 알마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국방?군사?정치?외교?민사작전 등 모든 분야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대신 유성룡이 쓴 임진왜란 기록이다. 조선에서 간행된 이후 일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 새로이 간행했고, 중국 역시 임진왜란 전사의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찍이 영어판까지 나온 국제적으로 공인된 역사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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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