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훈, 자화상 안에는 ‘자기 직시의 용기’가 담겨있다
문광훈 충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심미주의 선언』을 출간을 기념해 독자들과 만났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시와 그림, 음악과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해석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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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에 담긴 자기 직시의 용기


지난 16일 저녁, 독자들과 만난 문광훈 교수는 오랫동안 자신이 사랑해 온 그림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그리움과 갈망의 궤적’이라 소개했다. 그는 공재 윤두서 선생의 자화상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공재 윤두서 선생의 자화상을 10여 년 전부터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예술론을 쓰게 되면 이 그림에 대한 철학이나 생각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관련 문헌을 찾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는 모티프나 양식 분석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는데요.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지만 저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에 녹아 있는 정신의 긴장들이나 내면의 풍경을 풀어내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재공행장(恭齋公行狀)’을 만났을 때 공재 선생의 삶에 대한 원칙들, 탐구의 원칙들, 사람과의 교재 방식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들이 보여주는 정신의 풍경들은 세상을 직시하고 응시하는 것들, 삶과의 정면대결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공재공행장’은 공재 선생의 아들인 낙서 윤덕희가 자신의 아버지를 기리며 기록한 것이다. 저자가 주목하듯 행장 안에는 공재 선생의 철학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를 통해 저자가 발견한 ‘삶과의 정면대결 의지’는 선생의 자화상에도 담겨있었다. “정면을 응시하는 공재 선생의 눈에 귀기가 서려있는데, 아무리 불운한 현실일지라도 굴하지 않고 관통하며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는 것. 문광훈 교수는 공재의 실제 삶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자화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결국, 자기 자신의 삶의 모습을 그리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주어진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 어떻게 형성시켜 가는가를 가장 단순화한 형태로 보여주는 게 자화상이라는 장르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의 핵심에는 자기 직시, 자기 응시가 있다는 생각으로 자화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이야기는 또 다른 형태의 자화상들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카라바조의 그림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과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로 그린 <최후의 심판>을 소재로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말했다.

 

“처음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봤을 때 아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모습을 골리앗의 얼굴 속에 그려 넣었거든요. 승자인 다윗이 아닌 패자인 골리앗의 얼굴을, 그것도 목이 잘린 자의 얼굴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마도 ‘나는 이 회화사의 패배자다’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겠죠. 그리고 다윗의 표정을 보면 연민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은 비록 나에게 졌지만 누구보다 이 패자에 대해서 깊은 연민과 공감을 느낀다’는 마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볼 때마다 자신을 패자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술사와 자기 삶의 역사에서 결국은 승자로서 남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실상을 미화하지 않고 직시했기 때문이죠. 여기에서 ‘자기 직시의 용기’를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직시의 용기란 내가 지금 삶의 어디 즈음에 와 있는가를 정확하게 투시하는 힘이죠. 자기 정직성의 힘이기도 합니다.”

 

문광훈 교수는 미켈란젤로 역시 ‘너무나 정직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카라바조가 그러하였듯,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에서 수난 받는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서 미켈란젤로의 얼굴은 성 바르톨로메오의 손에 들린 껍질만 남아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행복해지려면 불운을 연마해야 한다


『심미주의 선언』의 저자 강연회에서는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 대한 해석과도 만날 수 있었다. 문광훈 저자는 이태준과 백석의 작품 속에서 각각의 작가들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발견해 냈다. 그는 이태준 작가에 대해 “이태준 선생의 작품에는 학자나 선비의 향기가 있다”고 평가하는 한편 “작품 속 주인공이 별로 내색하지 않지만, 자신의 길을 올곧게 가려는 노력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했다. 문광훈 교수는 독자들에게 이태준 작가의 작품 「고독」 「수목」을 소개하기도 했다. 뒤이어 백석의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았다.

 

“시 「허준」을 보면 백석 선생이 우리의 삶을 “쓸쓸한 나들이”라고 생각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흰 바람벽이 있어」에 쓰인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라는 표현을 보면, 선생이 고결한 세계를 꿈꾸었다는 걸 알 수 있죠. 모든 고결한 세계는 사랑과 슬픔에 차 있습니다. 기쁨이나 행복이 아니고요.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는 건, 단점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로 그 사랑의 지속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죠. 그렇다면 행복을 위한 것은 슬픔과의 싸움입니다. 슬픔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의 훈련이고요. 그래서 저는 불운을 연마해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강연을 통해서 문광훈 교수는 ‘작자에 기댄 채 자기 길을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것은 곧 저자가 『심미주의 선언』을 집필한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인생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으로써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삶이란 주어진 생명의 경이로움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윤두서 선생이나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이태준 선생과 백석 선생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분들인데요. 이건 시대와 공간을 넘어선 사랑이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그리움을 소개해 드린 것입니다. 그 분들의 삶의 족적을 생각해 본다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놀라움을 깊게 향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은 정말 놀라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경이를 깊게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넓고 깊은 삶을 사는 방법임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심미주의 선언』에 담긴 다양한 작품들을 만남으로써 예술과 함께 걷는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작품부터 감상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심미주의 선언』이 이야기하듯 “좋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내면의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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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주의 선언 : 좋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문광훈 저 | 김영사
심미적 경험은 어떻게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하게 하는가? 시와 그림과 음악은 어떻게 인간의 삶을 더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심미주의적 삶의 기술을 탐색, 개인과 공동체, 지식인 집단과 사회문화 전반의 심미적 각성을 촉발한 문제작. 인문학의 가장 빛나는 사유인 ‘삶의 심미성’에 대한 새롭고도 놀라운 통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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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훈 #심미주의 선언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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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따라

2015.03.30

나를 들여다보고 나와 마주하고 직시한다는 것이 쉽지않아서 자화상안에는 자기 직시의 용기가 들어있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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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