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을 용기』 정답이 아닌 질문을 남기다
『미움 받을 용기』와의 만남은 당혹감에서 시작된다. 책의 제목을 보고 강한 이끌림을 느낄 때 ‘그동안 사랑받기 위해 몸부림치느라 많이 지쳤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이 감정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말랑말랑한 위로의 이야기를 기대했다가 냉철한 성찰의 이야기와 맞닥뜨리게 됨으로써, 기존의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주장들로 충격에 사로잡힘으로써, 거듭 놀라게 되는 것이다. 그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정답도 아니고 개운한 뒷맛도 아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따라 삶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귓전에 맴돌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앞으로, 정말, 나의 세계는 달라질까. 그럴 용기가 나에게 있을까. 책의 감수를 맡은 심리학자 김정운은 바로 이 점이 『미움 받을 용기』의 미덕이라 말한다. “책을 덮고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여타의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라는 것.
“세계는 아주 단순하며, 인간은 오늘이라도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에게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온다. 그는 출신이나 학력, 외모에 관해서 심한 열등감을 느끼며 다른 이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청년에게 세계는 “혼돈과 모순으로 가득한 곳”이었고, 그의 눈에 비친 철학자는 그저 ‘괴짜’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지론을 철회하도록 할 생각”이라며 호기롭게 대화를 청해 온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세상과 삶과 인간관계를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 긴 시간 대화를 이어갔고, 그 과정을 『미움 받을 용기』안에 기록해 놓았다.
철학자는 자신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그리스 철학과 아들러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나 융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까닭에 아들러의 이론은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특히 “인간은 과거의 원인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주장(목적론)은 프로이트의 주장(원인론)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어서,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청년이 철학자를 향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아, 환경도 관계없어,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고, 네가 불행한 것도 다 네 탓이야”하는 것 같아서 단죄당하는 느낌이라고요!”하고 외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물론 철학자는 “오히려 아들러의 목적론은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라고 말해주는 거지”라고 오해를 바로잡지만, 쉽사리 수긍할 수 없는 주장들은 계속 이어진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에게 용서하기 힘든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를 싫어한다는 목적을 세운 후에 결점을 찾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거나 ‘타인의 기대는 만족시킬 필요가 없으며 궁극적으로 ‘나’를 생각하며 살면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듯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인 시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으로의 삶은 과거의 상처와 관계없이 달라질 수 있다고,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그러므로 세계는 단순한 곳이라고, 믿어도 되는 걸까. 심리학자 김정운이 예단한 대로 『미움 받을 용기』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남겼다. 그렇기에 두 명의 작가-철학자와 청년의 실제 모델인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아들러조차도 간과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며 반론을 제기하려는 마음은 책 속의 청년과 같았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상대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아들러의 시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만난 장애물들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조언을 구한 것이었다. 두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명쾌하거나 위로가 되거나 더 깊은 성찰을 요했다. 『미움 받을 용기』가 그러했듯이.
고가 후미타케 “트라우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믿기 힘들었다”
『미움 받을 용기』가 한국의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시미 이치로 : 나라를 넘어서, 그리고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한국에서도 이렇게 수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고가 후미타케 :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렇게 한국에 아들러가 소개될 수 있게 되어서 굉장히 기쁩니다.
이렇듯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움 받을 용기』라는 제목에서부터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아닐까요?
기시미 이치로 : 『미움 받을 용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 어쩌면 여러분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내용들을 조금 더 분명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내 안에 무언가 막혀있던 것이 뚫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섰기 때문에 인기를 얻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의 제목은 미움을 받고 계속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움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나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타인에 맞춰서 살아가는 삶을 사는 한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가 후미타케 : 일본에서도 책의 제목이 굉장히 충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목을 보고 놀랐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독자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움 받을 용기』는 철학자와 청년이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시미 이치로 :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를 그대로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차원에서 이와 같은 구성을 생각했습니다.
고가 후미타케 :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 스스로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 속의 청년처럼 실제로 기시미 선생님 댁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질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을 그대로 책 안에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에 실린 대화는 실제 두 작가님 사이에 오간 이야기와 얼마나 닮아 있나요?
고가 후미타케 : 지금까지 철학과 심리학 관련 책들을 많이 읽어왔는데요. 잘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프로이트 책을 읽을 때 재미있다고 느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아들러라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 과정에서 기시미 선생님을 만나 뵙고 여러 가지 질문을 많이 해왔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 고가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가진 의문에 대해서 타협 없이 질문을 하셨고요. 때로는 날카롭다고 느껴질 정도여서 제가 곤란했던 적도 있었습니다(웃음). 제가 강의를 했다기보다는 우리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가 후미타케 : 물론 기시미 선생님께서는 저보다 연장자이시고 어떻게 보면 스승과 같은 존재이시지만, 한 사람의 친구로서 대등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고가 후미타케 작가님께서 갖고 계셨던 굵직한 질문들은 무엇이었나요?
고가 후미타케 : 저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읽고 자란 세대입니다. (프로이트와 달리) 아들러는 트라우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가장 믿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가장 주된 의문 사항이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원인론’이 아들러의 ‘목적론’보다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기시미 이치로 : 자신의 책임을 더 애매하게 만드는 데 유효한 도구로 (프로이트의 이론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탓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라고 생각하기가 더 쉬웠던 것이죠.
고가 후미타케 작가님께서는 아들러 심리학을 만나기 이전에 프로이트파나 융파의 이론이 왠지 불편했다고 밝히셨습니다.
고가 후미타케 :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은 과거 혹은 어린 시절에 발생한 일 자체를 중요시하고 있는데요. 그 부분에서 저는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그 영향으로 나머지 인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되는 건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습니다. 동시에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잖아’라고 생각돼서 마치 손발이 묶여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딘가에 또 다른 해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미움 받을 용기』의 청년처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다른 이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는 지극히 평범한 것일까요?
고가 후미타케 : 저 역시 책 속의 청년처럼 10대와 20대 때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썼습니다.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아들러의 사상은 그 방법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시미 이치로 : 어렸을 때 저는 키가 작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쓸 데 없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더군요. 제게는 그 말이 참 힘이 됐습니다. 키가 작다는 것 자체가 나의 존재에 대한 평가나 가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굉장히 큰 힘을 얻게 됐고 그때부터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철학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결심을 한 후에 그 구실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관계를 끝내고 싶다고 결심하게 된 원인은 상대의 과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시미 이치로 : 만약 어떤 사람에게 호의를 느낀다면 그 사람이 잘못을 해도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반면 그 사람을 싫어하면 나쁘게 생각하게 됩니다. 내게는 자상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믿음직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배적인 사람으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사람은 이렇다’라고 결심을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심에 따라서 구실을 찾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고가 후미타케 : 남녀의 관계를 보더라도 연애 초기에는 컵의 물을 엎질러도 귀엽다고 받아들여지는데, 시간이 흐르면 같은 행동이라도 감정이 다르게 느껴지고 오히려 화를 낼 수가 있습니다.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떤 관계를 갖고 싶은지에 따라서 감정이 따라온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기시미 이치로 “존재 가치 느끼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단언한 아들러는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함으로써 과제를 구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움 받을 용기』에서 철학자는 바로 이 개념-‘과제의 분리’를 이해하게 되면 모든 인간관계의 카드를 자신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변하는 것은 자신일 뿐, 상대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지라도 말이다. 상호작용 없이도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좀처럼 의문이 가시지 않는 부분은 또 있었다. 아들러는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고 철학자는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엇’을 기여했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존재의 차원에서 생각했을 때 모든 사람은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라도 듣고 싶은 말이었고 믿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모두가 아는 바였다. ‘과연 나는 존재만으로 가치 있는 사람인가’라고 자문하는 순간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그때마다 머뭇거리게 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는 까닭이다. 이럴 때 우리가 떠올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움 받는 용기』가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는 “인생이란 지금 이 찰나를 뱅글뱅글 춤추듯이 사는, 찰나의 연속이라고. 그러다 문득 주위를 돌아봤을 때 “여기까지 왔다니!” 하고 깨닫게 될 걸세”라고 조언한다. 춤춘 결과 어딘가에 도달은 하겠지만,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그의 말을 믿고 순간순간 춤추며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발목을 잡는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길이라 하더라도 ‘지금’ 몸이 이끄는 대로 향하면 그만인 걸까. 철학자는 “여행객들이 북극성에 의지해 길을 나서듯 우리 인생에도 ‘길잡이 별’이 필요”하다고 “‘타인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만 놓치지 않는다면 헤맬 일도 없고 뭘 해도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걸까.
『미움 받을 용기』에서 철학자는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데요. 모두가 자신이 바라는 모습대로 살고 타인의 기대는 개의치 않는다면, 공동체에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미시 이치로 : 내 삶은 타인의 삶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원리는 타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내 만족을 위해서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죠. 이런 전제 하에 같이 살아간다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나씩 조정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공동체에 무엇이 유익한가’를 생각할 수도 있게 되고요. 그렇게 된다면 우려하시는 바와 같이 많은 충돌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고가 후미타케 : 아들러는 여행자가 여행을 할 때 북극성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결국 자유를 행사하려고 할 때 별을 보고 자유롭게 따라가는 것이죠. 『미움 받을 용기』에서는 ‘길잡이 별’로 표현되었는데요. 모두가 ‘길잡이 별’을 바라보고 타자 공헌을 위해서 걸어가게 된다면, 스스로의 자유도 누릴 뿐만 아니라 사회의 조화를 이루면서도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란 타인의 평가를 괘념치 않는 상태일까요?
기시미 이치로 : 타인의 평가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공헌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정 욕구는 자연히 필요 없게 됩니다.
고가 후미타케 : 예를 들어서 부모의 말에 순종하면서 산다거나 회사를 위해서 산다고 했을 때, 당장 내일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수도 있고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후의 인생은 자기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데요.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할 때가 반드시 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내 발로 내 삶을 걸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변한다면 상대가 변하지 않더라도 관계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기시미 이치로 : 다른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바뀜으로 인해서 타인이 바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변화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가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고요. 대부분의 경우 (내가 바뀌면) 타인도 많이 바뀌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고가 후미타케 :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매우 권위적이고 지배적이면서 걸핏하면 화를 내는 상사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들러 심리학을 이해하게 되면 그 상사가 왜 그런 행동을 취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열등감 때문입니다. 그는 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늘 화내고 다른 부분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속임수를 부리는 건데요.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서 그 부분을 간파하게 된다면 더 이상 그의 행동을 신경 쓰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기시미 이치로 :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출발점에서 시작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동체 감각이나 공헌감을 가지는 데 동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태어나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기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타자 공헌에 대한 감각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껴집니다. 그것이 출발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는데 굉장히 성적이 우수해요. 그러다가 성적이 떨어지게 되면 갑자기 돌변해서 ‘그럼 난 나쁘게 살래’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잘났다 못났다의 차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기의 모습을 수용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됩니다.
고가 후미타케 : 만약 당신이 내일 세상을 떠난다면 당신을 위해서 슬퍼해줄 사람, 당신이 없음으로 인해서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신의 존재 자체가 그들을 위해 공헌하고 있다는 것이죠. 죽음을 맞았을 때 단 한 명이라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사람이 있는 한,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미움 받을 용기』는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로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시미 이치로 : 만약 그 도착점이 자신이 생각했던 곳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거기에서부터 다시 또 다른 ‘길잡이 별’을 보고 걸어가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불안한 분들은 목표를 세워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 목표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 탓이야, 나 때문에 잘못됐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목표를 다시 새롭게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고가 후미타케 : 목표만을 생각하는 인생은 내비게이션 화면만 바라보고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은 (내비게이션 화면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져 있는 길인 것이죠.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길을 보지 않고 내비게이션 화면만 보고 간다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말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의 길을 보다가, 내비게이션에서는 직진이라고 얘기해도 ‘오른쪽으로 가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됩니다. 내비게이션 화면이 아닌 내 앞에 펼쳐진 길을 바라보고 걷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움 받을 용기』는 정답을 남기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반갑다. 책 속에서 청년과 철학자가 주고받은 질문이 책 밖의 나에게 안착한다는 것이 고맙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의 그늘에서 자유로워질 것이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안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될 것이며, 매 순간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라고 여기면서, 춤을 추듯 단순하게 삶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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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공저/전경아 역/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
그런데 우리는 모두 변화를 원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삶,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 지금보다 더 성공적인 삶. 하지만 우리는 쉽게 핑계를 대고, 쉽게 포기한다.용기’가 필요하다. 자유로워질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원하는 당신,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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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서유당
2015.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