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따라고 놀리지 말라!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첫사랑 이야기의 시작이 그렇듯이 화창하고 맑은 오후에 ‘우연히’ <모모>를 발견했다. 먼 이국의 특이하게 생긴 건물들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누더기 옷을 입은 아이의 뒷모습이 표지의 전부였지만 나는 모든 첫사랑 이야기의 시작이 그렇듯이 ‘운명적으로’ 끌리고 말았다.
글ㆍ사진 전건우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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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녀, 모모


『모모』가 우리나라에 번역된 게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초등학교 때 읽었다. 아마 2학년 때라고 기억하는데, 그 시절의 나는 한글을 거의 완벽하게 깨우쳐(그렇다. 나는 그때까지도 받아쓰기를 하면 곧잘 틀리곤 했다!) 한창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부모님께서도 독서광이셨기에 단칸 셋방 우리 집에는 다른 물건은 몰라도 책만은 차고 넘쳤다. 나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권장 연령 따위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피비린내 가득한 추리소설을 독파했는가 하면 책장 깊숙이 숨겨져 있던 ‘사드 후작’의 은밀한 서적 몇 권도 섭렵했다. 대중소설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아마 그 시절에 정립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첫사랑 이야기의 시작이 그렇듯이 화창하고 맑은 오후에 ‘우연히’ 『모모』를 발견했다. 『모모』는 방안 한 구석에 층층이 쌓아 둔 책 더미 속에 있었다. 먼 이국의 특이하게 생긴 건물들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누더기 옷을 입은 아이의 뒷모습이 표지의 전부였지만 나는 모든 첫사랑 이야기의 시작이 그렇듯이 ‘운명적으로’ 끌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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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원형극장 옛터에 나타난 신비한 소녀 모모와 그녀를 둘러싼 따뜻한 이웃들, 청소부 베포 그리고 여행안내원 기기의 이야기는 나를 순식간에 매료시켰다. 게다가 의미심장한 ‘회색 도당’(내가 읽었던 번역본에서는 아마 이 단어를 썼던 걸로 기억한다. 최근에 비룡소에서 나온 판본에는 ‘회색 신사’라고 변역되어 있다)의 등장과 5분 뒤를 알 수 있는 거북이 카시오페아까지, 연이어 펼쳐지는 환상적인 모험 덕분에 나는 그 밤을 꼬박 새서 『모모』를 다 읽었다.


그러고는 곧 빨간 머리 소녀 모모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실제로 몇 번인가 모모가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 나이 때에 어울릴 법한 지극히 아름답고 순수한 꿈이었다. 모모와 함께 수많은 친구들과 원형극장 터에서 노는 것이다. 책의 내용처럼 거대한 배에 탄 선원이 되기도 했다가 모모 공주님을 지키는 기사가 되기도 했다. 모모는 현실 속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 어린 나이에도 절절하게 소망했다.


내가 모르는 멀고 먼 나라 어딘가의 가난한 동네에서 모모가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회색 도망들이 훔쳐간 시간을 마음껏 사용하며 즐겁게 살아가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모모』에는 시간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메시지들이 가득한데 신기하게도 무척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인 미하엘 엔데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딱 맞춰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모모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모모』를 읽은 이후로 독서의 진짜 재미에 눈을 떴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틈만 나면 『모모』를 읽는다. 같은 저자의 『끝없는 이야기』 또한 훌륭한 작품이지만 나는 아무래도 『모모』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아무렴, 모모는 내 진짜 첫사랑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한 드라마에서 소개된 후 『모모』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나는 좀 질투가 났다. 나만의 『모모』이기를 바랐는데 남들에게 뺏긴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읽고 들어야 할 때


‘책따’라는 게 있단다. 며칠 전 신문기사에 나온 내용이다. 학교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은 ‘책따’라는 이름으로 놀림을 당한다는데, 그 기사를 읽는 동안 기분이 참 묘했다.


세월의 흐름이야 사람이 막을 수 없고, 그 흐름에 따라 변하는 세상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었는데 책 읽는 게 촌스럽고 우스운 일이 되어버렸다는 데에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하긴 책 말고도 더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은가. 그리 생각을 하면서도 못내 섭섭한 건 사실이다. 그건 소설가로서의 섭섭함이요 애서가로서의 섭섭함이다.


사실 누군가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 묻는다면 나 역시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사실이니까. 중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그리고 대학생이나 직장인도 너무나 바쁘다. 진득하게 앉아 책을 읽는다는 건, 그래 어떻게 보자면 사치다. 계속 치열하게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더 바쁘게, 더 빠르게, 더 가열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 세상 속에서 독서는 참으로 게으르고 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아주 오래 전, 모모네 마을을 찾아왔던 회색 도당들이 이미 설파한 것들이다. 손님과 잡담하는 시간을 줄인다면 얼마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지 아시오? 친구들과 만나고 노는 시간을 줄인다면, 책 읽는 시간을 줄인다면, 생각하는 시간을 줄인다면…….


그렇게 아끼고 아낀 시간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답은 『모모』에 나와 있다.


때로는 게을러질 필요도 있고 촌스러운 일에 몰두할 필요도 있다. 영어 단어를 외는 것도 중요하고 취업 준비도 중요하지만 책 한 권을 들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시간도, 삶에는 분명 필요하다. 딱히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냥 즐기면 된다. 무언가를 읽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깨닫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모모는 스스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소녀였다. 그녀는 그 즐거움을 ‘듣는 일’에서 발견했다. 모모의 진정한 재능은 ‘진심을 다해’ 듣는 것이었고, 그 재능이야말로 참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허비가 회색 도당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어쩌면 독서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아닐까? 다른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 그게 바로 독서의 본질이지 싶다.


말하는 이는 많지만 듣는 이는 점점 줄어드는 요즘이다. 누구나 주장을 하지만 모두 벽에 대고 이야기한다. 일방적으로 떠든다. 주장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듣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급기야 ‘책따’라는 현상이 생기는 것도 작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독서를 합시다!


그 옛날 불조심 포스터의 식상한 표어처럼 그리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건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책따’라고 놀리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촌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독서도 즐겁다고, 시간이 제법 걸리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제법 매력적이라고.


그리고 무얼 읽어야 할지 막막하다면 일단 『모모』로 시작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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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미하엘 엔데 저/한미희 역 | 비룡소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빼앗아가는 회색 신사집단, 시간을 저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강팍해지고 피폐해지는 사람들, 그리고 모모. 이 책은 아이들에게는 그들의 마음으로 읽히고, 어른들에게는 또 그 나름의 감동으로 읽히는 아주 특별한 동화이다. 시간은 삶이고 삶은 우리 마음 속에 깃들어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나면 삶이 보다 더 풍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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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대중소설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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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따라

2015.03.23

모모와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기억이고 친구들과 돌려가면서 읽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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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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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

전 세계 독자에게 사랑받는 독일 작가이다. 1960년에 첫 작품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를 출간하고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70년에는 『모모』를, 1979년에는 『끝없는 이야기』를 출간하면서 세계 문학계와 청소년들 사이에 미하엘 엔데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1929년 남부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텐에서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드가 엔데와 역시 화가인 루이제 바르톨로메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나치 정부로부터 예술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아 가족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모의 예술가적 기질은 엔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글이면 글, 그림이면 그림, 연극 활동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엔데의 재능은 그림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학, 연금술, 신화에도 두루 정통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특히 컸다. 2차 세계대전 즈음, 발도로프 스쿨에서 공부하다 아버지에게 징집영장이 발부되자 학업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나치의 눈을 피해 도망했다. 전쟁 후 뮌헨의 오토 팔켄베르크 드라마 학교에서 잠시동안 공부를 더 하고 나서는 곧바로 진짜 인생이 있는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연극배우, 연극평론가, 연극기획자로 활동했다. 그는 1960년에 첫 작품 『기관차 대여행』으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는데, 그 후 1970년에는 『모모』를, 1979년에는 『끝없는 이야기』를 출간함으로써 세계 문학계와 청소년들 사이에 미하엘 엔데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꿈꾸는 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하엘 엔데의 영원한 걸작 『모모』에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어린이에겐 꿈을, 어른에겐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주는 행복한 이야기로, 바쁘기 짝이 없고, 마음놓고 쉴 수 조차 없는 이 시대의 어른들에게 미하엘 엔데는 ‘시간은 삶이고, 삶은 우리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망각의 정원』은 미하엘 엔데의 유고작으로 그의 모든 상상력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집과 거리 심지어 사람들의 모습마저 모두 똑같고, 꿈꾸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도시 노름 시에 사는 소피헨은 꿈을 꿀 줄 알고 자주 꿈꾸는 것을 즐긴다. 어느 날 꿈을 꾸다 길을 잃어버린 소피헨이 망각의 정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지만 똑같은 모양의 집에서 사는 똑같은 사람들이 사는 노름 시의 모습을 통해 시간과 물질과 돈의 노예가 되어 바쁘게 살아가며 꿈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망각의 정원이라는 판타지의 세계를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우리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그 외에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마법의 수프』『렝켄의 비밀』『보름달의 전설』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철학이 있는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어, 즐거운 여행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1995년 미하엘 엔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의 언론들은 그를 단지 작가로서가 아니라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비판한 철학가'로 재평가하며 엔데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