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부>는 결국 시칠리아에 대한 이야기다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이자 『클래식 수첩』 『365일 유럽 클래식 여행』 『스마트 클래식 100』의 저자인 김성현이 새로운 클래식 이야기 『시네마 클래식』으로 돌아왔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책에는 영화와 클래식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 <귀여운 여인>과 「라 트라비아타」, <설국열차>와 「골드베르크 변주곡」, <배트맨 비긴스>와 「메피스토펠레」 등 서른 두 편의 영화가 클래식과 만난 순간을 포착했다. “그 영화에 그 클래식이 쓰인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들의 물음에 답하고자 예스24는 예술의 전당과 함께하는 ‘책 읽는 풍경’의 주인공으로 김성현 기자를 초대했다. 지난 3일 진행된 강연회에서 독자들은 영화와 클래식의 절묘한 어우러짐을 체험했다.
김성현 기자가 독자들을 위해 준비한 첫 번째 영화는 <대부> 3편이었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야기에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선택했다.
“마스카니가 쓴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한 시간 남짓 상연되는 단막 오페라로, 당시 콩쿠르에서 입상한 작품입니다. 마스카니는 많은 오페라를 썼지만 이 작품만큼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은 없었습니다. 이 작품의 경향을 ‘베리스모 오페라’ 즉 사실주의 오페라라고 하는데요. 그 전까지의 오페라가 신화 속의 이야기나 남녀 사이의 낭만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칠리아를 무대로 벌어지는 핏빛 애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사이에 이탈리아 오페라를 중심으로 생겨났습니다. 오페라가 신화나 낭만주의 연애담에서 벗어나 서민들의 세계 속으로 가야 한다고 주창한 것이죠.”
독자들은 프란코 제피렐리가 연출하고 플라시도 도밍고가 출연한 오페라 영상을 감상했다. 영상의 무대가 된 시칠리아는 <대부> 시리즈에서 상징적 의미를 띄는 공간이기도 하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쓰인 곡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성난 황소>라는 작품에도 삽입됐었죠. 그런데 코폴라 감독은 <대부> 3편에서 왜 이 곡을 썼을까요. 영화에서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분)는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끝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오페라 가수가 됩니다. 시칠리아의 데뷔 무대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부르죠. 시칠리아는 마이클의 아버지인 비토 콜레오네(말론 브란도)의 고향입니다. <대부> 1편에서 마이클이 아버지의 복수를 한 후 도피하는 곳도 시칠리아죠. 코폴라 감독은 시칠리아에 대한 이야기로 시리즈를 완결 짓고 싶었던 것입니다. 역시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사용함으로써 ‘이것은 시칠리아에 대한 이야기’라고 못 박고 싶었던 거죠.”
저자가 들려주는 명쾌한 해석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로 이어졌다. 감독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포스럽고 불안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3번 4악장인 「파사칼리아」를 활용했다. 이에 대한 김성현 기자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팝 음악을 잘 쓰는 감독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클래식과 현대음악을 썼다. 음악적 반경이 넓어진 것이다”라고 평했다. <셔터 아일랜드>를 두고 “1945년 이후 미국의 반공 냉전 분위기를 구름처럼 깔아서 이 작품이 공포물인지 추리물인지 시대물인지 헷갈린다. 그 점이 <셔터 아일랜드>의 매력이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와 함께 감상한 영화의 초반부는 「파사칼리아」에 힘입어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쌓아갔다.
“「파사칼리아」는 원래 바로크 시대의 스페인 무곡입니다. 폴란드의 현대음악 작곡가인 펜데레츠키는 자신의 음악을 계속 고치고 다듬고 늘리는 걸로 유명한데 「파사칼리아」도 원래는 한 악장짜리 곡이었습니다. 나중에 교향곡 3번 4악장에 집어넣은 것이죠. 스콜세지 감독은 정신병원과 폭풍우가 있는 섬에 「파사칼리아」를 결합시켜서 <셔터 아일랜드>에서 또 다른 의미를 줍니다. 이 음악은 현대 음악의 사운드 트랙입니다. 모든 복잡하고 모호하고 난해한 음악들을 다 집어넣어 놓았죠. 아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에 현대 음악을 이렇게 과감하게 쓴 작품도 없을 것입니다.”
강연회의 세 번째 초대 손님은 <빌리 엘리어트>와 매슈 본의 「백조의 호수」였다.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시대적 상황에 주목하면서 인물들이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사양산업인 탄광에 대한 보호 정책을 저버리는 영국 정부와 대립하고, 아들은 권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아버지와 또다시 갈등한다.”
“탄광노조의 노조원인 아버지는 계급이라는 잣대에서 보면 정부에게 약자이지만 집에서 보면 성 역할에 있어서 강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이러한 남성들을 향한 고정관념에서 빌리는 일탈하고 싶어 합니다. 성이라는 코드에서 보면 빌리는 약자인 것이죠. <빌리 엘리어트>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아버지가 정부에게 짓밟히면서도 아들의 미래를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김성현 기자는 『시네마 클래식』에서 <빌리 엘리어트>가 “삼중으로 ‘동성애 코드’를 숨겨놓은 셈”이라고 분석했다. 빌리의 소꿉친구인 마이클이 동성애자가 된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빌리의 성정체성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첫 번째 장막이라면, 작품의 마지막에서 무대 위의 빌리가 연기하는 ‘남자 백조’는 두 번째 장막이다.
매슈 본의 발레와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숨은 공통점이 있다면, 여성의 역할이 지극히 축소되어 있다는 점이다. 매슈 본의 발레에서 여성 백조는 모두 남성으로 바뀌었다. 영화에서 빌리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소년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발레 선생님인 윌킨슨 부인(줄리 월터스 분) 정도를 제외한다면 영화는 온전히 ‘남성의 드라마’다. (『시네마 클래식』 109쪽)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동성애 코드를 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차이코프스키를 지목한다. 영화에 마지막 장면에서 빌리가 춤을 출 때 무대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흐른다. 차이코프스키는 콜레라에 감염되어 죽었다고 전해지지만 한편에서는 그가 동성애 성향으로 괴로워한 나머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김성현 기자는 <빌리 엘리어트>에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삽입된 것은 동성애 코드를 숨겨놓기 위함이라고 해석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또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 작품도 있다. 바로 <블랙 스완>이다. 착한 백조(화이트 스완)인 ‘오데트’와 나쁜 백조(블랙 스완)인 ‘오딜’에 주목한 이 영화를 바라보며 저자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떠올렸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지극히 다른 면이 동일한 사람의 서로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에서도 두 여인 ‘오데트’와 ‘오딜’은 서로 다른 캐릭터이지만 하나의 사람이 지닌 두 가지 측면일 수 있다는 해석의 지점이 있습니다. <블랙 스완>은 바로 거기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백조’가 온화하고 지고지순한 존재라면, ‘흑조’는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비이성적인 광기다. 두 개의 자아가 실은 하나의 자아에 깃든 서로 다른 속성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흔들리는 대상을 끊임없이 근접 촬영하는 영화의 핸드헬드 카메라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발레리나의 연습 장면과 일상 습관 같은 디테일을 섬세하게 담아낸 영상은 고전 예술과 현대의 스릴러 영화를 효과적으로 이어주는 장치가 된다. (『시네마 클래식』 237쪽)
‘책 읽는 풍경’ 강연회를 통해 김성현 기자는 “『시네마 클래식』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았던 영화 중에 강렬한 감흥이 있었던 작품에 대해 쓴 책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책에 실린 서른 두 편의 이야기가 결국은 취향에 대한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취향 앞에서 정직하기로 했다”는 다짐을 전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시네마 클래식』에 담긴 해석에는 저자만의 취향이 투영되어 있지만, 덕분에 독자들은 영화를 감상하는 색다른 방법을 발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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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클래식 : 32편 영화 속에서 만나는 클래식 선율김성현 저 | 아트북스
32편의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의 스토리와 인상적인 장면 덕분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또 반대로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는 클래식 음악 덕분에 영화의 주제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제 클래식 음악은 더 이상 지루하거나 어려운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게 쓰인 바로 그 음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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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서유당
2015.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