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적인 세계? 비관적인 세계?
인간이란 종은 자연스럽게 미래를 생각한다며 운을 띄운 물뚝심송은 미래에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게 될지 한번 생각해보자고 했다. 먼저, 그는 영화 <엘리시움>을 들어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대부분 인간은 오염된 지상에서 로봇의 감시 하에 위험한 강제 노동에 종사하고, 일부 선택된 인간만이 하늘에 떠 있는 공간에서 극도로 안락한 삶을 즐기는 미래. 이 상황은 지상에 사는 인간에게는 비관적이지만, 선택 받은 인간들에게는 낙관적인 세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건 낙관적인 세계인가, 비관적인 세계인가. 이 구분을 위해 물뚝심송은 롤즈의 무지의 장막 개념을 끌어왔다. 어떤 사회를 평가할 때, 그 사회가 좋은 상태인지 아닌지를 무지의 장막 뒤에서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저 사회에서 어떤 계급에 속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회를 평가하자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사회를 보면, 사람들은 당연히 왕정보다는 민주공화정을 고르게 된다. 내가 어떤 위치에 놓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등한 상황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엘리시움>에 등장하는 사회는 비관적이다. 물뚝심송은 여기까지만 봐도 우리 사회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생각이 짧은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있기 때문에 늘 상층부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세상은 변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는 워렌 버핏 같은 부자들이 앞장서서 세금을 더 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합리적인 행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엘리시움과 같은 미래가 디스토피아라면, 그 반대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물뚝심송은 흔히 SF에 등장하는 유토피아를 이야기했다. 모든 인간이 극도로 발전된 정신문명을 누리며, 지속가능한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중 우리사회의 미래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는 이렇게 질문을 던지며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했다.
미래를 결정하는 키워드: 노동과 기술
물뚝심송은 극단적으로 배치되는 두 가지 미래 중 우리의 행보를 결정하게 될 키워드는 바로 노동과 기술이라고 말했다. 첫 시간에 기술의 발전이 노동환경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라며, 러다이트 운동부터 사민주의 붕괴 가능성까지 언급했던 그는 이번에는 공유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끌고 왔다.
그는 만약 공유경제가 활성화되면 우리의 노동환경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여태까지는 자본이 최전선에 서서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공유경제 아래서는 자본이 뒤로 숨어 버리고, 노동자들끼리 생존을 건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생산의 자동화와 함께 일자리는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고, 2차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자본이 갈 곳이 없다. 그러다 찾은 돌파구가 자투리 노동과 자투리 자본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기술, 바로 공유경제다.
그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로 대리운전을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짜투리 노동력이 투입된 시장. 그런데 대리운전 업계에서는 각자 전화번호를 만들어 수수료 따먹기 싸움을 하고 있으며, 실제 노동력을 제공하는 기사들은 수입의 반 이상을 경비로 지출하는 착취구조가 형성되고 말았다. 그 안에서 단 하나의 승자는 플사, 즉 프로그램 제공 업체뿐이다. 소비자에게도, 노동자에게도 잘 보이지 않는 이 플사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수익의 30%이상을 가져간다. 서버 몇 대와 앱으로 말이다.
공유경제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는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는 우버나 에어 비앤비 같은 것을 언급하며 이들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결국 돈을 버는 건 자본이 될 거라 말했다. 공유경제가 우리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물뚝심송이 내놓은 전망은 비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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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버에 참여한 기사의 예를 들었다. 이전에 그는 회사 택시 기사였을지도 모른다. 회사에 속해 회사가 제공한 택시를 이용해 영업을 하고 그 수익을 회사에 준 다음,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우버에 참여하면 월급 같은 것은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자신과 자신의 차를 눈에 잘 띄게 포장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생계유지가 된다. 그러다보면 가격경쟁이 벌어지면서 노동환경은 더욱 비참해진다. 실제로 현재 대리기사업계에서 벌어지는 일과 같은 셈이다. 인위적 합의에 의한 통제가 없다면, 시장은 극단적인 노동착취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비관적인 미래를 그려보던 물뚝심송은 곧 여기에도 충분히 가능한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걱정하는 노동시장의 모습은 우리 인류가 이미 오래 전에 경험한 것이라는 데서 희망을 걸었다. 원시 정글이나 초기 부족국가 형태, 노예제 사회. 그 기나긴 역사를 지내오다가 프랑스 혁명을 통해 공화정을 시작했고, 왕권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 온 민주공화국이 자본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다시 왕정 시대의 계층구조로 복귀하는 추세를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가 내린 답은 결국 다시 프랑스 혁명 같은 것이 발생하면서 자본의 권력을 다수의 힘으로 통제하는 사회로 복귀할 거라는 것이었다. 물뚝심송은 결국 엘리시움 같은 사회는 만들어지지 못할 거라 말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타협을 이루어낼 거라면서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욕구의 분출이 기존 권력과 충돌하는 과정이니 안정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극단적인 과거 왕정으로는 회귀하지 않이다. 물뚝심송은 결국 낙관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한 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인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 라는 성경 구절을 덧붙였다.
공유경제, 긍정적 미래를 꿈꾸다
그렇다면 공유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없는 것일까? 그는 여기에도 충분히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달앱을 예로 들었다. 계약이 체결될 때마다 수수료를 징수하는 이 배달앱은 그대로 내버려두면, 플랫폼을 보유한 회사에게 모든 자영업자가 수수료를 뜯기는 방식이 된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인 활동으로 이 플랫폼을 대체할 수도 있고, 자영업자들의 모임에서 배달앱과 유사한 플랫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기술의 발전이 가진 양면성은 바로 이런 곳에 있다. 고도로 발전된 자본들만 플랫폼을 건설할 수 있었던 시대에서 이제는 대학생들도 자체적으로 배달앱을 만들어 내고 지역 소비자를 규합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지자체가 할 수 도 있고, 지역시민운동단체가 할 수도 있다. 자발적인 플랫폼이 생성될 정도의 기술이 충분히 발전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거대 자본이 가져간 수수료 수익은 지역의 공익 발전을 위한 재원이 될 수 있다. 한 지역 배달음식점들이 모두 모여 이런 플랫폼을 만들고, 지역 주민들이 그걸 이용해준다면 거기서 발생한 수수료로 지역 노인 복지에 투자한다거나 아동복지를 위한 시설을 늘릴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발적인 플랫폼을 만들 정도로 현명하고, 공동작업을 할만큼 뭉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뚝심송은 이에 대해 현대적인 민주 공화국 시민들이 해야할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고종석 선생이 자신에게 ‘제너럴리스트’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다소 쑥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현대 사회 시민의 덕목은 어쩌면 사회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 대해 고루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제너럴리스트인지 모른다.
결국, 공화국 시민들이 모두 제너럴리스트가 되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꽤 낙관적이라는 거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가치관에 의해 결론을 내릴 줄 알고, 그 결론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나갈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면 충분히 자본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발적인 플랫폼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유경제가 가동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시도들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자본이 글로벌하게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진보중이라면 시민들의 제너럴리즘도 동시에 발전하고 있다.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언제나 소비자의 선택이기 때문에 충분히 많은 수의 소비자가 제너럴리스트가 되어 어떤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이해한다면, 자본 역시 그들의 기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뚝심송은 결국은 우리 모두, 여기 모인 모두를 포함하는 소비자이자 유권자이자 공화국 시민인 우리가 승리하게 될 거라 목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힘있게 말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이렇게 강연을 마친 그는 돌이켜 보니 크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말로 입을 뗐다. 맥락이나 가치관은 결국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게 사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는 그는 한 가지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그는 2000년 노무현이 부산에 출마했다 떨어진 16대 총선 당시,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자신의 복잡한 마음에 대해 그을 쓴 신기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물뚝심송은 이때 중요한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나 혼자 고민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와 똑같은 고민을, 분노를, 울분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전국에 이렇게 많았다니. 사람들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던 뿌리 깊은 고독과 절망감을 공유할 수 있는,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을 보고 힘을 낼 수 있었다. 87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 중요하다.
물뚝 심송은 여덟 번의 강의동안 이 분야도 망가졌고, 저 분야도 망가졌고, 마땅한 대안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고, 해결 역시 쉽지 않은 건 사실이라 했다. 사회에 대해 알면 알수록 힘이 빠지고, 무관심해지고 시니컬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 있으면 버틸 수 있다. 여기 이 세상에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는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존재를 서로 알게 되면 그 존재로부터 힘을 얻고, 또 그 존재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 말했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스스로가 이렇게 소중한 존재를 점을 잊지 말고 챙겨가기를 권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물뚝심송과 함께한 여덟 번의 긴 여정은 대한민국 전반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의 말을 되새겨보면, 이 강연은 현대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이 갖춰야할 기본소양을 위한 강좌였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그가 전해준 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이 우리가 이 막막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그 말을 기억하며 우리가 앞으로 만날 수많은 난관들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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