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공연시장은 조금 어수선합니다. 한겨울 무대를 뜨겁게 달구던 작품들이 서서히 막을 내리는가 하면 봄맞이 공연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기 때문인데요. 봄 시즌을 질주하기 위해 출발선상에 서 있는 수많은 공연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작품 중 하나는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가 아닐까 합니다. 2013년 소극장 흥행 1위를 기록한 창작뮤지컬, 이성적인 천재 물리학자와 본능적인 뱀파이어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중독성 강한 음악으로 마니아 관객층을 양산한 이른바 <마돈크>가 더욱 강렬한 스토리와 세려된 무대, 그에 걸맞은 화려한 캐스팅으로 컴백을 예고하고 있는데요. 여러 모로 매력 넘치는 6명의 남자 배우 가운데 유독 기자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이충주 씨였습니다. 뮤지컬 <셜록홈즈 : 앤더슨가의 비밀>에서 그를 만났던 관객들이라면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죠?
“제가 워낙 애정을 가졌던 작품이라 아직 마음에 남아 있죠. 마지막 공연 커튼콜 때는 무대 위에서 엉엉 울었어요. 정말 대성통곡을 했는데, 그 화면이 인터넷에 돌아다녀서 무척 부끄러워요(웃음).”
기자가 이충주 씨를 만났을 때는 2월 중순. <셜록홈즈>가 막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인생을 변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고들 하잖아요. 배우마다 자기가 잘 소화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는데, 저는 <셜록홈즈>를 하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 역할에 완전히 젖어서 했어요.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얘기를 들은 건 <셜록홈즈>가 처음이에요. 저는 오히려 욕먹는 것에 익숙했거든요(웃음). 선물 같은 역할이라서 보내기 힘들더라고요.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큰 행복이겠다 싶어요.”
쌍둥이 형제, 에릭과 아담을 연기했는데,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인물이지만 무대에서는 굉장히 다르게 표현되잖아요. 실상은 어느 쪽에 더 가깝나요?
“아무래도 에릭 같은 면이 많죠. 사람들한테 호통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가까운 사람들은 아담이 딱 저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어쨌거나 제 안에 있는 걸 표현한 거니까 골고루 비슷한 면이 있긴 한 것 같아요.”
<셜록홈즈>의 여운을 충분히 해소하기 전에 새로운 작품을 만났습니다. <마마, 돈 크라이>도 예사작품이 아닌데, 게다가 뱀파이어 역이에요. 뱀파이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잘 맞는 것 같나요?
“사실은 자신 없어요. 굉장히 멋있어야 하고, 심지어 대사에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를 본 적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웃음). 맞춰 가야죠. 저만의 매력을 찾아서, 설득력 있는 뱀파이어라는 말이 나오게. 이제 ‘이충주 괜찮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는데, 반짝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면 이 작품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일단 작품에 빠져들기 위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마마, 돈 크라이>로 바꿔놨어요.”
포스터 보니까 곱던데요(웃음).
“프로필 사진은 안타깝지만 포스터는 만족해요. ‘이렇게 멋있게 나올 수 있나(웃음)!’ 인터뷰 오는 길에 포스터를 봤는데 깜짝 놀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인 줄 알더라고요. 입 꼬리만 봐도 알겠다고. 입 꼬리만 보고 알아보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하긴 입 꼬리 때문에 누구랑 싸울 때도 왜 웃고 있느냐고 해요(웃음).”
프로페서V 역에 송용진, 김호영, 서경수, 드라큘라 백작 역에는 이충주 씨와 함께 고영빈, 이동하 씨가 캐스팅됐습니다. 멋진 남자 배우들만 모였는데, 연습실 분위기는 어떤가요?
“무척 칙칙하고 재미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다들 아는 배우라서 편하고 즐겁고, 연습실 분위기가 어렵지는 않아요. 그리고 가만 보니까 배우마다 개성이나 매력들이 달라요. 제작진도 기본만 주고 각자 알아서 하라고 해요. 그래서 더욱 각자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로에서 남자 2인극을 맡았다는 건 뮤지컬 시장에서 나름 인정받았다, 또 그 인기가 증폭되는 계기이기도 한데요. 실감하세요?
“<마마, 돈 크라이> 제의가 들어왔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어, 나한테도 이런 작품이 들어오네?’ 그런데 조심하고 싶은 건 있어요. 어떻게 말해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대학로 남자 2인극’ 하면 떠오르는 배우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거든요. 제가 바라는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장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 중의 하나도 ‘저는 또래 남자 배우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습니다!’거든요. 탭댄스로 <브로드웨이 42번가>도 했고, <더 데빌>에서 록도 불러 보고, <디셈버>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도 서봤어요. 앞으로도 이런저런 작품으로 다양한 규모의 극장에 서고 싶지, 중소극장에 국한된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마마, 돈 크라이>는 출연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마돈크>는 예외고요(웃음). 사실 이 작품은 제가 속해 있는 회사(알앤디웍스) 작품이에요. 제가 이 회사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한 게 지난해 초였는데, 그때 회사 라인업을 알려주면서 <마마, 돈 크라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저는 못 들어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 작품을 하게 된 것도 신기하고, 다른 남자 배우들도 많거든요. 심지어 (송)용진이 형과는 세 작품 째 같이 하는 거라서 정말 감사한 일이죠. <마돈크>는 기존의 남자 2인극과는 확실히 구분된다고 생각해요. 노래나 무대도 멋있고, 스타일리시하고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걱정인 건 <마돈크> 골수팬들이 기존 공연을 왜 이렇게 바꿔놓았느냐고 하시지 않을까...”
대학에서는 성악을 전공한 걸로 아는데, 전도유망한 성악도가 레퍼토리 다양한 오페라를 두고 뮤지컬 무대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전혀 그런 건 아니었고요. 성악과 출신이라고 다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그냥 노래를 좋아해서 어떻게 하면 노래를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성악과를 간 거였고, 그러다 보니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어요. 갇혀서 노래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대학교 2~3학년 때 진로를 고민하다 뮤지컬을 알게 된 거죠. 뮤지컬을 하면서도 엄청나게 부딪혔고, 지금도 부딪히고 있지만, 이제는 조금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작정 허락되는 무대에 섰다면 이제는 제가 잘 하는 게 뭔지, 어울리는 게 뭔지 약간 윤곽이 보이는 것 같아요.”
뮤지컬 <셜록홈즈>와 함께 겨울을 보냈고, <마마, 돈 크라이>가 끝날 즈음에는 봄도 저물겠죠. 작품과 함께 여름과 가을, 또 다른 겨울과 봄을 맞게 될 텐데 어떤 배우로 자리매김 하고 싶나요?
“저는 늘 똑같아요.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라는 말만 나오면 돼요. 아직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그게 꿈이에요. 왜냐면 저에게도 그런 배우들이 있거든요. ‘그 역할 누가 해?’ ‘너무 안 어울리는데.’ ‘그래도 그 배우잖아!’ 그런 말을 듣고 싶어요.”
그런 배우가 돼 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데뷔 초반에는 잠잠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디션을 보지 않고 콜이 오는 거잖아요. 지금 백 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떻게 그걸 제가 감히. 아휴, 빵점이에요(웃음). 예전에는 공연 후기를 꼭 읽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연기에, 무대 위에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제 배우로서 갖게 된 마인드를 잘 지켜서 <마마, 돈 크라이>에서 나만의 백작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관객들의 공연 후기를 꼭 읽던 욕먹던 배우, 지금도 한참 부족하다며 스스로 빵점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얘기를 뭐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지. 이충주 씨는 지금껏 만난 배우 중에 가장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털털하고, 까다로우면서도 너무 솔직해서 인터뷰는 재밌었지만 기사 쓰기는 오히려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배우,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그 매력을 무대 위에서 잘 발산하는지는 앞으로도 더 지켜봐야겠죠? 일단 3월 10일부터 5월 31일까지 대학로 쁘띠첼 씨어터에서 공연될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부터 관람해야겠네요. 멋진, 그만의 드라큘라 백작을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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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lavita77
2017.04.09
너무나 멋진 2016 마마돈크라이로 기억합니다
앙ㅋ
2015.02.25
rkem
201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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