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부모 자신이 불완전함을 인정하면 다시 노력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부모는 그 어떤 전문가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다.
지난 1월 26일, 신세계백화점 문화홀에서는 『부모가 되는 시간』 출간기념 저자와의 만남이 열렸다. 『부모가 되는 시간』은 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자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펴낸 첫 책이다. 저자는 네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찬찬히 들여다본 뒤 열 네 권의 육아 고전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다. 책 속에는 훈육, 처벌, 격려, 행동수정 등 일상에서 매일 부딪히는 갈등 상황을 풀어가는 생생한 경험담이 담겨있다. 저자는 육아 책이 단지 글로 끝나지 않고 부모와 아이가 교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침으로 스며들 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육아에 시달리는 부모들에게 저자가 건네는 사려 깊은 조언은 무엇일까?
아이를 키우는 건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것
저자는 육아의 본질을 ‘만남’이라고 정의한다. 아이는 계속 자라고 달라진다. 부모는 매일 같은 아이를 대하지만 조금씩 자라는 아이를 다르게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늘 아이의 변화를 감지하며 경탄하기는 어렵다. 부모는 아이의 민감한 변화에 주목하기 보다는 자질구레한 일상에 낡아지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에는 육아의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메워주는 진실이 담겨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 유년 시절을 다시 만나고, 부모님의 청년시절도 다시 만나고, 한 세월을 기억 속에서 다시 살려 화해에 이르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인다. 부모님 입장에서 나를 대입하게 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 유년기의 대부분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아버지가 조그만 개척교회 목사님이셨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자연과 벗하는 풍요로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쉰 살에 돌아가셨다. 그 후로 가족이 조금 힘들어졌고 마음 한 구석에는 아버지에 대한 은근한 원망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아이가 장성할 나이를 상상해보았다. 처음으로 아버지께서 오래 사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감사했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화해의 순간이었다. 우리는 존재의 근원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이를 양육하면서 마음 속 화해를 해 나간다.”
전문가도 육아는 어렵다
모든 변화에는 부담이 따른다. 육아도 다르지 않다. 부모가 변화를 시도하려면 육아서에 공감하는 그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저자는 “부모가 육아서를 읽은 후 삶으로 받아내야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요구 된다”고 말한다.
“전문가이지만 육아는 정말 어렵다. 어제도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냈다. 셋째 아이가 장난감 반지를 떨어뜨렸더니, 쌍둥이 오빠들이 반지를 뺏고 놀렸다. “동생에게 갖다 줘”라고 이야기 했더니 듣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게 혼난 다음 타임아웃이 끝난 뒤에야 겨우 돌려주었다. 화를 낸 건 아쉽지만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고 애썼다. 이러한 일상적인 갈등의 기로에서 부모는 어떤 방향으로 아이들을 훈육할지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육아책 읽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삶 쓰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써야할 것은 우리와 아이들의 삶 그 자체이다.”
아이보다 부모 자신을 살피는 게 먼저다
“부모로서 내가 즐겁게 사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일 것이다.” (137쪽)
“부모는 진정으로 아이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을 먼저 보살펴야한다.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건강, 자기존중, 배우자와의 관계이다. 이 세 가지의 균형이 깨지면 육아는 점점 어려워진다. 부모가 먼저 숨을 쉬어야 한다. 부모 자신이 부족했던 면을 건강하게 수용한다면 아이에게 치우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부모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부모 자신이 불완전함을 인정하면 다시 노력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부모는 그 어떤 전문가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다. 부모가 스스로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아이에게 나타나면, 부모는 겁을 먹고 당황하게 된다. 이 때 우리 아이는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부모라는 프리즘이 지나치게 아이의 모습을 왜곡하지 말자.”
감정은 허용하되, 행동은 제한하라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의 감정을 제압해야 행동을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이들이 떼를 쓰고 감정을 드러낼 때 부모는 이를 통제하기 바쁘다. 하지만 아이가 부모의 화가 섞인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받게 되면 아이의 상처는 깊어지고 반항심도 늘어간다.
저자는 “아이의 감정은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아이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해소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부모는 아이 감정을 들어주되 행동에는 제한을 주어야한다”고 강조한다. 부모는 아이의 다양한 감정을 허용하면서 기다려줄 줄 알아야한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비꼬지 말고 눈높이 그대로의 감정을 잠시라도 받아주어야 한다.
“아이의 행동 이면에는 감정이 있다. 숨은 감정을 헤아려 공감을 전할 때, 아이는 자기감정을 더 잘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럴 때 아이는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고, 생각도 더 잘할 수 있다. 감정은 강물 같다.” (37쪽)
“아빠 스포츠카 사줘”
“어느 날 아이가 스포츠카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감정 코칭 기술을 실전에 적용해보았다. 스포츠카가 우리 집 자가용으로 적합하지 않은지에 대한 현실적인 설득을 하기 전에 아이의 감정을 헤아리기로 결심했다. ‘아이는 왜 스포츠카를 갖고 싶은 걸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은 크고 강한 것에 끌린다. 우리 아이도 비슷한 이유로 반짝이는 것에 현혹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느끼는 것을 가감 없이 들어주었다. 아이가 현실에서 스포츠카를 얻지 못해 좌절되기 전에 부모에게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의 강연이 끝난 후 독자들은 육아에 대한 질문을 이어나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 염려해볼 만한 고민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무엇일까?
20개월 차이나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첫째 아이가 자주 울고 약한 기질을 타고났다. 그래서인지 둘째 아이가 첫째 아이를 자주 괴롭힌다. 두 아이가 벌써부터 힘겨루기를 하고 우열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아이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관계의 역학이다. 하지만 모든지 반복되면 패턴이 된다. 한 사람은 가해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피해자가 된다. 먼저 부모는 첫째 아이에게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한다. 동생이 놀릴 때 마다 강하게 대처하는 걸 연습시켜야 한다. 구도는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부모가 다른 역할을 시키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한 아이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머무르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일하면서 여섯 살, 네 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일과 육아에 치이다보니 아이들이 힘들게 할 때 마다 성숙한 타이르기를 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자꾸 화를 내게 되고 협박하는 일이 잦다.
아이들은 정말 말을 안 듣는다. 네 아이를 키우는 저에게도 늘 어려운 문제이다. 여기서 한 가지 방법론은 똑같은 말을 해도 부정문 보다는 긍정문으로 표현해보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부정문으로 요청하면 들어줄 가능성이 1/3이다. 부모가 “하지마라”고 표현하는 평소의 패턴과 반대로 정중한 요청을 해보자. 결국에는 아이는 부모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11살 여자아이, 8살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큰 아이가 역할놀이를 지나치게 좋아한다.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는데 늘 상상 속 역할 놀이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역할놀이를 진득하게 못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입 밖으로 이야기하는 역할놀이는 커가면서 저절로 내재화 된다. 조금만 더 크면 아이 내면에서 충분히 역할 놀이를 할 수 있다. 내재화가 너무 빠른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부모가 아이에게 다른 게임을 알려주고, 기존의 놀이 패턴에서 확장시켜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또래보다 느린 편이라 놀다가 자주 맞고 온다. 이럴 때 마다 아이에게 친구를 공격하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아이가 맞고 들어오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진다. 부모의 분노는 충분히 타당하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가 유순하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주변의 어린 아이들과 긍정적인 관계경험을 그룹 지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또래보다 개월 수가 느리거나 적응에 더디다면 아이보다 조금 어린 아이와 순하게 잘 놀 수 있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다 보면 약자가 있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이들 사이에도 분명히 가해자가 있다. 누군가 상처를 입었다면 서로 사과를 주고받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 마다 어른이 중재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아이들의 도덕적인 역량 발달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어른의 태도가 중요하다. 어른이 피해 아동을 보듬어주는 쪽으로 행동하면, 가해 아동들은 따로 처벌하지 않아도 스스로 느끼게 된다. 많은 연구를 보면 처벌이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어른이 단호한 한계를 반복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선을 느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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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는 시간김성찬 저 | 문학동네
이 책은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네 아이의 아빠인 저자가 그간 읽어온 육아서 중 고전 중 고전으로 꼽을 수 있는 책 14권을 선정해 자신의 육아와 실제로 접목시켜 써내려간 생생한 육아 보고서다. 아이를 키울 때 갖게 되는 어려움, 궁금증, 고민을 초보 부모들과 함께 나누고 차근차근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이 책은, 육아에 대한 다정한 안내서이면서 대한민국 초보 부모들의 용기를 북돋는 세심한 응원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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