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7일, 서울 인사동 웅진씽크빅 단행본 사옥에서 『세상을 통역하다』라는 에세이를 펴낸 박혜림 작가 독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박혜림 저자의 제자, 'SBS 스타킹'의 영어킹 우승자 홍의성님의 유쾌한 오프닝을 시작으로 통역과 영어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었다.
이날 저자는 자신이 통역사가 되기까지의 쉽지 않았던 과정과 늦게 시작한 영어로 지금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비법까지, 2시간이 넘도록 독자들의 모든 질문에 얼굴을 맞대고 강연을 이어나갔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면, 본인 스스로 답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하는 박혜림. 본인의 인생에서 꿈과 실력을 어떻게 갖춰왔는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상을 만나다
통번역사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대학도 법학과 출신이고, 영어 전공자도 아니다. 다만 졸업무렵 우연한 기회에 통역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영어에 제대로 꼿혔던 것 같다. 언어가 다른 두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해보니 그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영어에 대한 에너지를 어떻게 진로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 막막했다. 결국 마음 한구석에 영어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묻어둔 채, 평범하게 졸업하고 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회사 분을 통해서 어떤 통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일본에서 활동하시는 통번역사인데 워낙 방대한 분야의 통번역을 맡아서 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준전문가 수준으로 상식이 풍부해져서 지금은 본인의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는 그런 얘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거다!' 싶었다. 내가 영어를 가지고 어떻게 내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지, 진정한 롤모델을 찾은 것이다.
27살, 대학원을 가겠다고 결심하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그 이후로 꼬박 일주일을 '통역사가 되는 법'에 대해서 찾아다녔고, 무조건 통번역대학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몬터레이통번역대학원. 왜냐하면 나는 외국에서 거주하거나 어학연수, 심지어 교환 학생 등 외국에서의 어떤 경험도 갖고 있지 않았다. 통역을 하려면 언어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언어의 배경이 되는 문화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절대적으로 유학생활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고, 내 목표는 자연스럽게 몬터레이대학원으로 설정하게 됐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영어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워낙 기본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통번역대학원 수업을 소화해낼 수 있는 기본실력을 갖추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대학원을 붙기까지, 그리고 붙고 나서는 더욱더 마음과 체력싸움이 심했다. 애초에 대학원을 쉽게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그리고 너무 늦은 나이에 시작하려니 각오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노력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슈퍼스타K‘, SBS ‘스타킹’ 등 여러 방송에도 등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기회는 어떻게 만든 것인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동안 또 기업에서 일했었는데 일복은 타고났는지, 무척이나 바쁘게 지내다 어느 날 눈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니 '황반원공'이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 실명을 할 수도 있다는데,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무기력한 마음을 달래기엔 뭔가 계기가 필요했다. 마침 케이블방송에서 <뷰티워>라는 프로그램의 신청자를 모집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고, 뭐에 홀린 듯이 지원하게 됐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란 생각도 들었지만 ‘안 해본 것들을 해보면서 쓸데없는 감정들을 지워나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적 끝에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니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시작된 여러 인연들로 그 다음 기회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작가님과의 인연으로 인해 <슈퍼스타K>의 생방송 통역은 물론이거니와, 미쉘씨위, 미란다커 등 유명 인사들의 통역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연이어 생겼다. 이래서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고 하는 것 같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식통역사였다. 어땠었나.
앞으로도 어쩌면 평생에 가장 큰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그 만큼 어려웠고 힘들었고 배운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좋은 결과를 남기기까지 했으니, 생각할수록 영광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일원으로 일하던 당시에는 하루에도 수백번씩 그만둘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만큼 몸과 감정이 지칠 대로 지쳤었다. 일주일에 3~4개 국가를 이동하는 것은 물론, 통역이 이루어진 모든 내용을 기억했다가 비행기 이동시간을 활용하여 보고서를 작성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안에서의 알력싸움 같은 묘한 기류를 등에 업고 지내야 하니... 생각만큼 멋있고 우아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경험보다도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주었고, 실력 역시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은 분명하다.
1부 강연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영어학습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나갔다. 그 동안 저자가 가지고 있던 영어 학습에 대한 생각, 자신만의 노하우 등을 설명하고 독자들과 함께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해도 해도 부족한 영어를 채우는 방법
한국에서 영어 잘할 수 있는 방법 - Visualization & Simulation
우리의 뇌는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모든 영어를 접하는 순간을 진짜인 것처럼 상상한다면 뇌는 그게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즉, 스스로 ESL환경을 자꾸 만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실제 그 상황이 됐을 때, 뇌는 기존에 학습했던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쓸 수 있는지, 어떻게 쓸 수 있는 말인지 언제나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어나 표현을 따로 외우는 방법이 있는가 - Word Map, Word Train
새로운 영어를 접해나갈 때, 우리는 연결성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파편처럼 흩어지는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기적으로 언어를 쓸 수가 없게 된다. ‘워드 맵’은 한 주제에 관심이 생겼을 때, 주제를 중심으로 생각을 확장시켜 그 과정에서 관련 어휘와 표현을 늘려나갈 수 있다. '브래드피트'를 좋아한다면, 그가 데뷔했던 시기, 가장 핫했던 순간, 안젤리나졸리와의 이야기, 그의 대표작 등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표현들을 찾아서 엮어보는 것이다. ‘워드 트레인’은 표현이나 단어를 하나 알게 됐을 때, 그 개념을 중심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면 opportunity for~ 라는 표현을 알게 됐을 때, 사업기회- a business opportunity 절호의 기회 golden opportunity for~ 등 기본 개념과 관련된 표현까지 같이 챙기는 것이다. 이렇게 확장시켜서 알아두면, 활용 범위가 무척 넓어진다.
우리는 왜 10년을 영어공부를 했는데도, 영어로 대화가 힘든 걸까. 어떻게 해야 할까 - SHAKER
사실, 우리가 말을 못하는 이유는 input과 output이 조화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은 input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밖으로 꺼내는 output 연습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서툴렀던 게 사실이다. 통역할 때 '노트테이킹'이란 기술이 있는데, SHAKER 학습법은 이것을 응용해서 만들어낸 학습법이다. 뇌가 의미를 이해하는 단위를 '의미단위'라고 하는데, 이것을 기본단위로 하여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만의 기억매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림, 기호, 간단한 단어 등 어떤 형식이든 가능하다. 본인이 의미단위를 떠올릴 수 있는 무엇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의미단위를 본인만의 SHAKER로 그려내고, 그 SHAKER를 보면서 거꾸로 의미단위를 기억해내는 것. 이것이 SHAKER 학습법이다. 억지로 문장을 외울 필요가 없다. 우리의 감각을 믿고 나만의 것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2부가 모두 끝나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독자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남겼다.
“아직 인생이 불안하다 생각되어도, 혹은 잠시 딴 길을 가고 있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 우리는 어떤 경험을 통해서든 무언가를 얻게 되고 그것은 진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았을 때 엄청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 내가 말했던 이야기의 대부분은 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 만큼 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다만,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활용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나 사용법'을 찾지 못한 후배들이 있다면 내가 지나왔던,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그저 알려주고 싶었다. 작은 도움이라고 되길 바라며 늦은 시간까지 경청해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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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통역하다박혜림 저 | 뉴런(NEWRUN)
대학 졸업 때까지 외국 거주 경험도, 어학연수도, 교환학생도, 유학 등의 경험이 전무한, 누구보다 평범했던 박혜림. 그런 그녀가 대학 졸업 후에야 통번역사를 꿈꾸게 된 이유와 과정, 그리고 통번역사로서의 리얼한 현장 스토리와 그녀만의 영어비법 등을 자세히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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