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만족하지 못할 때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친구들과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다녔고, 집에 오면 엄마가 해 주는 따뜻한 간식을 먹고 다시 동네 친구들과 소꿉장난이나 인형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았다.
글ㆍ사진 권희린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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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집으로 가는 길』의 이스마엘 베아는 힙합과 랩을 좋아하는 밝고 맑은 열두 살 소년이다. 하지만 그는 그 나이 때의 나와 너무 다르다. 최대의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며 10년째 내전을 겪고 있는, ‘가진 게 많아 가난한 땅’ 시에라리온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한 삶을 겪기 때문이다. 이웃 마을에 장기 자랑을 하러 가던 길에 소년병으로 붙잡혀 한 손에는 총을, 또 다른 손에는 마약을 들고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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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리온 내전(1991~2002) 당시의 소년병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어린 소년의 처절한 아픔과 상처가 나의 가슴에 깊이 박혀서인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삶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방학 때 진행하는 독서 캠프에서 이 책만큼은 늘 아이들과 함께 읽어 보려고 한다.

 

우리는 반군과 구별할 수 있도록 머리에 녹색 천을 질끈 두르고 길을 떠났다. 지도도 없고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지시가 내려질 때까지 길을 따라 걷기만 했다. 우리는 몇 시간을 내리 걷다가 잠시 쉬면서 정어리와 콘비프를 가리와 함께 먹고, 코카인을 흡입하고, 하얀 캡슐을 몇 개 삼켰다. 이렇게 약을 섞어 먹으면 힘이 용솟음치고 야수처럼 사나워졌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 - 『집으로 가는 길』 中

 

시에라리온의 전쟁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평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는 나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니 학생들에게는 더욱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 아예 별나라 이야기든가.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힘들고 지친다는 지금의 학교 생활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꿈꾸고 희망하는 일상이라는 것을. 또한 지금 우리가 흘려보내는 시간들은 누군가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는 삶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스마엘이 꿈꾸는 삶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그 나이대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일 뿐. 마음껏 뛰어놀고,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교실에서 공부하고, 가족들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것이니 말이다. 또래인 이스마엘의 고통과 슬픔이 전해진 걸까? 처음에는 표지의 소년이 총 든 모습을 따라 하며 낄낄거리던 아이들이 조금은 숙연해져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요?”라며 되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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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모르지만 아마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일 거야. 다이아몬드가 그곳에 계속 존재한다면.”


여러 감정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슬픔에 머물러 있는 편이 훨씬 더 쉬웠다. 게다가 슬픔은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결연한 마음을 더욱 다져 주었다.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소년병들이 배운 감정은 ‘슬픔’이었다. 좋은 것은 좋다고 싫은 것은 싫다고 표현해야 하거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슬픔밖에 없었던 것이다. 늘 최악의 상황 이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는 이스마엘이 우리 학생들 그리고 예전의 나와 자꾸 비교되었다.


“살아 있는 한, 더 나은 날이 오고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이 있단다. 더 이상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잃게 되면, 그때 죽는 거야.”

 

부모님이 주고 또 줘도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최악의 상황이 아닌데도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게다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것,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는 것도 사실 한 손에 총을 들고 사람들을 죽여야 했던 이스마엘의 입장에서 보면 속 편하고 배부른 소리 아닌가.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었다. 너희가 매우 행복하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그리고 으로 가는 길』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가지면 더 좋은 상황이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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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힘든 직장 생활,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B끕 언어』로 주목 받은 권희린 작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스치는 이런 질문에 ‘우리에게 진짜 필요했던 조언’들을 특유의 유쾌한 말투에 담아 돌직구로 날린다. 내 일기장을 훔쳐본 듯 소름 돋게 공감가는 이야기로 ‘어머, 이건 내 얘기야!’ 하며 감탄하는 사이 고민의 무게는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 2가지 이상 체크했다면 이 책을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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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이스마엘 베아 저/송은주 역 | 북스코프
이 책은 장기자랑에 참여하려고 친구들과 함께 길을 떠난 열두 살 소년 이스마엘의 행복했던 삶이 전쟁 속에서 어떻게 파괴되어가는지, 그 참혹한 변화를 담은 회고의 글이다. 살육의 현장이 두려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평범한 어린이가 마을을 습격해 학살을 자행하는 무자비한 소년병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스마엘은 솔직하고 생생하게 고백하고 있다.


 

 

 

 


 




#인생독학 #권희린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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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1.27

살육의 현장이 두려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평범한 어린이가 마을을 습격해 학살을 자행하는 무자비한 소년병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스마엘은 솔직하고 생생하게 고백하고 있다니 이런 글을 펴낸 소년도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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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린

시트콤 같았던 20대를 치열하게 살아 내며 확실한 꿈을 찾아 지금 여기까지 왔다. 사람과 음악, 여행과 책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마음을 다독여 주는 책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장 즐긴다. 정글 같은 삶에서 로그아웃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일상은 여전히 삽질과 멘붕의 연속이다. 심지어 지금은 육아의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는 중. 초등학생 때 품었던 ‘여행으로 지구 정복하기의 꿈’을 아직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6년 차 교사. 손가락 끝에 뇌가 있기를 바라며 블로그에 끄적거리기를 즐긴다. 저서로 《도서관 여행》, 《B끕 언어》가 있다. 까칠한 권선생 LIFE blog.naver.com/sk1004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