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몇 년전부터 진료실에 부쩍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 사례가 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째 등교나 사회생활을 하지 않은 채, 방에서만 지내고 있는 세칭 ‘은둔형 외톨이’들이다. 거의 백 퍼센트, 처음에는 부모가 상담을 하러 온다. 기다리다 보면 알아서 방 밖으로 나올 것이라 믿고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봤지만, 어느새 몇 년이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덕현이도 그랬다. 중학교 3학년까지는 여느 아이들과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가고 싶던 특목고를 가지 못하고 난 다음, 고등학교도 친하던 아이들과 떨어져서 혼자만 다른 곳으로 배정이 되었다. 처음 한 달 정도 학교를 다니다가 심하게 몸살을 앓으면서 일 주일정도 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 늘어나고, 상위권이던 성적도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부터는
“학교를 가지 않을 거야”
라고 선언을 하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것이라 여긴 부모는 두고 보면서 기다렸다. 이 주일이 지나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엄마가 차려놓은 밥만 혼자서 낮에 나와서 먹고 또 방에서만 머무르는 것을 반복하자 부모는 혹시 학교에서 친구들과 문제가 있나 싶어 선생님과 상담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왕따나 학교 폭력의 대상이 된 증거는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혹시 우울증이 아닐까 했지만 아이는 절대로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부모도 아이를 정신과에 데려가는 것이 도리어 상처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두고보기로 했다. 어느새 몇 달이 지났고, 어느새 아이는 자퇴를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는 한국의 무자비한 교육현실에서 차라리 빨리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거나 대안학교를 가는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부모 두 명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와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었기에 그런 판단을 할 물질적, 정신적 이유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덕현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은채 해가 지나기 시작했고, 어느새 몸도 잘 씻지 않고 처음에는 가족행사에는 참석하고 가끔은 휴일에 가족과 밥도 먹었지만 그런 것도 안하게 되었다. 이런 날들이 지속되자 결국 부모가 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오랜 시간 망설이던 부모는 결국 나의 설득에 입원을 시키기로 결정을 했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덕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덕현이와 같은 사례를 나는 최근 몇 년동안 수 십명을 보았다. 간단한 등교거부로 끝난 것부터 덕현이의 경우와 같이 몇 년을 끌어오다 결국 병원에 오게 되는 사례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덕현이도 그렇지만 대부분 이런 문제를 지닌 십대 청소년과 이십대 젊은이에게서 기존의 어떤 정신질환 진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심한 우울증, 자폐증, 조현병(정신분열병), 사회공포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오직 일본의 히키코모리,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로만 개념적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더욱이 꼭 이렇게 몇 년씩 방에서만 머무르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갈수록 사회의 삶에 맞서 살아가는 것에 두려움과 불안이 커져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공간에서 머무르게 되는 청춘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십년전에는 관찰되지 않던 신종 증후군인 은둔형 외톨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은 꼭 ‘나는 이 정도는 아니니 괜찮아’라고 안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결국 그들도 내가 가졌던 고민과 처음에는 비슷하게 시작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위해 일본의 정신과 의사 이소베 우시오가 쓴 ‘스타벅스로 간 은둔형 외톨이’를 읽을 필요가 있다. 그가 추정하기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일본에 50-60만명 정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대략 일 년에 약 6천건 정도의 상담을 하게 된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의외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최소 6개월 이상 의미있는 사회적 관계를 하지 않고, 집안에서 가족들과도 소통하지 않은채 자기 방안에서만 지내고 있다. 그 기간도 꽤 길어서 5년 이상 지속된 경우가 25%나 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 문제가 일본이 의식주가 해결된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가 된 것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최소한 굶어죽을 염려가 없고, 핵가족화가 되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매우 친밀해 진 상태가 현재 일본이다. 거기에 부모가 자식을 향한 기대치는 높아져서 십대가 되면서 아이 본인도 높은 이상적 기대치를 갖게 되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할 엄두가 나지 않고 격차와 괴리가 커지는 상황이 생긴다. 그 차이를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은 사회로 아예 나가지를 않은채 자기 방에서만 머무르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게 되고, 어느새 그 삶에 익숙해지면서 6개월이 지나고 나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린다.
먼저 이 신종 증후군은 조현병, 우울증, 강박증과 같은 기존의 정신질환은 아니다. 대략 1995년경부터 이 문제가 사회에서 관찰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방안에서 머무르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괴로워하고 있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지만 그 방법조차 잃어버린 상태에 일종의 블랙홀 속에 머무르고 있다는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의외로 엉뚱할정도로 높은 자아상을 자아상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정확히 현실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갑자기 자신이 바라는 존재가 되어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데, 그렇다고 그게 망상장애 수준의 중증 정신증상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왜 밖으로 나가지 않는가”는 질문에 “왜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못나간다”라는 답변을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공통적으로 대인관계의 예민함, 약간의 피해망상, 자신감 상실, 자기비하의 태도다.
이런 문제를 방치하고 두고 본다고 어느날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5년이내 문제를 해결해야하는데, 그 이유가 대략 5년단위로 한 세대의 흐름을 끊어서 가기 때문에 이 시기를 통채로 생략하면 다시 따라잡기가 매우 힘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구체적으로 조언을 한다.
은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현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부정하지도 말고 그냥 그 상태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주 작은 현실적인 변화부터 목표를 세우고 실천을 한다. 원래 갖고 있던 거대한 자아상의 현실화가 아닌 작고 매일의 실천이 필요한 행동을 목표로 세운다. 저자는 흥미롭게 ‘매일 스타벅스 가기’를 제안한다. 커피를 마시러 집밖으로 나가서 앉아있으면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고,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느낄 대인관계의 긴장과 불안도 줄어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더 먼 곳으로 가볼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쉽지 않고 실패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렇기에 치료자도 실망을 하고, 부모도 지치는 일이 더 많지만 멀고 길게 보고 시도를 하라고 저자는 조언을 한다.
나 역시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전보다 자주 만나게 되면서 저자의 경험에 많은 부분 동감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결방법도 상당히 유용했다. 이들은 게으르거나, 어떤 특별한 병에 걸려 있거나, 사치스러운 호사를 누리고 있는게 아니라 과거 세대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정신적 괴로움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꼭 내가 은둔형 외톨이 급 정도로 나쁜 상황에 빠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환경의 변화와 가족관계의 특징이 사회적 단절로 몰아가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한국의 십대와 이십대의 많은 수가 공감을 할 만한 부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와 같은 사회에서 물러나고 싶은 두려움과 세상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또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는한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보다, 스타벅스를 매일 가듯이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아보이는 작은 실천같은 구체적인 일상의 단련과 성취를 쌓아나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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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사이토 다마키 저 | 파워북
군중 속 고독과 같은 표현들로 대변되는 이 시대에 내던져진 은둔형 외톨이는 특별한 문제성의 소수가 아닌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은둔형 외톨이 연구와 임상의 권위자인 정신과 의사 사이토 다마키, 그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개인의 병리’가 아닌 ‘가족과 사회 시스템의 병리’라고 말한다. 그가 들려주는 은둔형 외톨이의 올바른 이해와 치유법을 담은 이야기를 통해 은둔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우리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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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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