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축제의 매혹적인 단조
드레스덴은 옛 동독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소문을 들었다. 미치광이 히틀러가 가장 좋아라한 도시였다고도 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승기를 잡은 연합군이 마치 분풀이하듯 다 때려 빠개놓은 도시이기도 했다.
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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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은 옛 동독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소문을 들었다. 미치광이 히틀러가 가장 좋아라한 도시였다고도 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승기를 잡은 연합군이 마치 분풀이하듯 다 때려 빠개놓은 도시이기도 했다.
실제로 방문해 보니 드레스덴은 큰 상처를 입었지만 티 내지 않고 굳건히 살아가는 인상을 건넸다. 특히 성모교회(Frauenkirche)라는 건물은 다 부서지고 불에 타 그슬린 돌들을 재건할 때 다시 사용해 딱 그 느낌을 상징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세도시 같은 잿빛 건물들과 밋밋한 현대식 건물들이 공존해 있는 모습은 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느긋하게 구시가 골목을 걷다가 드레스덴 한복판을 관통하는 엘베 강을 만났다. 강은 살랑살랑 잔물결을 일렁일 뿐 그 이질감에 대한 대답을 해주진 않았다. 문득 은유적으로 그 강이 도시를 아래위로 찢고 있는지 위아래로 촉촉하게 적시고 있는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모르겠고 나는 아름다운 강변에서 소시지에 맥주나 호로록거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도시는 마침 주말이었고 무슨 축제 중인 것 같았다. 축제 기간이라면 사람이 북적거려 정신없을 것 같기도 했고, 우연히 들렀는데 축제라니 재수가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견해는 100분 토론을 시작했다.
아우구스투스 다리 건너에 있는 대성당 앞 광장에 조그만 무대가 설치되었고 그 주변엔 음료나 음식을 파는 가판대와 천막들이 세워져 있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들이 분주하게 맥주 노즐을 닦고 있거나 지글지글 소시지를 굽고 있었다. 키다리 분장을 한 녀석도 성큼성큼 지나갔다. 마음 속 토론은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축제를 팔랑팔랑 구경할지, 조용한 골목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쉬엄쉬엄 차를 마실지 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때 한 소프라노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목을 알 수 없는 아리아였는데 내 귓구멍엔 굉장히 구슬프게 인식되었다. 고음을 처리할 때 소프라노 언니의 표정엔 오만가지 시름이 스쳐가는 듯했다. 심지어 그녀는 검은 드레스에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축제인데 왜 까맣게 입고 슬픈 노래를 불러재끼는 거지? 몹시 의아했다. 나는 조용한 곳을 찾아 멍 때리겠다는 의견을 단박에 철회하고 그 궁금증을 해소하는 걸로 정했다. 그러기 위해 우선 맥주와 소시지를 사서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맥주는 무슨 필스너 종류였는데 시원하게 넘어가면서도 씁쓸한 맛이 입안에 오래 남아 좋은 맛인지 나쁜 맛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가벼운 여운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헷갈리게 만드는 도시로군.’ 중얼거리며 나는 소프라노의 구슬픈 아리아를 끝까지 감상했다. 듣다 보니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슨 곡인지 알고 싶어 중간에 스마트폰을 꺼내 음원 검색 어플을 켰지만 소리를 입력시키려 할 때마다 옆에 앉은 덩치 큰 아저씨가 타이밍 좋게 코를 풀어대 실패했다.
검은 차림 소프라노의 진정성과 실력을 겸비한 독창이 끝나자 사람들은 환호 대신 잔잔한 박수를 보냈다. 엘베 강도 잔물결로 화답하는 듯했다. 그리고 음악은 뚝 끊겼다. 그 쓸쓸한 아리아를 필두로 축제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 행사와는 상관없이 그냥 누가 나와서 노래 한 곡 뽑고 들어간 기분이었다. 나는 그 알쏭달쏭한 축제에 점점 흥미를 느껴 맥주를 원샷한 뒤 잔을 반납하고 성모교회 쪽으로 걸었다. 교회 앞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고, 연미복을 입은 남자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 축제는 여기저기 게릴라성 공연으로 승부하는 콘셉트인 건가. 피아니스트는 사람들이 모여들자 조금 경직된 표정이었지만 이내 간단한 목례를 건넨 다음 여유를 찾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나는 멈칫 놀랐다. 아니, 또 단조의 슬픈 음악이었다. 우리에게 ‘사(死)의 찬미’라는 윤심덕의 번안곡으로 알려진 개 슬픈 멜로디였던 것이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그 음악은 피아노로부터 창궐해 전 광장에 퇴폐적 허무주의를 와락 끼얹는 듯했다.
물론 그 피아니스트는 사의 찬미가 아니라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왈츠곡인 ‘도나우 강의 잔물결(Donauwellen)’이라는 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상당히 음울한 음색으로 해석할 뿐이었다. 소리를 증폭하는 앰프나 스피커도 없이 길바닥에서 그랜드 피아노만의 생소리로 퍼지는 그 음률들은 흔치않은 소리의 맛을 선사했다. 더구나 연주엔 군더더기가 없었고, 불어넣는 듯한 숨결이 건반에 실리는 듯 했다. 전쟁 때 다 부셔졌다가 꾸역꾸역 재건한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성당 앞에서 울려 퍼지는 그 피아노 소리는 내겐 파괴된 도시를 기리는 진혼곡처럼 느껴졌다.
‘어째서지? 왜 축젠데 다 슬퍼하지? 뭘까, 왜 그럴까?’
연주가 끝난 뒤 나는 하도 궁금해 옆에 서 있던 독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축제… 인거죠?”
“물론이지. 하지만 나도 매년 헷갈린다네.”
할아버지는 그렇게 대답하곤 자기 갈 길을 갔다. 앙코르도 없고 이어지는 레퍼토리도 없었다. 정말 축제라면 좀 울적하지 않아도 되잖아. 다 부서진 건물들을 훌륭하게 복원해 놨고, 다시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었는데 왜 이토록 우울하고 슬픈 음악으로 기리는 걸까. 그러나 그 궁금증은 내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축제라고 꼭 시끌벅적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고 희번덕거리는 것이어야만 하나. 형식을 너무 좁게 보면 못 생긴 것 아닌가 싶었다.
‘도나우강의 잔물결’을 작곡한 이바노비치는 루마니아의 군인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라는 곡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하는데 그 곡은 언제 들어도 경쾌한 왈츠로만 느껴지는데, ‘도나우 강의 잔물결’은 같은 왈츠지만 단조인데다 여러 가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묘한 음악인 셈이다. 이바노비치는 이 곡을 군악대를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했다고 하며 미국에서는 알 졸슨(Al Jolson)이라는 분이 가사를 붙여 번안해 ‘기념의 노래Anniversary Song’라는 제목으로 불렀으며 그걸 톰 존스(Tom Jones)아저씨도 특유의 쫀쫀한 음색으로 다시 불렀다. 그리고 또 우리에겐 현해탄에 뛰어들어 자살한 여가수의 ‘사의 찬미’로 알려진 곡인 것이다. 최초엔 군인들을 위한 곡이었다가 누군가 기념곡을 만들었다가 생의 허무를 쿡 찌르는 곡으로 만들었다가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희한한 멜로디인 셈이다.
요즘 가을이 깊어가고 추위가 찾아오자 나는 참지 못하고 옷장에서 후드 티를 꺼내 후드득 털다가 문득 이 음악을 떠올렸다. 그런데 나는 이 곡을 다시 감상하며 당당하게 겨울 속으로 행진해야 할지, 또 한 번의 가을이 사라지는 걸 쓸쓸히 기념해야 할지, 모르겠고 소주를 마시며 퇴폐적으로 허무해야할지 퍽 헷갈렸다.
드레스덴이라는 딱딱하면서도 화려한 도시의 작은 축제에서 피아노 독주로 감상한 ‘도나우 강의 잔물결’을 떠올리면 그 문제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단조로 노래한다고 해서 축제가 아닌 것은 아니며 겨울이 온다고 해서 무조건 쓸쓸한 건 아닐 거라고. 나름의 매혹이 있을 거라고. 그 느낌으로 다시 이 곡을 감상했다. 부서졌다 재건된 도시를 유유히 흐르던 그 강물이 간직한 시간의 어떤 층위를 느끼면서 나는 숙연해졌다.
아 근데 드레스덴을 관통하는 강은 도나우 아니잖아. 도나우는 독일 남부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를 거쳐 흑해로 빠져 나가는 미친듯이 긴 강이고 드레스덴이랑은 상관없는데 왜 거기서 굳이 그 곡을 연주한 걸까. 맥락이 잘 연결되는 것 같았는데 이게 뭐야. 아아, 여전히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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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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