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쓰였으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조감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이슈 중심으로 풀어나간 이야기였다면, 이번 책은 경제학 전반에 대한 지식을 전해드리고 싶어서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8일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의 출간을 기념해 장하준 교수가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는 이번 책에 대해 짧은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지금까지 출간한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이 담겨있다는 것. 경제학의 정의, 지난 300여 년 동안 자본주의 하에서 진행된 경제학의 역사, 노동과 금융 등의 개별 이슈에 대한 설명까지 모든 내용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밝혔다. 이전의 저서들에서 들려줬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재치 있는 농담이 계속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책은 단순히 경제나 경제학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바꾸는 데 쓰일 수 있는 책을 써보고자 노력했습니다. 단순히 학술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쓴 책이 아니라, 사회 변혁과 경제민주화의 도구로써 경제학이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장하준 교수와 독자들은 경제에 관한 서로의 견해에 귀 기울이고, 평소 품고 있던 의문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그 이야기는 현대 경제학의 문제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즘은 소위 신고전주의라고 하는 특정한 학파만을 경제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경제학의 학파가 적게는 9개에서 시기에 따라서는 20개씩이나 있습니다. 신고전주의 외에도 다양한 접근법이 있는데 경제학이라고 하면 곧 신고전주의라고 편협하게 생각하니까, 경제학 전체가 틀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겁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안에서 저자는 현재의 주류 학파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비롯해 다양한 경제학파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경제학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주고 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경제학은 곧 신고전주의 학파의 이론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큰 오해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 날 독자들과의 만남에서도 저자는 “신고전주의 내에서도 ‘시장 실패 이론’에 기대어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합리적인 인간과 이기적 선택, 승자 독식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의 이론이 곧 경제학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현재의 경제학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경제학은 특정 방법을 너무 지나치게 쓰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너무나 옳다고 믿기 때문에 거기에 맞지 않는 것들은 모두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론을 정교화한 후에는 그것을 현실에 비춰보고 수정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경제학은 그렇지 않고 ‘이론은 맞으니까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세상이 틀린 거다’라고 합니다.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죠. 접근 방법 자체가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것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종교처럼 되어버린 거죠”
동시에 그는 어떤 학파든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자신 역시 신고전주의 학파가 다른 학파보다 특별히 뛰어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제학 공부한다고 살림살이 나아질까
장하준 교수와 독자들의 대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근본적인 이야기로 파고들었다. 과연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이 우리 삶에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냐는 것.
“경제학은 처음부터 위정자들이 나라를 경영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만든 학문이기 때문에 일상과 떨어진 이야기가 많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현실과 별로 관계없는 것 같은 경제 정책들이 사실은 삶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정부에서 고용에 관한 법을 바꾸면 우리의 임금이나 일자리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죠. 그렇게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다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학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죠. 매일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언제 그런 문제까지 신경 쓰냐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온 국민이 조금씩 신경을 쓰고 있지 않으면, 알지도 못한 채 당하는 거예요.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자기 이익을 지기키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경제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발언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현실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독자들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를 향해 ‘경제학을 지침 삼아 시도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물었다.
“우선 지금의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이해해야 하는데요. 그럴 때 경제학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부분이 경제 문제와 얽혀있으니까요. 한 명 한 명이 사회 질서를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제한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좌절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시민으로서 투표를 하고, 회사에서 노조원으로 활동을 하고, 봉사 활동을 하는 일들이 모두 모여서 사회가 바뀌는 거예요. 또 그런 식으로 우리 사회는 많이 바뀌어 왔고요”
한 개인이 사회 질서를 바꾸기 위해 하는 일이란 너무나 제한적이고, 또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움직임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50년 뒤에는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50년 후를 보고라도 그것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100년 후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는 데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야 50년 후에 바뀔 것이 30년 후에 바뀌고, 바뀌지 않을 것이 50년 후에라도 바뀌게 되는 겁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면 사회를 조금이나마 좋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조금씩이라도 행동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장하준 교수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기회 균등에 대한 환상’에 감춰져 있는 오류를 지적했다. 경제적으로 잘살지 못하는 사람은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경제적 결과의 원인은 결국 당사자에게 있다는 생각이 결코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개인과 구조 모두를 이해해야 합니다. 흔히 자유 시장주의 우파에서는 구조는 모두 빼버리고 개인에만 집중해서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능력이 없고 노력을 안 해서 경제적으로 잘살지 못하는 거라고 말하죠. 우리 사회에도 그런 생각이 굉장히 많이 퍼져 있고요. 사회 구조라는 건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겁니다. 우파에서는 기회의 균등이 중요하고 결과의 균형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건 개인에게 달려있는 것만은 아니죠”
그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도 ‘공정한 경쟁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반문한 적이 있다. 같은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해서 공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물었던 것. 달리기에 참가한 이들이 모두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럼에도 이 게임은 동일한 위치에서 출발했으니 공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장하준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유럽의 경우에는 복지를 확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사회 계층 이동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부모 소득과 자식 소득의 상관관계가 매우 낮아요. 반면 미국이나 영국, 포르투갈 등의 나라는 무척 높죠. 복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서는 실제 기회 균등은 없는 겁니다.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워야하는 거고요.
물론 개인의 책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죠. 똑같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더 노력해서 잘 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예외고, 기본적으로 모래주머니를 찬 상태에서 같이 달리기를 시작하는데 경쟁이 될 수가 없죠. 차이를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가 되는 거예요. 과거 일부 좌파는 이 모두가 구조의 문제라고 보고 개인의 책임을 면죄시켜주는 오류를 범했지만, 이것이 모두 개인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더 좁은 시각이죠. 구조를 못 보는 것이니까요”
개인의 경제적 상황의 원인을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도 찾는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장하준 교수를 진보적인 경제학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그가 대기업 친화적인 주장, 개발 독재 시대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친다는 이유로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각 나라마다 그리고 각 시대마다 다르”기 때문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그리고 개발 독재 시대를 옹호한다는 일부의 비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의 체제가 불가피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산업은 조립 가공 산업밖에 없었습니다. 조립 가공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생산해야 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하지만 그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그를 위해서 군부독재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죠. 대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게 군부 독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울러 그는 이제 대기업 중심의 개발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중소기업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 가장 취약한 기계 부품 소재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그런 기업을 키워야 하고요. 중요한 건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지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거예요. 물론 재벌들의 영향도 필요하죠. 반도체 산업 같은 경우에는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재벌이 아니고서는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야를 제외하고는 가장 시급하게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기계 부품 소재 분야입니다. 이제 우리 경제의 초점이 중소기업으로 옮겨가야 하는 거죠”
이날 장하준 교수와 만난 한 독자는 ‘경제적 쟁점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에 장하준 교수는 ‘경제 전문가들이 제대로 구실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답했다. 그것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집필하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정제해서 이야기해야죠. 자신의 주장에 깔려 있는 가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야 하고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의견을 결정할 때)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많은 분들이 경제 관련 논쟁을 이해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쓰게 됐습니다. 책 속에서 “무엇을 생각할까보다 어떻게 생각할까를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적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우리를 둘러싼 경제적 문제와 현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묵직하지만 무겁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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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저/김희정 역 | 부키 | 원서 : Economics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인 장하준이 쓴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30여 년간 유일한 경제학적 진리로 군림하면서도 금융 위기에 아무 해법도 내놓지 못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제학적 접근법을 소개하여 경제와 경제학을 새롭게 보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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