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소년에게, 오성은
채널예스에서 연재 중인 『바다소년의 포구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오성은이 건네는 소리는 생소하면서도 익숙하게 들린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태어난 존재이니까.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1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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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다. 우선, 바다는 인간이 노동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얻었다. 고된 노동으로 힘들 때는 광활한 바다를 보면서 위안을 얻기도 했고,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기도 했다. 바다는 인간에게 실로 많은 걸 줬다.

 

세월이 흐르면서 바다의 의미도 많이 달라진 듯하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바다는 여행지라는 의미가 강해진 것 같다. 바다에 위치한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도 바다는 일상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비일상의 공간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바다에서 일하고 바다를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존재한다.

 

『바다소년의 포구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채널예스에서 연재한 동명의 에세이가 책으로 나왔다. 스스로 문학도라 칭하는 오성은은 우연히 함께하게 된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수십 곳의 포구를 돌아다녔다. 포구는 바다와 사람, 희로애락, 물고기들이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10문10답-오성은

 

첫 책인데요. 문학도로서 소설이나 시집이 아니라 에세이집이 첫 책인데요. 어떤 느낌인가요.

 

장기간 여행 중이기에 타국에서 어렵게 책을 구했어요. 책을 구해준 서점 주인과 가격을 두고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항공료와 관세로 거의 두 배나 가까운 돈을 주고 책을 구입했습니다. 질감이나 무게가 다른 사람이 쓴 책처럼 낯설었어요. 표지를 본 이후, 무의식적으로 가격표를 보게 되더군요. 아무래도 책은 상품이니까요.

 

책은, 바다에 던져놓은 그물을 비로소 끌어올리는 일인 것만 같아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촘촘하지 못한 그물이라 할지라도 깊은 바다를 헤맨 흔적이 있는 책을 건져 올리고 싶었는데요. 책이라는 콘텐츠만 놓고 본다면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을 떠나서, 여전히 저는 소설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더 애쓰고 아파야 할 무언가가 남아 있는 셈이죠.


포구에 매료된 계기는.

 

포구에 매료되어 포구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쓰다 보니 매료되었다는 편이 정확한 표현이겠죠. 무언가를 쓰기 위해선 그 대상을 읽어내야 합니다. 읽는다는 건 이해의 척도에 가깝죠. 제대로 이해하려면 대상의 흑과 백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과 만나야 합니다. 포구를 읽고 이해하려 애쓰다 보니, 그곳에서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친구를, 스승을, 기어이 나를, 만나게 되더군요. 포구를 여행하며, 이유 없이 아프고, 기뻤어요. 그 감정을 글로 써내는 순간, 저는 포구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책의 핵심 단어를 노동, 포구, 먹거리 등으로 읽었습니다만, 저자가 직접 책의 키워드를 몇 가지 꼽아준다면?

  
스무 살 신입생 때였어요. 동기 여럿이 둘러앉아 마피아 게임을 했는데요. 눈을 감고, 마피아로 지목된 사람들끼리 고개를 들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어요. 고개를 들고 내리는, 그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거리에 비례하여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단번에 마피아를 지목해낸 유능한 시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러한 일이 있었던 이후에 저 스스로 청각이 예민한가 물음을 던지자, 정말로 청각이 예민해졌다는 사실이에요. 에피소드(이야기)는 때론 과장된 채 만들어지지만, 어쨌든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저는 포구의 '소리'에 예민해지고 싶었습니다. 뱃고동과 하모니카, 몽돌이 구르는 소리와 목탁소리, 그물이 건져지는 소리와 노선장의 한숨 소리. 그 속에 생명이 있고, 삶이 있다고 믿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포구가 남해 쪽이 많은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KBS(부산)에서 '바다에세이 포구'라는 프로그램을 1년 동안 진행했습니다. 매주 새로운 포구로 떠나야 하는 방송 시스템상, 아무래도 부산과 가까운 곳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죠. 지역마다 물때가 다르고 파도의 세기, 잡히는 어종이 다릅니다. 어민들의 사투리조차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니 매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물론 충청도의 포구와 동해, 서해의 포구들도 다녀왔죠. 하지만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했고, 그래서 쓰지 않았어요. 그곳들을 다시 찾아야 할 이유를 남겨둔 셈이죠. 남해를 특히 예찬한 이유는, 그곳의 공기 때문일 거예요. 햇살과 바다와 흙과 사람. 단 한 번도 섭섭하게 돌아온 적이 없습니다.

 

바다는 본인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산의 정상은 오르막 끝에 솟아있고, 바다는 내리막 끝에 펼쳐져 있습니다. 정상은 한 점이지만 바다는 무수한 점이죠. 정상은 유일하지만 바다는 무한합니다. 그래서 바다가 좋아요.
 
불어의 엄마(m?re)와 바다(mer)는 발음이 같습니다. 인류의 태초, 문명의 기원, 즉 어머니의 양수라 할 수 있는 바다는 어쩌면 태어나기 이전에 놔두고 온 것, 그리하여 되찾고자 갈망하는 순수, 닿을 수 없는, 죽어서야 다시 찾게 되는 미지의 세계인지도 모르겠어요.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이 허망한 진리가 일상에 스며들 때, 소중한 것들이 생겨나죠. 포구에 대해 나름의 술수를 부려놓았어도, 아직 바다에 대해 말할 깜냥은 되지 않는 것 같네요.

 

10문10답-오성은2

 

글을 보면 생선에 관한 지식이 해박한 듯한데요. 요즘 청년답지 않아요. 비결이?

 

실제로는 해박하지 않습니다. 포구에 가면 저절로 얻게 되는 잡지식을 그럴싸하게 표현했을 뿐이죠. 어린 시절, 자갈치와 가까이 산 덕을 제법 보았을 겁니다. 아직도 조타기를 놓지 못하는 아버지의 덕을, 전라도의 섬마을에 살고 계신 할머니의 덕을, 삼면이 바다로 이뤄진 이 나라의 덕을, 70%가 바다로 이뤄진 지구의 덕을 본 셈이죠. 책으로는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큰 도움이 되었고, 손택수의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도 여러 번 들추었어요.

 

채널예스 연재 제목이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였는데, 솔직히 ‘소년’은 아니지 않나요.

 

부끄럽게 만드는 질문이네요.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이성복, 정홍수, 함민복, 김창완, 이문세 등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모두 소년이에요. 세월의 풍파로 주름은 늘었을지언정, 눈빛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맑아져요. 바다 사내들에게서 유독 시인의 눈빛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전공을 발휘해 변명하자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소년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소년이 어른이 되는 이야기는 뻔하죠. 어른이 소년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어느 포구라고 소중하지 않은 곳이 있겠느냐만. 가장 인상적인 포구는 어디인가요?

 

하나만 고르라면 할머니가 계신 여수 낭도의 작은 포구를 택하겠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이리(승냥이) 같다고 해서 낭(狼)도라 불리는 섬이지만 물결 낭(浪)을 붙여도 좋을 것 같아요. 낭도라 소리 내 부르기만 해도 쏟아지는 햇살 아래, 대나무를 휘어 만든 활대를 든 소년들이 의기양양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요. 보이스카웃 양말을 무릎까지 올려 신고 모험을 떠났던 그 곳. 절벽 아래로 파도가 넘실대고, 먼바다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날리고, 내 앞에는 9년 전 돌아가신 사촌 형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형과 함께 자갈밭을 뛰어 놀기도 하고, 뗏목을 만들어 먼 바다로 나가기도 했죠. 미끼 없이 낚시를 던져도 넓적다리만한 생선이 바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왔죠. 어쩌면 낭도의 포구는 평생 쓸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포구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죠. 그래야, 계속해서 찾을 테고.  
 
책에 담긴 포구를 꼽으라면, 이청준 선생님의 생가가 있는 진목 포구입니다. 지금은 사라져서 가까운 삭금 포구가 그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아직도 진목 마을에는 파도의 소리와 모래의 질감이 남아 바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선생의 소설을 들고 찾는 여행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외국 포구도 몇 군데 다뤘는데, 한국 포구와는 분위기가 달랐을 것 같은데요.

 

우리네 포구에서는 젊은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삶의 형태가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가업을 잇거나 바다를 지키려는 가치는 점차 빛을 잃어가는 추세죠. 하지만 이국의 포구에서는 부자(父子)가 함께 조업을 나가는 풍경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물론 그러한 풍경만으로 옮고 그름을 속단할 수는 없지만 포구를 생동감 있고, 활기차게 만드는 요소임은 분명합니다. 다른 나라의 포구는 관광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글로 쓰기 쉽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짧은 일정으로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깊숙이 들여다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개인적인 경험을 이끌어와서 제법 난잡스러운 술수를 부려놓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바다란, 다른 언어를 쓰지 않는 그 바다란, 놀랍게도 마음의 위안을 준 것만은 사실이에요. 짠내 가득한 바람에 몸을 맡기다 보면, 파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연의 소리만한 만국공통어가 또 있을까요.

 

소설은 항상 갈망하고 있다고 했는데,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언젠가부터 나만의 문체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문학청년에게 권태가 온 것이겠죠. 권태는 자기비하로, 한탄으로 이어졌어요. 글에서 독보적인 개성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는 것인가...... 하지만 어디까지나 권태일 뿐, 저는 여행을 통해 비참의 늪에서 빠져나와 용기를 내려고 합니다. 여행은 제가 선택한 삶을 누구도 카피할 수 없다는 확신을 주거든요. 자신의 삶을 녹여내는 글이라면, 세상 누구라도 가치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광활한 망망대해를 면면히 살피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과장된 망상이고요. 양손으로 바닷물을 들어 올렸을 때, 그곳에 하늘이 비치고, 손가락의 마디가 조금 흐트러져 보이고, 나의 얼굴이 작은 물결에도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눈앞에 있는 것부터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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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 오성은 저 | 봄아필
마도로스의 아들로 부산에서 태어나 아직 청춘의 바다를 건너고 있는 젊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그곳에 서서 잠시 읽어보는 것, 그려보는 것, 그리고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누구나 지금 당장 푸른 바다를 품은 포구를 향해 떠날 수 있다. 이들 포구로 향하는 길은 분명, 언제나 청춘 같은 삶의 힘찬 생명력을 발견하는 기쁨이며, 다시 삶의 소중함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바다를 통해 더 넓고 깊은 마음을 품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만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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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 #바다소년의포구이야기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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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4.08.22

어린 시절 바다가 보이는 시골에서 항상 배 들어오고 나가는 광경을 보고 자랐기에 자못 흥미로운 포구 이야기로 비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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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2014.08.21

넓디넓은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 자신은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며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지요. 무언가 뻥 뚫린듯한 기분. 뭐든지 이뤄질것만 같은 그런 존재. 과연 이 책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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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ziner

2014.08.21

책 안 읽는 이 시대 드문 문학소년이네요. 응원하겠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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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