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과 영국의 애국주의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gin 말고 ale을 마시자는 내용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마르크스가 목격했던 영국 노동자들의 맥주 사랑은 18세기 영국 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글ㆍ사진 이택광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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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의 60% 이상이 맥주가 건강에 좋다고 믿는다는 통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술은 건강에 나쁘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대다수 영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그냥 생겨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한 gin이라는 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Gin은 쉽게 만들 수 있고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우리의 소주처럼 ‘서민주’로 각광을 받았지만, 도수가 너무 높다는 문제가 있었다. Gin에 중독된 노동자들의 건강 악화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 시작했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술로 인한 노동력 손실은 경제발전을 정부 정책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자유주의 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당시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주류 소비를 전면적으로 금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1830년에 발령된 것이 바로 Beerhouse Act다.


Beerhouse Act는 자유롭게 유통되던 gin을 통제하고 주류 소비를 맥주로 대체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주요 이유는 경제 문제였다. 당시에 gin은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술이었다. 재료도 영국에서 구하기 힘든 juniper berry라는 나무 열매였다. 그러나 Beerhouse Act로 인해 맥주는 정부의 인허가를 받은 이들만 제조해서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영국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gin보다 맥주를 많이 생산하는 것이 세금 걷기에 유리했다.

 

물론 이때 영국에서 맥주라고 불렸던 것은 ale을 지칭한다. 영어로 맥주는 beer 또는 ale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크게 구분 없이 쓰지만 과거에 둘은 엄연히 다른 술이었다. Beer가 더욱 일반적으로 쓰였고, 원래는 음료수 일반을 의미했다. 따라서 beer의 일종이 ale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Ale과 다른 종류의 beer로 lager가 있다. Lager와 ale은 원료로 hop을 쓰는지의 여부와 발효시킬 때 온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난다. Hop을 쓰지 않고 높은 온도에서 발효를 하는 맥주가 바로 ale이다. 보통 섭씨 15도에서 24도가 ale을 발효시키는 온도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beer는 lager를 지칭하기 때문에 beer와 ale이 다르게 쓰였지만 둘 다 hop을 원료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을 여행하다 보면, 도시에서 주로 beer라는 말을 사용하고 시골에서 ale이라는 말을 고집하고 있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차이는 없어졌지만 문화적인 차원에서 여전히 차이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ale은 영국을 상징하는 술이다. 오죽했으면 카를 마르크스조차도 프랑스 노동자들이 포도주를 조국의 술로 여기듯 영국의 노동자들도 맥주를 조국의 술로 믿는다고 갈파했을까. 마르크스가 제대로 짚었듯이 영국인에게 ale은 계급과 신분을 초월해서 영국을 대표하는 술이 되었다. 그래서 이민과 교류가 활발한 도시에서 beer라는 말을 선호하는 반면, 아직도 영국적인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시골은 ale이라는 말을 고수하는 것일 테다.


Ale이라는 말은 영국의 애국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앞서 말했듯 gin과 ale은 묘한 긴장관계에 있었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gin이 너무 독해서 건강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gin을 마시는 대신 ale을 마시도록 권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는 곧 유통망을 정비해서 합법적으로 인가를 받은 제조업자들만 주류를 제조하거나 판매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방책이었다. 상대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은 ale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신화가 이때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gin이든 ale이든 많이 마시면 건강에 나쁘다. 어차피 섭취하는 알코올의 양이 문제이니 gin이 특별히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다. Ale이라는 말에도 어원적으로 ‘중독’ 또는 ‘마법’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딱히 ale이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고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후일 ale 또한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절제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니, gin이 ale보다 지나치게 해로워서 영국 정부가 gin을 억제했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Beer Street and Gin Lane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Beer Street and Gin Lane」


여기에는 Dutch에 대한 영국인들의 혐오도 깔려 있었다. 영국 동남단에 있는 Anglia라는 지역에 가보면 오래된 맥주양조장들이 있는데, 당시에 gin과 ale을 함께 취급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Gin보다 ale을 장려한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동기에서 기인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 정치적 동기의 핵심이 바로 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경제활동 보장을 정치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상이다. 정치경제학은 자유주의의 국정 철학이다. Beerhouse Act는 이런 국정 철학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내수공업에 지나지 않았던 영국의 맥주 제조업은 18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기업화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정부의 입법화는 이런 경제성장의 과정에 발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미셸 푸코라는 프랑스 철학자에 따르면 초기 자유주의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정의라는 것은 justice를 의미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justice는 공평무사함을 뜻한다. 성서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바로 justice의 고대 판본이다. 원래 justice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의미했다. 이 의미가 정치적으로 확대되어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social justice가 되었다. 여하튼 18세기 영국의 자유주의 정부에게 중요했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시장의 정의’였다.


‘시장의 정의’는 상인들이 공정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불법 요소를 척결하는 각종 법을 제정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gin은 불법적이고 건강에 해로운 위험한 술로 낙인 찍혔다. 여기에 gin이 Dutch를 대표하는 술이라는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영국에서 Dutch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자연스럽게 ale의 지위가 상승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음성적으로 유통되던 gin을 양성화해서 주세를 제대로 징수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의 허점을 이용한 시장질서의 교란은 근절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방안이 바로 맥주 제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었다. Beerhouse Act는 누구나 맥주를 제조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추는 조치였다. 덕분에 2파운드만 내면 일반 가정에서도 맥주를 제조해서 판매할 수 있었다. 맥주의 유통을 활성화해서 gin의 소비를 줄이자는 취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맥주였을까. 술 대신 커피를 장려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영국에서 coffee house는 자유로운 공공 영역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모여 토론했던 공간이 coffee house로 당연히 정부와 무관하게 자유로운 장소였다. 언론?결사의 자유를 대표하는 곳이 coffee house였다면, 맥주를 마시는 공간인 public house는 각종 상거래 행위가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상인들의 장소였던 셈이다. 이 public house를 줄여서 pub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주식거래소나 은행 주변에 있는 pub은 자신들의 business를 위해 모인 이들로 북적거렸다. 말하자면 이미 pub을 중심으로 맥주 유통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고, 이렇게 이미 형성된 시장구조를 이용해서 gin 유통을 억제하고 ale 유통을 활성화해서 세수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 Beerhouse Act의 목적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영국의 Anglia에서는 지금도 그렇듯, Gin을 유통시켜서 돈을 벌었던 이들이 맥주 제조까지도 독점하는 일이 벌어졌다. 독점을 해체하고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고자 도입했던 법령이었지만 효력이 크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Gin의 유통을 억제하고자 했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됐다. 윌리엄 호가스라는 영국의 화가가 그린 「Beer Street and Gin Lane」이라는 작품을 보면, 당시에 맥주 장려 운동이 일종의 애국주의 마케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gin 말고 ale을 마시자는 내용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마르크스가 목격했던 영국 노동자들의 맥주 사랑은 18세기 영국 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프랑스 포도주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이 호가스의 그림에 가감 없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면 당시 맥주 산업이 영국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ale이 건강에 좋다는 신화가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런 신화가 국가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창안되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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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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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우산

2014.07.24

처음엔 에일이 뭔가 했어요.^^ 영국인의 술,ale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날을 꼽아보면서.
재미있는 영국의 술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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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에 자신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환경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으며 우주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려서 꽤 큰상을 받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는 자신의 모토를 "그림의 잉여를 드러내는 글쓰기" 라고 밝히며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의 대리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림에 대한 글을 계속 쓸 생각이라고 포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 21>에 글을 발표하며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저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