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이라 하면 올 2월 있었던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과 동명의 사진에세이 『다른 길』 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렇다.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 내 다른 길, 도시 텃밭 입문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정규교육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나와 20대 중반에 ‘직장인’이라는 직업 아닌 직업을 갖게 된 ‘뻔한 정신 노동자’. 그게 바로 나다. 경제학을 전공한 필자는 은행에 입사하고 싶었으나 말도 안 되는 학점을 보유하고 있음을 깨닫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뭐, 운이 좋게 일을 시작했더라도 내 돈을 어마어마하게 채워놓았을 것 같긴 하다. 어찌저찌하여 이 또한 ‘운이 좋게’ 대한민국 1등 인터넷서점인 예스24 (슬로건을 붙이는 건 업무병이다. 양해 부탁 드린다)에 입사한 난 이 글을 쓰는 6월 9일 지금, 만 6년 6개월 19일, 2,393일을 내 첫 직장에서 보내고 있다. 헉헉!!
거의 모든 입사 초기가 그렇듯 업무를 머리와 몸에 익히고 쓰나미 같은 일감으로 야근을 밥 먹 듯하던 1~4년차 시절. 되돌아보니 그때쯤부터 ‘번아웃’이란 게 시작된 것 같다. 그리고 ‘쉬고 싶다’ ‘떠나고 싶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라리 얄라’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나에겐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지금 일 말고는 없었다. 공부는 죽어도 싫어 교대 편입학이나 공무원 준비를 위해 떠나는 사람을 보며 ‘난 절대 못 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를 우선 알아보자.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 자신을 알라’.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나에게 어울리는 옷은 뭐지? 이걸까? 안 될거야?를 왔다갔다하며 몇 년을 보냈다. 사계절의 냄새에 설레고 초록색의 식물들과 직접 채소를 키워서 먹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걸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 수 있겠어?’ 싶었다. 더욱이 책상받이 20여 년…. 몸으로 하는 건 당장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저 되는 것은 없다
그러다 작년 2월 집 앞 5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텃밭을 시작한다는 단체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어머! 이거야! 그래 가보자! 5년 묵은 피로물질과 활성산소가 가장 활발한 토요일 아침 꾸역꾸역 눈을 밀어 올리고 대학로 ‘마르쉐’라는 장터에 그들을 만나러 갔다. ‘파절이’ 아. 이 삼겹살 땡기는 이름은 뭐지? 싶었지만 ‘파릇한 절믄이’를 발견하곤 파릇하게, 젊게, 함께 길러 먹고 즐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시농업’, ‘로컬푸드’ 이상적으로만 생각했던 단어들이 일상어로 녹아 든 대화를 들으며 ‘다른 길’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싹을 틔웠던 것 같다. 뒷풀이 때 각자 자기소개를 하다 ‘아, 난 혼자가 아니었어’ 라는 생각과 함께 엉엉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아 창피해.
그렇게 시작된 파절이 생활. 전화번호부 같은 『텃밭백과』도 사서 읽고 토마토, 바질, 애플민트, 스피아민트, 레몬밤, 가지, 오이, 단호박, 쌈채소 등을 키워보았다. 그렇게 옥상 텃밭 첫 농사를 보냈다.
두 번째 해 초여름인 지금. 고수, 이탈리안 파슬리, 루꼴라에서 피는 꽃에 벌도 찾아오고 나비와 곤충 등 옥상생태계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 뿌듯하다. 5층 옥상문을 열면 작물샘과 사람샘이 말라 있던 내 머릿속을 축여주는 것 같다. 그사이 도시농업 협동조합의 모습을 갖추었고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틈틈이 옥상에서 밥상을 나누며 서로의 다른 삶을 응원하고 있다. 각자의 몫인, 『1인분 인생』을 말이다.
거저 되는 것은 없다. 시행착오와 갈등도 겪고 잠시 뜸할 때도 있지만 누군가는 자리를 지키고 그렇게 오고 가는 게 공동체인 것 같다. 우린 모두 함께이고 싶어하고 긴밀히 나누고 싶어한다. 하지만 일상에 치여, 내 생각에 막혀 시도해보지 못할 때가 많다. 작년 2월 피로를 떨치지 못하고 마르쉐를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파절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난 그 ‘다른 길’에 전적으로 들어서지는 못했다. 『반농 반엑스(X)』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반농 반엑스(X)란? “농사를 조금 짓고, 나머지 반은 엑스, 화가도 좋고 교사도 좋다.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나머지는 좋아하는 일을 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자”는 뜻이라 한다. )
다른 길을 찾고 싶은가? 이 길 아니면 요 길로, 요 길 아니면 저 길로 옮겨가며 다른 길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고 먹고 마시자. 그때 그 길이 ‘같은 길’이 되지 않을까.
참고: 파릇한 절믄이가 궁금하시다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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