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대량소비의 ‘20세기 건축’에 반기를 든 건축가가 있다. 그는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20세기 건축과 ‘격투’를 벌였고, 그가 찾은 결론은 ‘장소’였다. 어디서나 통용되는 건축은 그의 콘셉트가 아니었다. 그 장소에서만 가능한 ‘장소성’을 띤 건축. 눈에 띄고 특별한 건축. 그것을 위해 그는 ‘세계를 달리며, 내일을 짓는다’. 아울러 또한 그는 ‘죽음’을 생각하는 건축을 늘 구상한다. 그래서 콘크리트보다 나무와 같은 재료를 선호한다. 생물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가 구마 겐고다. 그가 한국을 찾았다.
“지금 살아 있는 저는, 다른 말로 하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건축물을 만드는 일을 제대로 생각하고 싶습니다.”(『나 건축가 구마 겐고』273쪽)
구마 겐고와 동료들의 건축물
구마 선생은 세계 각국에 뿌려진, 동료들과 함께 한 건축물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었다. 한국에서도 프로젝트를 했거나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NHN 춘천연수원 프로젝트도 있다. 경사면에 건물을 얹힌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경사면에 건물이 녹아있는 것처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즉, 지형 위에 건물이 선 것이 아닌 지형과 건물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것. 강연회를 통해 이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아직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단계다.
제주에서도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제주 볼(Jeju ball)’이라는 프로젝트. 볼 형태로 돌을 쌓은 빌라촌이었다. 빌라를 소박하고 외부의 풍경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녹아들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빌라 안에 들어갔을 때 색다른 공간의 체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생각을 담았다.
“만족하는 프로젝트다. 이 건물의 처마 부분은 철로 된 구조에 돌을 끼워 넣어서 만들었다. 콘크리트 위에 돌을 얹었다. 겉으로 보기엔 돌이지만, 안을 보면 금속으로 된 철망이 있고 돌을 끼워서 빛이 투과되도록 만들었다. 나는 한지를 좋아해서 바닥과 벽을 한지로 마감했다.”
이어 소개한 ‘발룬 라이프(Balloon life)’는 2008년 서울 리빙디자인페어에서 만든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의 메인은 풍선이었다. 풍선에 헬륨가스를 넣어서 풍선이 떠 있는 상태에서 천을 씌워서 공간을 만든 것. 안에 있는 가구들도 풍선으로 만들어져 있다. 독특한 소재와 모양의 실험적 건축이다.
안양에 있는 ‘페이퍼 스네이크(Paper Snake)’(2005)의 테마는 종이였다. 장소와 소재를 늘 함께 생각하는 구마 선생은 한국이 종이문화가 발전한 나라이며, 종이가 한국의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한국의 평상문화까지 주목해 만든 것이 이 프로젝트였다. 제주의 ‘낭창낭창(Nangchang-Nangchang)’도 그의 프로젝트였다.
“낭창낭창은 일본 개그맨의 이름인데(웃음), 한국의 한 지역 사투리로 알고 있다. ‘반응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바닥면을 걸어가면 구부러진 대나무결이 움직인다. 걸으면 그것이 울리고 반응을 하는 것이 재밌다. 그런 것이 콘크리트 건축물에선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바닥에 작은 마이크를 설치해서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
이어 해외의 다른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프랑스의 ‘프로방스 음악홀’은 액상프로방스의 음악홀 프로젝트다.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언급한 구마 선생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그림자’였다고 설명했다. 즉, 그림자로 만든 건축을 하고 싶었다.
“세잔느가 액상프로방스에서 유명한 사람인데, 그림자, 음영을 중시한 화가다. 알루미늄 패널을 만들어 거기에 비친 빛이 그림자를 만들도록 했다. 실내는 나무를 사용했다. 음악홀의 좌우대칭을 따지지 않았다. 일부러 좌우대칭을 하지 않은 것이 음향에도 좋은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음향효과가 굉장히 좋다는 평가도 받았다.”
파리에 있는 ‘맥도날드 커뮤니티센터’는 건축가들의 콜라보로 만들어지는 프로젝트다. 500m짜리 콘크리트 창고건물을 리노베이션 해달라는 의뢰로 시작됐다. 6명의 건축가가 구획을 나눠 각자 건축하고 있다. 올 9월에 완공 계획이며, 안에는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일본의 것이라고 빠지지 않았다. 큐슈에 있는 ‘Kyushu Geibun-kan’은 지난해 완공된 것으로 공간을 잘게 분절한 것이 특징이다. 작은 공간마다 개별적인 지붕을 씌워 그것이 모여 하나의 건물이 되도록 한 것. 프로젝트 규모는 클지만, 작은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내부 공간은 나무를 사용, 별관은 나무를 엮고 끼워서 만들었다. 증축이 간단하게 이뤄지도록 구상했다. 단면으로 된 부분들이 삼각형으로 서로 엮여있어서 구조적으로는 강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부터 큰 관심과 주목을 받은 ‘Dazaifu Starbucks’. 다자이부신사 앞의 참배길에 있는 스타벅스다. 독특한 나무 구조의 이 건축물은 관광명소로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구마 선생은 이 카페의 인테리어 요소로 나무를 사용하지 않았다. 건물의 구조체로 나무를 사용했다. 네 개의 나무를 깎고 엮어서 구조체의 한 세트로 만들었고, 이를 계속 이었다.
“스타벅스는 이전에 외부 디자이너를 불러서 카페 설계를 한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도 스타벅스 본사에서는 처음에는 반대했는데, 강하게 설득했다. 일단 완공된 뒤 이것을 보러 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시애틀 스타벅스 본사에서 강연을 해주지 않겠느냐며 의뢰가 왔다(웃음). 공사 중 스타벅스 매뉴얼보다 공사비가 몇 배나 더 들었는데, 본사에서 당시 커피 몇 만 잔을 팔아야하는지 아느냐며 화를 냈는데, 지금은 손님이 아주 많이 와서 좋아한다(웃음).”
이어 향기를 콘셉트로 만들어진 런던의 파빌리온 등을 보여주면서 그는 자신의 건축 세계에 대한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콘크리트보다 나무와 같은 재료를 더욱 선호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약한 건축’을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에 20세기가 콘크리트의 시대였다면 그는 지금은 그것과 다른 미래의 건축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해 미래의 건축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메리카드림, 콘크리트, 샐러리맨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건축을 모색하는 길은 ‘격투’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장소’라는 하나의 단어에 도달했습니다. 장소는 20세기 미국식 대량생산이 가장 어려워하는 점입니다. 20세기는 건축 세계도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원리에 따라 누구나 살 수 있는 건물을 만들고, 그것을 전 세계에 뿌리면 돈을 번다는 생각이 주류가 된 시대였습니다. 그 덕분에 일부 특권계급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건축을 접하거나 소유하며 그 장점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런 20세기의 마지막을 살면서, 저는 ‘20세기에 반기를 드는 건축’을 내내 생각했습니다. 어디서나 통용되는 게 아니라 그 장소에서만 가능한, 눈에 띄고 특별한 건축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음 시기에 요구되는 건축가의 행위가 아닐까 느꼈습니다.”( 『나 건축가 구마 겐고』170쪽)
구마 겐고를 묻고, 구마 겐고를 답하다
콘크리트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콘크리트 건물을 일본에서는 ‘상자건축’이라고 한다. 콘크리트로 만들면 건물이 커진다. 인간은 생명체인데, 자기 스케일보다 너무 큰 스케일이면 압도당한다. 물론 큰 공간이 요구될 때도 있다. 그럴 때도 공간을 분절해서 인간이 그 안에 있었을 때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건축의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본다.
“‘콘크리트의 시간’과 ‘목조의 시간’을 줄곧 생각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의 시간은 콘크리트가 굳어지면서 완결됩니다. 콘크리트에 불로불사의 이미지가 있어서 비로소 영구히 자산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해 목조의 시간은 건물이 완성되면서 시작됩니다. 완성된 뒤에도 보수를 계속하지 않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보수만 정성껏 잘하면 콘크리트보다 훨씬 긴 수명을 얻습니다. 콘크리트 건물은 불로불사를 손에 넣은 것 같은 착각을 주지만 실은 나무보다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수선이라는 요소를 포함해서 두 소재 이면에 흐르는 시간 개념의 차이는 실로 큽니다.”(『나 건축가 구마 겐고』146쪽)
공동주택을 짓는다면 어떤 콘셉트로 어떤 건물을 짓고 싶은가?
주거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공간보다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요구하는,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규모가 있다고 본다. 주택도 같은 관점이다. 집합주거에 대해서는 셰어하우스에 관심이 있다. 독신자 아파트의 경우에도 대단위 구성보다 5~6명이 모여서 하나의 집을 공유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런 것에 대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20세기는 콘크리트가 요구됐던 시대였다. 나는 코르뷔지에의 초기보다 후기 작품을 좋아한다. 이유는 코르뷔지에의 후기 작품은 초기보다 따뜻한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그게 콘크리트일지라도. 코르뷔지에가 똑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작품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은 후기 작품을 좋아한다.
“건축이란 그 장소에 뿌리를 둬야 한다고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는 “얼마나 건축과 그 장소를 분리할 것인가?”가 큰 테마가 된 세기였습니다. 상징적인 존재가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빌라사보아는 파리 교외에 있는 아름다운 녹지에 놓인 단독주택입니다.”( 『나 건축가 구마 겐고』 129쪽)
구조화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나?
많은 건축가는 발상이 기발하거나 재밌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일반적인 건축가는 그림을 그린 뒤 생각을 정리해서 구조 검토를 요청하거나 개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 사무실은 다르다. 프로젝트 미팅할 때 구조화할 수 있는 부분을 놓고 토론을 한다. 프로젝트 그림이 그려지기 전에 같이 이를 하고 있다. 내 작품에도 나무로 된 구조체 작품만 있는 건 아니다. 콘크리트가 구조체가 된 경우도 있다. 문제는 콘크리트로 어떻게 표현을 잘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콘크리트가 주인공이 아닌 인간이 그 공간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가 중요하다.
시공되기 어려운 디자인을 많이 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시공하기 어려운 프로젝트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사무실에서도 현장 이야기를 많이 하고 현장 사람들의 애로나 의견을 많이 반영한다. 그 덕분인지 현장이 끝나면 인부들이 우리 사무실이나 프로젝트의 팬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좋은 관계를 맺고 작업을 하고 있다.
책을 보니,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울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있지만, 서울에서 어떤 부분이 좋은지 묻는다면, 골목이다. 골목을 다니면서 공감각이나 자연스럽게 생긴 도시의 부분에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서울을 다니다 보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뭔가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것은 건강한 도시의 변화라고 본다.
보통 아이디어를 어떻게 떠올리나? 어떤 것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나?
하나의 비결을 말하자면, 나는 설계회의를 할 때 반드시 모형을 올려놓고 말한다. 모형 없이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면 추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끝난다. 모형을 놓고 바라보는 순간,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사무실의 발상의 전환의 비결이다. 그 내용이 책에도 나와 있다(웃음).
직원을 채용할 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건축가로서는 어떤 소양을 가져야 한다고 보며 어떤 노력을 하나?
채용에 대해서도 책에 있다(웃음). 입사지원자에게 오전 10시에 과제를 준다. 밤 10시까지 설계를 해오라고 한다. 그것을 보면서 면접을 하고 채용한다. 가끔씩 설계하다가 사라지는 사람도 있더라(웃음). 건축가가 가져야 할 소양을 꼽으라면 끈기, 끝까지 하는 것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처음에 조금 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끈기 있게 일 하는 것이 건축가로서 꼭 필요한 소양이다.
“해외를 하루걸러 전전하는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는 기본은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사무소 스태프의 능력을 믿습니다. 믿기에 충분한 인재를 모으기 위해 저 스스로 짜낸 ‘당일 설계’라는 면접 방법이 있습니다.”( 『나 건축가 구마 겐고』292쪽)
- 나 건축가 구마겐고 구마 겐고 저/민경욱 역 | 안그라픽스
건축가 구마 겐고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단단하고 깨끗한 건축에서 되도록 먼 건축을 지향해왔다. 3 11대지진 이후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그가 조용히 주장해온 작음, 약함, 자연스러움, 이음, 죽음의 건축 철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자연스러운 건축』 『연결하는 건축』 등으로 한국에 소개된 구마 겐고. 가족과 집을 뜯어고치는 것이 일상이었던 어린 시절에서 건축 데뷔작 M2의 쓰디쓴 실패, 사람이 함께 만드는 아오레나가오카, 일본 건축가의 최대 영예인 제5대 가부키극장까지 그의 즐겁게 정신없는 35년 건축 여정이 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관련 기사]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