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을 앞두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처음 내 흥미를 끌었던 건 여주인공의 이름 때문이었다. 타이틀롤인 극중 주인공의 배역 이름은 오은수(이지아 분). 우연이겠지만 내 첫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의 일인칭 화자와 동명이인이다. 소설이 끝난 뒤에도 자신이 만든 인물들이 이 도시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으리라는 믿음은 어느 작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오래전 연락이 끊긴 절친했던 친구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된 데 대한 기묘한 반가움으로, 또 다른 오은수의 삶을 엿보기 시작했다.
SBS 주말특별기획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은수는 재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여자다. 첫 결혼에서 딸 하나를 두고 이혼했으며 그 딸을 친정부모에게 맡긴 채 재혼해 살고 있는 것이 초반의 설정이었다. 거기에 은수를 잊지 못하는 것이 명백한 전남편, 전남편의 재혼, 현남편의 외도, 딸의 양육권을 둘러싼 분쟁, 임신 등등의 사건들이 맞물리며 극은 점점 복잡해져간다. 그녀는 강단 있고 차분하며 우아하고 또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믿는다)는 측면에서 꽤 매력적인 성격의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내 깜냥으론 절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첫 결혼을 실패하게 만든 바로 그 환경 안으로, 두 번째에도 제 발로 걸어들어갔다. 부자 시부모의 대저택 2층에 사는 삶 말이다. 다정하고 착한 남자와의 첫 결혼이 무참한 실패로 돌아간 원인은 그 남자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왜 또 그런 2층집을 가진 부모가 있는 남자, 즉 부모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남자를 택했을까? 또다시 그 대저택 2층에다 신혼방을 꾸몄을까? 그 물음표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2층집의 상속자인 남자들이 궁금해졌다.
대프니 듀 모리에 원작소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인 <레베카>의 여주인공도 은수처럼 대저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여주인공이다. <레베카>의 여주인공 이름은 레베카가 아니며, 타이틀롤 레베카는 남편의 죽은 전처 이름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영화 평론가 트뤼포는 <레베카>가 동화 신데렐라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잣대로 보아 가진 것 없는 젊은 여자가 왕자님 혹은 부자 남성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는 것은 모두가 익히 아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결말이다. 그러나 <레베카>는 동화가 끝나고 시작된 신데렐라의 진짜 결혼생활이 장밋빛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핏빛의 ‘리얼 잔혹 서사’임을 드러낸다.
말 그대로 우연히 그리고 운 좋게 백만장자와 사랑에 빠져 대저택에 입성한 이 신데렐라는 이 집의 진정한 안주인이 되지 못한다. 그곳에는 이미 확고부동한 안주인이 있는 탓이다. 이미 죽어버린, 레베카라는 이름의 망령이다. 손에 잡히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적은 점점 더 거대하게 느껴지고, 점점 거대해져가는 불안은 가련한 여주인공의 여린 영혼을 차츰차츰 잠식해간다. 또한 우리의 신데렐라를 신경쇠약 직전으로 몰아가는 것은 “그 자리는 네 것이 아니야”라고 끊임없이 세뇌시키는 전처의 충직한 하녀만이 아니다. 그 가장 앞자리에 어쩌면 남편이 있다.
자신이 데려온 여자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이 모호한 남편의 태도는 그녀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택한 이유가 인형을 선택한 것과 비슷하다고 깨닫는다. 이 자괴감은 언제든 (레베카처럼 ‘죽임’을 당하고) 다른 여자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공포와 연결된다. 결국 그녀는 남편의 살인까지 감싸 안는 희생적인 사랑의 제스처를 취한다. 불안에 떨던 그녀는 대저택이 잿더미로 변한 뒤에야 비로소 공범 혹은 본처의 지위를 얻고 영혼의 안식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계층이 차이 나는 남녀의 로맨틱한 결합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은 수없이 많지만, 결혼하고 나서 어떻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이 원하는 어쩌면 판타지는 딱 거기까지만인지도 모른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그 판타지의 뒤편을 비춘다는 점에서 <레베카>를 떠올리게 만든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은수는 얼마나 다른가? 일단 그녀는 어떻게든 참겠다는 제스처를 버린다. 저택의 2층 계단을 제 발로 걸어나와 또 다른 남자를 만나는 방법을 찾는다. 당당해야 한다고, 꿀릴 것 없다고 되뇐다. 영원히 사랑한다 속삭이는 새로운 남자가 사는 새로운 저택 안에도 ‘레베카’가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채.
<레베카>의 남편에게 치명적 비밀이 있었던 것처럼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잘난 남자들에게도 결정적인 취약점이 있다. 제아무리 여자를 사랑한다 외치더라도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부모’를 품고 있다는 점! 첫 남편인 태원은 ‘노우’라고 말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는 수동적인 방식으로, 새 남편인 준구는 강력한 부친의 존재 앞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구는 일탈적인 방식으로 각각 그렇게 한다. 겉보기는 다르지만, 부모를 절대로 거역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한 배에서 나온 이란성 쌍생아이다. 부모의 대저택을 합법적으로 상속받아야 하는 한 영원히 그럴 것이다.
결말 부분에 거의 이르러 태원이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다는 채린의 진실을 알고서 그녀를 보듬는 태도로 급변한 것은 이 유약한 남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결말이다. 그가 기적적으로 껴안은 건 불쌍한 채린이 아니라, 오랫동안 학대받아온 자기 안의 어린아이이므로. (어떤 폭력은 사랑의 형태로 지속된다!) 그런 면에서 태원과 채린은 함께 상처를 치료해가야 할 일곱 살 커플일 것이다.
욕망의 세부가 더욱 복잡다단해진 21세기 서울에서 레베카의 집을 두 번 연거푸 뛰쳐나온 은수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세 번째 결혼? 세 번째 남자는 누구든 부모의 저택 2층에 신혼방을 마련하는 ‘레베카의 남편’은 아니기를 바란다. 내 친구의 동명이인에게 이제 그 정도의 혜안은 생겼기를.
-소년과 남자의 경계는 무엇으로 정해지는가?
-특별한 남자, 10년 후 모습도 알고 싶다면...
-사랑, 사람의 마음은 해독 불가능한 언어
-명예도, 가족도 잃은 한 남자의 외로운 투쟁
-이거 혹시 나만 모르는 쇼 아니야?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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