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도, 가족도 잃은 한 남자의 외로운 투쟁
소송을 하기로 결정한 미하엘 콜하스는 그 지역을 다스리는 공주에게 소송장을 내러 간다. 그 대신 떠난 아내는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다. 그리고 하나 뿐인 어린 딸의 목숨을 담보로 위협을 해온다. 불의의 공권력이 저기 있다. 나는 정당하고 억울하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글ㆍ사진 정이현(소설가)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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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난히 선택을 못 하는 인간이다. 결단의 순간을 미루고 또 미루며, 내 몸과 영혼이 온전히 한쪽 길로 접어드는 일을 번번이 회피하며 살아왔다. 하나를 선택하면 필연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또 하나의 길이 아쉬워서는 아니다. 구태여 짐작하자면 아마도, 선택과 동시에 내 어깨 위에 오롯이 떨어질 책임의 무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책임을 내가 과연 짊어지고 걸어갈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그건 다시 말하면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현재의 상태를 만끽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원히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 그런 평안한 안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나 죽은 뒤라면 모를까, 사는 동안 그것은 가당치 않은 바람일 것이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 를 원작으로 하는 아르노 드 팔리에르 감독, 매즈 미켈슨 주연의 새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이 피할 수 없는 선택(들)에 직면한 한 인간의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그는 16세기 말 프랑스에 살던 말 중개상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가진 가장이고, 편히 먹고 살 만큼의 충분한 재산도 있다. 어느 날, 다른 지방으로 넘어가려는 다리에서 새 남작이 강압적으로 통행료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반발하자 말 두 마리와 하인 한명을 맡기고 떠나라고 한다. 알고 보니 통행료가 있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었다. 이를 항의하는 그에게 돌아온 건 고된 노동으로 엉망이 된 말들과 도둑 누명을 쓰고 폭행당한 하인이다. 이에 소송을 하기로 결정한 미하엘 콜하스는 그 지역을 다스리는 공주에게 소송장을 내러 간다. 그 대신 떠난 아내는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다. 그리고 하나 뿐인 어린 딸의 목숨을 담보로 위협을 해온다. 불의의 공권력이 저기 있다. 나는 정당하고 억울하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라고. 미하엘 콜하스는 당시의 세상에서 용인하는 정당한 방법으로는 저들의 죄를 물을 수 없기에, 세상에서 용인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 즉 타협하고 덮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지 않고 덮지 않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가 떠올랐다. 다소 속물적인 세무 전문 변호사로 살던 ‘송변’ 역시 인생을 뒤바꿀 선택의 순간에 부닥친다. 그 또한 그냥 덮어버릴 수 있었다. 전과 완전히 똑같을 수야 없겠지만, 전과 똑같은 척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양 갈래 길에서 머뭇대지 않고 한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버린다. 타협하지 않는 방법, 스스로 정당해지는 방법을 선택한다.


현존하는 사법 제도 안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미하엘 콜하스는 무기를 탈취하고 남작의 성을 공격하기로 한다. 그의 싸움은 어느 순간 귀족과 평민의 대결로 확대되고 미하엘 콜하스는 민란의 선봉장 격이 된다. 그의 선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가 내린 첫 선택은 또 다른 선택들을 낳고, 상황이 깊어갈수록 더욱 치명적인 선택들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그는 또 한 번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타인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처음에 그랬듯이 끝까지 스스로의 정당성을 지키는 방법을 택한다. 그것이 비극일지라도. 그리고 맞이하는 최후. 미하엘 콜하스가 문학적인 인간이라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변호인>의 마지막은, 힘들지만 그럼에도 희망적인 느낌을 주는 장면으로 끝난다. 송변은 수의를 입었지만 그의 주변에는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동료 변호사들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택한 엔딩은 진짜 엔딩은 아닐지 모른다. 송변이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인물라면, 우리는 이미 그 뒤에 일어날(혹은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에도 끝없이 지속되는 선택들과 선택들, 그리고 남겨진 조각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은 그가 혼자서 쓸쓸하고 먹먹한 표정으로 말의 얼굴을 어루만질 때였다.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가, 라는 질문 뒤에 내게는 쓸쓸함과 두려움이 남았다. 그것은 아주 깊고 거대한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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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매즈 미켈슨
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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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2014.02.28

소설보다도 더 뚜렷하게 구성된 영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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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2014.02.27

선택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힘든 일이죠..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어떤 결말이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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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4.02.27

얼굴에 세겨진 주름 하나하나까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글을 읽는 내내 저 표정이 마음에 오래 세겨지는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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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