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김혜리, 조심스럽게 그러나 한없이 가깝게
이 책은 1995년부터 ‘씨네 21’에서 영화기자이자 평론가로 활동해온 김혜리의 영화 에세이집이다. 10년 넘게 쓴 글 중에 대표적인 것들을 선정하여 엮었다.
글ㆍ사진 이동진
201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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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나는 책

오늘은 2주간 ‘책, 임자를 만나다’ 시간에서 활약해주셨던 김혜리 기자의 책을 읽어드릴까 합니다. 김혜리 기자는 워낙 유명한 라이터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다섯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영화야 미안해』 를 읽어드릴까 합니다.

이 방에는 꽃이 필요해. 차고 흰 벽 앞에서 눈을 뜰 때마다 생각한다. 스물아홉 살 겨울에 생긴 나만의 방. 그러나 꽃을 사러 나가지는 않는다. 대신 이따금 빨래를 널면 그것들은 놀랄 만큼 빨리 마른다. 나의 몸도 굴뚝 속처럼 매마르다. 손을 뻗어 물잔을 더듬는다. 일어나, 수천 번도 넘게 있었던 아침이야. 이건 혹시 어릴 적 읽었던 지루하고 뻔한 소설속의 세계가 아닐까? 책장에서 얼굴을 들었는데도 마음은 뒤늦게 현실로 돌아와서 굼뜨게 껌뻑거리고, 내 자신의 혼이 내 몸으로 다시 빙의되는 이물감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무데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그 여자는 <디 아워스>안에도 모로 누워있다. 내가 영화를 보고, 영화가 다시 나를 본다. 1923년의 버지니아와 1951년의 로라와 현재의 클레리사. 그들은 모두 문을 등지고 누워있다. 별안간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도 별 당혹스럽지 않을 자세로. 눈을 뜨고도 여자들의 몸은 한참동안 일으켜 세워지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그녀들에게는 오늘 주최할 파티가 있다. 케이크를 굽고 꽃을 꽂지 않으면 그녀의 사랑을 반문할 사람들이 있다. 셋은 어느 바다의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다.

『영화야 미안해』 (김혜리/강) 中에서


에디터 통신

우리는 날마다 내 맘 같이 않은 사람들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 왜 그 상사는 회의 때마다 나와 의견이 다른지, 왜 그 남자는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자꾸만 하는 건지.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고심하죠. ‘어떤 논리로 이겨야 할까?’ 그런데 알고 계신가요? 논리와 주장이 필요한 때는 지극히 적다는 사실을요.

안녕하세요. 전 이처럼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담은 책,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움직이는 법』 의 편집자 박지수인데요. 앞으로 이 책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해드릴까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독일의 유명 심리학자 폴커 키츠인데요. 폴커 키츠는 아마존 심리학 분야 60주 연속 1위를 한 『심리학 나 좀 구해줘』 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국내에도 소개되어 한국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죠. 그가 이번엔 기업과 정부 사이에 법안을 좌지우지했던 로비스트 시절 습득한, 설득의 특별한 노하우들을 담아 책을 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논리가 이렇게 대단하다고 보여주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내가 원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인가요? 원하는 것이 후자라면 자꾸만 자신 안에서 고개를 들이미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최대한 제쳐놔야 합니다. 그 대신 상대의 숨겨진 욕망을 건드리는 데만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죠.

저는 이 부분에서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대를 설득하려 한 노력이 어떻게 보면 저의 논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니. 너무 충격적이더라구요.

모든 판매원은 제일 먼저 고객에게 이렇게 묻죠.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요. 절대 “우린 이걸 가장 팔고 싶은데 한번 봐주세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전략인 것을,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남에게 무언가를 원할 때는 왜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릴까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움직이는 법』 은 이밖에도 우리가 흔히 설득법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짚어주면서, 논리, 감정, 인물, 트릭의 네 가지 설득 도구들을 일상생활에서, 회사에서, 남녀관계에서 똑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원래 원서 제목은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될 거야’였습니다. 그런데 제목회의에서 많은 분들이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으로 시작하는 제목에 호응을 보내주셨습니다. 아무래도 다들 우리를 안녕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나 갑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사회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게 아닐까요. 다행히 독자 분들도 제목 때문에 끌렸다는 의견을 리뷰나 sns로 많이 올려주셨습니다.

쇼펜하우어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언변으로 상대의 의견을 바꿀 수는 없다고요. 여러분도 이제 상대를 설득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점을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상대가 모르게 상대를 움직이는 자가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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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혜리 #영화야 미안해 #폴커 키츠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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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라의구슬

2014.02.14

이동진 기자님이 쓰신 김혜리 기자님의 책 이야기,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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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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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여름 큰비가 쏟아진 아침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요한 사건이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대신 그녀는 3년 후 동생이 태어난 비 내리는 겨울날 풍경이 최초의 기억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심심풀이로 뒤져본 바에 의하면 같은 날짜에 탄생한 ‘재미있는’ 사람으로는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화가 키리코, '성난 황소'의 모델인 권투선수 제이크 라모타, 스탠리 큐브릭의 '롤리타'에서 딱 한 번 빛을 발하고 시들어버린 배우 수 라이온이 있으며 대체로 쾌활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들은 아니라고 평한다. 세 곳의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보도블록 금을 밟으면 불행이 온다는 강박을 떨치지 못해 등하굣길이 고역이었다고 한다. 불분명한 이유로 선화예술학교 미술부에 진학해 진짜배기 창의적 재능과 모조품 재능의 차이를 배웠으며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온 한가인의 학교로 짐작되는 인문계 여고에서 수월치 않은 3년을 보냈다고 한다. 1994년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휴학 없이 마쳤으며 성과는 회의(懷疑)하는 법을 배운 것이라고 자평한다. 내가 상상한 역사가 역사학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당황한 2학년 무렵, 영화가 휙 휘파람을 불었고, 비디오 잡지와 프리랜서 생활을 거쳐 1995년 한겨레신문사의 [씨네21] 창간팀에 짐작도 할 수 없는 이유로 채용되었다. 영화 글 쓰는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어서 ‘밑천’을 마련하고자 2년 후 퇴사하여, 영국 UEA(이스트 앵글리아 대학) 석사과정에서 1년간 영화학을 공부하며 더불어 혼자 생활하는 법, 결핍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듬해 11월 《씨네21》에 두 번째 입사하여 현재는 《씨네21》 편집위원. 2008년 로테르담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그녀는 인터뷰어로서 붙임성과 순발력은 좋지 않지만, 어딘가 ‘절박해’ 보이는 인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다. 새로운 약속 장소로 향할 때마다 팔뚝에 잔소름이 돋을 만큼 긴장하면서도, 언젠가 한번쯤 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수첩 한 페이지에 남몰래 적어넣고 있는 오늘도 열정적인 인터뷰어이다. 2010년 9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씨네21>에 개봉작과 드라마에 관한 칼럼「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를 연재했고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과 <조용한 생활>을 진행하고 있다.『영화야 미안해(2007)를 시작으로『영화를 멈추다』(2008),『그녀에게 말하다』(2008),『진심의 탐닉』(2010),『그림과 그림자』(2011),『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2017)까지 총 여섯 권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