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 작가 “남성도 약한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사람풍경』, 『천 개의 공감』 등 심리 에세이로 꾸준히 사랑 받아온 작가 김형경의 신작 『남자를 위하여』는 얼핏 남성들을 위한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려는 남성은 물론 남성을 이해하고 다가가려는 여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2014.01.27
작게
크게
공유
지난 1월 15일, 작가 김형경의 신작 『남자를 위하여』 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가 있었다. 행사는 ‘공감 토크쇼’라는 이름 아래 독자들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남자의 심리가 궁금한 여성독자들과 자신의 고민을 다시 바라보려는 남성독자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조언가로 알려진 칼럼리스트 임경선이 사회를 맡아 속 시원한 고민 상담을 도왔다.
오랫동안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남성의 마음은 남성 스스로에게도 관심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돌보는 일은 어쩐지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진 탓이 컸을 것이다. ‘마음이 아파’ 같은 대사에 남성의 목소리보다는 여성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남성의 마음은 방치되어왔다. 작가 김형경은 이렇게 구석이 밀쳐진 남성의 심리를 하나하나 더듬어본다.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남성들의 행동을 설명해나간다. 『남자를 위하여』 를 통해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더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성의 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사회인으로 남성들 틈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성 심리에 대해 조언하는 입장에 놓여있었다는 거다. 언제나 소수인 여성으로서 남성문화를 이해해야 했고 고민하다 보니 남성의 마음이 보였다. 남편과 부인 같은 애정 관계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서 남성을 관찰했던 경험이 바탕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경험담은 아니다. 오랜 시간 심리 에세이를 써온 작가의 지식과 내공을 통해 문제에 한층 깊게 다가가고 있다.
낭만적 로맨스를 기대하기 때문에 불행이 찾아온다
‘공감 토크쇼’는 시작과 함께 본론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언니들’은 형식적인 대화보다는 독자들이 정말 궁금해 하는 마음 속 이야기를 듣길 원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직접 부딪히는 고민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속마음을 내비치기 민망해 추상적으로 에두르거나 작가의 근황을 질문하던 독자들은, 곧 연달아 손을 들며 자기 고민에 대한 건강한 조언을 구했다.
첫 번째 질문은 왜 남성은 많은 여성에게 관심을 보이느냐는 질문이었다. 김형경은 이 질문을 진화심리학적으로 풀어냈다. 말하자면 ‘본능’이라는 이야기였다. 어떤 종이나 마찬가지지만, 수컷의 본능은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이는 DNA를 통해 전해지는 생명본능이다. 반면 여성종의 본능은 생명을 태어나게 해서 튼튼하게 키워내는 것이다. 이런 차이 속에서 갈등이 시작된다고 지적한 김형경은 현실을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라 조언했다.
김형경은 낭만적 사랑, 드라마 같은 로맨스를 기대하기 때문에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라 말했다. 상대가 할 수 없는 일을 바라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도 관계는 훨씬 개선될 거라는 뜻이었다. 이에 임경선은 『남자를 위하여』 를 읽으며 여러 부분을 남편에게 대응해보았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집에 늦게 들어와 과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가부장적인 관습처럼 보였는데 어느 순간, 자신을 좀 챙겨달라는 의미로 보이기 시작했다며 경험을 털어놓았다. 결과적으로 관계에는 훨씬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이어진 질문은 남성들이 배우자로 선택하는 여성과 성적으로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따로 있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것이었다. 김형경은 불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지적하며, 2세를 통해 생을 이어가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배우자의 선택은 단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임경선은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반문한 뒤, 결혼에 대해서는 훨씬 다양한 고려를 하게 된다고 답했다. 지적인 수준이나 생활 습관과 같이 사소하고 중요한 고려사항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질문들은 남자의 첫사랑, 여자들의 이상형, 남녀가 친구가 될 확률과 같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 남아있는 오래된 수수께끼들로 이어졌다. 많은 대답들이 『남자를 위하여』 에 담겨있는 것들이었다. 김형경은 남성들의 마음속에 어머니, 첫사랑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여성원형이 있는 것 같다는 말로 첫사랑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남성들이 계속해서 젊은 여성을 찾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풀어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상적인 여성의 원형이 젊은 나이에 멈춰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나이의 여성을 원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작가가 설명하는 남성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도 있었다. 요즘 젊은 남성들의 경우, 전과 달리 섬세하고 감정표현에 예민한 사람 경우도 많다는 거였다. 또한 여성들은 한층 독립적으로 변했다는 판단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김형경은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일면 긍정적인 변화도 있지만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게 된 것인지 덜 자란 상태에서 징징거리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거였다. 어쨌거나 윗세대가 힘든 것을 털어놓지 못하고 화를 냈던 것에 비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연애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던 상담은 후반부로 갈수록 친오빠, 아버지와 같은 가족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던 남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고민에 대해 김형경은 그 세대의 문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족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세대라 아버지들의 말투는 공격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바뀌는 걸 바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아버지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인정받으려는 욕망, 이상적인 화목한 가정을 만들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걸 가장 먼저 할 일로 꼽았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아버지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면서 아버지와 관계를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다. 작가는 아버지에게 독립하며 지내는 동안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덧붙였다.
상담이 이어지는 동안 김형경은 독자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과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동시에 냉정하고 분명한 대답을 했다. 독자의 잘못된 욕망에 대해 정확히 지적하고 다른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녀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 역시 약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동등한 관계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라 했다. 그럴 때 비로소 둘 사이의 건강한 관계가 가능하다고 했다. 갈등은 어쩌면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만들려는 욕망에서 출발하는지 모른다.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은 그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관련 기사]
-김형경 “남자와 관계 맺기, 아직도 어려운가요?”
-중년의 나이 서른다섯, 어떻게 살 것인가? - 김형경 『만 가지 행동』
-새로운 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법
-이별,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 『좋은 이별』 김형경
-"내 마음을 알고 싶어!", 소설가 김형경과 정신과 의사 하지현의 대담
오랫동안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남성의 마음은 남성 스스로에게도 관심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돌보는 일은 어쩐지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진 탓이 컸을 것이다. ‘마음이 아파’ 같은 대사에 남성의 목소리보다는 여성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남성의 마음은 방치되어왔다. 작가 김형경은 이렇게 구석이 밀쳐진 남성의 심리를 하나하나 더듬어본다.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남성들의 행동을 설명해나간다. 『남자를 위하여』 를 통해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더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성의 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사회인으로 남성들 틈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성 심리에 대해 조언하는 입장에 놓여있었다는 거다. 언제나 소수인 여성으로서 남성문화를 이해해야 했고 고민하다 보니 남성의 마음이 보였다. 남편과 부인 같은 애정 관계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서 남성을 관찰했던 경험이 바탕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경험담은 아니다. 오랜 시간 심리 에세이를 써온 작가의 지식과 내공을 통해 문제에 한층 깊게 다가가고 있다.
낭만적 로맨스를 기대하기 때문에 불행이 찾아온다
‘공감 토크쇼’는 시작과 함께 본론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언니들’은 형식적인 대화보다는 독자들이 정말 궁금해 하는 마음 속 이야기를 듣길 원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직접 부딪히는 고민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속마음을 내비치기 민망해 추상적으로 에두르거나 작가의 근황을 질문하던 독자들은, 곧 연달아 손을 들며 자기 고민에 대한 건강한 조언을 구했다.
첫 번째 질문은 왜 남성은 많은 여성에게 관심을 보이느냐는 질문이었다. 김형경은 이 질문을 진화심리학적으로 풀어냈다. 말하자면 ‘본능’이라는 이야기였다. 어떤 종이나 마찬가지지만, 수컷의 본능은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이는 DNA를 통해 전해지는 생명본능이다. 반면 여성종의 본능은 생명을 태어나게 해서 튼튼하게 키워내는 것이다. 이런 차이 속에서 갈등이 시작된다고 지적한 김형경은 현실을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라 조언했다.
김형경은 낭만적 사랑, 드라마 같은 로맨스를 기대하기 때문에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라 말했다. 상대가 할 수 없는 일을 바라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도 관계는 훨씬 개선될 거라는 뜻이었다. 이에 임경선은 『남자를 위하여』 를 읽으며 여러 부분을 남편에게 대응해보았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집에 늦게 들어와 과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가부장적인 관습처럼 보였는데 어느 순간, 자신을 좀 챙겨달라는 의미로 보이기 시작했다며 경험을 털어놓았다. 결과적으로 관계에는 훨씬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이어진 질문은 남성들이 배우자로 선택하는 여성과 성적으로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따로 있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것이었다. 김형경은 불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지적하며, 2세를 통해 생을 이어가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배우자의 선택은 단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임경선은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반문한 뒤, 결혼에 대해서는 훨씬 다양한 고려를 하게 된다고 답했다. 지적인 수준이나 생활 습관과 같이 사소하고 중요한 고려사항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물론, 작가가 설명하는 남성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도 있었다. 요즘 젊은 남성들의 경우, 전과 달리 섬세하고 감정표현에 예민한 사람 경우도 많다는 거였다. 또한 여성들은 한층 독립적으로 변했다는 판단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김형경은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일면 긍정적인 변화도 있지만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게 된 것인지 덜 자란 상태에서 징징거리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거였다. 어쨌거나 윗세대가 힘든 것을 털어놓지 못하고 화를 냈던 것에 비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연애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던 상담은 후반부로 갈수록 친오빠, 아버지와 같은 가족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던 남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고민에 대해 김형경은 그 세대의 문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족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세대라 아버지들의 말투는 공격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바뀌는 걸 바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아버지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인정받으려는 욕망, 이상적인 화목한 가정을 만들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걸 가장 먼저 할 일로 꼽았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아버지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면서 아버지와 관계를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다. 작가는 아버지에게 독립하며 지내는 동안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덧붙였다.
상담이 이어지는 동안 김형경은 독자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과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동시에 냉정하고 분명한 대답을 했다. 독자의 잘못된 욕망에 대해 정확히 지적하고 다른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녀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 역시 약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동등한 관계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라 했다. 그럴 때 비로소 둘 사이의 건강한 관계가 가능하다고 했다. 갈등은 어쩌면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만들려는 욕망에서 출발하는지 모른다.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은 그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관련 기사]
-김형경 “남자와 관계 맺기, 아직도 어려운가요?”
-중년의 나이 서른다섯, 어떻게 살 것인가? - 김형경 『만 가지 행동』
-새로운 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법
-이별,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 『좋은 이별』 김형경
-"내 마음을 알고 싶어!", 소설가 김형경과 정신과 의사 하지현의 대담
- 남자를 위하여 김형경 저 | 창비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포착해온 소설가이자 『사람 풍경』 『천 개의 공감』 등으로 유명한 국내 최고의 심리 에세이스트인 김형경 작가가 이번엔 남자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남자들은 왜 첫사랑을 잊지 못할까? 남자들은 왜 중요한 순간에 여자를 버리고 도망칠까? 저자는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날카롭고도 유쾌한 시선으로 주변의 사례와 진솔한 경험담을 나누며, 남자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인 동시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의미있는 과정이 되길 응원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8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정연빈
북극곰이 되기를 꿈꾸며 세상을 거닐다.
어지러운 방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해신
2014.01.31
이번 책도 기대가 됩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될 것 같네요!
정원선
2014.01.30
시간의빛
2014.01.3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