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만한 사람만 골라 죽이는 살인범은 무죄?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덱스터가 보여준 미소는 그가 앞으로 더 이상 살인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기는 어렵게 만들어 놓는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안전할 거라는 전제 하에 그는 어쩌면 다시 살인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인간 내면의 파괴된, 손상된 어떤 것은 어쩌면 영영 복구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복구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일부분은 복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미드 <덱스터>이며 그 주인공 덱스터다.
201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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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9까지 인기리에 방영되고 막을 내린 미드 <덱스터>는 연쇄 살인범이 주인공이다. 주인공 덱스터는 혈흔 분석가로 일하면서 은밀히 사람을 죽여 나간다.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살인을 이어가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니! 덱스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양육되었는지를 파악하면 그 사람을 형성하고 있는 기본 바탕을 이해할 수 있다.
덱스터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살해되는 현장에 있었다. 그 현장에는 몇 살 터울의 형도 함께 있었다. 덱스터는 살해당한 어머니의 피가 흥건하게 고인 바닥에서 피를 뒤집어쓴 채 형과 함께 컨테이너 박스에 방치되어 있었다. 덱스터의 어머니는 경찰에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일이 잘못되어 그만 범인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정보원으로 덱스터의 어머니를 심어 둔 경찰 해리가 덱스터의 양아버지가 된다. 해리는 현장에서 덱스터와 그의 형을 보고 형은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멘탈이 손상되었다고 판단하고 어린 덱스터만 양자로 삼기로 결정한다. 이후 덱스터의 형은 고아원으로 보내져 그 곳에서 성장하는데 그 역시 사이코 패스, 연쇄 살인마가 되어 이후 덱스터와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덱스터는 의붓동생인 뎁을 살리기 위해 친형을 죽이는 선택을 한다.
덱스터의 양아버지 해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덱스터를 입양해서 키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덱스터가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확인한 양아버지는 최대한 그가 사회에 적응해 서 살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해 준다. 규칙은 두 가지. 죽일만한 사람만 죽일 것. 절대 잡히지 말 것. 덱스터는 시즌9까지 오면서 많은 일을 겪는다. 자신이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아내와 여동생, 아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덱스터에게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 말고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지켜보며 양아버지와 함께 규칙을 만들어 준 정신적인 어머니인 보겔 박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 정신적 어머니마저 결국 덱스터의 눈앞에서 자신의 친 아들(역시 사이코패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덱스터는 자신을 낳아 길러준 어린 시절의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데 이어 자신을 정신적으로 돌보아준 박사 어머니의 죽음마저 목격하고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이는 다시 한 번 덱스터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결국 그 친아들을 찾아가 죽음으로 갚아 주지만 덱스터를 사랑해준 사람은 모두 그렇게 세상을 떠났고, 덱스터는 혼자가 된다. 그의 곁에는 이제 여자친구 한나와 아들만이 남아 있게 된다. 하지만 덱스터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떠나 살기로 결정한다.
죽일만한 사람, 죽어 마땅한 사람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질문은 덱스터를 보는 내내 시청자를 따라다닌다. 아무 잘못도 없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피살자들의 사진을 늘어놓고 그들을 죽인 범인을 잡아 그곳에 끌고 와 묶어둔다. 그리고 범인의 손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보게 하며 덱스터의 칼날이 범인을 처단한다. 범인의 시체는 토막난 채 바다 깊은 곳에 버려진다.
이런 장면을 보며 시청자는 통쾌한 복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범인을 꼭 저렇게 심판하고 처벌해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살해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인가? 이런 갈등을 줄여 주기 위해서인지 드라마에서 설정된 죽여야 할 대상은 대체로 끔찍한 연쇄살인범들이다. ‘저런 사람이라면 죽는 게 나아, 죽어 마땅해’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실 이들이 죽어 마땅한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덱스터가 이들을 죽이게 된 진짜 이유다. 그는 살인 자체를 즐긴다. 하지만 아무나 죽일 경우 혼란스러워질 것에 대비해 그의 양아버지이자 경찰이었던 해리가 규칙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덱스터는 자신의 살인 욕구를 이 규칙 안에서 해소했던 것이다.
덱스터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고 덱스터 역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이들을 살해한다. 본질적으로 덱스터나 덱스터의 손에 죽은 여러 연쇄살인범이나 그 뿌리는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덱스터는 이들을 죽이는 데 망설이거나 후회하지 않지만 이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해준 소중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을 겪으며 극심한 혼란을 느낀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엄청난 살인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규칙을 어기면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는 그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덱스터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모습이 시즌9의 마지막 회에 나온다. 타인과 관계 맺기 힘들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덱스터. 그는 자신을 믿고 사랑해준 사람들의 희생으로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극복했고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사이코패스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며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어머니의 살해 현장을 목격한 아이, 살해당한 어머니의 피를 뒤집어 쓴 채 컨테이너에 방치되어 울고 있던 아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결국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덱스터가 보여준 미소는 그가 앞으로 더 이상 살인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기는 어렵게 만들어 놓는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안전할 거라는 전제 하에 그는 어쩌면 다시 살인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인간 내면의 파괴된, 손상된 어떤 것은 어쩌면 영영 복구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복구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일부분은 복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미드 <덱스터>이며 그 주인공 덱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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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유진하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누구를 만나도 늘 그 생각을 먼저 하는, 심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TV, 영화, 책, 음악, 여행, 와인, 고양이, 무엇보다 ‘사람’에 기대어 살며 ‘사람’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채워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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