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만드는 남자인 나는 로스팅(roasting)을 그렇게 표현한다. 한 잔의 온전하고 맛있는 커피를 위해 반드시 거치는 과정. 커피를 볶는, 로스팅을 하는 사람, 로스터는 그래서 요리사이다. 조리노동자이다. 재료(커피콩)의 상태와 품질에 따라 어떻게 향과 맛을 낼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다양한 변수를 조절하여 커피콩을 볶아야 한다. 로스팅 기계와도 합일을 이뤄야 한다.
한편으로 생두에서 원두가 되기까지, 그 놀라운 변화에는 불이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커피를 마실 수 있었던 원류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있다. 제우스가 숨겨놨던 불을 훔쳤다. 그 불을 인간에게 건넸다. 그 불을 통해 인간은 문명의 문을 열었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프로메테우스 덕분에 커피도 탄생할 수 있었던 셈이다. 커피는 그런 프로메테우스의 뜻을 받들어, 생각하게 만드는 음료가 됐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퉁퉁퉁퉁. 커피콩이 볶일 때, 나는 때론 황홀하다. 나도 커피콩이 되고 싶다. 로스팅 머신 안에 들어가 놀라운 맛과 향을 내고 싶다. 저 안에 들어가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것 같다. 그런 한편으로 커피콩이 볶일 때 나는 바다의 저편을 떠올린다. 태양이 커피나무에 미광을 비추고, 바람이 커피열매의 외피를 스치며, 안개가 커피나무의 온몸을 감싸는 풍경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런 풍경 속에 버무려진 커피노동자들의 노동 역시 빠뜨릴 수 없다. 그리고 맛있는 공정무역 커피 한 잔을 위한 나와 동료들의 노동 역시. 커피콩을 볶는 것은 그렇게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오랜 시간,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콩볶기를 통해 자신만의 커피 세계를 만든 사람이 있다. 전광수. 그의 로스팅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됐고, 이번에 또 한 권의 로스팅 책을 내놨다. 『전광수의 로스팅 교과서』(전광수 지음|벨라루나 펴냄). 지난 2009년 나온 『전광수의 커피 로스팅』 에 이은 두 번째 로스팅 책이다. 전광수의 로스팅 세계가 궁금한 독자들이 지난 12월 19일, 서울 성수동의 전광수아카데미에 모였다. 알코올 중독자의 알코올처럼, 도저히 멀리할 수 없는 먹거리를 ‘데빌 푸드(devil food)’라고 일컫는데, 아마도 커피를 데빌 푸드로 삼고 있는 사람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커피와 로스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전광수에게 『전광수의 로스팅 교과서』 란?
전광수 선생은 책을 출간하게 된 배경부터 꺼냈다. ‘교과서’라는 이름을 붙일 때 망설였다. ‘교과서’라면 객관성이 우선돼야 하는데, 주관성에 더 무게를 두고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딱히 적당한 말이 없었다. 출판사에서 제안한 제목에 고개를 끄덕였다.
“첫 책은 커피잡지에 연재한 것을 묶다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한 것도 있었다. 내게 배운 사람들이 항의를 하더라(웃음). 돈 주고 배웠는데, 연재하면서 다 오픈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래서 연재할 때 자제하면서 썼다. 쓰고 싶은 말을 못하고 서둘러 만들다보니 시행착오가 있었다. 첫 책은 로스팅 이론이 취약했다. 산지별 커피부터 나와서 커피를 배우지 않은 독자는 난감해했고. 이번 책은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책을 만들자고 했는데, 사실 좀 어려운 점도 있다. 그래서 다른 책을 기획하고 있다. 아카데미 현장에서 학생들과 질문한 사항 등을 뽑아 로스팅 뿐 아니라 커피에 대해 총괄한 책을 기획하고 있다. 내년 목표 중 하나다.”
따라서 이번 책은 기존 책과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목표였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커피를 하고 있는 사람들, 보고 싶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최적의 책을 만들고자 했다. 산지에 대한 부분은 첫 책과 달리 많이 줄였다. 전 선생은 독자들이 커피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했다. 중국에서 로스터리 카페를 하는 한 중년 남성은 이번 만남 때문에 부러 한국에 들렀다. 한국과 달리 로스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애로점이라고 말했다. 책을 보면서 로스팅을 익힌 경우. 회사를 곧 그만두고 커피를 배우면서 로스터리 카페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도 있었다.
“서두르지 마라. 커피, 평생 해야 할 일이니 조급해 하지 말고, 카페 운영하는 것 되게 힘들다. 바리스타들, 박봉이다. 하루 10시간 이상 서 있고. 사회적으로도 바리스타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월급 100~120만원 받으며 일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 오른다고 해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창업하는 분들은 직원에게 잘 해줘야 한다(웃음).”
이어 독자들을 대상으로 로스팅 시연을 했다. 이날 시연할 로스팅 머신은 두 대. 우선, 디드릭(Diedrich)이라는 미국 회사의 제품으로 반열풍 방식의 5kg 머신. 디드릭은 창업자 이름으로 독일 출신이다. 미국에 이민을 와 현재 2세 경영을 하는 회사다.
“15kg 미만의 소형 로스터기의 95%는 반열풍식이다. 디드릭에서 볶을 커피는 콜롬비아 중부 우일라(Huila)의 Esmeralda Supremo 커피다. 안소니 퀸이 좋아했던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 에스메랄라였다. 중남미엔 에스메랄다라는 이름의 농장이 많다. 3kg 중볶음을 할 것이다. 이 커피는 중볶음으로 하면 아로마가 풍부하게 표현되고, 단맛과 바디감이 좋다.”
또 하나의 로스팅 머신은 후지 로얄(Fuji Royal)이라는 일본 제품으로 직화식의 3kg 머신이다. 70년가량 된 회사로 그라인더부터 시작했다. 로스터기에 많은 연구를 하며, 동남아에 많이 알려진 반면 유럽, 미국에선 상대적으로 생소하다. 이 머신에 볶을 커피는 과테말라 안티구아(Guatemala Antigua) 2kg.
“두 머신 모두 정량보다 커피콩이 적은데, 콩을 아끼려는 게 아니다. 모든 기계는 성능을 가장 잘 발휘하기 위해선 가득 채워선 안 된다. 80%정도 채워줄 때 가장 성능을 잘 발휘한다. 과테말라 안티구아의 로스팅 포인트는 중강볶음. 스모키한 커피 향을 살리고자 한다. 이 커피가 가진 단맛, 바디감 등을 표현하고자 한다.”
전광수, 로스팅을 하다
디드릭에 들어가는 콜롬비아 수프리모 커피. 전광수 선생에 의하면 티피카와 카투라 종이 섞인 것으로 초보자가 볶기엔 쉽지 않다. 조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티피카와 높은 카투라가 섞였기 때문이다. 로스팅 머신의 열 보호 능력은 중요한 지점이다. 불을 꺼도 현재의 열을 3분 동안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 전 선생의 설명이다. 특히 그는 로스팅 머신을 평가할 때 크게 △드럼의 재질과 두께 △화력의 세기 △쿨링 등 3개 기준을 둔다.
“드럼은 주물로 만든 것이 가장 좋으나 만들기가 어려워서 지금은 주물로 만든 드럼이 별로 없다. 화력이 약하면 색깔이 잘 안 나온다. 레드브라운(붉은 빛이 도는 와인 빛깔)을 가장 선호한다. 로스팅이 끝난 커피를 식혀주는 쿨링도 중요한데, 콩의 열기를 얼마나 빨리 식혀주느냐는 맛에 영향을 미친다. 쿨링이 약하면 로스팅이 진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좋지 않다.”
로스팅을 잘하기 위해선 섬세함이 필요하다. 뭣보다 향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강조한다. 로스팅 시간과 온도만 보고 볶는 것은 기계를 조작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단다. 시각은 위험할 수 있다. 향을 확인하면서 순차적으로 볶는, 향을 맡는 감별사로서의 로스터.
“로스터는 자기만의 커피 세계가 있어야 한다. 색깔도 중요하지만 콩의 품질, 수분, 조밀도 등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색깔만 갖고 평가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콩은 수분 함량이 다른데, 시간만 갖고 예측하지 못한다. 향을 맡는 게 가장 정확하다. 처음엔 어렵지만 계속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리 할 것이다. 로스팅을 한다고 하면 몇 년 됐는지부터 묻는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 향을 맡으려는 노력과 자기 커피를 만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로스팅은 감각적인 일이나 추측만으로 할 순 없다.”
직화식의 후지로얄에 과테말라 안티구아를 볶는다. 버번과 카투라의 교배종으로 조밀도 차이가 적어서 콜롬비아보다 볶기는 쉽다. 직화식의 단점은 잘 볶지 못하면 타거나 설익는다. 직화식이 좀 더 민감하기 때문에 잘 볶으면 향의 표현이 더 좋으나, 초보자로서 조작이 어렵다.
“로스팅 머신의 세계적인 흐름은 편하게 안정적으로 골고루 잘 볶이도록 하는 것이다. 직화식은 사라지는 추세다. 사이클론은 분리형이 세계적인 추세다. 가능성은 낮으나 굳이 말하자면, 일체형은 화재에 노출돼 있다. 분리형은 연속적으로 콩 볶는데 유리하나 일체형은 어렵다.”
로스팅이 진행되면서 콩을 싸고 있는 실버스킨(은피)도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 선생은 실버스킨이 세 번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커피콩은 8~12% 수분을 함량하고 있다. 빨리 은피가 떨어지는 건 수분이 적어서다. 늦게 떨어지는 건 수분함량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은피가 커피 맛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중볶음은 커피 오일이 나오기 전인데, 그 시점까지는 커피 맛에 영향을 안 미치나, 댐퍼 조절을 않고 강하게 볶으면 탄 맛이 날 수 있다. 과테말라는 화산지대여서 스모키한 향이 난다. 댐퍼를 열어준 것은 볶으면서 연기가 많이 나는데, 연기를 안 뽑으면 맛이 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광수가 본 로스팅 머신의 장단점
“우리나라는 커피를 볶은 지 30년 밖에 안 된다. 1세기 정도 더 지나면 진짜 전문가가 나올 것 같다. 전문가가 되려면 콩만 잘 볶아선 안 된다. 농장 경험도 있고, 인격도 형성돼 있어야 한다. 나는 안 될 것 같고(웃음). 다음 세대에 전문가가 나오기 위해 나는 밑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엔 아직 로스터 장인은 없다고 본다. 나보다 앞선 세대에 대해 존경은 하지만 장인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 글쎄다. 내가 겪고 써 본 로스팅 머신만 대상으로, 여러 기준이 있지만, 세 가지 기준만 놓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말해보겠다.”
“드럼은 주물이 가장 좋으나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주물로 된 로스팅 머신은 포기하는 대신 다른 문제점을 향상시키고 있다. 프로밧의 OEM업체였던 기센은 주물이다. 다만 주물이 달궈지고 식는데 오래 걸려서 로스팅 하는 재미가 떨어진다. 화력을 조절해서 변화를 주고 싶은데, 너무 시간이 짧은 거지. 조퍼는 최근에 써봤는데, 무척 좋더라.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주물은 사라지는 대신 화력의 세기, 쿨링 능력은 점점 발달하고 있다. 직화식 → 반열풍 → 열풍식 으로 변해가고 있다.”
로스팅에 대해 전광수 선생에게 묻고 싶은 것
로스팅을 하면서 향을 자주 맡던데, 기준이 있다면 알고 싶다.
로스팅을 하면서 시간과 온도는 무시할 부분이 아니나, 향이 더 중요하다. 로스팅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옐로우, 1차 크랙, 2차 크랙. 옐로우 시점에선 단향이 난다. 단향이라고 하면 캐러멜, 너티, 과일, 꽃 등 많은데, 커피마다 향이 달라서 재밌다. 좋은 단향을 잡고 싶다면 댐퍼를 닫아주면 된다. 드럼 안에서 향이 못 나가게 막아주는 거지. 향은 어느 시점이 되면 준다. 육안으로 확인 못한다. 향을 맡아야 한다. 후각을 훈련시키는 게 중요하다. 1차 크랙은 신향이, 2차 크랙은 고유의 향이 난다. 1차 크랙의 향을 맡으면 향이 강하다고 믿는다. 왜? 신향은 자극적이거든. 그런데, 아니다. 고유의 향은 2차 크랙에서 나온다.
요즘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커지면서 산미를 강조하는 추세이다. 어떻게 보나?
신맛이 나는 쪽으로 많이 가 있다는 건, COE와 스페셜티 커피 때문에 그렇다. 평가할 때 기준이 ‘약볶음’이기 때문이다. 2차 크랙으로 가면 커피의 장점이 나타난다. 약볶음을 하면 커피의 단점이 나오니까,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다.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의 커피를 볶아서 포인트를 맞춘다. 한국에선 한쪽으로 몰리면서 그것이 다인 양 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 특유의 쏠림 현상 때문에 그런 면도 있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고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 세계를 포기하고 한쪽에 매달리는 건 좋지 않다. 자기만의 커피 세계를 찾아서 도전을 해봐야 한다. 그래야 자기만의 커피 세계를 확립할 수 있다.
레드브라운을 내려면 화력이 좋아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생두를 볶을 때 레드브라운이 잘 표현되나? 또 강볶음을 할 때 블리스터(blister)라고 생기는데, 왜 그러는지 알고 싶다.
답은 명확하다. 뉴 크롭(New crop)이다. 즉 수확한지 1년 이내의 신선한 콩으로 볶아야 한다. 수분함유량이 많은 신선한 콩이 아니면 아무리 화력이 세도 레드브라운 빛깔이 나오지 않는다. 불이 아무리 강해도, 올드 크롭(주. 수확한지 2년 이상 지난 생두)이면 색깔이 안 나온다. 강볶음을 하면 구멍이 검게 뚫린 것이 나올 때가 있다. ‘블리스터’라고 로스팅 된 원두에 물집이 생긴 것이다. 겉의 조직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타 버린 거지. 1차 크랙이 끝나고 2차 크랙 시간이 올 때까지 시간을 확인해봐라. 1분에서 1분30초가 좋다. 그 이상 시간이 걸리면 화력을 더 세게 해줘라. 시간이 뒤로 밀리면서 조직이 터지는 것이다. 로스팅기 내부의 콩이 열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불을 안 준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부의 열의 균형이 깨지면서 뒤로 미뤄지고 결과적으로 다크 브라운의 빛깔이 나온다. 아로마는 약해지고 쓴맛만 강하게 표현된다. 특징이 별로 없는 커피가 된다. 이런 것에 주의하면 블리스터는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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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수의 로스팅 교과서 전광수 저 | 벨라루나
어느 날 커피의 매력에 빠진 이후 20년 동안 로스터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 커피 대표 명인 '전광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광수 커피아카데미’를 열어 제자들을 양성했고 그의 로스팅 수업을 들은 제자 400명 중 150여 명이 카페를 창업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세운 로스터리 카페 ‘전광수 커피하우스’를 열어 지금은 전국 16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오랫동안 로스터로 살아온 전광수가 자신의 로스팅 인생 20년간의 현장 경험을 공개하면서 동시에 로스팅 전문 아카데미에서의 강의 경험을 살린 실전적인 로스팅 전문서이다.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