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요 갤러리에서 사진전이 인기입니다. 대림미술관에서는 라이언 맥긴리의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이, 세종문화회관 전시관에서는 필립 할스만의 <점핑 위드 러브(Jumping with Love)>전이 한창이죠. 전자는 젊음의 내면에 깃든 다양한 감정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후자는 사람을 뛰어오르게 해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숨겨진 내면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렌즈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재밌는데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도 지난 7일 또 다른 사진전이 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미국 출신 인물 사진의 대가 애니 레보비츠의 <살아있는 전설과 만나다>전인데요.
애니 레보비츠는 <롤링스톤> 잡지사의 수석 사진작가로 일하던 시절 142컷의 사진을 커버에 올렸고, <베니티 페어> <보그> 등과 작업할 때도 유명 배우에서 작가, 음악가, 운동선수 등의 패션사진을 담아냈습니다. 애니 레보비츠는 흔히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허문 작가로 평가 받는데요. 월드 투어 가운데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마련된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녀의 작품 196점이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니콜 키드먼, 브래드 피트, 조니 뎁, 스칼렛 요한슨 등 유명 배우의 사진에 눈길이 모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요. 특히 <베니티 페어>의 표지로 실렸던 데미 무어의 만삭 누드는 다시 봐도 획기적입니다. 이 사진이 실린 <베니티 페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기도 했고, 이후 임신한 스타의 누드 촬영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비롯해 백악관에서 찍은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미국 출신 작가이면서 평론가인 수전 손택 등 유명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아쉬운 점은 사진에 대한 부연 설명이 적혀 있지 않아서 오디오 가이드에 실린 작품 외에는 이해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또 좀 더 확실한 테마를 갖고 사진 배치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저는 애니 레보비츠 전을 봤지만, 한가람 미술관의 다른 전시관에서는 <마리스칼> 전이 열리고 있네요. 마리스칼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마스코트 ‘코비’를 만든 디자이너인데요. 놀이처럼 예술을 즐기는 아트 플레이어로 유명합니다. 그래픽 디자인에서 가구,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회화, 조각, 영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마리스칼의 상상력을 천2백여 점의 작품을 통해 감상할 수 있어요.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는 12월 12일부터 <피카소에서 제프쿤스까지> 전이 시작됩니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데미안 허스트 등 현대미술 거장들이 제작한 쥬얼리 2백 점이 공개된다고 하는데요. 액세서리를 잘 착용하지 않는 저도 관심이 가는 건 왜일까요?
한가람 미술관을 나온 저는 CJ토월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뮤지컬 <베르테르>를 보기 위해서죠. 몇 년 전에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봤는데, 이번 무대는 완전히 다른 작품 같네요. 일단 배우들은 과거 유럽 귀족들의 풍성하고 화려한 옷차림에서 벗어나 조금 더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기존 무대보다는 활기찹니다. 하지만 한 곳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를 무대 안팎에 설치하고 작품에 꾸준히 등장시켜 베르테르의 한결 같은, 하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아마도 이번에 뮤지컬 <베르테르>를 본다면 누구나 무대연출에 대해 얘기를 할 것 같은데요. 무척 건조하면서도 따뜻하고, 무거우면서도 화사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 뒷면에 위 아래로 움직이는 간이무대를 이용해 다채로운 공간성을 확보하고, 좌우는 물론 위에서 내려오는 막을 동시에 활용해 마지막 장면을 극대화하는 것에도 감탄이 나오더군요.
작품을 본다면 마지막 ‘해바라기 씬’이 가장 인상적일 텐데요. 무대 바닥에 전류를 흐르게 한 뒤, 갑자기 전류 공급을 멈추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공연을 보시면 이해될 거예요. 그런가하면 스트링을 많이 편성한 음악은 한 편의 실내악 연주회에 온 듯 오래도록 귀에 남았습니다. 딱 조광화 연출의 작품, 구소영 감독의 음악 같아요. 하지만 베르테르와 롯데의 마음이 무대에서 좀 더 긴밀하게 읽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을 미리 알고 있지 않더라도, 공연만으로도 베르테르가 죽음을 결심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죠.
자유소극장에서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춤이 말하다>가 12월 15일까지 매일 저녁 공연됩니다. 김운태, 김주원, 김지영, 이나현, 이선태, 디퍼, 안지석 등 한국무용, 발레, 스트리트 무용,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무용가들이 모여 서로 다른 춤이 교차하는 새로운 무대를 선사한다고 합니다. 이 공연도 무척 보고 싶네요.
오페라극장에서는 12월 18일부터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이 막을 올립니다.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곡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호두까지 인형>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전 세계 무대에서 연주됩니다. 발레단마다 버전이 다른 작품을 선보이기 때문에 골라보는 재미도 있는데요.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으로, 러시아 정통 발레의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기교를 자랑합니다. 비슷한 기간 유니버설발레단과 서울발레시어터 등에서도 <호두까지 인형>을 무대에 올리는데, 버전이 다르니 비교해서 관람하면 재밌겠죠?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앙ㅋ
2014.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