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슈스케 5, 그럼에도 박재정 박시환을 위한 변명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슈퍼스타K 5>(이하 슈스케 5)가 막을 내렸다.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기사들이 오뉴월 날파리 떼처럼 달라붙었다. 와글와글 자글자글.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능히 짐작할 만하다.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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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1.77%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슈퍼스타K 5>(이하 슈스케 5)가 막을 내렸다.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기사들이 오뉴월 날파리 떼처럼 달라붙었다. 와글와글 자글자글.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능히 짐작할 만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최악’ 내지는 ‘최저’라는 수식어가 붙고 ‘실망’이나 ‘굴육’ 혹은 ‘썰렁’ 같은 개인 감상문에나 어울릴 법한 단어도 종종 보인다. 이렇듯 모두가 한 목소리로 비판을 하니 뭔가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시청률은 역대 최저인(이때 ‘최저’가 등장한다!) 1.77%란다. <슈스케 2>의 결승전 시청률이 16%였다니, 숫자가 곧 진리인 방송계에서 본다면 큰 죄를 저질렀다 해도 무방할 수밖에.
나는 <슈스케 2>부터 챙겨보기 시작했다. 음치에다 박치라서 모든 노래를 한 음정과 다양한 엇박으로 소화하는 나는 대중 앞에 나와서 자신의 노래로 오디션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도대체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모태 솔로가 <짝>을 보면서 아무런 설렘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물론 나는 ‘난봉꾼’에 가까웠지만 노래 실력만은 어쩔 수 없는 젬병이어서 아내와 함께 <슈스케 2>를 보면서도 계속 툴툴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잘 부르는 거야?”
“저 심사평이 맞는 거야?”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나는 빠져들었다. 갑자기 내 노래 실력이 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듣는 귀가 뚫린 것도 아니지만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열혈 애청자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사연에 공감할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토록 욕을 들었던 <슈스케> 특유의 악마의 편집에 나도 모르게 홀렸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의 애틋한 사연으로 주목받은 ‘김지수’를 응원했으며, 어린 시절 왕따를 당했다고 고백한 ‘장재인’에게 측은지심을 품었고, 딱 보기에도 불쌍한 외모를 지닌 ‘허각’에게 기꺼이 내 돈 백 원을 투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존박’을 응원했지만…….
그 후 <슈스케 3>과 <슈스케 4>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나는 금요일 밤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들의 사연에 눈물 짓거나 그들의 노래에 감탄하곤 했다. 그렇게 ‘울랄라세션’과 ‘투개월’을 응원했으며 ‘정준영’과 ‘딕펑스’에게 문자를 보냄으로써 ‘대국민’임을 증명했다.
이번 <슈스케 5>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룰이 바뀐 거야 사실 그게 그거니까 별다른 점을 찾지 못했는데 ‘악마의 편집’이 사라진 건 금방 와닿았다.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멀뚱멀뚱 기계적으로 시청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중간중간 빼 먹었으니 실망스럽고 굴욕적이며 썰렁한, 최악 최저의 시청률이 나왔겠지.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노래를 들으며 기꺼이 감동받길 원한다. 그런데 그 감동이란 게 단순히 노래 실력만으로 전달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또 모르지, 이승철이나 윤종신처럼 대가수라면 어떨지. 하여간 프로가 아닌 이들이 나와서 오디션, 그것도 생방송 무대에서 감동을 선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요 모태 솔로가 난봉꾼이 될 확률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악마의 편집이요 이른바 ‘감성 팔이’이다.
제작진의 오판과 심사위원들의 오만
<슈스케 5>를 준비하면서 제작진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
‘이제 프로그램이 궤도에 올랐으니 말 많은 악마의 편집은 자제하고 노래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고품격 음악 방송으로 탈바꿈 할까?’
내 생각에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시청자들이 <슈스케>에 열광했던 건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허각’이나 ‘울랄라세션’ ‘로이킴’의 실력은 감탄할 만 하지만 그것이 감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연이 필요하다. 시청자들은 안다. 누구나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사연을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건 참 유치한 일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또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바로 시청자들이다.
갑자기 착해진 <슈스케 5>는 아무런 매력이 없었다. 초반에 ‘볼트 청년’으로 주목받은 ‘박시환’이 끝까지 살아남은 건, 그것도 가장 강력한 팬덤을 거느린 채 결승에 오른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청자들은 단순히 노래 잘 하는 사람만을 원하지 않았다. 그 출연자에게 스토리가 있기를 바랐다. 시청자들은 <슈스케>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가장한 하나의 거대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 맞는 캐릭터와 사연이 나오기를 바랐는데 대뜸 요즘 유행한다는 ‘관찰 예능’이 되어버렸으니 당황할 수밖에.
이번에는 심사위원들도 아쉬웠다. 이승철과 윤종신, 그리고 이하늘은 특유의 날카로운 심사평과는 별개로 종종 헛발질을 해댔다. 그들은 문제의 핵심이 출연자들의 더딘 발전과 제작진의 무능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결승전에서 나온 심사위원들의 말만 들어도 그렇다. ‘최악의 무대’, ‘노잣돈’, ‘심사 점수는 중요하지 않아’ 기타 등등…….
<슈스케>의 오랜 시청자로서 참 의아한 것은 왜 심사위원들이 자신을 제작진과 별개로 놓는가 하는 점이다. 인기 투표로의 변질이나 출연자들이 너무 많은 무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등의 문제점들은 이미 <슈스케 1>부터 있어 왔다. 그렇다면 이승철과 윤종신은 그동안 무얼 했는가? 매해 심사를 하면서, 매해 비슷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제작진에게 한 번도 건의하지 않았던 건가?
자신들이 뽑아 놓은 출연자들을 두고 결승전에서 최악이니 실망이니 날선 말을 쏟아내면 무능한 제작진과 무뇌한 시청자들 사이에서 좀 더 ‘쿨’한 존재가 되리라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매해 결승전은 그 이전 무대보다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90점 이상의 점수를 줬던 심사위원들이 올해는 왜 변한 걸까? 나는 결승전을 보는 내내 박재정의 가사 실수보다도, 박시환의 음이탈보다도 그게 더 거슬리고 궁금했다. 왜 갑자기 공명정대하고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걸까? 좀 오글거리긴 해도 민망할 정도로 칭찬해 주고, 작은 실수는 눈 감아 주고, 그래서 두루두루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게 <슈스케> 아니었던가? 아니면 나만 변화에 적응을 못했던 것일까? 시청률을 보아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싶다.
그리고 아무리 골백 번 양보해도 결승전에서 보여준 이하늘의 태도는 그 어느 출연자보다도 아마추어 같았다. 적어도 ‘노잣돈’이라는 단어가 두 개의 뜻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사용했어야지.
박재정과 박시환에게
박재정은 <슈스케> 사상 가장 불운한 우승자가 되었다. 5억이라는 큰 상금을 받아들고도 마음껏 웃을 수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박시환은 우승을 못한 게 다행이라 할 정도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아무도 두 사람을 축하해 주지 않는다. 열아홉 최연소 우승자와 슬픔 가득한 감성을 지닌 이 두 박 씨 청년들은 아마도 지금 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으리라. 그리하여 나라도 축하를 해 주고 싶다. 민망해 하고 부끄러워하고 자책하고 있을 박재정과 박시환 두 사람에게 당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내가 형이니까, 반말로.
인생이란게 그렇더라.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생긴다니까. 명과 암이라고 할까? 너희들에게 <슈스케>는 다시 못 올 기회였을 거고, 무엇보다 최고의 성과를 거뒀지. 그런데 이런 논란이 생겨서 참 마음이 아플 거라 생각해. 아쉽고 화도 나겠지. 가수로서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봐 불안하기도 할 거야. 조금만 기다려. 기다리면서 더 많이 노력해. 시간은 늘 모든 것들을 치유해 주는데 그 치유의 시간 동안 얼마나 노력하는 가에 따라 나중에 위치가 달라지더라고. 너희 두 사람은 아마 잘 알 거야. <슈스케>에 나오기 전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쳤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평에 신경쓰지 마. 그 사람들의 말이 너희들의 미래를 결정짓지는 않으니까. 힘 있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도 마. 사실 그게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한데, 스스로 중심만 잘 잡고 있으면 가능하기도 하더라. 자신을 믿어. 이게 제일 중요해. 어쨌든 수많은 사람들을 이기고 이 자리에 올라온 거잖아. 그건 참 대단한 일이야. 노래를 못하는 나에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멋지고 대단한 성과야. 그러니 어깨를 펴. 죄송하다고 말하지 마. 더 당당해져야 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 그들은 그들이고, 너희들은 너희들이야. 영혼 없는 조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한 방을 먹일 수 있도록 이를 갈고 주먹을 쥐고 마음을 다잡으렴.
축하해.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정말 축하해. 너희들은 축하받을 자격이 있어. 고개를 들고 가슴을 열고 그 축하의 말을 떳떳하게 들어. <슈스케>는 하나의 고갯마루일 뿐이야. 이걸 넘었으니 다시 뒤돌아보며 신경쓰고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고갯마루, 찬란한 미래에 집중해. 노래로 감동을 선사하는 가수가 되길, 진심을 담아 노래할 수 있길, 누군가를 치유하는 노래를 부르길 바라며 다시 한 번 축하의 말을 남긴다. 박재정, 박시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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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댓글
필자
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2013.11.26
박시환,박재정 화이팅!!
이병덕
2013.11.26
journey0
201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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