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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아빠는 힘이 세니까

아빠들의 좌충우돌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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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은 회가 계속될수록 점점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자라고 서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보다 나는 아빠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재미있다. 무섭기만 하던 성동일이 이제 준이를 향해 얼마나 자주 웃는지를 발견하는 것은 꽤 큰 감동이다.

내가 아빠라고?


아들이 태어나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분만실 안은 숫제 전쟁터였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고 의사는 고함을 치고 간호사는 아내의 배를 눌러댔다. 나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얼치기처럼 서 있었다.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흡사 “심봤다!”를 외치는 듯한 목소리로 의사가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나온다!”


정말로, 나왔다.


핏덩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작고 여린 생명체가 아내의 자궁을 통과해 이 세상으로 쑥 빠져나왔다. 간호사는 그 작은 녀석을 능숙한 손길로 씻기더니 얼른 아내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신이 없었다.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죄다 꿈인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거품처럼 생겨났다가 또 사라졌다.


지난 수 개 월 동안 ‘쪼꼬’라는 태명을 지어놓고 수 백, 수 천 번 그 이름을 불렀던, 하지만 초음파 사진 안에서만 존재했던 미지의 녀석이 드디어 태어났다고?


이렇게 우렁찬 울음소리가 바로 그 녀석이 내는 거라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질문 하나.

내가, 내가 아빠라고?

 

아빠들의 좌충우돌 성장기


<아빠! 어디가?>가 처음 전파를 탔을 때 나는 기대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했다. 1박 2일로 어딘가에 놀러간다는 설정에 연예인의 자녀들이 더해진 구성은 진부하다 못해 시시할 정도였다. 게다가 성동일, 김성주, 이종혁, 윤민수, 송종국 등의 출연진은 꽤나 낯설고 성긴 조합이었다.


어느 하나 공통점이 없는 다섯 아빠와 그들의 자녀들이 펼치는 여행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연예인들의 흔한 가족 자랑이 되지는 않을까?


나는 그렇게 몇 가지 의문을 품은 채 <아빠 어디가?>의 첫 방송을 지켜봤다. 일찌감치 저녁밥을 먹은 아들 녀석도 함께였다. 아들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떠드는 게 신기한지 <파워레인저>를 보자고 조르지 않고 잘도 앉아 있었다.

 

아빠어디가2.JPG


과연, <아빠! 어디가?>는 시작부터 산만했다. 딱히 프로그램을 이끌어 갈 사람이 없어서인지 김성주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종종 흐름이 끊겼다. 출연한 아빠들이나 아이들 모두 정신이 없고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손에 리모컨을 꼭 쥐고 있었건만 한 번도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아빠와 아이들이 서로에게 적응해 나가는 그 어설픈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그랬다.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다섯 아빠가 하는 말과 행동들은 바로 내 모습이었다. 투박한 손길로 준수를 세수시키는 이종혁도, 민국이가 울자 어쩔 줄 모르는 김성주도, 준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성동일도, 후에게 거친 애정 표현을 일삼는 윤민수도, 지아의 말이라면 껌벅 죽는 송종국도 모두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아빠들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서툴다. 임신한 그 순간부터 초능력을 발휘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매사에 허둥대고 실수투성이고 바보처럼 행동한다. 대부분의 아빠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내가 그 사실을 고백하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있던 엄마랑 어떻게 비교를 해?”


그 사실을 감안하고라도 아빠가 자녀와 교감 할 수 있는 순간은 매우 한정적이다.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젖병을 물려주는 게 고작인데 그마저도 퇴근 후에나 시간을 낼 수 있다. 그래서 아빠들은 그저 쓰다듬을 뿐이다. 무작정 뽀뽀를 하거나 안아들고 ‘휭’ 비행기를 태울 뿐이다. 내 아버지가 그랬고,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는 귀여운 다섯 아이들보다도 인간적인 아빠들에게 더 눈길이 갔던 건 바로 그런 동질감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라 허둥대는 아빠들,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돌보는 일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 한심한 아빠들의 모습은 현실 그 자체였다.


첫 방송을 함께 지켜 본 아들은 프로그램의 마지막쯤에 내게 물었다.


“아빠. 저 형아들은 아빠랑 여행 간 거야?”
“응. 여행 갔지.”
“좋겠다. 나도 가고 싶다.”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씩 웃은 아들 녀석을 꼭 끌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어떤 방법으로 표현할지 모를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은 회가 계속될수록 점점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자라고 서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보다 나는 아빠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재미있다. 무섭기만 하던 성동일이 이제 준이를 향해 얼마나 자주 웃는지를 발견하는 것은 꽤 큰 감동이다. 윤민수와 후 부자가 한 자리에 누워 노래를 부를 때면 내 얼굴에도 덩달아 미소가 번진다. 다른 아빠들도 마찬가지. 화내고, 실망하고, 당황하고, 좌충우돌하던 프로그램 초반과 달리 이제는 제법 능숙한 손길로 아이들을 돌본다. 아빠들의 말과 행동에서 자연스레 사랑이 묻어나와 보는 내내 행복하다.

 

아빠어디가1.JPG


지난주에 방송됐던 ‘내 친구를 초대합니다’ 특집은 아빠들의 성장을 잘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배로 늘어난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을 법도 하건만, 아빠들은 능숙하게 대처하고 여유롭게 아이들을 이끌었다. 예전처럼 아빠와 자녀 간의 관계 회복, 혹은 애착 관계 형성을 지켜보며 감동 받는 재미는 줄어들었지만 서로의 사랑 안에서 마음껏 웃고 떠드는 아빠와 자녀의 모습은 <아빠! 어디가?>의 또 다른 재밋거리다.

 

아빠는 힘이 세다


아들이 태어나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니까, 전쟁의 포화와 비명이 사라지고 난 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품에 아들이 안겨 있었다. 정말로 작은 녀석이었다. 내 팔뚝 길이만큼도 되지 않았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이 오징어처럼 생긴 사람은 누구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꽃잎처럼 작은 입은 놀랍도록 예뻤다. 나는 작고 가녀린 그 녀석이 혹시라도 다칠까 싶어 천천히 끌어안았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들의 심장이, 마치 내가 여기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빠르고 강하게 뛰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으리라. 내가 아들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나는 즉시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겠다고. 내 목숨을 대신 내어줄 수도 있겠다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나는 그렇게 아들을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


벌써 5년이 흘렀다. 그 감격적이었던 첫 만남 이후 아들과 나는 5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나는 별로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 어디가?>의 그 다섯 아빠들처럼 서툴고 어설펐고,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도무지 뭘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우리는 이제야 서로에게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목욕탕을 다녀오는 길에 아들이 안아달라고 졸랐다. 잠이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내가 안아 올리자 녀석은 곧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아빠, 안 무거워?”
“응. 하나도 안 무거워.”


사실은 엄청 무거웠다. 그래도 아빠는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아빠는 힘이 세?”
“그럼.”
“도깨비도 이길 수 있어?”
“당연하지.”
“곰도? 사자도? 늑대도? 공룡도?”
“다 이기지. 아빠는 힘이 세거든.”


내 대답에 만족한 듯 아들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녀석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


아빠는 힘이 세다. 어린 시절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가 있다. 설령 도깨비나 곰, 늑대나 공룡과 싸우는 일이라도. 나는 <아빠! 어디가?>를 보며 나와 똑같은 마음일 다섯 아빠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삶에 지치고 때로는 좌절하더라도 자녀 앞에서는 힘센 아빠이고 싶은 이 땅의 모든 아빠들에게 <아빠! 어디가?>는 진정한 의미의 ‘힐링’ 예능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아들과 단 둘이서 여행이나 떠나보련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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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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