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경주가 매월 공연 예술인을 만나 여러분께 소개해드립니다. | ||
극단 산울림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2013 정기공연을 갖는다. [배우 박상종(에스트라공 역), 배우 이호성(블라디미르 역)] 산울림 소극장 2013.10 08~11.24) 언제나 그렇듯 임영웅 연출은 그의 페르소나들을 다시 무대로 불러들였다. 임영웅 연출은 한국연극사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산울림이라는 무대에 올린 후 아비뇽과 더블린. 일본으로 데려가며 그 작품의 동맥을 고집스럽게 40여년 간 이어온 연출가이다. 부조리라는 말을 처음 쓴 마틴 에슬린이라는 연극평론가는 88올림픽 때 그가 연출한 <고도>를 보고 동양적인 세계관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재 평가했다는 평론을 쓰기도 했다. 임영웅 연출을 만나 그 <고도를 기다리며> 속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들어보았다.
김경주 : <고도를 기다리며>야 대중들에게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연극이지만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한국연극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150회 정기공연이라고 들었는데요.
임영웅 : 횟수는 상관이 없죠, 뭐(웃음).
김경주 : <고도를 기다리며>와 ‘산울림’은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여 집니다. 그동안 꾸준히 산울림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연극적 정통성을 지향해 왔다고 생각되는데요. 자주 반복되는 질문이겠지만 ‘산울림과 함께 온 고도’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산울림’의 창단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일주일 전 표 다 팔려
임영웅 :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한 게 1969년 한국일보안의 소극장이었어요. 산울림이라는 이름을 처음 걸고 한 것이고 하죠. 당시 저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하기 전에 해롤드 핀터의 ‘덤 웨이터’라는 작품을 하나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공연법이라는게 극단을 등록하려면 극단의 단원이 몇 명 이상 참가를 해야 된다는 공연단체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이 있죠. 군사정권식의 제도 속에서 녹아든 형식, 아마 그런 것 같은데(웃음). 아무튼 극단 등록이 안 되어있으면 공연을 못하니까 당시 이해랑 선생이랑 김동훈 선생한테 양해를 얻고 그냥 서류상으로만 신협등록증을 가지고 ‘산울림’이라는 극단을 하나 만든 거죠.
김경주 : 산울림극단의 탄생에 그런 뒷이야가 있었군요. 고도를 기다리며가 창단공연인 셈이네요.
임영웅 : 그렇죠. 바로 1969년 12월에 올린 <고도를 기다리며>가 ‘산울림’의 창단 공연이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 그 작품을 연습하고 있는데 그 작품이 그해 노벨상을 타는 겁니다. ‘사무엘 베케트’가 갑자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연습 중이던 우리 작품이 덩달아 화제가 되었죠. 당시 <고도를 기다리며>를 한국일보 소극장에서 했는데 공연 일주일 전에 이미 표가 다 팔려버렸어요.
김경주 : 창단 공연을 하기도 전에 표가 다 매진되는 경우는 공연사에 이례적인 경우였을 것 같습니다.
임영웅 : 당시엔 노벨 문학상이 나오면, 출판사마다 엄청나게 찍어 댔어요. 지금은 저작권 때문에 조금 까다로운 일이 되었지만 그 때는 한 스무 군데쯤이 노벨 문학상 작품집이 출판이 되었죠. 당연히 노벨상을 탄 작품이다 보니 사람들이 책을 엄청 사서 보긴 하는데 희곡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장르인데 이 고도(책)는 더 읽기 어렵잖아요. 사서 읽어 보니까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지. 그런데 마침 공연을 한다고 그러니까 가서 한번 보자! 해서 아마 보러 왔나 봐요. 사흘 동안 연장공연을 했어요. <고도를 기다리며>는 참 우리 극단의 입장에서 보면 운이 좋은 그런 작품이죠. 하지만 원래 작품이 좋으니까 그 뒤에도 지금까지 여러 번 재 공연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고도를 기다리며>는 할 때마다 관객이 항상 많아요. 아마 공부하는 학생들이 노벨 문학상 탄 작품이니까, 이를테면 연극을 한다든가 문학을 한다든가 하는 학생들은 한 번 그걸 꼭 봐야 하거든.
<산울림 소극장> 대표이자 연출가 임영웅. 1936년 출생.
무려 40년에 걸쳐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극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임영웅, “만드는 입장에선 ‘부조리’라는 단어에 갇힌 적이 없어요”
김경주 : 저도 그런 학생 중에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웃음). 그동안 <고도를 기다리며>를 꾸준히 재해석하시고 관객과 만나는 방식도 고민해보시고 하셨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거의 모르고 있던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에 선택하실 때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임영웅 : 그땐 내가 극단을 갖고 있지 않을 때니까 30대 초중반이었을 거야. 연극은 그 전부터 프리랜서로 해오고 국립 극단 연출도 하고 그랬는데 당시 김성호라는 분이 주간한국 국장으로 계셨는데 그 사람이 나중에 한국일보 사장도 지내셨지만 명예 시인이기도 하고, 시를 아주 좋아하는 분이었죠. ‘시인만세’라는 내가 연출한 시낭송회 뒷풀이에서 ‘우리 회사에 극장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강당 같은 게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연극을 하나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하자’, 한 겁니다. 어떤 공연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 나왔고 그래도 신문사 소극장에서 처음 하는 시도고 하니 당연히 문제작을 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나왔고 그러면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작품을 하는 게 어떠냐’ ‘조금 의미 있는 작품을 해야 되지 않느냐’ 는 분위기 속에서 연극계에서 모두들 ‘부조리극, 부조리극 하는데 그럼 그런 거 한 번 해보자!’ 속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정한 거예요. 그게 공연 연습 중에 노벨상을 갑자기 타버릴 줄은 몰랐지만.
김경주 : 아직도 연극이나 문학에 관심 있는 관객이나 독자들은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서 매혹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부조리극에 대해 낯설거나 어려워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고 또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서도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부조리극이라는 것은 어떤 걸까요?
임영웅 : <고도를 기다리며>를 평생 연출해 왔지만 나는 부조리극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연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늘 기본적으로 연극을 하면서 고민하는 게 연극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라는 생각이에요. 그것이 어떤 종류의 연극이든 간에 개인의 개성이나 환경이야 다를 수 있어도 여하튼 주인공은 사람이란 말이야. 결국 연극은 사람 이야기기를 무대 위에 펼쳐놓는 거다는 거죠.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 연극을 보고 ‘나는 잘 살고 있느냐, 어떠냐’ 그런 걸 생각하는 게 연극이 아닌가 해요. 그러니까 무슨 부조리극이라고 해서 이상하게 여긴다거나 딴 세상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선 좀 우스워졌어요. ‘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사람 사는 이야기로 그냥 풀면 되는 거다’ 라는 생각으로만 <고도>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김경주 : 말씀을 듣다보니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해 오신 선생님의 연출방식이나 철학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임영웅 : 맞아요. 나는 만드는 입장에선 ‘부조리’라는 단어에 갇힌 적이 없어요. 부조리고 뭐고 하는 그런 말은 공연을 본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주인공의 삶이 참 부조리스럽구나 라고 얘기하는 거지, 부조리 연극에 나오는 인간은 인간 자체가 부조리한 사람은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환경이라든지 그런 구조들이 원래 부조리할 수는 있겠지만 내 연극이 그런 건 아닌 거죠. 그래서 난 그냥 이건 어려운 연극으로 갈 필요 없다.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처럼 보이는 이 작품을, 다시 말해 특별한 줄거리도 없이 흘러가는 연극이지만, 작가의 의도는 세상을 좀 웃기려고 쓴 거다. 그러면 작가의 의도대로 웃기는 연극이면 웃기는 연극으로 하자. 그러면 관객들은 연극을 보면서 무대 위에서 두 떠돌이가 하는 행위가 바보 같기도 하고 해서 웃기도 하고 ‘저런 바보 같은 자식들’하고 웃으면서 연극이 끝났을 땐 ‘어디에서 많이 본 인물 같은데 나도 저 중에 하나가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도 해보는 거고 ‘사람 산다는 게 덧없고 아무 희망도 없고 그런 거 아닌가 고민도 해본다는 거지. 사람이 사람 속에 있다는 이야기가 부조리적인지 아닌지는 내 쪽에선 별 상관없어 보입니다.
‘고도’는 희망이다
김경주 : 많은 사람들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며 고도의 존재와 의미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기만 하니까요. 결국 <고도를 기다리며>는 선생님께는 희망적인 이야기라고 보아도 될까요?
임영웅 : 희망이라고 봐야겠죠. 연출을 할 때마다 끊임없이 속으로 물었어요 ‘두 사나이가 두 시간 동안 지껄이고 하는 게 절망이냐. 아니다. 희망을 찾기 위해서 하는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라고요. 그러니까 고도는 안 올지 몰라도, 그러나 역시 그 고도가 온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안 올지도 모르지만 온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구체적으로 아무것도 없지만, 초연 때부터 나는 그렇게 만들었어요.
김경주 : 배우가 바뀔 때마다 지금까지 간직 해오신 연극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방식 속에서 조금씩 바꿔보는 부분이랄지 새로운 시도들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임영웅 : 작품은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연출적 해석은 변한 적이 없어요. 사람들은 한 때 ‘임영웅은 컴퓨터로 잰 듯이 연출을 한다’ 했죠. 내 연출은 그래요. ‘얘기를 할 때는 누구를 보고 어느 방향으로 시선이 가야 된다, 이거 할 때는 몇 발자국쯤 걸어가야 된다, 걸어가면서 얘기한다, 아니면 가서 얘기한다, 아니면 얘기하고 간다’ 저는 그런 식으로 연출을 하니까, 나하고 처음 작업을 하는 친구들은 처음에는 아주 당혹스러워 해요(웃음). ‘무슨 연출이 그러냐’ 그러는데 나하고 작업을 몇 번 하면 그렇게 편하대요.
김경주 : 일일이 분석해주시고 시선, 동작선을 지시해 주신다면 배우가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는데요.
임영웅 : 배우들이 나하고 작업을 하면 처음에는 그래서 아주 힘들어해요.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은 ‘연출자가 그렇게 다 구속을 하면 연기자는 뭘 하느냐’하는데 천만의 말씀. 거기서 연기하는 사람은 결국 배우가 하는 겁니다. 배우가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다 있는 거거든요.
산울림 극장이 홍대에 위치한 이유
김경주 : ‘산울림’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조금 여쭙고 싶은데요. 선생님께서 69년도에 ‘산울림’이라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올리실 때, 그 때만 해도 홍대라는 공간이 사실은 소극장이랄지 연극적 공간은 거의 전무했잖아요. 물론 대학로가 소극장으로써 여러 형태의 공간도 있었지만, 터를 이쪽으로 잡으시게 된 게 특별한 이유랄지 그런 게 있었습니까?
임영웅 : 원래 산울림극장은 주택이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우리 집이 여기였기 때문에 터를 잡은 겁니다. 우리가 85년에 이 극장을 지었는데, 우리가 이 동네에 이사 온 게 72년인가 왔어요. 그런데 연극하는 사람들이나 극장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극장을 갖기를 원하거든요. 근데 그게 현실적으로 잘 안 되잖아요. 나도 뭐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늘 우리 극장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건 뭐 누구나 다 생각하는 거지만, 그런데 우리 집사람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집 팔아서라도 하나 하려면 해라 이거야. 자기가 학교 선생이니까, 생활은 자기가 할 수 있고. ‘집이야 셋방에 살아도 되고 그런 거 아니냐. 그러니까 집 팔아서라도 극장 하려면 하라’ 해서 친척집이 이사를 가면서 싸게 우리더러 사라고 해서, 그걸 사서 무모하게 극장을 만든 거예요. 무대는 당시 TBC미술부장이시던 장종선씨가 만들어주었죠.
임영웅 “나는 원작을 존중하는 연출가”
김경주 : 그러니까 친척이 살던 주택을 개조해서 극장으로 만든거군요. 그땐 홍대주변이 이렇게 번화가가 될 줄은 예상도 못하셨겠어요. 작품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묻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볼 때마다 대본과 거의 유사하고 특히 원작에 나와 있는 침묵이 많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연극과 작품 속에서 ‘침묵’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임영웅 : 나는 원칙적으로 원작을 존중하는 연출가예요. 창작극을 할 때 연출가가 마치 권위 있는 것처럼, 전부 후배라고 생각하니까 연출가가 막 고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난 그런 거 안해요. 작가가 쓰면서의 호흡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내가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연출을 했는데, 이를테면 오태석, 정하연, 전진호, 노경식, 전부 다 내가 데뷔작 연출했거든요. 국립 극단에서 그들과 작업 할 때에도 난 작가 불러서 ‘내 생각에는 여기가 이러이러한데 이렇게 좀 고치면 어떨까’ 그래서 작가의 손으로 직접 고치게 했어요. 그냥 선배라고 해서 찍찍 긋고 내 마음대로 쓰고 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막 고치려고 하면 내가 쓰지, 나는 그거 쓰는 능력도 없기도 하지만 ‘남이 쓴 걸 내 맘대로 바꾸는 것이 연출이 아니다. 다만 의견이 있으면 작가한테 얘기해서 작가의 손으로 쓰게 해야 한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가들이 그런 면에서는 좋아해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의 대본을 보면 침묵하고 휴지하고 다르게 표현되잖아요. 작가가 그렇게 세심하게 생각을 하고 썼기 때문에 가능한 그걸 살리려고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원작에서 한 자도 빼지 않고 원전 그대로했어요. 침묵까지도.
김경주 : 그런 연출들 만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웃음).
임영웅 : (웃음) 글쎄 말이에요.
김경주 : 이 이야기를 조금 확장하면 요즘에 선생님께서도 다른 젊은 친구들이 연출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요즘은 미디어의 시대이고 속도의 시대이다 보니까 극성을 구성할 때 스피드랄지 굉장히 다이나믹한 긴장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런 연극의 풍토랄까 흐름들을 돌아봤을 때 선생님께서는 이견이 있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고도를 기다리며>는 상당히 음악적인 작품
임영웅 : 나는 다른 사람들 것을 보고 어쩌고저쩌고는 안 해요. 그건 그 사람의 고도죠. 다만 <고도를 기다리며>는 상당히 음악적인 작품이에요. 그런데 이를테면 모든 연극이 있지만 특히 리듬이, 극의 흐름의 리듬이 아주 음악적이라고요 극 자체로 상당히 리드미컬한 연극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연출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상당히 음악적인 부분에 집중해 있지만 정작 음악은 하나도 안 썼거든요. 일반 연극에서 쓰는 음악이라든지 효과음이라든지 이런 걸 하면 드라마틱해진단 말이에요. 그건 작가가 원하는 바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연극할 때 음악을 많이 쓰는 편인데도 <고도를 기다리며>는 효과음 하나도 안 씁니다.
김경주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선생님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관객이 끊기질 않잖아요. 특히나 저는 학생들한테 선생님의 <고도를 기다리며> 한 번 더 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니는데요. 연출로서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메소드라고 하는, 배우를 다루는 방식이랄까 작품의 주제 속에서 새로움을 끌어내거나 하는 방식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임영웅 : 글쎄, 뭐 독특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작품 분석이라고 그럴까, 작품 해석에 많은 시간을 둬요. <고도>는 등장인물들이 어릿광대처럼 해서 무대 위에서 한 판 노는 거예요. 보는 사람은 보면서 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되고 어릿광대들이 웃기는 것 같은 것만 계속 보고 있다가, 연극이 다 끝난 다음에 집에 가면서 생각하면 ‘이게 단순한 연극이나 웃음은 아니다’를 생각하고 만들어 가는 게 좋아요.
‘미안하지만 생활을 부탁한다. 나는 예술한다’
김경주 : 그게 사실 연극의 가장 중요한 것인데 쉽지가 않잖아요. 요즘 연극들의 많은 부분은 감정이 즉각 소비되잖아요. 돌아가서 여운이 생기고 여진이 생기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은데요. 당시에 어렵게 ‘신협’ 등록증을 가지고 시작했던 시기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여전히 연극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아요. 환경적으로 지원금에 의존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과거에 비해서 연극에 대한 대중의 순정이랄까, 1990년대까지와는 또 다르게 영상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연극이 좀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전히 연극이 살려면 극단의 개념이 좀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편인데, 거기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신지, 마지막으로 연극을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임영웅 : 연극은 상업주의 연극을 제외하면 선진국도 다 어려워요. 그런데 다만 우리하고 다른 나라하고 조금 다른 건, 우리는 연기자가 부업을 할 게 별로 없어요. 부업이라는 게 뭐냐 하면 상업주의 연극에 나가도 된다는 겁니다. 뮤지컬을 하고 다 하고, 돌아와서 할 때는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작품 하고, 생활은 그 쪽에서 하고. 연극배우들이 초기에 텔레비전 나가는 걸 무슨 연극을 배반한다는 생각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나는 장려했어요. 기회 있으면 텔레비전 해라, 그 대신 텔레비전 해서 생활 하고, 또 하고 싶은 연극은 1년에 한 편이라도 할 때는 열심히 해라. 연극도 먹고 살아야 하는 건데. 그래서 내가 밤낮 농담으로 ‘연극하려면 부인이 직업이 있는 부인을 만나라라고 하죠. 이를테면 학교 선생님이라던가’(웃음)... 그러면 집안 살림은 되잖아. ‘미안하지만 생활을 부탁한다. 나는 예술한다’ 요즘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김경주 : “미안하지만 생활을 부탁한다. 나는 예술한다.”
임영웅 : 연극을 그렇게 사랑한다면 말이야.
기획: 김정희 편집장
정리: 임나리
장르 : 연극 일시 : 2013.10.08 ~ 2013.11.24 장소 : 산울림 소극장 등급 : 만 12세 이상 문의 : 02-334-5915/25 관람시간 : 총 150분 (인터미션 1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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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뎐 줌 인(zoom in) -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 는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를 유명하게 만든 연극이었다. 이것은 이른바 ‘부조리극(theatre of the absurd)’에 속한다. ‘부조리’란 말은 이 경우-일상어에서 말하는 것처럼-우스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질문과 연관된다. 부조리극이 이 문제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조리극 작품들은 깊은 나락의 염세주의와 기괴한 유머가 독특하게 뒤섞인 형태가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 의 줄거리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기다림’이다. 베케트는 이 작품으로 희곡에 거는 모든 관습적인 기대를 깨버린다. 『고도를 기다리며』 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심오한 특성의 인물들은 없고 우스꽝스런 인물들이 등장한다. 위대한 독백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는 피상적으로 이런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허튼소리라는 인상을 주는 언어가 놓인다.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한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Godot)라는 이름의 어떤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도라는 인물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그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며, 그가 어떤 외모를 가지고 있는지도 그가 언제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서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들의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한다. 그들의 얘기는 서로 지나치게 되고, 오해를 낳고, 도중에 끊어지며, 반복되고, 돌연 다른 주제로 옮겨가며, 질문을 발언처럼 다룬다. 그러니까 그들의 행동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어떤 막다른 골목의 끝에 다다르게 되고, 여기서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돌아서서 새로 달리기 시작하며, 다시 그곳에서도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또다시 돌아서 달리며 우왕좌왕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가 파리에서 (1953년에) 초연되고 4년이 지난 후에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샌틴 감옥에서 상연되었을 때 재소자들은 이 작품이 그들을 위하여 쓰여진 것으로 믿었다. 여하튼 그들은 유럽의 대도시에 있는 진보적인 극장들을 찾는 관객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져주었던 이 작품에서 단번에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1969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는 현대의 종지부를 보여준다. 『고도를 기다리며』 는 기다림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질문에 그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점을 통해 대답을 돌려주고 있다. (에셔 M. C. Escher의 그림들을 연상시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미의 이런 순환은 포스트모던을 인식할 수 있는 표시로 여겨진다. 하지만 베케트에게는 항상 향수와도 같은 희망이 있는데, 기다림은 아마도 ‘어떤 특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다림은 고도라는 특정한 이름을 지닌다.
김경주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내면서 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문학 부문상, 2009년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하였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나는 공항'에서 다양한 문화 작업과 실험극 운동을 하고 있다.
라
2013.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