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에 대하여 - 『소공녀』『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은 184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형편이 점점 어려워져서 어머니와 다섯 남매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글 : 채널예스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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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Frances Hodgson Burnett

 

 

1910년대에 처음 출간된 이후로 영화로도 몇 번씩이나 만들어지고, 지금까지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명작이 있다.

 

오로지 자기만 아는 고아 여자애가 장미꽃 가득한 뜰과 인정 많고 순박한 사람들 덕분에 다른 아이로 다시 태어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와 비슷한 한 남자아이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이야기에 전세계 사람들은 푹 빠졌다. 동화책 『비밀의 화원』이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 1849년 11월 24일 ~ 1924년 10월 29일)은 184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형편이 점점 어려워져서 어머니와 다섯 남매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열여섯 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버넷은 생계를 위해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편집자에 의해 책으로 출판되면서 작가로 인정받았다.

 

로맨스 소설을 시작으로 성인을 위한 소설을 써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의사인 스완 버넷과 결혼하여 낳은 두 아들을 위해 『소공자』를 발표한 이후 동화 작가로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버넷은 어린 시절 불우했던 경험을 밑거름으로 대표작인 『소공녀』, 『비밀의 화원』을 비롯하여 많은 동화와 소설을 썼으며, 이들 중 상당수의 작품이 연극으로 각색되었다. 그녀가 남긴 작품은 동화 27편, 소설 17편, 희곡 3편이 있다.

 

그녀의 동화들은 따뜻하고 감성이 풍부하지만, 평범하게 살던 소년이 우연히 자신이 귀족임을 알게 된다는 등의 허황된 이야기를 한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1924년 10월 29일, 뉴욕 주에서 사망했다. (출처: 예스24 작가파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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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자 #소공녀 #비밀의화원 #프랜시스호지슨버넷 #동화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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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4

이를 토대로 수많은 장르로 페러디가 생겼죠. 소공녀 소공자라는 타이틀도 일본식 비밀의 화원의 이야기는 여전히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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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글/<타샤 튜더> 그림/<공경희> 역

세라 이야기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글/<타샤 튜더> 그림/<햇살과나무꾼> 역

출판사 | 시공주니어

세드릭 이야기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글/<찰스 에드먼드 브록> 그림/<햇살과나무꾼> 역

소공녀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저/<곽명단> 역

소공녀

<프랜시스 엘리자 버넷> 원작/<이미애> 엮음/<김숙> 그림

소공자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글/<이준관> 편

출판사 | 효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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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1849년 11월 24일 영국 맨체스터의 치탐 힐에서 태어났다. 빅토리아 시대(영국의 산업혁명 최절정기)에 철물점을 경영하던 재력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머니와 다섯 남매가 맨체스터 빈민가로 쫓겨난다. 어머니와 다섯 남매는 가난에 쪼들리며 살아야 했다. 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의 버넷은 이 시기에 소설책을 읽고 이야기를 지으면서 가난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1865년 외삼촌의 권유로 온 가족이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로 이주한 뒤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버넷은 투고료를 목표로 글을 쓰기로 결심, 산포도를 따다 판 돈으로 간신히 종이와 우표를 사서 잡지사에 원고를 발송한다. 하지만 그때 직접 겪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본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을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는 통찰력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잡지사에 보낸 소설이 열일곱 살 때 처음으로 채택되었다. 그 이듬해인 1867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네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글쓰기에 전념했으며 『고디스 레이디스북』이라는 여성 잡지를 통해 첫 작품을 발표했다. 그 후 몇몇 잡지사에서 한 편에 10달러를 받고 한 달에 대여섯 편의 소설을 썼다. 이 시기에 버넷이 주로 썼던 내용은 ‘학대받다가 끝내는 보상받는 영국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었고, 이를 통해 몰락한 가문을 차츰차츰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이후 의사인 스완 버넷과 1873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두 아들 라이오넬과 비비안을 두었고, 배우인 스티븐 타운센드와 1900년에 재혼했으나 만 2년 만에 이혼했다. 그녀는 영국의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미국인의 취향에 맞추어 쓴 작품들로 어른 독자층을 파고들었다. 아동소설로 눈을 돌리기 전까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꽤 많은 인기를 누렸다. 대표작으로 『로리 가(家)의 그 아가씨』(1877), 『셔틀』(1907) 등이 있다. 『폰틀로이 공자』(1886)보다 앞서 쓴 소설 『하얀 벽돌 뒤편』이 [세인트 니콜라스 매거진]에 발표되었을 때 독자의 반응은 뜨거웠고, 그 후 『폰틀로이 공자』, 『소공녀』(1905), 『비밀의 화원』(1911), 『로리 가의 그 아가씨』, 등의 작품들도 줄줄이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이 세 소설을 포함한 자신의 작품들을 각색하여 런던과 뉴욕의 연극 무대에 올려 흥행에 성공했다. 버넷은 74세로 1924년 10월 29일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