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이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이사를 간다면?
‘건축은 왜 음악이나 영화처럼 감동이 쉽게 오지 않을까’.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은 그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우리가 건축에서 감동을 느끼는 순간,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책의 저자인 건축가 조한(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은 그것이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공간의 예술인 건축이 시간을 담아내는 방법을 보여주고자, 서울 곳곳의 건축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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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은 시간의 체험이자 시간의 감각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은 ‘건축과 시간’ ‘건축과 감동’이라는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축가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울에서 태어나 삶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낸 건축가 조한(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사라지고, 생겨나며 그 모습을 바꿔 온 도시 서울. 그곳이 일상의 공간이었던 저자는 도시 곳곳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들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찾아 홍대 앞 거리에서부터 광화문 광장에 이르기까지, 스무 개의 공간과 건축들 사이를 누볐다. 하지만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는 한 건축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안에서 건축적 미학과 실용성이 아닌 감동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질문은 아주 간단합니다. 도대체 감동이란 게 뭔지 물어보고 있는 거예요. 저의 결론은 아주 단순하지만 발칙한 의견인데, 감동은 시간의 체험이자 시간 감각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에서 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이야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가 조한이 처음으로 감동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봄, 철거 중인 옥인시범아파트를 찾았을 때였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 폐허처럼 남겨진 그 공간에서는 ‘옥인 콜렉티브’라는 젊은 예술가 그룹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파트 주민들이 남기고 떠난 물건들을 모아 삶의 현장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고, 저자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특별한 울림과 마주했다. 그것은 건축가로서 저자가 가지고 있던 ‘감동의 의미’를 통째로 뒤흔드는 것이었다.

“공간적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대상들은 굉장히 오래된 유물이거나 장인정신으로 세공된 것들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예를 들면 로마의 판테온 신전이나 석굴암, 부석사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옥인시범아파트는 그런 조건들과는 거리가 먼 건축물이잖아요. 고작해야 40년 밖에 안 된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고, 예술의 장인정신을 말할 수 있을만한 것도 하나도 없고요. 그런데 왜 저는 그 공간에서 감동을 받는 건지, 스스로 굉장히 궁금했어요.”




냄새와 빛깔로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

이후 그는 ‘감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축은 왜 음악이나 영화처럼 감동이 쉽게 오지 않을까’ 질문을 품게 되었다. 우리가 건축에서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지, 그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왜 그러한 순간은 드물게 찾아오는지, 스스로에게 묻기를 거듭한 끝에 그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건축에 스며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건축만큼 공간성이 강한 장르도 없기 때문에 그 안에 시간을 담아내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건축에서 감동이 느껴지는 순간을 자주 마주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 조한은 건축에서 시간을 담아내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에 소개된 스무 개의 공간들, 그리고 그 안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스무 편의 이야기가 그 증거다. 옥류동천길의 오래된 벽돌 위에 피어난 이끼의 냄새를 통해, 공간 사옥의 벽면을 뒤덮은 담쟁이 넝쿨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저자는 시간을 보고 느낀다. 수도가압장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전시관에서 느껴지는 강한 물 냄새와 벽에 남아있는 물때의 흔적이, 예전에는 이곳이 거대한 물탱크였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버려진 정수장이 공원으로 탈바꿈한 선유도공원 역시 지나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정수된 물을 가둬두던 침전지는 연꽃과 수생식물의 터전이 되었고, 물이 흐르던 수로 위로 이제는 사람들이 거닐고 있다. 이렇듯 건축은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과 후각을 자극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드러내고 있다. 그 감각들은 기억 속의 특정한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기도 하고, 당시에 느꼈던 감성을 되돌려주기도 한다.

“장소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가치라는 건 정량적으로 분석할 순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무언가를 해체하거나 파괴할 때, 철거할 때는 항상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저는 시간이 착착 쌓여 있어서 그 장소에 가면 시간을 만나볼 수가 있는 공간이 좋아요. 우리가 주인공이 되고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한 거예요. 거창한 계획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감상을 지키려는 노력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광화문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에 붙이면?

건축가 조한과 함께한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북 콘서트의 2부에서는 영화감독 여균동과 저자의 대담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교통방송 프로그램 <오늘>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다. 여균동 감독은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을 읽으며 “철학과 역사 등 인문학에 다가가면서 공간을 파고드는” 저자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대담을 시작했다. 아울러 “건축가가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서 시간의 단면이나 기억을 찾기 위해 이렇듯 집요하게 노력한 흔적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시선의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건축가 조한의 시선이 귀하게 느껴진다는 감상도 덧붙였다.

여균동 :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많이 눈에 띈 단어가 ‘시간’이었어요. ‘이 건축가가 공간 속에서 시간을 찾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시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한 : 건축을 하면서 형태나 공간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라는 걸 키워드로 얘기를 시작하면 공간에 대한 전혀 다른 대안들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도 시간이라는 걸 건축의 주요 테마로 삼으면 어떨까, 라는 거예요.

여균동 : 저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옥류동천길에 가봤는데요. 매일 평범하게 봤던 집들과 골목의 느낌이 달라지더라고요. ‘이것들이 다 하나의 시간이 있는 거였구나. 시간이 집적된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곳의 돌 하나, 창문 하나도 제발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이것도 옳은 생각은 아니겠죠? 계속 진보하고 발전해야 하니까요.

조한 : 저희가 시간이란 걸 소중하게 생각하면 개발을 하더라도 지금과 다른 방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똑같은 행위를 해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거니까요.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광화문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앞쪽에 붙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수많은 시민이 활용하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 공간인 세종문화회관과, 도시 문화 공간을 대변하는 광화문광장이 붙어 있었다면 그 풍경은 어땠을까. 세종문화회관 내외부의 다양한 문화행사가 광화문광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다채로운 행사를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에 앉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개의 공간을 이어 붙임으로써 만들어지는 시너지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p.349)
여균동 : 광화문광장과 함께 그곳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옮기는 방안을 제시했어요. 이유가 뭔가요?

조한 :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이 참 휑하잖아요. 저는 그곳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내려오는 스페인 계단처럼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의 광화문 광장은 일종의 섬이잖아요. 커다란 중앙분리대이기도 하죠. 그런데 광화문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에 붙이면 거기에서 공연도 할 수 있고, 사람들이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 앉아서 구경도 할 수도 있죠. 세종대왕 동상도 그곳으로 옮기면 오히려 사람들이 모일 것 같아요.

여균동 : 저도 공감이 돼요. 세종대왕 동상을 작게 만들어서 그곳에 놨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조한 : 만약 세종대왕님이 그 동상을 보셨으면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다’ 하시면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셨을 거예요(웃음).

여균동 : 저는 광화문 앞 도로 전체를 지하차도로 만들어버리고 아예 사람이 다니게끔 하면 어떨까 싶어요. 광화문에 가면 답답함을 느끼곤 하는데요. 뭔가 소통이 되는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거든요. 세종문화 건너편도 그렇고, 그 반대편도 마찬가지예요. 오드리 헵번이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으로 내려와도 넘어올 공간이 없는 거예요. 광장은 있는데 막혀 있는 공간 같이 느껴져서 답답하더라고요.




여균동 : 건축가 조한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건축은 어떤 것인가요?

조한 : 공간의 감동이 드러나는 방식은 묘하게 잡아끄는 매력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번 갔는데 또 가고 싶은, 눈물샘을 자극하지는 않지만 또 가고 싶은 공간들이죠. 그것이 건축 공간 혹은 장소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균동 : 저는 영화감독이니까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람들이 영화에서 감동을 받는 건 대체로 스토리 때문이거든요. 스토리라고 하는 게 단순히 줄거리만이 아니라, 내면의 흐름이 있는 스토리가 있을 경우 감동을 많이 받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 스토리라는 게 지금 조한 교수님이 얘기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건축 혹은 공간에서 그런 스토리가 읽히면 그 공간 자체가 감동적일 것이고, 그 공간에 스토리가 없다면 그냥 지나가는 면적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조한 : 그렇죠. 어떻게 보면 스토리에 따르는 게 추억도 되고요. 책 제목처럼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 참 많잖아요. 그것이 공간의 이야기이고, 또 내가 그곳에 얹어놓는 기억들이 추억이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건축 공간에서의 스토리가 기억이 아닌가, 역사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동을 찾아 공간 속을 헤매는 건축가 조한. 그는 왜 공간이 아닌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실용이 아닌 감동에 집중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모든 창작자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지점에 감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면서 기억의 한 자리에 남을 수 있는 것, 그것이 감동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을 통해 전하는 감동의 이야기는 곧 소통의 이야기다. 건축과 인간의 소통, 그 안에서 시간을 공유하며 써내려가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이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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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조한 저 | 돌베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조한 교수의 신간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에는 ‘건축가 조한의 서울 탐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는 자라고 살면서 이 도시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지켜보았고, 지금 눈에 보이는 공간의 과거 모습을 선연히 기억하고 있다. 때문에 그가 주목하는 공간은 크고, 화려하고,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아닌, 지금의 공간이로되 옛 시간의 흔적, 그 공간이 품고 있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곳들이다. 그는 그 공간을 마주 보고, 자신이 기억하는 그리고 잊지 않기를 바라는 공간의 옛 이야기를 오늘에 서서 차근차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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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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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2013년 지금까지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봉구 미아동에서 유년 시절을,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젊은 예술의 메카 홍대앞에서 20대를 보냈다. 낙원상가, 세운상가, 고속버스터미널 등 서울 구석구석이 그의 놀이터였다. 서울은 그에게 삶의 공간이자 놀이의 공간이고 학습의 공간이었다. 큰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실무 경험도 쌓았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니 서울은 달라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살았던 이 도시가 낯설게도 느껴졌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크고, 화려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서울이 아닌, 그만의 공간을 찾아다닌 것은. 새롭게 짓고 만들어내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된 서울에서 그의 마음을 움직인 곳은 오래된 곳이거나 새로 지은 듯하나 그 속에 시간을 품은 곳들이었다. 그렇게 그는 서울, 그 중에서도 지난 시절의 기억을 품고 있는 듯한 공간을 찾아, 그 안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그만의 시선으로 서울의 깊은 곳을 어루만지듯 만나고 다녔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뒤 지금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울러 한디자인(HAHN Design) 및 ‘생성/생태’건축철학연구소 대표이기도 한 그는 건축, 철학, 영화, 종교에 관한 다양한 작품과 글을 통해 건축과 여러 분야의 접목을 꾀하고 있다. 2009년 젊은 건축가상, 2010년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품으로는 M+, P-house, LUMA, White Chapel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