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핑크 『실질객관동화』 - 새로운 세대의 ‘웹동화’
어릴 땐 동화가 마냥 재미있기만 하다. 엄마가 읽어주고 나서 “우리 아가는 이러면 안 되겠지요?” 하면 “네에!” 하고 대답하면서 웃으면 된다. 머리 굵어지고서 동화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특히 한창 삐딱할 학창 시절에, 행복한 왕자 동상은 왜 그렇게 호구처럼 굴었는지, 엄마는 늑대가 나온다는 걸 알면서 빨간 모자 쓴 딸을 굳이 할머니 집에 보내야 했는지에 대해 답답하게 생각한 적 없을지?
201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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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가 엮은 동화집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원래 동화란 건 아이들에게 교훈, 이라기보다는 경고를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꽤나 잔혹하고 살벌한 묘사가 담긴 이야기가 많다. 그게 세월이 지나면서 풍화되듯 순화되어 지금의 아이들이 읽는 동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알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런 뒷사정은 어찌 되었든, 우리 모두 어린 시절 동화 한두 편은 읽어봤을 것이다. 한두 편만 읽었으랴? 필자처럼 사람 대신 책을 벗 삼아 자란 아이들은 물론이고, 책과 거리가 멀었던 말괄량이라도 엄마가 읽어준 동화책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기억 속에 쌓여있는 동화는, 우리들의 공통된 상식의 근간이자, ‘문화코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화뿐만이 아니다. 한두 번쯤 해 본 게임, 지나가다 본(또는 피아노 학원 빼먹어가며 본) 애니메이션, 적어도 대충 시놉시스는 알고 있는(아니면 엄마 몰래 방구석에 모았다가 끝내 무지개 다리 건너 고물상으로 향한) 만화책, 제목은 들어본(반대로 학창 시절 동아리 친구와 멱살 잡아가며 그 내용에 관해 깊이 있는 폭력적 논쟁을 나눈) 영화 등, 대다수 사람을 묶을 수 있는 공통된 문화 코드란 의외로 많다. 수백 가지 동화, 만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소설, 영화, 기타 등등. 한 사람의 인격을 만드는 데 드는 인적 노력과 경제적 비용 외에, 그 인격에 영향을 주는 콘텐츠 또한 끝없이 많다.
무슨 콘텐츠든 내용의 이해에는 기본 중의 기본적인 상식이든 독소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를 원작으로 삼는 것은 괜찮은 아이디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를 모티브로 라이트노벨 『오오카미 씨와 7명의 동료들』처럼 이야기를 재구성하거나, 또는 애니메이션 『꾸러기 수비대』처럼 비틀기만 해도 어느 정도 먹힌다. 그런데… 무적핑크의 『실질적이며 객관적인 동화(실질객관동화, 실객동)』처럼, 원작이 되는 동화에서 당연하게 전제하는 부분에다가 데드볼이나 다름없는 돌직구, 아니, 쇠직구를 날린 이야기는 적어도 필자가 아는 중에는 이전에는 없었다.
어릴 땐 동화가 마냥 재미있기만 하다. 엄마가 읽어주고 나서 “우리 아가는 이러면 안 되겠지요?” 하면 “네에!” 하고 대답하면서 웃으면 된다. 머리 굵어지고서 동화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특히 한창 삐딱할 학창 시절에, 행복한 왕자 동상은 왜 그렇게 호구처럼 굴었는지, 엄마는 늑대가 나온다는 걸 알면서 빨간 모자 쓴 딸을 굳이 할머니 집에 보내야 했는지에 대해 답답하게 생각한 적 없을지?
작가인 ‘무적핑크’ 변지민도 그런 생각을 한 거 같다. 동화에서 당연한 듯이 전제하고 넘어가는(그렇지만 조금 진지하게 생각하면 이상한) 여러 가지 전제사항 자체를 날카롭게 찔러댄다. 동화 뒷이야기는 물론이요, 현대에 맞춰 동화를 재구성하고, 미드 패러디에 심지어 영화 <스팅> 뺨치는 반전물까지 만들었다. 네이버 웹툰에서 『실질객관동화』의 연재 개시를 알리며 게재된 예고편을 마무리 짓는 한 문장. “99%의 허구에 1%의 진실을 보태는 순간, 동심의 세계는 발작을 일으킨다.” 그렇다, 이건 그런 만화다.
더욱 골 때리는 건, 동화에만 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화만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다. 만화, 게임, 영화 등. 다 나온다. 세일러 문은 인류를 지키는 대가로 대학 특채를 요구하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영희는 어머니가 순진한 아저씨와 결혼했다가 인생 종 치는 거 막겠답시고 둘 사이에 압정을 뿌려 놓는다. 심지어 고무줄 노래는 헐리우드 스릴러 영화로 둔갑한다. 이쯤 되면 경이롭다. 발상의 전환 정도가 아니라 발상 자체를 뒤엎어버리는 전개에 읽는 내내 허를 찔리는 느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에만 집중하지 마시라. 네이버 웹툰 사상 최연소 작가 데뷔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던 작가를 닮아서, 이 만화에서는 알게 모르게 톡톡 튀고 새로운 연출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과 만화를 결합한 포토툰 정도로는 이 만화에선 독특한 연출 축에도 못 낀다. 장화홍련 편은 프로젝터를 이용해 실사와 만화의 새로운 결합을 시도했고, 장애인의 날에는 점자 만화를 그리고, 중간중간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기도 하며, 특히 ‘슈팅 게임’ 편은 오락실의 횡스크롤 슈팅게임을, ‘방탈출 게임’ 편은 왕년에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퍼즐 게임을 재현하여 재구성했다. 만화가 아니라 플래시로! 종이 만화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연출이다.
사실 독특한 연출을 보자면 이 만화보다는 무적핑크의 후속작인 『경운기를 탄 왕자님』을 보는 것이 나으리라. 반항적이라고 할 만큼 특이한 연출이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니, 『실질객관동화』의 연출은 그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것이다.
『실질객관동화』에서 작가는 대부분 작가의 말에 “실소도 웃음입니다.”라는 한 마디만 적는다. 하지만 이 만화가 독자에게 주는 것은 잠깐의 실소가 전부가 아니다. 아니, 극히 일부다. 그런 연기처럼 피어올라 사라지는 실소를 안고 끝날 만한 만화는 전체 분량 중에 반 정도밖에 되지 않으리라.
『실질객관동화』는 동화를 비틀 뿐만이 아니라, 원작을 더 노골적이고 농밀하게 만들어 지독한 블랙 코미디를 연출하며, 그 속에는 수술용 메스보다도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있다. 게임 북 풍의 연출을 넣은 양치기 소년 편은 훨씬 소름 끼치면서 납득 가는 결말로 만들어 놓았고, 개미와 베짱이를 통해서는 소모적인 아이돌 가수의 실태에 대해 일침을 날린다. 차라리 피비린내 나는 그림 동화 모음집이 낫다 싶을 정도다.
반대로 세상을 위한 따뜻한 응원도 남긴다. 브레멘의 음악대를 통해서 세상에 치여 닳은 아버지들에게, 단군신화로는 자괴감과 초조감에 괴로워하는 수험생들에게, 옹고집전으로는 내 주위의 타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훈훈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이야기를 보는 맛으로도 『실질객관동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동화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야기이다. 때론 교훈, 때론 경고를 전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이야기이며, 그런 메시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때로는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담는다. 그렇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그런 옛날 동화의 메시지 전달법은 정말 어린 아이들에게나 통하지, 이젠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알 거 다 아는 ‘초딩’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솔직히 요즘 애들은 종이책 붙들고 있는 것도 싫어하는데, 어떻게 동화책을 읽히려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동화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담아주고 싶다면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담아줘야 한다. 학교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접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웹을 통해 즐기는 새로운 세대의 동화, ‘웹동화’로서의 『실질객관동화』는 새로운 그림 동화 모음집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리라. 그리고 아이들이 나중에 좀 더 머리 굵어진 뒤에 다시 『실질객관동화』를 읽는다면? 글쎄, 반응이 기대된다.
동화뿐만이 아니다. 한두 번쯤 해 본 게임, 지나가다 본(또는 피아노 학원 빼먹어가며 본) 애니메이션, 적어도 대충 시놉시스는 알고 있는(아니면 엄마 몰래 방구석에 모았다가 끝내 무지개 다리 건너 고물상으로 향한) 만화책, 제목은 들어본(반대로 학창 시절 동아리 친구와 멱살 잡아가며 그 내용에 관해 깊이 있는 폭력적 논쟁을 나눈) 영화 등, 대다수 사람을 묶을 수 있는 공통된 문화 코드란 의외로 많다. 수백 가지 동화, 만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소설, 영화, 기타 등등. 한 사람의 인격을 만드는 데 드는 인적 노력과 경제적 비용 외에, 그 인격에 영향을 주는 콘텐츠 또한 끝없이 많다.
무슨 콘텐츠든 내용의 이해에는 기본 중의 기본적인 상식이든 독소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를 원작으로 삼는 것은 괜찮은 아이디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를 모티브로 라이트노벨 『오오카미 씨와 7명의 동료들』처럼 이야기를 재구성하거나, 또는 애니메이션 『꾸러기 수비대』처럼 비틀기만 해도 어느 정도 먹힌다. 그런데… 무적핑크의 『실질적이며 객관적인 동화(실질객관동화, 실객동)』처럼, 원작이 되는 동화에서 당연하게 전제하는 부분에다가 데드볼이나 다름없는 돌직구, 아니, 쇠직구를 날린 이야기는 적어도 필자가 아는 중에는 이전에는 없었다.
어릴 땐 동화가 마냥 재미있기만 하다. 엄마가 읽어주고 나서 “우리 아가는 이러면 안 되겠지요?” 하면 “네에!” 하고 대답하면서 웃으면 된다. 머리 굵어지고서 동화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특히 한창 삐딱할 학창 시절에, 행복한 왕자 동상은 왜 그렇게 호구처럼 굴었는지, 엄마는 늑대가 나온다는 걸 알면서 빨간 모자 쓴 딸을 굳이 할머니 집에 보내야 했는지에 대해 답답하게 생각한 적 없을지?
작가인 ‘무적핑크’ 변지민도 그런 생각을 한 거 같다. 동화에서 당연한 듯이 전제하고 넘어가는(그렇지만 조금 진지하게 생각하면 이상한) 여러 가지 전제사항 자체를 날카롭게 찔러댄다. 동화 뒷이야기는 물론이요, 현대에 맞춰 동화를 재구성하고, 미드 패러디에 심지어 영화 <스팅> 뺨치는 반전물까지 만들었다. 네이버 웹툰에서 『실질객관동화』의 연재 개시를 알리며 게재된 예고편을 마무리 짓는 한 문장. “99%의 허구에 1%의 진실을 보태는 순간, 동심의 세계는 발작을 일으킨다.” 그렇다, 이건 그런 만화다.
더욱 골 때리는 건, 동화에만 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화만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다. 만화, 게임, 영화 등. 다 나온다. 세일러 문은 인류를 지키는 대가로 대학 특채를 요구하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영희는 어머니가 순진한 아저씨와 결혼했다가 인생 종 치는 거 막겠답시고 둘 사이에 압정을 뿌려 놓는다. 심지어 고무줄 노래는 헐리우드 스릴러 영화로 둔갑한다. 이쯤 되면 경이롭다. 발상의 전환 정도가 아니라 발상 자체를 뒤엎어버리는 전개에 읽는 내내 허를 찔리는 느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에만 집중하지 마시라. 네이버 웹툰 사상 최연소 작가 데뷔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던 작가를 닮아서, 이 만화에서는 알게 모르게 톡톡 튀고 새로운 연출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과 만화를 결합한 포토툰 정도로는 이 만화에선 독특한 연출 축에도 못 낀다. 장화홍련 편은 프로젝터를 이용해 실사와 만화의 새로운 결합을 시도했고, 장애인의 날에는 점자 만화를 그리고, 중간중간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기도 하며, 특히 ‘슈팅 게임’ 편은 오락실의 횡스크롤 슈팅게임을, ‘방탈출 게임’ 편은 왕년에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퍼즐 게임을 재현하여 재구성했다. 만화가 아니라 플래시로! 종이 만화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연출이다.
사실 독특한 연출을 보자면 이 만화보다는 무적핑크의 후속작인 『경운기를 탄 왕자님』을 보는 것이 나으리라. 반항적이라고 할 만큼 특이한 연출이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니, 『실질객관동화』의 연출은 그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것이다.
『실질객관동화』에서 작가는 대부분 작가의 말에 “실소도 웃음입니다.”라는 한 마디만 적는다. 하지만 이 만화가 독자에게 주는 것은 잠깐의 실소가 전부가 아니다. 아니, 극히 일부다. 그런 연기처럼 피어올라 사라지는 실소를 안고 끝날 만한 만화는 전체 분량 중에 반 정도밖에 되지 않으리라.
『실질객관동화』는 동화를 비틀 뿐만이 아니라, 원작을 더 노골적이고 농밀하게 만들어 지독한 블랙 코미디를 연출하며, 그 속에는 수술용 메스보다도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있다. 게임 북 풍의 연출을 넣은 양치기 소년 편은 훨씬 소름 끼치면서 납득 가는 결말로 만들어 놓았고, 개미와 베짱이를 통해서는 소모적인 아이돌 가수의 실태에 대해 일침을 날린다. 차라리 피비린내 나는 그림 동화 모음집이 낫다 싶을 정도다.
반대로 세상을 위한 따뜻한 응원도 남긴다. 브레멘의 음악대를 통해서 세상에 치여 닳은 아버지들에게, 단군신화로는 자괴감과 초조감에 괴로워하는 수험생들에게, 옹고집전으로는 내 주위의 타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훈훈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이야기를 보는 맛으로도 『실질객관동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동화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야기이다. 때론 교훈, 때론 경고를 전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이야기이며, 그런 메시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때로는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담는다. 그렇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그런 옛날 동화의 메시지 전달법은 정말 어린 아이들에게나 통하지, 이젠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알 거 다 아는 ‘초딩’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솔직히 요즘 애들은 종이책 붙들고 있는 것도 싫어하는데, 어떻게 동화책을 읽히려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동화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담아주고 싶다면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담아줘야 한다. 학교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접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웹을 통해 즐기는 새로운 세대의 동화, ‘웹동화’로서의 『실질객관동화』는 새로운 그림 동화 모음집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리라. 그리고 아이들이 나중에 좀 더 머리 굵어진 뒤에 다시 『실질객관동화』를 읽는다면? 글쎄, 반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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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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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오제훈
90년대 서울 출신.
길지 않은 세월 속에 이야기를 모으고 즐기는데 낙을 두고 있다.
또한, 누군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부지런히 설명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그렇기에 이 지면에 오게 되었다.
prognose
201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