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지구 충돌 6개월 전, 곳곳에서 자살 유행 - 벤 H. 윈터스 『라스트 폴리스맨』
한 남자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지구 종말을 소재로 한 추리 소설이다. 총 3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물 중 첫 번째 작품인 「라스트 폴리스맨―자살자들의 도시」는 출간과 동시에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한 편의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서사 구조가 탄탄하고 흡인력이 있다. 캐릭터 역시 생동감 있게 살아 있어 마치 책장 밖으로 등장인물들이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글ㆍ사진 김봉석
201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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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설정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설, 영화가 있다. SF와 판타지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애초에 설정 자체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필립 리브의 ‘견인도시 연대기’는 현대 문명이 사라진 후 거대한 엔진으로 움직이는 도시들이 만들어지고,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배경이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나비족들이 사는 행성의 설정부터 일종의 ‘생태주의’를 암시한다. 미스터리와 스릴러도 설정이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면 ‘설정’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배경이나 상황에서 사건들을 끄집어내는 게 더욱 현실감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특정한 시대나 인물을 이용하여 사건의 의미를 확장시키거나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경우는 많다.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 서브 로사」 같은 역사추리물이라면 그 시대의 생활관습이나 정치적 상황 등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요즘에는 SF, 판타지 등의 설정으로 만들어진 미스터리와 스릴러소설도 많이 등장한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은 마법과 불사의 존재가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랜달 개릿의 ‘귀족탐정 다아시경’ 시리즈도 마법이 존재하는 평행세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다.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범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리얼리티와 조금 거리가 있지만, 특이한 설정 덕분에 진기하고 이색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은 우리와 전혀 다를 게 없으니까. 사고방식이 달라도, 가치 기준이 달라져도 그런 ‘차이’를 통해 우리들 인간의 내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한다.


벤 H. 윈터스의 「라스트 폴리스맨」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소행성 마이아가 지구를 향해서 오고 있다는 발표가 난 후, 충돌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라스트 폴리스맨」은 시작한다. 종말을 다룬 수많은 소설, 영화에서 그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점검해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세계여행을 떠나거나, 복수하고 싶었던 사람을 찾아가 한방 날린다거나, 고급차를 사서 마음껏 달려볼 수도 있다. 연인들은 일단 결혼부터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이혼을 하거나. 누구는 마약에 빠지거나 성적 쾌락에 빠지는 등 온갖 타락에 도전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살을 할 것이다.


지난주 카트만두에서는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몰려 든 순례자 천 명이 거대한 장작더미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행진할 때 수도승들은 그 주위를 돌며 염불을 외웠다. 중부 유럽에서는 노인들이 ‘자살하는 법’, 이를 테면 ‘돌로 주머니를 무겁게 하는 법’, ‘가정에서 수면제 만드는 법’ 등이 담긴 DVD를 사고판다. 캔자스, 세인트루이스, 디모인 등 미국 중서부에서는 총기, 그러니까 총알을 뇌에 박는 방법이 단연코 인기다. 여기 뉴햄프셔 콩코드에서는 이유야 어찌됐든 다들 목을 매 죽는다. 옷장에, 헛간에, 공사 중인 지하실에 시체들이 걸려 있다.


신참 형사 헨리 팔라스가 있는 도시 콩코드는 목을 매다는 자살이 유행이다. 맥도널드 화장실에서 발견된 보험 계리사 피터 젤의 모습도 영락없는 자살이었다. 하지만 팔라스는 타살이라고 의심한다. 젤의 누나인 소피아, 어린 시절 친구였던 제미티 투생, 직장 동료인 나오미 이데스를 탐문하면서 팔라스는 틀림없이 타살 당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상황을 생각해보자. 곳곳에서 사람들이 자살하고, 이미 사회 시스템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연료가 없어 일반인은 차를 운전할 수가 없고, 휴대폰은 점점 불통이 되는 시간이 많아지고, 회사는 문을 닫거나 사장이 사라진다. 경찰들도 하나 둘 퇴직을 하고 어디론가 떠나가거나 자살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장 6개월 후에 그들에게 닥쳐올 미래는 이것이다.


가장 권위 있고 신뢰할 만한 과학 예언들에 따르면 앞으로 6개월여 후 지구에는 대재앙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연쇄적으로 일어나 전 세계 인구의 최소한 절반가량이 사망하게 된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약 천 배와 맞먹는 10메가톤급의 폭발이 일어나 지표면에 거대한 분화구를 만들 것이고 릭터 지진계에 도전하는 어마어마한 지진이 곳곳에서 발생할 것이고 상상을 뛰어넘는 높이의 쓰나미가 바다에서 치솟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화산재 구름이 세계를 뒤덮어 암흑이 찾아오고 지구의 기온이 20도가량 하락한다. 곡식도 없고 가축도 없고 빛도 없다. 지난한 냉각의 과정이 살아남은 자들의 운명이다.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지금 분명하게 납득하기 어렵거나 아예 납득이 불가능한 동기에서 온갖 일을 저지른다. 재앙의 맥락 속에서 사건을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팔라스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을 해야만 하는 남자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사람은 너뿐일 거라고 생각하는데’라는 말을 듣는 팔라스는 끝까지 젤을 죽인 범인을 추적한다. 그리고 범인을 잡는다. 종말을 앞둔 세상일지라도 여전히 이상하고, 잔인하고, 이기적인 놈들은 넘쳐나기 마련이다. 아니 더욱 더 자신들의 비루한 본성을 드러내며 폭주한다. ‘사람들은 끝도 없이 소행성 뒤에 숨었다. 마치 소행성이 자신의 몰염치한 행동을 무마하는 변명인 양, 치졸하고 필사적인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구실인 양, 다들 엄마 치마폭에 숨듯 혜성 꼬리 뒤에 몸을 움츠렸다.’


「라스트 폴리스맨」에서는 사건 자체가 그리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그 사건을 수사하러 다니는 팔라스의 눈에 비친 세상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파멸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분노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짓을 하도록 만든다. ‘니코, 피터, 나오미, 에릭, 다들 비밀을 감춰 두고 있었고 다들 변했다. 4억 5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마이아가 자신의 경로에 우리 모두를 끌어들였다.’ 마이아가 오지 않았다면, 불확실할지라도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평범하게 살아갔을 것이다. 마이아가 오지 않아도 지옥일 수는 있겠지만, 마이아가 온다는 것을 핑계로 그들은 너무 쉽게 지옥을 인정해버렸다. 「라스트 폴리스맨」을 보면서 끝없이 우울해지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 불안하고 불투명한 미래조차 없는 그들을 보기가 안쓰러워서. 어쩌면 우리는 이미 「라스트 폴리스맨」이 그리는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어서.

하지만 상관없다. 팔라스는 그 악조건 속에서도 사건을 해결했고, 다음 사건을 또 맡을 것이다.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너무 많이 생각하면 안 되는 법이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된다.’ 벤 H. 윈터스는 「라스트 폴리스맨」  3부작이라고 발표했다. 2편은 종말 77일 전이고, 3편은 충돌 직후의 상황이라고. 그러니까 팔라스는 자살하지 않고, 최후의 최후까지 일상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팔라스가 어떻게 종말의 시간들을 견뎌내는지, 정말로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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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폴리스맨: 자살자들의 도시 벤. H. 윈터스 저/곽성혜 역 | 지식의숲
2013년 에드거 상을 수상한 최고의 추리 소설. 한 남자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지구 종말을 소재로 한 추리 소설이다. 총 3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물 중 첫 번째 작품인 《라스트 폴리스맨―자살자들의 도시》는 출간과 동시에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한 편의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서사 구조가 탄탄하고 흡인력이 있다. 캐릭터 역시 생동감 있게 살아 있어 마치 책장 밖으로 등장인물들이 걸어 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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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폴리스맨 #부러진 용골 #소행성 #지구멸망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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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이

2013.08.31

부제도 마음에 들고 설정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ㅎㅎ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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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