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c샤프단조 ‘월광’>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녀를 사랑한다네. 2년 만에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지.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분이 다르다네.”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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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정치적으로 공화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여인들은 하나같이 귀족 집안의 딸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모차르트와 매우 다른 면모였습니다. 모차르트는 워낙 어릴 때부터 귀족들의 총애를 받았을 뿐더러 궁정에서 공주들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놀았던 귀염둥이였지요. 그러다보니 자신을 ‘유사 귀족’으로 착각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 밑에서 ‘음악하인’으로 일하던 시절에 “나는 식탁에서 서열이 가장 낮다”고 불평을 터트렸던 이면에는 그런 자의식이 자리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혼이라는 문제 앞에서 현실적이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아내가 된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머물렀던 하숙집의 셋째 딸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그렇게 평민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음악도 그렇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어딘지 현실에 순응하는 태도, 비록 힘들지라도 자신의 운명을 결국 수긍하고 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정치적으로 공화주의를 지지했던 베토벤이 귀족의 딸들을 사랑했던 것은 얼핏 자기모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음악에서 그랬던 것처럼, 베토벤은 사랑에서도 ‘신분의 벽’을 넘어서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베토벤이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귀족과 평민이 계급장을 떼고 함께 사는 세상을 궁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정치적 권력을 누가 잡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그와 더불어, 보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평등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랑과 결혼일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귀족과 평민이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아마 그것이 궁극적인 평등일 겁니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사랑은 모르겠지만 결혼은 절대 안됩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결혼의 계급성은 여전히 존속합니다. 어차피 결혼이라는 제도는 애초부터 계급사회의 산물이었으니까요.
자, 다시 베토벤입니다. 오늘 들을 <피아노 소나타 14번 c샤프단조>은 1801년에 작곡됩니다. 8번 ‘비창’을 들었던 지난 회에서도 설명했듯이, 베토벤은 1792년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했고, 그때부터 1802년까지를 흔히 ‘초기 빈 시절’이라고 부릅니다. 스물두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입니다. 베토벤으로서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던, 아주 행복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적 후원자들이 줄줄이 나섰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레슨을 받겠다는 귀족 집안의 딸들도 하나둘씩 늘어났지요. 그런 이야기들을 지난주에 썼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삶에는 좋은 일만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베토벤도 그랬습니다. 서른 살을 갓 넘었을 무렵, 그의 생애를 평생 따라다녔던 어두운 그림자가 마침내 찾아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청력 이상이었습니다. 베토벤은 고향인 본에서부터 우정을 나눴던 친구인 의사 프란츠 베겔러에게 1801년 6월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나는 정말 비참하다네. 2년 전부터 사교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다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지. 나는 이제 귀가 들리지 않는다네. 만약 내 직업이 다른 것이었다면 이런 병을 가졌더라도 지장이 없겠지. 그러나 내게는 정말 끔찍하다네.”
베토벤은 이틀 후에 역시 절친한 친구인 목사 카를 아멘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같은 고통을 털어놓습니다. “내 청력이 심하게 나빠졌다네. 자네와 함께 있을 때부터 그런 징후를 느꼈네. 그러나 그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제 상태가 아주 악화됐어. (중략) 나의 가장 좋은 시절은 황급히 사라지고 있다네. 남은 건 오로지 슬픈 체념뿐이지. 물론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베토벤은 그 무렵의 절망을 한 여인을 통해 위로받았던 것 같습니다. 바로 14세 연하의 여인 줄리에타 귀차르디(1784~1865)였습니다.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베토벤에게 레슨을 받으러 온 것은 1800년이었지요. 그러니까 열여섯 살 때입니다. 자신의 사촌언니인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1775~1861)도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였는데, 그렇게 사촌 집안을 통해 ‘베토벤 선생’을 소개받고 피아노를 배우러 왔던 것이지요. 한데 이 귀차르디는 자유분방한 기질의 여성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빈의 사교계에서 많은 남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하지요. 베토벤은 그녀에게 완전히 빠졌던 것 같습니다.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녀를 사랑한다네. 2년 만에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지.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분이 다르다네.”
‘월광’(Mondschein)이라는 닉네임으로 널리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14번 c샤프단조>는 바로 그녀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물론 ‘월광’은 베토벤이 붙인 표제가 아닙니다. 시인이며 음악비평가이기도 했던 루드비히 렐슈타프(1799~1860)가 1악장을 가르켜 “스위스 루체른 호수의 달빛 아래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라고 비유한 것이 ‘월광’이라는 명칭의 유래입니다. 이 시인이 그렇게 비유한 것이 1832년의 일이니,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고 5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베토벤은 애초에 이 곡에 붙인 정식 명칭은 ‘환상곡풍 소나타’입니다. 자유로운 즉흥곡 풍으로 시적인 정취를 담아내려 했던 베토벤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특히 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가 그렇습니다. 어쩌면 베토벤은 귀차르디와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고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사랑이 끝나리라는 것을 예감했겠지요.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분이 다르다네”라는 독백에서 그런 여운을 풍깁니다. 그래서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느리게, 한 음 한 음을 깊게 눌러서’라는 뜻의 이 지시어에서는 ‘시간아 멈추어다오’라는 베토벤의 동경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소스테누토’라는 지시어는 앞으로 선뜻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는 지시어입니다. 대개의 베토벤 음악들이 성큼성큼 직진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딴따단, 딴따단 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셋잇단음표가 그렇습니다.
2악장은 앞의 악장에 비해 밝고 산뜻합니다. 리스트가 “두 심연 사이에 핀 한 다발의 꽃”이라고 비유했던 악장입니다.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1악장과 격렬하고 뜨거운 3악장을 연결시켜주는, 2분이 조금 넘는(연주자에 따라 2분 30초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짧은 악장입니다.
프레스토 아지타토(Presto agitato)라는 지시어를 가진 3악장에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됩니다. 프레스토 아지타토는 ‘매우 빠르게, 격한 감정을 담아서’라는 뜻입니다. 2악장이 끝나자마자 휴지부 없이 거칠게 몰아치는 악장입니다. 시작과 동시에 강렬하게 등장하는 펼침화음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펼침화음이란 화음을 구성하는 음들을 한꺼번에 울려내지 않고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뜻합니다. 화음의 덩어리를 연주하지 않고 음들을 낱낱이 연주한다는 뜻에서 분산화음(아르페지오)이라고도 말하지요. 그렇게 격렬하게 상승하는 아르페지오가 3악장의 첫번째 주제입니다. 경과부를 거치고 이어지는 두번째 주제는 좀더 어둡고 선율적이지요. 하지만 느릿한 템포의 선율이 아니라 아주 빠르게, 거의 급박한 느낌으로 흘러가는 선율입니다. 딴딴딴딴 하면서 끊어 치는 주법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화음을 흩어서 연주하는 첫번째 주제, 그리고 보다 선율적으로 흘러가는 두번째 주제를 기억하면서 3악장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느리고 서정적인 1악장으로 시작해서, 2악장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다가, 3악장에서 마침내 뜨거운 열정을 터뜨리는 음악입니다.
정치적으로 공화주의를 지지했던 베토벤이 귀족의 딸들을 사랑했던 것은 얼핏 자기모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음악에서 그랬던 것처럼, 베토벤은 사랑에서도 ‘신분의 벽’을 넘어서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베토벤이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귀족과 평민이 계급장을 떼고 함께 사는 세상을 궁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정치적 권력을 누가 잡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그와 더불어, 보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평등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랑과 결혼일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귀족과 평민이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아마 그것이 궁극적인 평등일 겁니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사랑은 모르겠지만 결혼은 절대 안됩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결혼의 계급성은 여전히 존속합니다. 어차피 결혼이라는 제도는 애초부터 계급사회의 산물이었으니까요.
자, 다시 베토벤입니다. 오늘 들을 <피아노 소나타 14번 c샤프단조>은 1801년에 작곡됩니다. 8번 ‘비창’을 들었던 지난 회에서도 설명했듯이, 베토벤은 1792년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했고, 그때부터 1802년까지를 흔히 ‘초기 빈 시절’이라고 부릅니다. 스물두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입니다. 베토벤으로서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던, 아주 행복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적 후원자들이 줄줄이 나섰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레슨을 받겠다는 귀족 집안의 딸들도 하나둘씩 늘어났지요. 그런 이야기들을 지난주에 썼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삶에는 좋은 일만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베토벤도 그랬습니다. 서른 살을 갓 넘었을 무렵, 그의 생애를 평생 따라다녔던 어두운 그림자가 마침내 찾아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청력 이상이었습니다. 베토벤은 고향인 본에서부터 우정을 나눴던 친구인 의사 프란츠 베겔러에게 1801년 6월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나는 정말 비참하다네. 2년 전부터 사교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다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지. 나는 이제 귀가 들리지 않는다네. 만약 내 직업이 다른 것이었다면 이런 병을 가졌더라도 지장이 없겠지. 그러나 내게는 정말 끔찍하다네.”
베토벤은 이틀 후에 역시 절친한 친구인 목사 카를 아멘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같은 고통을 털어놓습니다. “내 청력이 심하게 나빠졌다네. 자네와 함께 있을 때부터 그런 징후를 느꼈네. 그러나 그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제 상태가 아주 악화됐어. (중략) 나의 가장 좋은 시절은 황급히 사라지고 있다네. 남은 건 오로지 슬픈 체념뿐이지. 물론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피아노 소나타 14번> 초판 표제지(1802) [출처: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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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Mondschein)이라는 닉네임으로 널리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14번 c샤프단조>는 바로 그녀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물론 ‘월광’은 베토벤이 붙인 표제가 아닙니다. 시인이며 음악비평가이기도 했던 루드비히 렐슈타프(1799~1860)가 1악장을 가르켜 “스위스 루체른 호수의 달빛 아래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라고 비유한 것이 ‘월광’이라는 명칭의 유래입니다. 이 시인이 그렇게 비유한 것이 1832년의 일이니,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고 5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베토벤은 애초에 이 곡에 붙인 정식 명칭은 ‘환상곡풍 소나타’입니다. 자유로운 즉흥곡 풍으로 시적인 정취를 담아내려 했던 베토벤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특히 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가 그렇습니다. 어쩌면 베토벤은 귀차르디와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고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사랑이 끝나리라는 것을 예감했겠지요.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분이 다르다네”라는 독백에서 그런 여운을 풍깁니다. 그래서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느리게, 한 음 한 음을 깊게 눌러서’라는 뜻의 이 지시어에서는 ‘시간아 멈추어다오’라는 베토벤의 동경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소스테누토’라는 지시어는 앞으로 선뜻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는 지시어입니다. 대개의 베토벤 음악들이 성큼성큼 직진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딴따단, 딴따단 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셋잇단음표가 그렇습니다.
2악장은 앞의 악장에 비해 밝고 산뜻합니다. 리스트가 “두 심연 사이에 핀 한 다발의 꽃”이라고 비유했던 악장입니다.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1악장과 격렬하고 뜨거운 3악장을 연결시켜주는, 2분이 조금 넘는(연주자에 따라 2분 30초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짧은 악장입니다.
프레스토 아지타토(Presto agitato)라는 지시어를 가진 3악장에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됩니다. 프레스토 아지타토는 ‘매우 빠르게, 격한 감정을 담아서’라는 뜻입니다. 2악장이 끝나자마자 휴지부 없이 거칠게 몰아치는 악장입니다. 시작과 동시에 강렬하게 등장하는 펼침화음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펼침화음이란 화음을 구성하는 음들을 한꺼번에 울려내지 않고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뜻합니다. 화음의 덩어리를 연주하지 않고 음들을 낱낱이 연주한다는 뜻에서 분산화음(아르페지오)이라고도 말하지요. 그렇게 격렬하게 상승하는 아르페지오가 3악장의 첫번째 주제입니다. 경과부를 거치고 이어지는 두번째 주제는 좀더 어둡고 선율적이지요. 하지만 느릿한 템포의 선율이 아니라 아주 빠르게, 거의 급박한 느낌으로 흘러가는 선율입니다. 딴딴딴딴 하면서 끊어 치는 주법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화음을 흩어서 연주하는 첫번째 주제, 그리고 보다 선율적으로 흘러가는 두번째 주제를 기억하면서 3악장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느리고 서정적인 1악장으로 시작해서, 2악장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다가, 3악장에서 마침내 뜨거운 열정을 터뜨리는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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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즌이
2013.08.31
글쓴이
2013.08.04
sind1318
201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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