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쓴 ‘슬픈 노래’ -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비창’>
‘비창’(Pathetique)이라는 표제는 여러 이설(異說)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에서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인 것은 8번 ‘비창’과 26번 ‘고별’밖에 없다고 하지요.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 예컨대 악보 출판업자나 후대의 시인 등이 붙인 ‘속칭’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어쨌든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였다는 것은, 이 음악을 통해 베토벤이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음악에 어떤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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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세 차례에 걸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 대해 쓸 생각입니다. 어쩌면 네 차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곡은 8번 c단조 ‘비창’입니다. 다음 곡은 아마도 14번 c샤프단조 ‘월광’이 될 듯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 곡은 아직 미정입니다. 차차 생각해볼 요량입니다. 아시다시피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소나타는 모두 32곡입니다. 그중에서 3곡 혹은 4곡을 골라낸다는 것이 쉬운 일 같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앞서 브렌델이 언급한 ‘베토벤 작품의 복잡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은 아마도 29번 B플랫장조 ‘함머클라비어’일 성싶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클래식 101>은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는 곡들을 선곡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비창’입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소나타는 아마도 ‘월광’이고, 그 다음 순서가 ‘비창’인 듯합니다. 인기검색 순위를 슬쩍 참조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32곡 전곡(全曲)을 꼭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베토벤이 스물여섯 살에 작곡한 1번부터 52세에 작곡한 마지막 32번까지. 가능하면 전집 음반을 하나 구입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별도로 한 장씩 사는 것보다 그 편이 더 경제적입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피아니스트로는 아르투르 슈나벨(최초의 전곡 녹음), 빌헬름 박하우스, 빌헬름 켐프, 프리드리히 굴다 등이 있습니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브렌델도 전곡을 세 번이나 녹음했습니다. 전곡을 다 녹음하진 않았지만 에밀 길렐스의 연주도 놓치기 아깝지요. 이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는 1972년부터 1986년까지 DG 레이블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할 계획이었습니다. 한데 아쉽게도 69세였던 1985년 10월 14일에 세상을 떠나지요. 그래서 그가 남긴 전집에는 1번, 9번, 22번, 24번, 32번이 빠져 있습니다.
베토벤은 작곡가였을 뿐 아니라 당대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의 피아노 실력은 모차르트에 견줄 만한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베토벤의 초기 음악은 주로 피아노 분야에 집중돼 있습니다. 아울러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빼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에 기인합니다. 실제로 베토벤, 아니 어린 루트비히는 여덟 살이던 1778년에 독일 쾰른 선제후(막시밀리안 프란츠)의 궁정에서 선보인 피아노 연주로 단박에 주목을 받았지요. 그것은 베토벤이 처음 가졌던 연주회로 기록돼 있습니다. 여덟 살 꼬마의 능란한 테크닉과 즉흥연주가 보는 이들의 넋을 거의 빼놓다시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려져 있다시피 어린 베토벤의 뛰어난 연주 실력 이면에는 평탄치 않았던 가족사가 깔려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 요한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쾰른 궁정의 테너가수였지요.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베토벤의 할아버지인 루트비히(베토벤과 이름이 같습니다)도 궁정의 악장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할아버지 루트비히가 아버지 요한보다 더 잘 나가던 음악가였지요. 그런데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직업이 두 가지였습니다. 궁정 악장으로 일하면서 양조장을 함께 운영했다고 하지요. 한데 그것이 바로 화근이었습니다. 양조장집 아들이었던 요한은 어릴 때부터 ‘술맛’에 깊숙이 빠져듭니다. 그래서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말지요.
어린 베토벤은 술 냄새 풍기는 아버지한테 매를 맞으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어땠을까요? 당연히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었겠지요. 일곱 형제들 가운데 셋만 살아남았는데, 그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폭력은 거의 일상적인 공포였을 겁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시달리던 어머니 마리아는 서른여덟 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지요. 베토벤이 열일곱 살 때입니다. 훗날의 베토벤이 보여줬던 괴팍함의 밑바닥에는 그런 상흔이 자리해 있습니다.
어쨌든 여덟 살 때부터 신동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얻은 베토벤은 쾰른 선제후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로 채용되지요. 1784년, 그러니까 베토벤이 열네 살 때였습니다. 이때부터 베토벤은 술 취해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돈벌이에 나서야 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3년 뒤에는 선제후의 허락을 받고 빈으로 떠나 모차르트에게 피아노를 사사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사제 관계로까지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망 때문에 곧바로 쾰른으로 귀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베토벤은 어머니마저 떠난 집안을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할 수 없이 그는 선제후에게 봉급 인상을 간절하게 청원하지만 거절당하고 말지요. 당시의 베토벤은 그 거절에 실망하고 분노했던 것 같습니다. 1789년의 궁정 연주회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베토벤이 “악기 상태가 안 좋다”며 연주를 거절해 버린 것이지요. 프랑스에서 발발한 혁명의 기운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가부장적 권력(아버지, 선제후)에 억눌려 살아온 베토벤이 처음으로 시도한 반항이었을 겁니다.
Portrait of Ludwig van Beethoven(1801) [출처: 위키피디아] |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한 것은 1792년. 이때부터 1802년까지를 흔히 ‘초기 빈 시절’이라고 부릅니다. 스물두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입니다. 본과 쾰른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처럼, 베토벤은 빈에 도착해서도 역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립니다. 특히 1795년 3월에 가졌던 빈에서의 첫 번째 공개연주회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날 베토벤이 연주한 곡은 모차르트의 협주곡 한 곡과 자신이 이틀 전에 완성한 최초의 협주곡(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장조)이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청중을 완전히 흥분시켰던 것은 베토벤이 즉석에서 선보인 즉흥연주였습니다.
그렇게 베토벤은 빈에서 유명해집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렸습니다. 베토벤의 생애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귀족들, 예컨대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루돌프 대공 같은 이들이 너도나도 후원자로 나섰습니다. 베토벤은 귀족들의 살롱에 초대받아 연주했고, 그에게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귀족 집안의 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이른바 ‘불멸의 여인’ 후보로 추정되는 브룬스비크 집안의 두 딸인 테레제와 요제피네, 그리고 귀차르디 백작의 딸인 줄리에타도 있었지요. 보다 자세한 내용은 <내 인생의 클래식 101> 1월 2일자 ‘베토벤 교향곡 5번(http://ch.yes24.com/Article/View/21205)’ 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절의 베토벤은 유난히 피아노 소나타를 많이 썼습니다. 1795년부터 1799년 사이에 작품번호(op)를 가진 피아노 소나타를 12곡이나 써냅니다. 물론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도 그중 하나입니다. 1798년, 혹은 1799년에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비창’(Pathetique)이라는 표제는 여러 이설(異說)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에서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인 것은 8번 ‘비창’과 26번 ‘고별’밖에 없다고 하지요.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 예컨대 악보 출판업자나 후대의 시인 등이 붙인 ‘속칭’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어쨌든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였다는 것은, 이 음악을 통해 베토벤이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음악에 어떤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음악사가들은 ‘비극적 정조’를 공표함으로써 악보 구매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려 했다는 식의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아노 소나타’라는 장르의 특성, 피아노 한 대로 작곡가 개인의 내면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비창’이라는 표제는 당시의 베토벤이 가졌던 어떤 감정 상태와 관련이 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피아노 소나타 ‘비창’은 베토벤이 외관상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절에 쓴 ‘슬픈 노래’인 셈이지요. 20대의 마지막 무렵에 느꼈을 법한 청년의 애상감이 곡의 전편에 흐르고 있습니다.
1악장 도입부에는 ‘그라베’(Grave)라는 지시가 붙었습니다. ‘매우 느리고 장엄하게’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교향곡적인 웅장함으로 문을 엽니다. 아주 드라마틱한 시작입니다. 잠시 후 상승하는 음형들이 트레몰로 주법으로 펼쳐지는 첫번째 주제, 그리고 독특한 장식음 효과를 펼쳐내면서 빠르게 날아가는 듯한 두번째 주제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악장이 끝나갈 무렵 다시 한번 ‘그라베’의 서주를 펼쳐내다가, 빠른 알레그로 템포로 속도가 전환되면서 어두운 열정을 느끼게 하는 첫 번째 주제를 한차례 더 연주합니다.
2악장은 느리게 노래하는 ‘아다지오 칸타빌레’(Adagio Cantabile) 악장입니다. 아름다운 주제 선율이 아주 느린 템포로 연주됩니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팝음악 ‘Midnight Blue’에서 차용했던 유명한 선율입니다. 2악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는 아름다운 주제 선율을 느린 템포로 제시하고 변주하지요. 애상감을 풍기는 단조의 부차적인 주제가 잠시 나타나는가 싶더니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옵니다. 이어서 매우 애틋한 정조를 풍기는 2부로 들어섭니다. 템포가 약간 빨라지면서 음악적 긴장감을 살짝 끌어올리지요. ‘따따딴, 따따딴’ 하는 셋잇단음표의 반주가 곁들여지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그 셋잇단음표의 반주를 계속 이어가면서 주제 선율을 다시 한번 연주합니다. 긴 여운을 남기는 악장입니다.
3악장은 빨라집니다. 주제가 삽입부를 사이에 두고 계속 반복되는 론도 형식의 악장입니다. 악장의 시작과 동시에 연주되는, 빠르고 유연하지만 왠지 불안한 느낌이 감도는 주제 선율을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잠시 삽입부가 연주되다가 다시 주제가 등장하는 장면이 모두 세 차례 펼쳐집니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론도 주제만 잘 붙잡고 있으면 누구나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악이 살짝 잦아드는가 싶다가, 아주 강렬한 코다(종결)로 곡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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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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