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괜찮을 필요 없이, 흔들려도 괜찮아!
지난 6월 15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흔들리며 흔들거리며』북 콘서트가 열렸다. 저자 탁현민은 “나는 괜찮지 않다.” "확신보다는 의심하며 살고, 희망만 보고 살기보다는 절망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것이 삶이라는 소박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2013.06.19
작게
크게
공유
괜찮아? 괜찮아요?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또 물었다. 그 말이 듣기 싫기도 해서 떠난 파리에서도 추워서 점퍼를 사러갔을 때도 한 한인 아주머니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괜찮다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나는 괜찮지 않다.” 그것이 탁현민의 대답이었다.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완벽하게 무기력했다. 바보가 됐다. 지난해 12월 대선이 끝난 직후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탁현민이 지지했던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졌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하룻밤 새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그날까지만 해도 뜨거웠다. 열정적으로 불타올랐다. 추운 겨울이면서 따뜻한 겨울. 그가 손을 들면 환호가 뒤따랐고, 함께 가자고 외칠 수 있었다. 그는 그때 알았다. 확신과 열정, 그것은 적은 재주로 그 이상을, 많은 일을 하게 만들어주는구나. 아름답게 만드는구나. 그러나 졌다. 패배의 낙인이 찍혔다. 열정은 순식간에 고꾸라졌다. 열정은 냉정으로 변했다.
왜 졌을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러다가 찾은 답변. 아니, 억지로 끼워 맞춘 결론이었다. 미국드라마 <웨스트 윙>과 <뉴스룸>의 작가 아론 소킨의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종종 엉뚱한 선택을 하곤 한다.” “민주주의는 유머감각이 빵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었다. 함께 열정을 불살랐던 동료들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었다. 무대연출자로서 확신이 없다는 것, 자신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패배 인정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상대에게 졌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가 몸서리쳐지게 싫었다. 무서웠다. 떠나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힘든 사람 많다는 것, 알았다. 그럼에도 내가 먼저였다. “그는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비틀즈의 ‘노웨어 맨’을 주야장천 들었다. 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끝나지 않아, 밤낮 이런 생각으로 채웠다. 인정할 수 없는 사실에 어떻게 저항할지도 고민하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며 노래를 들었다. 결국 짐을 쌌다. 공항으로 갔다. 떠났다. 안녕.
그리고 지낸 시간만큼의 고민과 행적을 썼다. 『흔들리며 흔들거리며』는 그렇게 나왔다.
나는 누군가, 지금 여긴 어딘가?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 지금 여긴 어딘가? 1월1일,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처음 본 대서양이었다. 말 그대로 대서양이었다. 완전히 뚫리고 나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광활함이었다. 센치해졌다. 새들이 날고 있었다. 그러면서 처음 생각했다. 새들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새가 자유롭다고 여기는 것은 날지 못하는 자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는 것도 그랬다. 누가 보기엔 멋지고 화려해보여도 비릿하고 지루하고 그런 것이었다. 탁현민에게 그렇게 상당한 무게로 다가왔다.
뉴욕에서도 계속 자신에게 물었다. 괜찮아? 아니었다. 다시 떠났다. 프랑스 파리였다. 탁현민이 늘 꿈꿔왔던 곳. 언젠가 파리로 간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가장 멋진 사람들과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다짐, 지켜질 수 없었다. 그냥 괜찮지 않은 시절, 파리로 질렀다. 파리는 추웠다.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 (김용민 양정철 김영준 등의 사진을 보여주며, 일동 폭소) 이 세 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어준, 주진우 사진 등을 보여주며, 환호성)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그러니 내가 울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뭔지 아나? 더 이상 설명 않겠다. 비, 눈, 바람이 함께였다. 늘 젖어있었고 마음까지 젖어있으니 참 그랬다. 돌아가야 할까, 여기서 버텨야 할까?”
그런 파리에서의 나날. 아침에 일어나면 숙소에서 가장 먼 곳까지 걸어가고 다시 걸어오면 하루가 갔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잠이 오지 않아서 어떻게든 걸으려고 애를 썼다. 어느 날 매일 같이 건너던 퐁네프를 건너다가 자신의 존재를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해 위로한 적이 없음을 알았다. 뭐든 해야만 내 존재에 대해 인지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깨달음이었다. 나는 왜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할 일이 없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동네 빵집에 크로와상을 사러 가는 일이었다. 유명한 곳이었는지, 가면 줄을 많이 서 있더라. 늘 줄을 서서 크로와상 하나만 샀다. 한 달쯤 되니 빵집 할머니가 날 쳐다보는 눈빛이 달라지더라. 동정하는 눈빛이지. 어느 날, 가만히 내 손을 잡더니 작은 빵 하나를 더 주더라. 선의도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았다. 물론 할머니는 죄가 없지. 애틋한 마음이었을 텐데, 그걸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살짝 나쁘더라. 매일 하나씩 더 주더니 어떤 날은 빼먹을라치면 기분이 더 나쁘더라(웃음). 나는 사람보다 물건 욕심이 더 강하다. 특히 예쁘고 좋은 것에 환장을 하는데, 사는 데 많은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을 거기 살면서 깨달았다. 그런데 그렇게 깨닫고 죽어야하는데, 살아있으니 자꾸 뭔가를 사게 된다(웃음).”
김영준 양정철 주진우 김정숙과 이야기 나누다
갑작스레 김영준, 양정철, 주진우가 등장했다. 파리에서 일정 기간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다. 소매치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흘러나왔다. 소매치기를 당한 당자사는 양정철이었다. 서로 웃어가며 이날의 에피소드를 쏟아냈다.
주진우: 한국 마트가 있는데, 양정철이 다음날 떠난다고 우리가 미친 듯이 뭔가를 샀다. 마트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웃음). 양 손에 쥐고 숙소로 가려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양정철이 갑자기 함께 타기가 창피하다는 거다. 그러고선 혼자 옆 칸으로 갔다. 그러면서 소매치기를 당한 거다(웃음). 사진을 못 찍을 정도로 험악한 표정이었다.
김영준: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 곧 양정철이 떠나야 하는데 돈을 털렸으니, 300유로를 양정철에게 줬는데, 그 돈을 받아 담배를 피면서 ‘내가 왜 털릴까’ 그 얘기만 했다는 거다(웃음).
탁현민: 나는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양정철과 김영준 두 사람은 매번 같이 다녔다. 책에 없는 이야기인데, 어느 날 두 사람이 샴페인을 사러가야겠다며 기차를 타고 갔다. 그런데 잘 타고 갔는지 의문이다. 샴페인을 사왔는데, 모에샹동의 고장에 간다고 해놓고선 사온 샴페인은 다른 지역의 것이더라.
왁자지껄했다. 네 남자의 파리 스캔들이었다. 서로 부끄럽고, 폭로전(?)이 이어지는 와중에 김정숙 여사가 등장했다. 문재인 의원의 부인이다. 어쩌면 영부인이 될 뻔했던 사람.
탁현민: 선거 끝나고 처음 뵀다. 오늘 이렇게 뵈니 무척 좋다. 책에서 뭐가 가장 재밌었나?
김정숙: 몸이 굉장히 상한 것 같고, (웃음) 걱정을 많이 했다. 이번 책을 내기 전에 트윗은 종종 봤다. 오늘 이렇게 무사한 얼굴로 보니 좋고,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남자들이 여자보다 수다를 더 잘 떤다는 것을 알았다. 책에서는 김어준과 착각해서 벌어진 “영수증 주세요(라디시옹 실부쁠레)”가 가장 재밌었다.
탁현민: 양정철이 소매치기 당한 것도 트위터를 통해서 봤지 않나?
김정숙: 봤다. 그래서 그걸 보면서 그랬다. 그럴 수가 있나. 돈을 쓸 때 써야지(일동 폭소). 상당히 패션에 민감하고 예민한 분들로 알고 있는데, 오늘 왔더니 왜 이리 후줄근하나(웃음).
탁현민: 김영준 씨는 아프리카는 왜 갔나? 두 달 갔다 왔는데.
김영준: 그냥 갔다. 파리에서 이 사람들이 쇼핑할 때 나는 주부습진에 걸릴 정도로 빨래, 설거지를 했었다. (지금 아프리카 얘기를 물었다.) 어쩌다가 잠비아 커피에 빠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무척 좋았다. 그래서 갔다. 어제 커피를 받았다. 케냐 커피를 받았다. (잠비아 커피에 빠진 사람이 케냐 커피를 받았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잠비아에 갔었는데, 커피를 수입하기 힘들겠다는 것을 알아서 케냐 커피를 받았다. 두 달 반 걸렸다.
모그바티스로 가는 길
“이겨도 멋지게 이기고
져도 멋지게 져야 한다고 늘 생각했는데
막상 지고 나니 세상에 멋지게 지는 것 따위는 없었다.”
탁현민, 지는 건 초라하고 불쌍하고 애잔한 것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낸 요즘, 진 게 맞나? 이게 진 건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든다. 책에 나온 ‘모그바티스’는 그가 상상해서 만들어낸 섬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모그바티스를 만들어냈다. 모그바티스는 파리였을 수도, 뉴욕이었을 수도, 홍대였을 수도 있다.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그런 곳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소울 플레이스(Soul place). 즉, 내 작은 방이나 카페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내가 꿈꾸는 사람이고, 선동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선동시켜본 적이 없다. 선동에 재능이 없다. 우리는 뭔가 대단한 것을 꿈꾸지만 꿈이란 걸 알면 허망하다고 생각하잖나. 꿈과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꿈에서 깨어나 꿈을 찾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사람은 왜 굳이 절망에 대해 쓰냐고 묻는데, 나는 그런 게 필요할 것 같다. 확신은 나를 뜨겁게 만들지만 의심과 회의는 나를 더 분명하게 만든다. 우리는 좌절하거나 후회하고 회의하면 약하다고 말하는데, 나침반도 떨리지 않을 때 더 위험하다. 나는 흔들리며 흔들거릴 것이다.”
그는 요즘 글씨를 쓰면서 마음을 잡는다. 도움이 된단다. 가장 많이 쓰는 문구는 이것이다.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감히 용감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며,
감히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에 이른다는 것.
이것이 나의 순례이며,
저 별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길이라오.
아무리 희망이 없을지라도,
또한 아무리 멀리 있을지라도.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또 물었다. 그 말이 듣기 싫기도 해서 떠난 파리에서도 추워서 점퍼를 사러갔을 때도 한 한인 아주머니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괜찮다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나는 괜찮지 않다.” 그것이 탁현민의 대답이었다.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잘 안되었는데 뭐가 잘 될 거라는 건지, 왜 만나는 사람마다 괜찮으냐고 묻는 건지 짜증이 났다. ‘당연히 안 괜찮지. 괜찮으면 이 생면부지의 파리에 와서 이렇게 지내고 있겠어?’”(p.34) | ||
“정치적인 선택이 밥벌이에 구체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지난 5년의 세월을 통해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정치적인 패배가 나를 이처럼 완벽하게 무기력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바보 같았고, 바보가 되었다.”(p.5~6) | ||
“민주주의는 종종 엉뚱한 선택을 하곤 한다.” “민주주의는 유머감각이 빵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었다. 함께 열정을 불살랐던 동료들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었다. 무대연출자로서 확신이 없다는 것, 자신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패배 인정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상대에게 졌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가 몸서리쳐지게 싫었다. 무서웠다. 떠나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힘든 사람 많다는 것, 알았다. 그럼에도 내가 먼저였다. “그는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비틀즈의 ‘노웨어 맨’을 주야장천 들었다. 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끝나지 않아, 밤낮 이런 생각으로 채웠다. 인정할 수 없는 사실에 어떻게 저항할지도 고민하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며 노래를 들었다. 결국 짐을 쌌다. 공항으로 갔다. 떠났다. 안녕.
그리고 지낸 시간만큼의 고민과 행적을 썼다. 『흔들리며 흔들거리며』는 그렇게 나왔다.
나는 누군가, 지금 여긴 어딘가?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 지금 여긴 어딘가? 1월1일,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처음 본 대서양이었다. 말 그대로 대서양이었다. 완전히 뚫리고 나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광활함이었다. 센치해졌다. 새들이 날고 있었다. 그러면서 처음 생각했다. 새들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새가 자유롭다고 여기는 것은 날지 못하는 자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는 것도 그랬다. 누가 보기엔 멋지고 화려해보여도 비릿하고 지루하고 그런 것이었다. 탁현민에게 그렇게 상당한 무게로 다가왔다.
“불어오는 바람의 힘을 부서질 것 같은 날개로 받치면서 새는 난다. 날고 있다는 자유로움을 생각할 틈도 없이 다만 날아야만 살 수 있는 삶은 비릿하고 그걸 바라는 마음은 저리다. 그렇다.”(p.104) | ||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 (김용민 양정철 김영준 등의 사진을 보여주며, 일동 폭소) 이 세 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어준, 주진우 사진 등을 보여주며, 환호성)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그러니 내가 울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뭔지 아나? 더 이상 설명 않겠다. 비, 눈, 바람이 함께였다. 늘 젖어있었고 마음까지 젖어있으니 참 그랬다. 돌아가야 할까, 여기서 버텨야 할까?”
그런 파리에서의 나날. 아침에 일어나면 숙소에서 가장 먼 곳까지 걸어가고 다시 걸어오면 하루가 갔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잠이 오지 않아서 어떻게든 걸으려고 애를 썼다. 어느 날 매일 같이 건너던 퐁네프를 건너다가 자신의 존재를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해 위로한 적이 없음을 알았다. 뭐든 해야만 내 존재에 대해 인지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깨달음이었다. 나는 왜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센 강의 퐁네프 다리를 걷다 문득, ‘이 다리는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으로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묘한 위로가 되었다. 다만 자리를 지키고 있음으로, 다만 존재하고 있음으로도 무엇인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p.187) | ||
“오랫동안 나는 새로운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삶의 즐거움이었다.… 이렇게 쇼핑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나름 생각해보니 뭔가 드러내고, 보여주고, 인정(?) 받는 것을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하던 내 성정과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p.89) | ||
김영준 양정철 주진우 김정숙과 이야기 나누다
갑작스레 김영준, 양정철, 주진우가 등장했다. 파리에서 일정 기간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다. 소매치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흘러나왔다. 소매치기를 당한 당자사는 양정철이었다. 서로 웃어가며 이날의 에피소드를 쏟아냈다.
주진우: 한국 마트가 있는데, 양정철이 다음날 떠난다고 우리가 미친 듯이 뭔가를 샀다. 마트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웃음). 양 손에 쥐고 숙소로 가려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양정철이 갑자기 함께 타기가 창피하다는 거다. 그러고선 혼자 옆 칸으로 갔다. 그러면서 소매치기를 당한 거다(웃음). 사진을 못 찍을 정도로 험악한 표정이었다.
“그가 떠나는 마지막 날이라고 그간 파리에서 신세졌던 사람들을 초대해 삼겹살을 굽기로 해서 우리는 양손 가득 삼겹살과 김치를 사들고 지하철을 탔다. 퇴근시간인지라 지하철역은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았고, 두 손에 고기와 김치를 든 깔끔하고 스타일 중요하신 그 분은 “아, 이거 간지가 안 나는데, 다들 몰려 타지 말고 따로 떨어져 갑시다”하면서 옆 칸으로 혼자 올라섰다.(그러고 보니 그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은 무척이나 운명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20여 분을 가서 목적지에 내린 나와 일행들은 너무나 망연자실하게 양손에 삼겹살과 김치를, 그리고 빈 지갑을 입에 물고 서 있는 그를 보았다. ‘아, 털렸어.’.”(p.p.51,54) | ||
탁현민: 나는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양정철과 김영준 두 사람은 매번 같이 다녔다. 책에 없는 이야기인데, 어느 날 두 사람이 샴페인을 사러가야겠다며 기차를 타고 갔다. 그런데 잘 타고 갔는지 의문이다. 샴페인을 사왔는데, 모에샹동의 고장에 간다고 해놓고선 사온 샴페인은 다른 지역의 것이더라.
왁자지껄했다. 네 남자의 파리 스캔들이었다. 서로 부끄럽고, 폭로전(?)이 이어지는 와중에 김정숙 여사가 등장했다. 문재인 의원의 부인이다. 어쩌면 영부인이 될 뻔했던 사람.
탁현민: 선거 끝나고 처음 뵀다. 오늘 이렇게 뵈니 무척 좋다. 책에서 뭐가 가장 재밌었나?
김정숙: 몸이 굉장히 상한 것 같고, (웃음) 걱정을 많이 했다. 이번 책을 내기 전에 트윗은 종종 봤다. 오늘 이렇게 무사한 얼굴로 보니 좋고,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남자들이 여자보다 수다를 더 잘 떤다는 것을 알았다. 책에서는 김어준과 착각해서 벌어진 “영수증 주세요(라디시옹 실부쁠레)”가 가장 재밌었다.
“하루는 (김어준을) 낮에 만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헤어진 뒤 길을 걷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서 산발한 머리와 짙은 감색 쟈켓 그리고 검은 바지에 검은 구두를 신은 그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으이구 지겹네. 이제’하며 좀 놀래어줄 요량으로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어이, 어딜 또 가시나”하며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런데 이런…. 깜짝 놀라며 뒤돌아선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의 뒷모습과 무척 닮은 ‘프랑스 아줌마’였다. 나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그 아줌마가 뭐라 뭐라 하는 이야기와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내가 아는 불어를 말해버렸다. “라디시옹 실부쁠레(영수증 주세요).”(pp.41~42) | ||
김정숙: 봤다. 그래서 그걸 보면서 그랬다. 그럴 수가 있나. 돈을 쓸 때 써야지(일동 폭소). 상당히 패션에 민감하고 예민한 분들로 알고 있는데, 오늘 왔더니 왜 이리 후줄근하나(웃음).
탁현민: 김영준 씨는 아프리카는 왜 갔나? 두 달 갔다 왔는데.
김영준: 그냥 갔다. 파리에서 이 사람들이 쇼핑할 때 나는 주부습진에 걸릴 정도로 빨래, 설거지를 했었다. (지금 아프리카 얘기를 물었다.) 어쩌다가 잠비아 커피에 빠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무척 좋았다. 그래서 갔다. 어제 커피를 받았다. 케냐 커피를 받았다. (잠비아 커피에 빠진 사람이 케냐 커피를 받았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잠비아에 갔었는데, 커피를 수입하기 힘들겠다는 것을 알아서 케냐 커피를 받았다. 두 달 반 걸렸다.
모그바티스로 가는 길
“이겨도 멋지게 이기고
져도 멋지게 져야 한다고 늘 생각했는데
막상 지고 나니 세상에 멋지게 지는 것 따위는 없었다.”
탁현민, 지는 건 초라하고 불쌍하고 애잔한 것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낸 요즘, 진 게 맞나? 이게 진 건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든다. 책에 나온 ‘모그바티스’는 그가 상상해서 만들어낸 섬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모그바티스를 만들어냈다. 모그바티스는 파리였을 수도, 뉴욕이었을 수도, 홍대였을 수도 있다.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그런 곳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소울 플레이스(Soul place). 즉, 내 작은 방이나 카페일 수도 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나는 모그바티스로 향했다. 서울에서의 일상이 여기서는 신기한 뉴스로 읽혀졌고, 아마도 서울로 돌아가면 모그바티스에서의 일상이 신기했던 일들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했다. 여행은 그렇게 익숙한 것과 낯선 것들의 위치를 바꾸어 주는 마법이었다. 모그바티스. 꿈에서 깨어나 꿈을 찾아다니던 그곳, 모그바티스.”(p.123) | ||
“이 책은, 그리고 이 책 속에 담겨있는 나는 떨고 있다. 두려워하고 있다. 방향은 알겠지만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중략) 나는 아직 세상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고, 절망과 희망이 경계를 두고 맞붙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략) 책을 내는 이유는 하나다. 좌절과 희망, 의심과 회의가 나침을 떨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덕분에 나침은 고정되지 않으며 여전히 정확한 방향을 일러주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 그것이 전부다. 그러니 나는 이제 흔들릴 때 흔들리겠다.”(p.236) | ||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감히 용감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며,
감히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에 이른다는 것.
이것이 나의 순례이며,
저 별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길이라오.
아무리 희망이 없을지라도,
또한 아무리 멀리 있을지라도.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에서
“모그바티스는 그런 곳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곳, 적게 가지는 것이 많이 가진 것에 비해 덜 불편한 곳, 각자가 가진 무거운 고민을 햇볕에 말릴 수 있고 모래사장을 걷다가 옛 사람들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곳, 서로가 꿈을 꾸고 그 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었다.”(p.175) | ||
- 흔들리며 흔들거리며 탁현민 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이 책은 갑자기 방향을 잃은 한 중년 남자의 서글픔과, 덜떨어진 장기 여행자의 좌충우돌 에피소드와, 정치적 절망과 그것에 대한 회한 사이를 왕복하고 있다. 가끔은 기운 차린 듯 보이고, 대부분은 어쩌지도 못하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다. 남 탓과 내 탓 사이 어디쯤에서 죽고 싶다와 그래도 살아야지를 무한 반복하며 미친놈처럼 혹은 미친년처럼 악을 쓰기도 하는 그 남자의 모습이 상상이나 가는지. 그러다가 갑자기 ‘그래봐야 별 수 없잖아’하며 갑자기 달관한 척을 하기도 하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5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djsslqkqn
2013.07.04
sind1318
2013.06.30
뭐꼬
2013.06.3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