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최후
1943년 3월, 『어린 왕자』가 뉴욕에서 영어판으로 먼저 나왔다. 그 다음 달 생텍스가 배를 타고 북아프리카로 가고 있을 때 뉴욕의 라 메종 프랑세즈에서 불어판이 출간되었다. 당시에 이 책이 20세기 문학의 전설적인 작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글ㆍ사진 김화영
201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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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가 완성되어가는 1942년 11월, 유럽에서는 독일군이 프랑스의 자유지역을 침략하여 툴롱까지 밀고 내려갔고 생텍스가 바랐던 대로 마침내 전쟁에 개입한 미군은 북아프리카에 상륙했다. 사정이 이러하고 보니 적극적 행동을 갈망해온 생텍쥐페리가 미국에 남아 일 없이 빈둥대며 사막에서 길 잃은 어린 왕자나 그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초조해졌다. 유럽에서의 전쟁에서 자신이 맡아 할 일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튼 네크의 삼층짜리 하얀 집 ‘베빈하우스’의 생활에서 오랜만에 아늑함을 맛볼 수 있긴 했지만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국외자가 되어 있다는 죄책감과 소외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곳에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라는 공개서한을 『뉴욕 타임스』지에 발표하여 비시 파든 드골 자유 프랑스 파든 프랑스인들은 의견 차이를 극복하고 국민연합을 형성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한편 지난날의 동지들이 있는 2/33비행중대에 합류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철학자 자크 마리탱 같은 사람은 유대인이면서도 생텍스에 반대한다.

1943년 3월, 『어린 왕자』가 뉴욕에서 영어판으로 먼저 나왔다. 그 다음 달 생텍스가 배를 타고 북아프리카로 가고 있을 때 뉴욕의 라 메종 프랑세즈에서 불어판이 출간되었다. 당시에 이 책이 20세기 문학의 전설적인 작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월 4일, 생텍스는 삼 주간에 걸친 바다여행 끝에 알제에 도착하는 즉시 우지다에서 미군의 지휘를 받고 있는 자신의 비행중대에 합류하고자 앙리 지로 장군에게 호소한다. 지로 장군은 장차 알제에서 창설될 민족해방위원회를 이끌게 될 인물로 점증하는 드골의 영향력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동하고 있는 장치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 점이 오히려 생텍쥐페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지로 장군은 그가 2/33비행중대에 복귀할 수 있도록 아이젠하워 미군 사령관에게 개인적으로 청을 넣었지만 장군의 위상은 급속도로 기울고 있었다. 이 무렵 알제에 자리잡은 드골 임시정부는 생텍스에 대한 비방을 멈추지 않았고 그의 소설 『전시 조종사』의 판매를 금지한다. 레지스탕스가 출판한 이 책은 드골과 나치 독일 양쪽에서 다 같이 금지당한 채 사람들의 망토 속에서 비밀리에 보급되는 역설적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편 드골은 10월 30일 연설에서 독일에 협력하기를 거부하며 국외로 망명한 프랑스 작가들을 찬양하면서 그 명단에서 생텍스의 이름을 제외시켰다. 생텍쥐페리는 뉴욕에서 비겁자로 취급받은 것에 대한 강한 불쾌감과 독재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는 골리즘에 대한 우려로 유일 당에 의한 프랑스의 드골 지향적 미래를 거부한다. 이제 그가 과거의 모욕을 씻는 방법은 죽음과 겨루어 명예를 찾는 일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 젊은 베테랑 조종사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시련인 전투비행을 선택하고자 한다. 정치적 보복의 희생양이 되어 땅에 발이 묶여 있는 것보다는 적과 대결하다가 명예롭게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왜 내가 전투용 비행기에 몸을 싣고 순정한 삶을 살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탄식한다.


비행기.
종이에 연필.
(.........)

31편대 대장인 샤셍 대령의 노력으로 그는 사르데뉴 주둔 부대에 배속되어 비행훈련을 받았다. 1944년 4월 그는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알제에서 2/33비행중대에 복귀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단 5회의 정찰비행만 한다는 조건이었다. 사실 그는 나이와 신체적 조건으로 보아 지난번 마지막 비행 훨씬 이전에 예편되어야 마땅했었다. 부대장 르네 가부알과는 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생텍스는 곧잘 규율을 무시하는 부하였다. 그는 사십사 세 생일날인 6월 29일, 출동 순번이 아님에도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잘 아는 사부아 지역 정찰이라는 이유로 한사코 출동을 자원했다. 그는 프랑스 땅 안시 상공에서 좌측 엔진이 고장을 일으키자 독일 전투기들을 피하여 알프스 쪽으로 선회한 끝에 실수로 이탈리아 제노아 상공에 이르게 되어 자칫하면 적 전투기들에게 격추당할 뻔했다. 7월 말경이 되자 그는 정서적, 육체적, 지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압박을 오래 참아내기 힘든 처지였다. 그가 마지막 정찰비행에 나선 것은 바로 이런 위험한 상황 속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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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찾아서 김화영 저 | 문학동네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자이자 개성적인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으로 우리 문학계와 지성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온 김화영 선생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만났다. 이 책 『어린 왕자를 찾아서』는 『어린 왕자』를 번역하면서 ‘어린 왕자’를 태어나게 한 진정한 어른이었을 생텍쥐페리의 삶을 조망하고,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의미를 풀어냈다.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어린 왕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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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어린 왕자를 찾아서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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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8509

2013.05.03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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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2013.04.30

오 진짜 얼마전에 어린왕자 기사있었는데 또 나오네요.명작이니 괘않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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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kaist

2013.04.29

어린왕자에 대한 기사를 얼마전에도 봤는데 ㅎㅎ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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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치한 문장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탁월한 평론을 선보인 전 방위 문학인으로,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는 『지중해, 내 푸른 영혼』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로베르여 안녕』 『예술의 성』 『프랑스문학 산책』 『공간에 관한 노트』 『바람을 담는 집』 『소설의 꽃과 뿌리』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미당 서정주 시선집』 『예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흔적』 『알제리 기행』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프랑스 현대시사』 『섬』 『청춘시절』 『프랑스 현대비평의 이해』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노란 곱추』 『침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팔월의 일요일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짧은 글 긴 침묵』 『마담 보바리』 『예찬』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최초의 인간』 『물거울』 『걷기예찬』 『뒷모습』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이별잦은 시절』 등이 있다.